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1. 11. 20:27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범망경
2) 부처님의 두 가지 몸
대저 부처님의 경지는 두 가지 측면에서 파악되어집니다. 스스로 진리의 법락(法樂)을 누리는 쪽의 자수용신(自受用身)과 다른 이로 하여금 그 법락을 함께 누리도록 하기 위한 타수용신(他受用身)이 그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수용신은 부처님의 수행이 완성되어 복덕과 지혜를 남김없이 갖추게 되었을 때, 그 참다운 지혜인 진지(眞智)로써 진리를 관조(觀照)하며 스스로만이 깨달음의 법락을 누리는 몸을 말합니다.
이에 비해 타수용신은 다른 이를 교화하기 위해 이타적으로 활동하는 몸, 다른 이로 하여금 진리의 법락을 누리게 하기 위하여 나타내는 불신을 말합니다.
깨달은 지혜의 광명으로 진리의 법계를 스스로 비추어 보는 부처님의 몸이 자수용신이라면, 깨달은 진리의 빛으로 중생의 근기(根機)에 맞게 그들을 비추어 주는 부처님의 몸이 타수용신인 것입니다.
노사나불을 번역하여 정만(淨滿)이라고 한 것도 이들 불신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온갖 악을 모조리 다 없애어 남김이 없으므로 정(淨)이라 한 것이니, 이는 모든 악을 그처서 이룩한 자수용신과 통하고, 온갖 선행과 덕을 두루 갖추어 지극히 원만하게 되었으므로 만(滿)이라 한 것이니, 이는 곧 타수용신과 통한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자수용신을 이루신 부처님은 네 가지 지혜[四智]의 법락을 수용하게 됩니다. 이 네 가지 지혜는 여래만이 갖추고 있는 지혜로서, 대원경지(大圓鏡智) 평등성지(平等性智) 묘관찰지(妙觀察智) 성소작지(成所作智)를 가리킵니다.
첫째의 대원경지는 부처님의 원만한 큰 지혜가 깨끗하고 큰 거울에 모든 것이 다 비치는 것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제8식인 아뢰야식(阿賴耶識: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감추어져 있는 업식(業識)을 뒤집어서 이 지혜를 얻은 것으로, 지혜의 큰 거울 가운데 중생의 선과 악을 남김없이 나타나는 것을 말합니다.
둘째의 평등성지는 ‘나’를 집착하는 제7식을 뒤집어서 얻은 지혜로, 자신과 남의 근본이 되는 평등한 실상, 곧 무아(無我)를 통하여 진아(眞我)를 증득할 때 이 지혜가 나타나게 됩니다.
셋째의 묘관찰지는 분별하는 알음알이를 일으켜 분별하는 제6식을 뒤집어서 얻은 지혜로, 모든 분별을 쉬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꿰뚫어보는 것을 말합니다.
넷째의 성소작지는 하는 바를 뜻대로 이루는 지혜이니, 눈 귀 코 혀 몸의 다섯 가지 감각기관이 갖는 알음알이인 전5식(前五識)을 뒤집어서 증득한 신통력을 말합니다.
이와 같이 자수용신은 부처님만이 가지고 계신 네 가지 지혜로써, 부처님께서는 스스로가 깨달은 진리를 관조하며 법락을 즐기고 계신 것입니다.
이에 대해 타수용신은 일체 중생을 수용하는 부처님의 몸입니다. 먼저 《심지관경 心地觀經》에서는 타수용신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를 살펴봅시다.
“여래는 타수용신이라 함은 8만 4천 상호를 구족하고 참된 정토에 계시면서 일승법(一乘法)을 말씀하시어 모든 보살들로 하여금 대승의 미묘한 진리의 법락을 수용케 하는 몸을 가리키며, 일체 여래는 십지의 모든 보살들을 위하여 열 가지 종류의 타수용신을 나타내시느니라.
