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희미해지고 시들어질 때...]

2009. 10. 20. 21:42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화엄경·보현행원품

728x90

위 사진은 '백만송이코스모스'님께서 공양하여 주신 제주도 천왕사에 모셔진 '관세음보살(아마도 기룡관음님이 아닐까 추측됩니다^^)'이시랍니다.백만송이코스모스님께 감사의 합장 올립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 合掌!

 

 

 

 

[삶이 희미해지고 시들어질 때...]

 

 

삶이 희미해지고 시들어질 때
나는 그리움을 떠 올린다

 

그리움은 정말 대단한 것
잊었던  벅찬 가슴을
마술처럼 되찾게 한다


여름 아침을 밝히던
해맑은 꽃들의 아침 웃음


즐거웠던 옛일들
끝나지 않던 별들의 이야기


아득한 별들과 함께 펼쳐지던
생각만 하여도 신나던 미래의 꿈
불가능이란 없고
뭐든지 가능하던 그 때 그 시절


그리고 그와 함께 설레든
나의 마음 나의 서원


내가 이 세상 나아가는 날
내, 세상을 반드시 밝게 만들리라
슬픔은 멎고
기쁨만 춤추게 하리라...

 

가끔은 꿈속처럼 떠 오르는 
이루어지지 않던 사랑의 기억들


사랑에 재주 없는 이라
내 무슨 사랑을 했겠나 마는
오지 않는 사랑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아! 나는 그런 무모한 사랑을
왜 그리 깊게 했던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은
피할 수 없는 나의 아픔
나의 운명인 것을...

.........

그러나 그럴 때쯤이면 나는 다시
잃었던 내 옛 마음을 찾나니


온 세상은 미소짓는
지극히 아름다운 님의 모습
그렇게 찾아도 오지 않던 님의 소리 님의 노래가
내 온 몸에 가득하나니


곳곳에 들려 오는 님의 노래
다시 일어서기를 바라는 님의 노래
나를 황홀하게 하는
시작도 끝도 없는 그 님의 노래


사방에는 비바람, 칠흙같은 어둠뿐이지만
꿈처럼 들려오는 환희로운 그 님의 노래에
흐트러진 몸과 마음을  내 정성 다하여 재(再) 추수려

저 근원 알 수 없는 설움과 아픔 속으로
희망과 용기를 안고 나는 다시
힘껏 뛰어 드노라!


그것이 비록 꿈이고
나의 착각이었다 하더라도.........

 

웃자! 웃을 일이 생긴다!

 

웃음꽃을 피워내는 주문이 있습니다.

 

바로 마하반야바라밀입니다.

 

마하반야바라밀을 염한다.

 

그 소리를 듣는다.

 

듣는 성품을 돌이켜 듣는다.

 

바로 여기에

 

마음이 크고, 밝고, 편안해지는 비결이 깃들어 있습니다.

 

 

 

 



 

 

[보현동자상.  출처-야후백과]

 

 

 

[보현행원]마음은 부처님을 향하고(念佛), 몸은 중생 속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수행(行佛)

 

 

 

 

VIII.결 론-보현행원은 ,

마음은 부처님을 향하고(念佛),

몸은 중생 속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수행(行佛)

 

 

보현행원은 ,

마음은 부처님을 향하고(念佛),

몸은 중생 속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수행(行佛)

---보현행원으로 보리 이루리!(以普賢行悟菩提)

 


 

 

보현행원은  깨쳐서 부처 되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 유무에 상관없이 부처님처럼 살아가는 수행법입니다. 

 

그러면 업장이나 깨달음 유무에 관계없이
지금 당장 부처님처럼 환하고 밝게 살아갈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런 행복 속에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 부처님이 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깨닫지 못했다 하더라도 깨달은 후에 오는 공덕이 이미 현전함은 물론입니다).

 

 

또한 행원은 내가 있는 곳에 부처님을 오시게 하는 수행법입니다.


행원을 하게 되면  나라는 아상은 저절로 없어지고
내가 있던 곳에 부처님만 가득하게 됩니다.
나의 온 몸과 마음이 부처님으로 가득하게 되는 수행이 보현행원 수행법입니다.

 

또한 행원은 저절로 되어지는 수행법입니다.

 

하심하지 않아도, 아상을 없애고 계를 지키려 하지 않아도
깨달으려 하지 않아도 부처님 계신 곳에 부처님 삶이 그대로 전개되며
저절로 깨달음에 이르게 되는 수행법이 보현행원입니다.


이러한 행원은 궁극적으로는
'마음은 부처님을 향하고(念佛)

몸은 중생의 세계를 열심히 살아가는(行佛)수행'이 됩니다.


마음은 한없는 그리움으로 부처님을 떠나지 않고,
몸은 중생 속에서 한없는 원을 가지고
일체 중생을 찬탄하고 섬기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끝없는 원과 끝없는 행원 속에서 우리의 잠자던  불성(佛性),
꺼져가던 불성의 불씨는 다시 살아나 점점 밝아져 가고
주위 환경은 축복으로 변해 가며,
나만 아니라 우리 모두,
깨달은 자만 아니라 깨닫지 못한 범부 중생들도
다같이 함께 행복의 물결, 성불의 문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중생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행복을 창조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 불자님들은 반드시 행복해져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행복의 증명자, 불성의 증명자 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마음이 부처님을 향한다함은,
우리의 마음 역시 중생을 향한다는 말입니다.

 

부처님은 어떤 분이신가?
마음이 언제나 중생을 향하신 분입니다.

