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할 때의 주의사항

2009. 10. 21. 20:41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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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장. 기도할 때의 주의사항 1. 절을 하기 어려울 때 아주 드물지만 절을 하는데, 갑자기 무릎이 뻣뻣해지고 무언가 절하기를 거부하는 듯한 느낌이 들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절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문제가 있지만, 그보다 절하는 이의 몸에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진리 생명에 어긋나게 행했던 업(業)의 기운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럴 경우 기도하는 사람은 자신의 무릎을 꿇지 못하도록 저항하는 기운을 일단 마장(魔障)이라 여겨야 합니다. 그리고 마음을 다잡아 천천히 보다 간절한 생각으로 절을 해야 합니다. 만약 간절한 마음을 내면 낼수록 더욱 무릎이 절하기를 거부한다면 한번 절해서 오체투지를 하여 그런 기운이 느껴지지 않을 때까지 엎드린 채로 참회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하면서 일어나지 않도록 합니다. 참회하는 마음으로 오체투지를 하면 그 기운이 감화되어 그 죄업을 뉘우치게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런 기운이 그치지 않는다면 수행을 많이 한 눈 밝은 스승을 찾아 여쭙고 진언수행이나 염불수행을 함께 해야 합니다. 2. 졸음이나 잠이 올 때 기도를 하면서 까닭 없이 졸음이 오고 때없이 잠이 몰려올 때도 있습니다. 더구나 절을 하고 있는데도 잠과 졸음을 쫓을 수 없다면 거기에도 나름대로 까닭이 있습니다. 가장 일반적인 이유는 기도하는 이가 불교에서 금지하는 오신채(五辛菜:파․마늘․부추․달래․홍거)나 고기를 많이 먹었을 때, 또는 여러 가지 계율을 한꺼번에 많이 어기는 바람에 마장(魔障)이 드세어진 것이지만, 드물게는 몸을 지배하는 마구니의 작용으로 말미암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럴 경우 기도하는 사람은 보다 정확한 자세로 서두르지 않고 생각을 한 곳으로 모아 기도를 하면, 이런 증상은 차츰 약해지고 끝내 사라지게 됩니다. 이런 증상이 사라진다 함은 물론 기도를 통해 몸을 지배해 온 삿된 마구니가 항복되고 진리 생명이 회복되고 있음을 가리키며 계율을 지키지 못한 허물이 참회되고 있음을 가리킵니다. 몸에 이런저런 이름 모를 큰 병이 있는 사람이 기도를 할 때 졸음과 비슷한 것이 몰려들기도 하는데, 이럴 경우에도 기도가 이루어짐에 따라서 차츰 정신이 맑아지며 그 병이 낫기도 합니다. 몸에 병이 있어서 졸음이나 잠이 몰려올 때는 절을 하면서 몸이 붓는 현상이 동반되기도 하는데, 그럴 경우에도 간절하게 천천히 절을 하며 깊은 기도를 하는 동안 차츰 그런 증상이 사라집니다. 그런데 주의할 것은 이럴 때 잠을 깨기 위하여 절을 서둘러 빨리 해서는 안된다는 점입니다. 서둘러 절을 빠르게 하면, 수마로 작용하고 있던 마구니가 나태함의 마구니로 바뀌거나 집착과 편견의 마구니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졸음을 도저히 이겨낼 수 없을 때는 차라리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 맑은 찬바람을 쐬고 들어와 절을 계속하는 것이 좋습니다. 절을 빨리 하는 것은 자칫 도가 지나치면 단거리 달리기를 하는 것과 같은 운동이 되기 쉽습니다. 절을 천천히 정확하게 하십시오. 3. 울음이 날 때 절을 하다보면 울음이 터져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울음이 터져 나오는 것은 마구니가 진리이신 부처님과 진리의 창조적 현현(顯現)이신 보살님들께 굴복하는 것이요, 나의 어리석은 미혹의 허물이 녹아 내리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울음이 터져 나온다 하여 절을 하는 움직임에 흔들림이 있거나 소리를 내지 말아야 합니다. 울음을 절제하지 않거나 절을 하는 동작에 흔들림이 생긴다면, 이는 마구니의 요청을 따르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때 울음이 나오는 것은 아상(我相) 등 집착상(執着相)이 깨져나가는 것이기도 하므로, 기도하는 이는 반드시 바른 기도법을 따르면서 고요히 그것들이 깨져나가는 것을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다만 여러 사람이 모이는 법당에서 그런 일이 생기면 눈물은 흘릴지라도 울음소리를 내어서는 안됩니다. 