제1불신은 1백 잎의 연꽃에 앉아 초지(初地)의 보살들을 위해 백가지 법문인 백법명문(百法明門)을 말씀하시어 보살들을 깨닫게 한 뒤, 큰 신통을 일으켜 변화하셔서 1백 부처님의 국토를 가득 채워 한량없는 중생을 이롭고 편안하고 즐겁게 하느니라.
제2불신은 1천 잎의 연꽃에 앉아 제2지(第二地)의 보살들을 위해 천 가지 법문인 천법명문(千法明門)을 말씀하시어 보살들을 깨닫게 하신 뒤, 큰 신통을 일으켜 변화하셔서 1천 부처님의 국토를 가득 채워 한량없는 중생을 이롭고 편안하고 즐겁게 하느니라.
제3불신은 1만 잎의 연꽃 위에 앉아서 제3지(第三地)의 보살들에게 만 가지 법문인 만법명문(萬法明門)을 말씀하시어 보살들을 깨닫게 한 뒤, 큰 신통을 일으켜 변화하셔서 1만 부처님의 국토를 가득 채워 한량없는 중생들을 이롭고 편안하고 즐겁게 하느니라.
이와 같이 여래는 점점 증장하여 제10지(第十地)의 타수용신에 이르러서는 말할 수 없이 묘하고 보배로운 연꽃에 앉아 제10지의 보살들에게 말할 수 없이 많은 제법명문(諸法明門)을 말씀하시어 모든 보살들을 깨닫게 하신 다음, 큰 신통을 일으켜 변화하셔서 말할 수없이 많은 부처님의 미묘한 국토에 그 몸을 가득 채워 한량없고 끝이 없는 종류의 중생들을 이롭고 편안하고 즐겁게 하느니라.
이와 같이 열 가지 타수용신으로 모두 칠보로 이루어진 보리수나무 아래 앉은 채 위없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깨달아 얻느니라.“ <心地觀經 報恩品>
이와 같이 타수용신은 한량없는 국토에 나타나서 한량없는 중생을 교화하는 화신불의 몸입니다. 그리고 《심지관경》에서는 타수용신을 설명함에 있어 부처님이 백 잎의 연꽃, 천 잎의 연꽃, 만 잎의 연꽃 내지 ‘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이 많은 보배로 이루어진 연꽃[不可說妙寶蓮華]’ 위에 앉아 계신다고 하였는데, 이 때의 하나의 연꽃 잎은 하나의 삼천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를 뜻하고, 하나의 삼천대천세계에는 백억의 수미산과 4대주(四大洲)가 있습니다. 또 4대주 중의 하나로 수미산의 남쪽에 있는 염부제(閻浮提)마다 하나의 금강좌(金剛座)와 보리수가 있으며, 그 곳마다 각각 화신불이 계십니다. 그 화신불께서 보리수 아래에 앉아 마왕의 항복을 받음과 동시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화신불이 각각 32상과 80종호를 구족하시고, 모든 보살과 이승(二乘)과 법부들을 위해 그들의 정도에 알맞은 묘법을 베풀게 되는 것입니다.
[용서의 세 가지 범위]
용서는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개념이 아니다.
시작도 하기 전에 용서를 부담스러워 하는 경우도 많다.
어떤 사람들은 용서를 베풀어야 하는 대상을 생각하면 용서가 거의 불가능하며
심지어 바람직하지도 않게 여겨진다고 말한다.
자신이 당한 부당한 일에 관계있는 사람을 용서하고 싶지도 않고, 용서할 수도 없는 것이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용서가 종교적인 관습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본인은 종교적인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 자리에서 바로 용서를 거부한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여 저자는 용서를 세 가지 범주로 나눈다.
*관계의 용서
어떤 갈등이 발생했을 때 두 사람 사이에 일어난 일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관계적인 용서가 되려면 어느 한 사람이 용서를 구하고 상대방은 이것을 받아주어야 한다.
이런 식으로 갈등이 해소되면 그 둘은 다시 일을 계속하고 함께 지낼 수 있다.
관계의 용서는 최종 목표가 화해다. 하지만 항상 화해가 가능한 것은 아니다.
