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1. 30. 20:17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당신이 주인공입니다
연꽃 만나러가는 바람같이/서정주
섭섭하게,
그러나
아조 섭섭치는 말고
좀 섭섭한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하는 이별이게,
蓮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 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 같이…
<1966년>
바람이 선선하다.
이마에 이 바람이 와 닿는 날들이 되면
별은 초롱히 가깝고 눈빛은 젖는다.
더불어 모든 사물들의 그림자가 길어진다.
일 년을 살아낸 보람은 무엇이었나,
이렇게 묻는 것만 같은 서늘함이다.
무엇을 거쳐 온 바람이기에 우리를
자꾸만 사색의 국면으로 이끄는 것일까.
가을이면 이별의 모습이 유난하다.
여름 철새들도 돌아가고 봉숭아도 분꽃도
또 청춘과도 이별해야 한다.
무성하던 숲도 들판도 해변도 다 휑하니 빈다.
사랑하는 늙으신 부모님은 한차례 더 늙는다.
그것들은 우리에게 이별을,
인생이 겪는 가장 큰 아픔을 암시한다.
하여 가을엔 그 소슬한 바람 속으로
입산(入山)하는 사람도 많다 한다.
만남과 이별은 이승에서의 가장 큰 주제다.
그 중 이별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가.
모든 사랑하는 것들과의 이별을 어떻게
마음에서 삭혀낼 것인가.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과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 사이에 우리네 전 인생이 들어 있다고
이 시는 제시한다
. '연꽃', 오 그것, 만나러 가는 바람의 설렘과
기대와 꿈으로부터, 만나고 가는 바람의 섭섭함과
괴로움과 아쉬움들, 그 중 우리에게
더 소중한 것은 뒤의 그 슬픔 쪽의 것이라는
제시는 영원을 생각하는 자세를 촉구한다.
비유의 계단만으로 된 위의 시는
그래서 무한천공 가을 하늘 같은 여백을,
여운을 남긴다.
장석남·/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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