 

 

언제나 중생의 행복을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중생들을 복되고
이익되게 할 수 있는가만 마음에 가득한 분이 바로 부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을 향한 마음은  거울에 빛이 반사되듯
다시 중생으로 되돌아 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을 중생으로 향해 있으면
그 마음은 어느 한 곳에도 머무를 수가 없습니다.
중생의 마음이 변화무쌍하고
중생의 번뇌가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금강경의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 역시 바로 이런 소식입니다.

 

 

행원의 말씀을 맺으며 마지막으로 꼭 하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 불자님들이 더 큰 세계에 눈을 뜨셨으면...하는 것입니다. 

 

우리 불자님들은 너무 나의 문제에만  집착해 있는 경향이 있습니다.
나의 깨달음, 나의 수행, 내 문중...

이런 데 너무 많은 에너지가 낭비 되는 것입니다.

 

눈을 조금만 더 크게 떠 보아도 우리는 할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작게는 우리 사회에서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분들이
곳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며,
크게는 세계적으로 한국 불교의 도움 을 필요로 하는 곳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가 나의 깨달음을 이루고 내 문중을 빛내며
내 불사(佛事), 내 수행에만 신경을 쏟고 있을 때,

많은 분들이 우리를 기다리다 지치고 사라져 가는 것입니다.

 

얼마나 나는 더 깨달아야 하며,
얼마나 더 많은 이웃들이 눈물을 흘려야 
내 깨달음은 완성되는 것입니까? 

 

부처님 가르침은 어제나 오늘이나 봄 햇살처럼 찬란한데,
나는 대체 무엇이 부족해서 저 중생들  곁에 가지 못하고
고뇌의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단 말입니까?

 

얼마나 더 많은 이웃들이 사라지고
얼마나 더 많은 세월이 흘러야
나의 방황은 끝이 나며 내 깨달음은 완성되어,
비로소 저들 옆으로 달려가
눈물을 닦아 드리고 함께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저 역시 말씀은 이렇게 드리지만 모자라는 점이 너무 많습니다.

 

 

원을 발하라 말은 하지만,
제 원은 한 줌의 모래알도 안 되는 반면
욕심은 수미산보다 더 하며 번뇌는 바다보다 더 깊습니다.

 

 

저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안하고 창피하고 부끄럽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냥 있을 수는 없습니다.
더 큰 원을 발하여 마음만은 중생 공양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제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비록 개인적으로는 미약한 존재이지만
작은 개인들이 함께 하면 그런 한계를 극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프리카의 들소들이 건기를 맞아 그 넓은 초원을 건너갈 수 있는 것은
미약한 들소들이 무리를 이루기 때문 입니다.

 

해마다 바다를 건너 따뜻한 곳을 찾아오는 철새들이
그 먼 거리를 오갈 수 있는 것도 무리를 이루기 때문 입니다.
개인의 힘은 미약하지만 함께 하면 어마어마한 것 입니다.

 


비록 우리의 서원은 아직 보잘 것 없고 이제 겨우 시작에 불과하지만,
우리 모두가 보현의 원과 행으로 하나가 되어 함께 중생 공양으로 함께 나아갈 때,
반드시 원만한 회향은 이루어지고 모두가 행복하고 모두가 보리를 이루며
장엄한 화엄의 법계는 우리 앞에 펼쳐질 것입니다. 

 


 

 

불자님들이시여!
부디 눈을 뜨소서!

 

 

 

그리하여 나의 해탈, 나의 수행만 찾는 자그마한 세계, 
허기진 나의 세계에서 벗어나
우리 모두 저 광활한 해탈의 세계,
무량한 깨달음의 세계로 함께 뛰어 드십시다.

 

 

 

서로 눈물을 닦아주고
서로 격려하며
그렇게 함께 가십시다.

 


 

이미 모든 것이 갖춰진 세계!

이미 깨달음이 이루어진 세계!
그리하여 삼세(三世)의 모든 부처님이 중생과 함께 춤을 추고
범부와 성자가 하나 되어
모두 함께 환희의 노래 부르고 있는 세계! 

 

 

 

불완전과 완전이

등가(等價)의 자격으로 조화롭게 어울리는 세계!

 

 

 

서럽고 눈물 많은 줄만 알았던
초라한 내 모습, 나의 삶이 실로는 완전한 진리 세계이며
잘난 이뿐 아니라 이리도 못나고 부족한 내가 있기에
부족함, 불완전이 모여 저 찬란한 법계가 비로소 완성되는 세계!

 

 

 

그것이 '대방광(大方廣)'이요
거기 사는 서럽고 눈물 많은 중생의 모습이
실로는 저 장엄한 '불화엄(佛華嚴)' 일지니....

 


 

그러므로 '대방광불화엄경' 이며,
우리의 삶이 '불가사의' '보현행원' 일지니...

 

 

나무마하반야바라밀
나무보현보살마하살

 

 

 

 

 

 

 

*註

 

 원효 스님의 사상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일심의 근원으로 돌아가(歸一心源)

일체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일(利益衆生).입니다.

 

이는 '마음은 부처님을 향하고 몸은 중생을 향하는'

보현행원의 사상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알고보면, 원효스님은 바로 '보현행자'이셨던 것입니다.

 

 

원효스님은 60 화엄 시대의 분이시라,

화엄수행의 정수가 열 가지로 요약된 40 화엄의 보현행원품이 나오기 전인데도,

중국 화엄 학자들이 그렇게 알고자 했던 화엄수행의 정수인

보현행원 사상을 60화엄에서 정확히 꺼집어 내시고

실지로 그 길을 가셨던 분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