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마음자리를 닦을 때
내가 이미 백겁을 이 마음자리를 닦았으므로 나를 노사나라 부르나니,
그대들 모든 부처 또한 내가 말한 바를 그대로 설법하여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마음자리의 도를 열게 하라.
我已百劫을 修行是心地할새 號吾하야 爲盧舍那라 하나니
汝諸佛은 轉我所說하야 與一切衆生하야 開心地道케 하라.
1) 여래의 참된 나
여기서 ‘나[我]’라 함은 노사나불 자신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여래의 나[我]는 팔자재아(八自在我)입니다.
여덟 가지 자재(自在)를 갖춘 부처님의 참다운 나[眞我]는, 색(色)·수(受)
·상(想)·행(行)·식(識)의 오온(五蘊)으로 육체와 정신을 구성하고 있는
범부의 망령된 나[假我]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여래의 팔자재아는 《열반경 涅槃經》에서 상(常)·낙(樂)·아(我)·정(淨)이라 일컬어지는
열반의 4덕(四德)을 설할 때, 그 세 번째 덕인 ‘나의 자재하고 걸림없음[自在無碍]’을
여덟 가지로 분석하여 풀이한 것으로 다음과 같습니다.
① 한 몸을 여러 몸으로 나타내어 보이시는 것(能示一身爲多身).
② 티끌만한 몸을 대천세계에 가득 차 보이게 하는 것(示一塵身滿大千界).
③ 큰 몸을 가볍게 하여 먼 곳을 찰나에 이르게 하는 것(大身輕擧遠到).
④ 중생의 유에 따라 한량없는 형상을 나타내지만 항상 한 곳에 계시는 것(現無量類常居一土).
⑤ 한 감관으로 온갖 감관의 작용을 다 할 수 있는 것(諸根互有).
⑥ 온갖 법을 다 얻지만 깨달았다는 생각이 없는 것(得一切法無得想).
⑦ 한 게송을 읊지만 그 뜻은 무량겁이 다 걸려도 다 말할 수 없는 것(說一偈義經無量劫)
⑧ 몸이 모든 곳에 두루하지만 허공처럼 자재한 것(身遍諸處猶如虛空).
결국 노사나불은 이 팔자재아를 이루기까지 오랜 세월 동안 수행하셨습니다.
“백겁 동안 이 마음자리를 닦았다(百劫修行是心地)”고 하신 경문의 말은 곧 이를 뒷받침하는 것입니다.
초발심 보살로서 발심을 한 뒤 삼아승지겁 동안 육바라밀의 갖가지 행을 닦고,
다시 백겁 동안 가장 극에 이르는 행을 닦아 육바라밀을 완성시킴으로써,
비로소 32상 80종호를 갖춘 보신불을 이루신 것입니다.
사람은 보고 들은 대로 행한다
인간은 '보고 들은'것에 의해
지배받는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특히 인간은 '보는 것'에 의존해서 진화해 왔다.
인간의 감각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시각은 모든 감각의 60%를 점유한다.
일상생활에서도 사물을 보는 행위는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학교에서 급우를 충동적으로 칼로 찌른 학생에게
그 까닭을 묻자 영화 [친구]를 여러 차례 봤더니 자신도
모르게 그만 모방을 하게 됐다고 답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가문'이라는 것', '가풍', '집안내력'이라는 것을 따지는 것도
결국은 무엇을 '보고 듣고' 자랐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대체로 딸 들은 20-30대 의욕이 왕성할 때는 '절대로 엄마의
단점을 안 닮겠다'고 큰소리치지만,이럭저럭 40대를
넘기게 되면 그 안 닮겠다던 '엄마의 단점'을 붕어빵처럼 닮아간다.
아들들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엄마를 때리는 아버지를 보고 자란 대 부분의
아들들은 '여자는 때려도 되는 존재구나'라고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여,어른이 되고 가정을 가진 다음
자기 아버지와 똑같이 아내를 때리는 것을 볼 수 있다.
'보고 들은'것이 무의식과 잠재의식에 잠복해 있다가,시간이
흐르고 의지(意志)가 약해질 때 드디어 그 본색을 드러내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 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가 '보고 듣는' 사물이나 사건,심지어
사람에 대한 인식은 단순히 그 자체를 받아들이는 것 이상이다.
이들은 우리의 무의식과
잠재 의식에 자리를 잡고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따라서 '본다는 것', 그리고
그 영상을 관장하는 우뇌의 작용은 참으로 중요하다.
【 출처 : 좋은글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