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슬픈노래 부르지 말라/가수 권혜경

2009. 11. 30. 19:37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화엄경·보현행원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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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년의 명가수 권 혜경여사가 돌아가셨는데 저와 저의 어머니 모두 무척 좋아했던 가수입니다. 이 분 관련 보현님이 글을 올리셨는데 참 명심해야할 내용이라 생각되어 보현님 글을 다시 인용하며 제가 들은 관련 내용 그리고 인터넷에서 찾은 충격적인(!) 글을 퍼 올리니 일독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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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님 글


권혜경여사의 삶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외관 상 참 힘든 삶이었지 않나 합니다. 그렇게 되고 싶어하던 성악가의 꿈도 집안의 반대로 접어야 했고, 평생 독신으로 지내던 분이 인생 후반기에 접어들면 속아서 위장 결혼도 하였고.. 인생이 무엇인지 참.._()_  08.06.01 14:16


답글  普賢 세상은 울림으로 되어 있고 파동은 그 가장 원초적 형태입니다. 사람 몸, 능력 중에 이러한 세상 원리와 가장 닮은 부분이 목소리, 언어입니다. 따라서 말을 하고 노래를 해도 우리는 밝은 언어, 밝은 노래를 부를 필요가 있습니다.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니 꼭 명심하십시요._()_  08.06.01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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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전 인터넷에서 읽은 내용으로 또 다른 왕년의 명가수 송춘희씨 얘긴데... 이 분 <수덕사의 여승>이란 노래로 큰 히트를 했었지요... 의외인 것은 이 분 이 노래 부르기 전 <불교>랑 전혀 연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저 노래로서 불렀다는 것이지요.


근데 이 노래 후 여러 가지 좋지 않은 일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그만 두더라도 여러 가지 불치병이 한꺼번에 생겨 돈도 엄청나게 깨먹고 낫지도 않고... 그래 고생 고생하다가 외국 공연가서 어떤 스님만나 불교에 귀의하고 그 분도움으로 병이 나았다는 것입니다. (이 분 얘기는 펀글에도 간략하게 나와 있습니다만) 결국 이 분 노래대로 결혼 안하고 혹은 못하고 현재는 불교 포교사겸 가수로 지내신다고요...


다음은 인터넷에서 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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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슬픈노래 부르지 말라.


<세상은 요지경> 이라는 노래를 불렀던 신신애는 사기를 당해 모든 것을 잃었다. 노랫말 그대로,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 짜가가 판을 친다"였던 것이다.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노래로 유명했던 가수 정광태씨는 독도 명예군수가 되었다고 한다.


오랫동안 노처녀로 지내다가<만남>을 부른 노사연은 행복한 결혼을 하게 되었다.


가수 박길라씨는 죽음을 암시하는 노래를 발표한 후, 첫 콘서트를 미치고 타계를 하였다.



내면의 힘은 그 가사 대로 증명해 보이기 위해 애를 쓴다. 잠재의식의 힘은 무섭다.


<0시의 이별>을 부른 가수 배호는 0시에 세상을 떠났다. <돌아가는 삼각지>를 부른 그는 젊은 날에 영영 돌아오지 못할 길로 가버린 것이다. 그는 <마지막 잎새>를 부르면서 세상을 떠났다.


가수 김광석은<서른 즈음에>를 부르고 나서 바로 그 즈음에 세상을 떠났다.


<낙옆따라 가버린 사랑>을 불렀던 가수 차중락은 29세의 젊은 나이에 낙옆처럼 떨어져 저 세상에 가버렸으며,「간다간다 나는 간다 너를 두고 나는 간다.」를 열창하던 선망의 젊은 가수 김정호는 20대 중반에 암으로 요절, 노래 가사처럼 진짜로 가 버렸으며, <떠나가 버렸네>를 불렸던 가수 김현식도 역시 우리 주위를 영영 떠나가 버렸다.


<이별>을 불렀던 대형 가수 패티김은 작가 길옥윤과 이별했으며, 고려대 법대 출신의 가수 김상희는 <멀리 있어도>를 부르면서 남편이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어 몇 년간 떨어져 있게 되었다고 한다. 가수 조미미는 35세까지 결혼이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바다가 육지라면>이 히트되면서 재일 교포가 바다를 건너와 결혼이 성사되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60년대 말,<산장의 여인>을 부른 가수 권혜경은 (가사 내용 :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이 산장에 단풍잎만 차곡차곡 쌓여 있네, 세상에 버림받고 사랑마저 물리친 몸 병들어 쓰라린 가슴을 부여 앉고 나홀로 재생의 길을 걸으며 쓸쓸히 살아가네) 가사처럼 자궁과 위장에 암에 걸렸고 요양을 가게 되어 재생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녀는 산장에 집을 짓고 수도승처럼 쓸쓸히 살았다고 한다. <수덕사의 여승>을 부른 가수 송춘희는 결혼을 하지 않은 채 불교 포교사로 일하고 있다.