정 참을 수 없을 때는 즉시 법당을 나와서 홀로 절을 계속하는 것이 좋습니다. 4. 온몸이 떨릴 때 아주 드문 경우지만 절을 하다보면 오한(惡寒)이 온몸을 뒤덮는 경우도 있습니다. 춥고 떨리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마구니가 굴복하지 않기 위해 저항하는 것이므로, 곧 내 마음의 부정적 어두운 업장이 드러나는 것이므로 온몸이 땀으로 젖을 때까지 절하기를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흔들리지 않는 자세로 절을 계속하면 오한이 차츰 열기가 되어 온몸을 감싸게 되는데, 온몸이 열기로 뒤덮일 때마다 남아 있는 오한에 의해 소름이 끼치는 경우도 있지만 부정적 업장이 진리 생명에 의해 녹아 없어지는 증상이라 여기고 절을 계속하면 마침내 온몸에서 어떤 오한의 느낌도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때 주의할 것은 춥고 떨리는 느낌을 받는다고 해서 절을 하는 동작이 더 빨라지지 말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만약 오한으로 말미암아 절을 빨리 하게 된다면 부정적 업장이 집착상으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또 오한이 일어나면 절을 계속할 따름이지 엎드려 일어나지 않아서는 안되며, 이때 마음이 여러 생각으로 흩어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5. 환상 등이 보일 때 기도 수행하는 사람이 소망이 빨리 이루어지기를 바랄 때, 미혹한 마음으로 형상을 구하고 집착할 때 마장(魔障)을 만나기 쉽습니다. 마장은 대개 2가지 통로에서 나타납니다. 하나는 망녕된 마음을 버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부처님을 형상으로 찾거나 소망을 이루는 것을 애착심으로 추구할 때입니다. 이렇게 되면 수행이 전도되고 미혹한 환상에 사로잡혀 기도는 이루지 못합니다. 원래 부처님은 진리이며 법신입니다. 형상이 없습니다. 또한 무한 공덕의 근원인 진리 실상에 어떤 형상도 없습니다. 무한이고 절대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의 망념이 다한 본성은 본래로 무상(無相)입니다. 진리는 형상이나 마음으로 그려보거나 짐작이 허락되지 않습니다. 기도 수행하는 사람은 무엇보다 이 도리에 밝아야 합니다. 참된 부처님은 형상이 아니며[진불무형眞佛無形], 한마음은 본래 무상[일심본무상一心本無相]임을 알고 결코 상에 집착함이 없어야 바른 진취가 있게 됩니다. 이 도리를 모르고 마음으로 형상을 구하는 종교에서 정신병자가 속출하는 것을 참고 삼아야 할 것입니다. 기도할 때 꿈이나 생시거나 자꾸 무엇이 들리거나 보이거나 느껴지거나 알아지거나 하면 절대로 사람을 향해서 그 내용을 말하지 말고[불가향인설不可向人說], 가능하면 공부 많이 하신 스님을 찾아가 그 내용을 말씀드리고 가르침을 청해야 합니다. 절대 사람에게 말하면 안됩니다. 말을 하게 되면 그것이 바로 내가 마장에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상태가 다시 오기를 기다려도 안됩니다. 다만 지금 자기가 하고 있는 기도 방법에 정신을 집중하여 계속 정진하여야 합니다. 나타나건 말건 상관하지 마십시오. 있으라고도 가라고도 하지 마십시오. 그냥 내버려두고 내 원래 공부를 지극 정성으로 지어 가셔야 합니다. 6. 치병(治病) 기도할 때 유의할 점 첫째, 지성으로 부처님을 믿고, 부처님 공덕으로 살아있는 몸에는 원래 병이 없다고 믿어야 합니다. 경에도 분명히 오온(五蘊)이 공했다고 하였으니 어찌 텅 빈 오온에 병이 있겠습니까. 둘째, 온갖 근심․걱정․불안․공포를 놔 버려야 합니다. 셋째, 모든 사람과 대립이 없어야 하며, 미워하는 사람이 있으면 뉘우치고 마음 깊이 화해하여야 합니다. 넷째, 자기와 함께 하는 사람 또는 이웃하는 모두에게 감사하고 그분의 행복을 기원하는 마음이어야 합니다. 다섯째, 인간은 본래 불성이므로 죄가 없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만병은 죄에서 시작됩니다. 죄가 있게 된 것은 미혹 때문이니 모름지기 지난 동안에 지은 모든 죄를 참회하고, 참회하고 나면 죄가 소멸되었음을 믿어야 합니다. 여섯째, 자기는 죄인이다 또는 업보 중생이다 하는 생각을 버리고 불자의 영광과 환희를 생각해야 합니다. 업보 중생이므로 고통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일곱째, 병의 원인이나 증상을 구태여 세밀히 알려고 할 것은 없습니다. 이 밖에 가장 간단한 방법은 모든 마음 다 놓고 일심으로 기도하고 무조건 부처님께 모두를 내어 맡기는 일입니다. 