만약 한 사람이 용서하기를 거부하거나 상대방이 용서를 받아들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관계의 용서는 화해라는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
하지만 진정한 용서는 화해 없이도 실천할 수 있다.
*영적인 용서
연구자들은 자신의 죄를 신께 용서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용서라는 단어를 가장 자주 사용한다는 점을 발견하였다.
하지만 용서의 가치를 깨닫고 타인이 한 말이나 행동 때문에 얻은
상처에 대처하기 위해 꼭 종교를 믿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이 준 상처는 세상을 완전히 뒤죽박죽으로 만들 수 있다.
영적인 범위의 용서는 이 뒤죽박죽 된 것을 바로 세울 수 있게 도와준다.
독자가 영적인 여행의 어디에 위치해 있든 영적인 용서는
자신의 의미와 목적을 찾을 수 있게 도와준다.
*개인의 용서
개인적인 차원의 용서는 자신을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된다.
누구든 자신이 품고 있는 원한을 놓아버려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낀다.
용서하지 않으면 영혼이 점점 엷어져 인생을 망치게 될 것이라는 것도 어렴풋이 앍고 있다.
또한 원한을 품는다 해도 전혀 쓸모가 없기 때문에
용서를 통해 그 상처를 놓아야 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개인적인 용서는 세 가지 범위의 용서 가운데 가장 치료의 의미가 크다.
개인적인 용서를 실천하면 상처에서 치유로, 피해자에서 승리자로,
쓰디 쓴 인생에서 보다 나은 인생으로 나아갈 수 있다.
[용서란 무엇인가?]
용서란 평온한 감정이다. 그런 감정은 당신이 자신의 상처를 덜 개인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며,
자신의 감정에 책임을 지고 그 사건에서 피해자가 아닌 승리자가 되었을 때 생겨난다.
― 프레드 러스킨
· 용서란 네가 나를 괴롭혔으니 나도 너를 괴롭히겠다는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다.
― 무명
· 우리 친구들은, 내 잘못을 기꺼이 용서해줄 만큼 자신의 결점을 잘 아는 사람들이다.
― 몰튼 판햄
· 당신의 적을 항상 용서하라. 그것만큼 그들을 신경 쓰게 만드는 것도 없다.
― 오스카 와일드
·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이 건널 다리를 무너뜨리는 것과 같다.
― 조지 허버트
· 용서는 거의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용서가 주는 혜택은 모두 용서를 베푼 사람이 받기 때문이다.
― 무명
· 용서란 현재의 평온을 회복하고 미래의 희망과 삶의 목적을 되살리기 위해,
과거에 받은 분노와 상처에 새로운 틀을 씌우는 작업이다.
― 지은이 딕 티비츠
[용서하기 위해 알아야 할 아홉 가지]
1. 삶이 공평한 줄 알았다고? No. 삶은 공평하지도, 빈틈없이 균형이 맞지도 않다.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원칙과는 정반대로 행동할 수도 있다.
2. 자신이 이렇게 된 것이 남 탓이라고? 천만에! 당신의 생각이 당신 삶을 만들었다.
3. 당신에게 상처를 준 그 나쁜 놈을 정신 차리게 하고 싶은가?
글쎄… 당신은 그렇게 할 수 없을 걸? 당신이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당신뿐.
4. 사람은 상처를 받게 마련이고 당신은 사람이다.
기분 나쁜 사건이 생기면 화가 난다는 것을 인정하라.
5. 당신의 ‘억울한 사연’을 불멸의 제단에 모셔두고 아침저녁으로 문안하는가?
제발 이제는 그만! 눈 크게 뜨고 그 사연을 다시 보라.
6. 당신에게 상처를 준 그 나쁜 놈! 알고 보면 그도 우리와 비슷한 사람이다.
마음을 열고 그 사람이 왜 그랬을지 공감하라.
7. 용서할 것인가 말 것인가, 이 문제는 오직 당신만이 결정할 수 있다.
8. 용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채근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스스로 납득해야 한다.
9. 당신의 삶과 미래를 당신 스스로 책임지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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