미국의 흑인 가수 투팩 샤쿠어는 자신의 노래처럼 13일 금요일에 죽었다. 그의 노래 중에서 빌보드 차트1위에 오른 앨범의 곡들은 모두 불길한 가사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특히,<내가 오늘 죽는다면>, <길모퉁이에 다가온 죽음>등은 마치 자신의 죽음을 일부러 부르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결국 그는 노랫말처럼 갱에게 충격을 받아 살해당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가수 윤심덕은 <사의 찬미>를 불렀다가 그만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남인수는<눈감아 드리리>를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41세의 한창의 나이에 '눈감아 드리오니'의 노랫말처럼 일찍 눈을 감고 말았다. 이난영은<목포의 눈물>을 부르고 슬픈 인생을 살다가 가슴앓이 병으로 49세에 숨졌다. 가수 양미란은<흑점>이란 노래를 남기고 골수암으로 숨졌다.


가수 박경얘씨는 폐암으로 사망했다. 그가 부른 노래가사에 죽음을 암시하는 내용은 이렇다.


"울어봐도 소용없고 후회해도 소용없다"


모든 면에서 부족할 것이 없는 36세의 노총각 K씨는, (피리 부는 사나이><떠나가는 배><잡초><불씨><오늘도 난>등과 같은 노래를 즐겼다. 모두가 혼자 가는 인생살이에 대한 노래였고 혼자 사는 외로운 남자들의 노래였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난 뒤 그는 의식적으로 자신의 노래를 바꾸려했고, <청혼가><일상으로 초대><사랑2>같은 노래를 불렸다. 처음에는 이런 시도가 익숙하지 않아 노래 부르는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다. 꼭 그 이유만은 아닐 테지만 의식적으로 자신의 레퍼토리를 바꾼 뒤 1년이 지나지 않아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고 한다.


<우울한 편지>를 부른 가수 유재하는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장덕은 <예정된 시간을 위하여> 하수영은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를 김현식은 <이별의 종착역><떠나가 버렸네>를 부르고 각각 세상을 떠났다.


이들 노래의 가사 속에는 이미 죽음이 도사리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이름 모를 소녀>를 부른 김정호. <내 사랑 내 곁에>를 부른 김현식 등 슬픈 노래를 부른 가수들은 대부분 일찍 타계했다는 논문도 있다.


가수의 수명, 부, 즐거움과 노래 가사와는 상관관계가 있다고 한다. 신나고 즐거운 노래를 부른 가수들은 장수하고 고통, 이별, 죽음, 슬픔, 한탄의 노래를 부른 가수들은 단명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쨍하고 해 뜰 날 돌아 온단다>을 불렸던 가수 송대관은 한동안 주춤했다가 어느 날 다시 가수로 복귀하여 인기를 점점 얻더니, 지금은 노랫말대로 진짜 쨍하고 해뜨는 날이 오게 된 것이다. 가수 생활 10년이 넘도록 빛을 보지 못했다가 지금은 쨍하고 빛을 보게 되었다. 송대관은 그의 첫 히트곡이 <세월이 약이겠지요>였다. 이 노래 제목처럼 진짜로 세월이 약이 된 것이다.


우리 민족의 시인 김소월. 그는 우리민족 최고 시인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가 사용하였던 시어들은 대부분 죽음, 그리움, 이별, 괴로움을 이루는 말들이다. 작품은 곱고 아름다웠지만 분명 그는 인생을 밝게 보고 살지 않았다. 오히려 고통과 슬픔을 친구로 삼았다. 평소의 사고 방식이 운명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단순하고도 무서운 진리는 민족의 위대한 시인이라 해서 비켜 가주지를 않았다.


그가 비록 우리 시문학의 위대한 한 부분을 차지하고는 있지만, 그는 개인적으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였고, 짧은 생애동안 괴로움에 휩싸였던 것을 실제 생활을 통해 알 수 가있다. 1902년에 태어난 그는 33세의 젊은 나이에 갑자기 죽었다. 죽음의 일차적 원인이 자살이든 사고이든 그는 요절을 한 셈이다.