진리는 우리의 몸을 맑게 하고 진리 본래의 건강과 기쁨을 충만케 해 주기 때문입니다. 다만 억압 요인을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흔히 기도를 하면 불보살님이 나타나셔서 병을 고쳐주리라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세간적 방법으로도 병을 고칠 수 있을 경우에는 인연을 이어주시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병을 고쳐 줄 의사를 알게 된다던가, 약을 알게 된다던가 하는 경우입니다. 아직 인간의 능력으로는 고칠 수 없는 병이거나 방법이 있다 하더라도 그 방법을 쓰기에는 나의 형편이 미치지 못하거나 하는 경우에야 불보살님의 가피력이 세간적 방법이 아닌 신비한 힘으로 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기도를 할 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지 말고 모든 것을 진리이신 부처님께 맡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현세적으로든 신비적으로든 병은 필연코 낫게 될 것입니다. 병이 나은 후에도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병이 들어서 기도해야할 사람에게 가르쳐 주어야 할 경우가 아니라면 말하지 마십시오. 그 때도 기도방법을 가르쳐 줄지언정 신비한 가피력을 자랑해서는 안됩니다. 말하면 삿된 것이고, 집착하는 것이고, 법답지 못한 것입니다. 다른 종교에서는 간증이라고 하여 대단하게 여기고 선전까지 하는 경우도 있지만 불교에서는 기도의 성취를 자랑하거나 아는 체하는 것은 절대 금기하는 것입니다. <금강경>에서도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어 쓰라”고. 일체는 공(空)한 것입니다. 7. 기도할 때의 시련 시련이란 시험삼아 단련시킨다는 뜻이 될 것입니다만 그것은 옛부터 우리 생활 주변에 있어온 말입니다. 시련보다는 시험한다는 말을 많이 써온 듯합니다. 하늘이 복을 주려면 먼저 그 사람을 시험한다던가, 먼저 곤란을 겪게 하여 단련시켜 복을 감당할만한 힘을 기르게 한 연후에 복을 내린다는 식의 말이 있어 왔습니다. 사람에게 복을 내리기 위하여 시험삼아 사람을 고난으로 단련시킨다는 것은 불교적인 사고방식은 아니고 아마도 서양에서 온 종교의 사고방식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불교에는 시련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참된 소망을 세워 바르게 정진하며 진실을 행해간다면 자연히 결과가 이루어집니다. 소망하는 결과가 이루어지는 과정에 한때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이 있을 때가 있어도 그것은 시련이 아닙니다. 참된 소망이 이루어지는 과정의 한 표현이며 소망을 장애하고 있던 요인들이 무너지는 과도적 현상이라 하겠습니다. 땅에 뿌려진 소망의 씨앗은 마침내 땅속에서 움이 트고 지표를 뚫고 솟아오릅니다. 새싹이 지표를 뚫고 나오는 동안에 돌이나 흙덩이를 밀치고 그 모습이 햇빛 아래 드러나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지표를 뚫고 흙덩이를 밀쳐내는 것은 안에서 새싹이 자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우리 인생에 있어서도 참된 소망을 세워 정진한다면 그 소망이 우리 생활 주변에 실현되는 과정에, 소망과는 상반되는 고통스러운 현상이 나타날 때가 있어도 그것은 시련이 아니고 소망을 장애한 요인들이 무너지는 현상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소망을 세워 정진하고 기도할 때 소망 내용이 금방 현실화하지 않는다고 불안해하거나 초조할 것이 없습니다. 설사 기도 발원하기 이전보다 더욱 답답하고 고통스러운 일이 나타나더라도 결코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운 생각을 내어 정진을 중단해서는 안됩니다. 고난의 현상은 소망이 이루어지는 전주일 수도 있다는 점을 알아두어야 합니다. 그 래도 자꾸 기도 정진 중에 불안한 생각이 들면, 수행 많이 한 스님을 찾아가 가르침을 청하시기 바랍니다. 시련이라고 말할 때는 비소한 범부와 절대적 권능을 가진 권능자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권능자가 자의로 범부를 실험하고 곤란을 안기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데 그것들은 모두가 방편적 비유설이거나 잘못된 생각이라 할 것입니다. 道文 혜산스님의 기도수행법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