스승은 약초 캐러 갔다네

2009. 6. 8. 10:59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선불교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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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은 약초 캐러 갔다네


소나무 아래 동자에게 물으니

스승은 약초 캐러 갔다네.

다만 이 산 속에 있긴 하지만 구름 깊어

그 있는 곳 알지 못하네.


松下問童子  言師採藥去  只在此山中  雲深不知處

송하문동자    언사채약거    지재차산중   운심부지처


- 무본가도(無本賈島)

 

 


   가도(賈島, 779~843)라는 사람은 본래 당나라 때 스님이었다. 법명이 무본(無本)이다. 자는 낭선(浪仙)인데 지금의 하북성 범양 사람이다. 여러 차례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실패하고 스님이 되었다가 한유(韓愈)와 교유하면서 환속하였다. 관계에 진출하여 837년에 사천성 장강현의 주부(主簿)가 되었다. 그의 시는 매우 세련되어 세세한 부분까지 잘 묘사되어 있다. 1자 1구도 소홀히 하지 않고 고음(苦吟)하여 쌓아올리는 시풍이었으므로, 유명한 퇴고(推敲)의 어원이 된 일화는 그의 창작 태도에서 생기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시는 그림의 소재가 많이 된 시다. 은자를 찾아갔다가 만나지 못했다[尋隱者不遇]라는 제목이 있다. 어떤 도사가 스님을 찾아갔는데 산문 앞 소나무 아래에서 동자를 만났다. 동자에게 스승님 어디에 계시냐고 물으니 스승님은 약초를 캐러 갔단다. 멀리 가지는 않고 다만 이 산중 어디엔가에서 약을 캐고 있을 텐데 구름이 깊어서 어디 계시는지를 알 수 없단다. 제목처럼 숨어사는 은자를 찾아갔다가 만나지 못한 사유치고는 너무 간결하고 소박하다. 먼지를 쓸고 물을 뿌린 듯이 맑고 깨끗하다. 소나무와 동자, 스승과 약초, 산과 구름으로 훌륭한 한 폭의 그림이 되었다.  

 

출처 : 무비 스님이 가려뽑은 명구 100선 ③  [무쇠소는 사자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 천환짜리 행복

 

 


오래전 어느 사람의 이야기 입니다.
지금은 거의 사라젔지만 60년대의 서울역에는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지게 품팔이 꾼들이 많았습니다.
당시 쌀 한 되박 400환으로 기억이 됩니다.
이것을 벌지 못하면 식구들을 굶겨야 했지요.
 

여름 어느날 그날따라 하루종일 내리는 비로 거리는 

온통 질척거렸고 이제나 저제나 기대를 했지만 말 그대로

한 푼 벌지못 한공치는 날 이었지요

점심마저 걸러 허기가 몸까지 추워 옵니다.
올망 졸망 어린 것들의 얼굴이 자꾸만 아른거립니다.
200환이라도 벌어야 하는데....

오는사람, 가는사람 불러줄 사람을 살폈으나
벌써 날이 저물어 오고 있었습니다.
어린것들의 얼굴이 또 아른거립니다.

「아빠 오늘 돈 많이 벌었어?」

늘 매달려 응석을 부리던 막내놈 얼굴이 보입니다.
절망이 었습니다.
쌀집엔 외상이 남아있어 그나마 선뜻 외상 달라는

말하기가 힘든 처지, 피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집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터벅 터벅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향하고 있었지요.
.......................


비 그친 아스팔트 위 차 마저 뜸한
그 길위에 1,000환 짜리 지폐 하나
4등분으로 접힌 비맞은 지폐 한 장,
그것은 구원의 여신이었습니다.

우선 쌀 한되 사고,
남어지 600환중 100환은 눈깔사탕 1봉지 사고,
어린 것들 잘 먹는 보리꽁치 세마리 사서
지게 목발에 달았습니다.
실컨쓰고도 아직 400환이 남었습니다.
그제서야 시장끼가 몰려옵니다.
응근히 소주 생각이 납니다.
막소주 두 잔을 안주 없이 마시고 남은 돈은 안주머니에

깊이 넣고 급히 집으로 향합니다.
돈병철이 부럽지 않습니다.
노래가 부르고 싶고 춤도 추고 싶습니다
이 풍진 세상을......
행복했습니다.
너무 너무 행복했습니다.

돈 1,000환이............

 

우리는 행복을 이렇게 만들며 살아 갈 수 있었습니다. 

 

 

그 때에 비하면 지금 우리 생활은 대궐이지요

어려움 속에서 추억과 행복은 꽃이 핍니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정신은 축복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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