젊은 나이에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근본적 원인은 술도 아편도, 사업 실패도 아니었다. 그 해답은  작품 속에 정확히 나타나 있다. 즉 끈임 없이 부정적 인생관을 그의 잠재의식에 심어 놓음으로써 그의 운명의 끈이 그렇게 짧게 단축되었던 것이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것처럼 즉 부정적 생각은 공포와 함께 부정적 결과를 몰고 오게 되어있다. 김소월이 그 많은 시를 지으면서 그는 단번에 시한 수를 지을 수도 있었겠지만, 아마 대부분은 여러 번의 손질을 거쳐서 하나의 귀한 시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는 과정에서 그에게는 부단히도 인생에 대한 슬픔, 분노, 회한의 감정이 그가 모르는 사이 그의 잠재 의식에 젖어 들었을 것이다. 한번 잠재 의식에 제대로 젖어든 의식 세계의 명령은 틀림없이 정확한 결과를 가져온다. 그 사례가 바로 김소월 자신의 삶이었다.


가수가 노래 한 곡을 취입하기 위해 같은 노래를 보통 2,000~3,000번이나 부른다고 한다. 이렇게 하다보면  똑같은 일이 생겨난다고 한다. 가수가 처음 노래를 연습할 때 작곡가에게 얼마나 많은 핀잔을 들었겠나. 좀 더 감정을 넣으라고. 감정을 있는 대로 넣어 부른 노래들은 자기 자신이 그 노래의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다. 감정을 제대로 넣어 부른 노래가 힛트 하는 것은 당연하고, 그 힛트 한 노래를 수백, 수천 번을 불렀을 것이 아닌가. 그러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가사 내용이 잠재의식에 덜컥 연결된 것이다. 가사의 내용이 진실이라고 믿어버린 잠재의식은 나중에 현실의 세계에다 그 내용을 정확히 투영한다.


1970년대 새마을 운동이 한창일 때 우리 국민들의 새벽을 여는 소리는 "새벽종이 울렸네"로 시작되는 <새마을 노래>였다. 새벽을 깨우며 어김없이 청소차로부터 울려 나왔던 이 노래는 시간에 맞춰 관공서, 학교 등지에서 동시에 울려 퍼졌고, 아울러 "우리도  잘 살아보세"라는 노래와 함께 우리 국민들은 새마을을 만들기 위해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며 푸른 동산 알뜰살뜰 가꾸었다. 그 노래 덕분이었을까?

오늘날 우리는 선진국 대열의 문턱에서 그 노랫말처럼 복을 누리게 된 것이다. 모르긴 해도, 우리나라 경제 발전의 원동력 중 하나는 매일 아침 전국에 동시에 울렸던 새마을 의 노래였을 것이다.


"잘 살아보세~잘살아보세~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세"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 힘찬 음성과 울려 퍼진 이 가사는 어떤 정책과 투자보다도 큰 영향력을 발휘했을 것 분명하다.


일체유심조란 말이 있듯이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지난 시절에 불렸던 노래 가운데 <팔도강산>이라는 노래가 있었다.

노래 가사에 "잘살고 못사는 것 마음먹기에 달렸더라"는 소절이 있어서 가난했던 시절 사람들에게 큰 용기를 주는 노래였다. 이 노래 가사 대로 우리 국민은 마음먹고 노력한 결과 오늘의 경제부국을 이루게 된 것이다.


[나는 말의 힘이 어느 정도인가를 여러 각도에서 조사를 했다. 가수 100명을 대상으로 히트곡이 운명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조사해보니 놀랍게도 91명의 가수가 자신의 히트곡과 운명을 만들었고 요절한 가수들은 너나없이 죽음과 연관된 노래를 불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노래는 말에다 곡조를 실은 것이어서 말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밝고 힘찬 노래만 불러라. 그 것이 성공행진곡이다. 슬픈 노래를 부르지 말라. 그 노래는 복 나가는 노래다. 밝고 신나는 노래를 불러라. 노래대로 운명이 만들어진다.


"애국가를 10분씩 불러라. 기(氣)가 충만해진다. 잡스러운 노래를 그쳐라. 있던 기도 빠져나간다. '기세 등등하다.' '활기가 넘친다. ''원기완성' '기진맥진'등 우리의 삶 속에 기(氣)라는 말을 많이쓴다. 기는 살아있는 사람에게 나오는 에너지이다.


기의 전문가 홍태수 교수는 수강생을 대상으로 어디가 아픈 사람 피곤한 사람은 손들게 하는데 대부분 손을 든다. "조용히 눈을 감고 합장을 하십시오. 그리고 10분 동안 마음속으로 애국가를 힘차게 불러 주시기 바랍니다. 시간이 되면 알려 드리겠습니다.


