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새불교운동 보현행원을 시작하는가?-저의 변명

2009. 10. 18. 22:12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화엄경·보현행원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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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명]왜 새불교운동 보현행원을 시작하는가?-저의 변명

[본문]

제가 볼 때 지금의 한국 불교는  중병을 앓고 있습니다.

깨달음의 삶은 없고 깨달음만 난무하는 불교.
섬기고 나누기보다는 권위, 군림하는 불교.

그리고 내가 깨치면 일체 만물이 다 깨친다는 가르침 아래
내가 해탈하면 모두가 가만 있어도 저절로 해탈하는 줄 믿으며
타인의 고통에는 관심 없이 오직 내 수행에만 관심 있는 불교.

불교 도서관의 건립을 통한 불교 음악, 불교 서적의 공급 등
내면의 성장보다는 집짓기 불사 등
물질만 난무하는 물질 불교 또는 외형 제일주의 불교.

대강 이런 것들이 오늘 한국 불교의 밝은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주요 문제가 아닌가 합니다.
그 결과, 불자 수 감소, 카톨릭 신도 두 배 증가라는
엄청난 충격을 가져 온 것은 아닐까요?
(실지로 제 주위의 젊은이들은 거의 모두 개신교 아니면 카톨릭입니다)

이러한 일들은 오늘날만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다소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수십 년 전부터 이미 있어 왔던 문제점입니다.

이러한 한국 불교의 문제점을 일찍이 밝은 눈으로 헤아려 보시고,
밝은 불교, 행동 불교, 전법의 불교를 부르짖으시며
불광의 광덕 큰스님은 30 여년 전 새 불교 운동을 전개하셨습니다.

그러한 새 불교 운동의 이름을 큰스님은
부처님의 빛, '불광(佛光)'이라 이름 지으시고,
우리나라의 오랜 전통이자 행동 불교, 자비 불교의 대명사인
화엄경의 '보현행원 사상' 을 근간으로 스스로 불타 오르시며
허무와 은둔에 빠져있던 한국 불교계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 넣으셨습니다.

그 결과 조선 시대 이후 수 백년을 잠자던 우리의 밝은 불성이 잠을 깨어,
깨달음은 신기루가 아니라 현실이 되어
이웃들 속으로 노도와 같이 밀려들어가고,
사람들은 불교를 놀라운 마음으로 새롭게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새 불교 운동이 온 불자(佛子), 온 국민들의
열화와 같은 호응을 얻으며 단단한 기초를 잡아갈 즈음,
당신을 생각지 않고 한국 불교를 위해 온 몸을 불사르시던
광덕 큰스님은  그만  쓰러지시고 맙니다.
평소에도 병약하시던 큰스님이신지라
건강이 감당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병중에서도 불은(佛恩)을 잊지 못하시던 큰스님은,
창작 국악 교성곡  '보현행원송' 을 발표하시는 등
한사코 전법의 불길을 불사르시다,
가벼운 감기에 걸리신 것이 치유 불능의 폐렴으로 악화되어
새 불교 운동의 만개를 마저 보시지 못하신 채 마침내 열반에 드시고 맙니다.
큰스님 가시고 난 뒤 벌써 7 년.
저는 큰스님께서 일으키신 이 새 불교 운동의 물결이
다시 노도와 같이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큰스님이 그토록 원하시던
'깨달음이 세간의 삶 속에서 들불처럼 타오르는 세상' 을 말입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 생명의 노래, 행복의 노래를 마음껏 부르며,
우리의 밝은 삶, 밝은 마음이 온 세계로 뻗어가는 그런 세상을...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런 기운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제가 너무 어리석고 교만한 것일까요?...

저는 광덕 큰스님께서 일으키셨던 새 불교 운동의 불씨가
꺼져 가는 것만 같아 참 안타깝습니다.

병으로 쓰러지지만 않으셨다면 대만 불광산사의 성운대사 못지 않게
한국만 아니라 전 세계로 뻗어 가는 밝은 불교를 일으키셨을 큰스님.
그 큰스님의 밝은 혜안, 깊은 비원(悲願)이 저를 아프게 만드는 것입니다.

제가 미혹하지만 보현행원 강의를 시작하는 것은 다른 뜻이 '전혀' 없습니다.  
광덕큰스님께서 그토록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셨던 보현행원 운동을,
저라도 한번 다시 시작해 볼까 해서입니다.

저는 출가자도 아니요 불교학을 전문으로 공부한 불교학자도 아닙니다.
하루하루 삶의 무게와 번뇌를 이기지 못해
힘들게 살아가는 이름 없는 아마추어 재가 불자 에 지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참으로 두렵고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그러나 저라도 나서지 않으면
큰스님이 어렵게 일으키신 보현행원 운동이 그나마 사라질까봐,
미약하고 모자라지만 한번 나서 보는 것입니다.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얼마나 지속하며 얼마나 내실 있을지 모르지만,
시도라도 한번 해 보고  싶은 것입니다.

저는 수행도 부족하고 아는 것도 별로 없습니다.
따라서 저보다 훨씬 공부 많이 하시고
많이 닦으신 분이 차후에라도 나서신다면,
저는 언제나 물러설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또한 그 분을 따라 배우겠습니다.
그러니 어서 빨리 그런 분이 나오시길 기대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못난 제가 나서오니,
혹시나 마음에 안 들고 못 마땅한 게 있으시더라도,
저의 뜻이 다른 데 있지 않음을 이해 주시어
넓은 아량으로 받아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
나무보현보살마하살

 普賢合掌

 
 ♣마음에 무엇을 담겠습니까?♣ 
병(甁)에 물을 담으면 '물 병'이 되고,
꽃을 담으면 '꽃 병'
꿀을 담으면 '꿀 병'이 됩니다.
통(桶)에 물을 담으면 '물 통'이 되고,
똥을 담으면 '똥 통'
쓰레기를 담으면 '쓰레기 통'이 됩니다.
그릇에 밥을 담으면 '밥 그릇'이 되고,
국을 담으면 '국 그릇'
김치를 담으면 '김치 그릇'이 됩니다.
병(甁)이나 통(桶)이나 그릇은
그 안에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좋은 쓰임으로 쓸 수도 있고
허드레 일에 쓰일 수도 있읍니다.
꿀 병이나 물 통이나 밥 그릇등
좋은 것을 담은 것들은
자주 닦아 깨끗하게 하고
좋은 대접을 받는 대신,
좋다고 여기지 않는 것을 담은 것들은
한 번 쓰고 버리거나,
가까이 하지 않고 오히려
멀리하려는 나쁜 대접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병, 통, 그릇들은
함부로 마구 다루면 깨어지거나
부서져서 곧 못쓰게 되기 쉽습니다.
우리 사람들의 '마음'도 이 것들과 똑 같아서,
그 안에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좋은 대접을 받을 수도 있고
못 된 대접을 받아 천덕꾸러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즉 우리 마음 속에 담겨 있는 것들이
무엇이냐에 따라 ‘사람 대접’을 받느냐
아니냐로 달라지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불만, 시기, 불평등
좋지 않은 것들을 가득 담아두면
욕심쟁이 심술꾸러기가 되는 것이고
감사, 사랑, 겸손등
좋은 것들을 담아두면 남들로부터
대접받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무엇을 담느냐 하는 것은,
그 어느 누구의 책임도 아니고
오직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