" 10분이 지나 눈을 뜨게 하면 거의 대부분 좋아졌다는 말을 한다. 애국가에는 애국가의 기(氣)가 실려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는 그 후, 이 실험을 수강생을 대상으로 여러 차례 반복해 보았다. 애국가만이 아니고 밝고 건강한 노래를 마음속으로 한 그룹에게 부르게 했고, 또 한 그룹에게는 퇴폐적인 가사의 노래를 부르게 했더니 놀라운 현상을 찾아냈다.


밝은 노래를 부른 그룹은 10분 후에 활기 있는 모습이 되었는데, 퇴폐적인 노래를 부른 그룹의 표정은 너나없이 어둡고 피로에 지쳐있을 뿐아니라 어지러워하거나 구토를 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밝은 가사의 노래는 기를 충전시키고 어두운 가사의 노래는 기를 방전시킨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


이상헌 컬럼 중에서 -


한국노랫말연구회에서는 슬픈 노래를 부른 가수들은 일찍 죽거나 슬픈 운명의 길을 걷는다 라는 사실을 발표했다.


"마음에 밝은 곡조의 노래를 불러라. 우리들 자신의 '마음의 파장이' 이 파장에 맞는 일을 끌어들인다. 우리들의 마음의 파장이'기쁜 곡조'를 연주한다면'기쁜 일'이 모여올 것이고, 우리들 마음의 파장이'공포의 곡조'를 연주한다면 '두려워해야 할 일'이 일어날 것이다.


우주에는 여러 가지 종류 일의 이미지가 있어서 '마음파장' 이 표류하고 있다가, 자기 마음의 파장에 따라 우주에 표류하고 있는 갖가지 일의 이미지 중에서 자기에게 파장이 맞는 이미지가 '방송 전파' 에 실려 끌려오는 식으로 그 모습을 자기의 신변에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



아무 것도 원망할 일은 없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자기의 '마음의 파장'이 어떤 곡조를 연주하고 있는가를 되돌아보는 것이 좋다. 그리고 그것이 어두운 곡조라면 밝은 곡조의 '마음의 파장' 으로 바꾸는 것이 좋다. 마음에 '슬픈 노래를 부르지 말라. 마음에 '기쁨의 노래' 를 불러라."


불멸의 스타 이소룡과 엘비스 프레슬리...


이소룡. 만일 그가 '사망유희'라는 영화를 만들지만 않았어도... 이미 그 영화 속에 자신의 죽음을 암시한 듯한 내용이었다.


엘비스 프레슬리. 그는 자신의 어머니와 똑같은 나이, 똑같은병으로 마흔셋 생일을 맞이하기 하루 전날에 죽었다.

그는 늘 어머니와 똑같은 이유로 죽을 것이라고 믿었다. 결국 그 믿음이 현실화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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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님이 늘 강조하시는 <밝은 수행> <생명...>의 가치를 새삼 느끼게 하는 글입니다요.



            권혜경 (1931 ~ 2008. 5. 25) 서울대 음대 성악과에 입학했으나 양반집 부모님의 반대로 은행에 입사. 1956년 KBS 전속가수 3기로 발탁 되고 이후 1957년 그녀의 최대 히트곡 '산장의 여인' 발표
        동심초(同心草,1959) 감독: 신상옥 음악: 김성태, 노래:권혜경 출연: 김진규, 최은희, 엄앵란, 김석훈
        (김석훈, 엄앵란) 줄거리 : 전쟁 미망인 이숙희(최은희)와 출판사 전무(김진규)는 서로 사랑하고 있었지만, 김 전무에게는 출판사에 도움을 주고 있는 약혼녀가 있고, 이숙희에게는 딸 경희(엄앵란)가 있다. 경희는 어머니의 행복을 위해 김 전무와의 재가를 권유하지만, 사회적 관습과 윤리적 도덕관에 괴로워한다. 결국 이숙희와 김 전무는 서로 진실로 사랑하면서도 끝내는 헤어지는 길을 택한다. 이 여사는 집을 팔아 부산으로 떠나고 몸져 누워있는 김 전무는 그 소식을 듣고 이숙희가 타고 가는 기차를 바라보며 몸부림 친다. 음악은 작곡가 김성태가, 주제가는 1956년 "산장의 여인"으로 데뷰한 권혜경이 라디오 드라마 '동심초'에서 불렀고, 얼마후 영화화 되면서 주제가도 불렀다. 서정적인 가사와 클래식한 곡의 분위기로 애조를 띠면서 약간은 성악가적인 권혜경(서울대 음대 성악과 중퇴)의 목 소리가 많은 사람들의 머리속에 지울 수 없는 기억을 남겼다.
          동심초 - 권혜경
2008. 5. 26. Slm&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