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구재 시식에 관해서...

2009. 12. 3. 19:50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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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정해년을 맞이해 정초기도를 입재하는 날입니다.


집안에 큰일을 목전에 두고 있거나, 힘든 일이 있거나, 사업을 하시는 분들은 새해를 맞이하는 때에 지극하게 불보살님들과 호법신장님들의 위신력과 가피를 얻고자 정초기도를 했었으며, 또 정초를 맞이하여 자기를 낳아주고 거슬러 올라가 자기를 존재하게 해주신 조상님들께 공덕을 지어드렸던 것입니다.


그런 의미로 혼자서 하기에는 벅찬 기도이기에 이렇게 동참으로 함께할 수 있도록 오늘부터 정초기도에 들어가는 것이니 될 수 있는 한 기도기간에 먹는 것부터 시작하여, 일상의 생각과 말과 행동, 신구의 삼업을 청정하게 하고 하루에 한번은 일과의 시작이거나 끝에 나름대로 발원문을 만들어 기도 전에 읽고 반야심경이라도 독송하는 자세가 되어주시기를 바랍니다.


또, 아프리카에 불교를 전파하고자 101일 도보로 국토순례를 시작한 회주스님의 회향일이 3월 10일 날 인지라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신도 분들께 차량대절을 위해 동참 여부를 묻는 엽서로 소식을 알리고 소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회주스님께서는 문산에서 임진각까지 약 8 Km 정도를 함께 걷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헌데, 시간이 안 되시는 분들께서는 임진각으로 바로 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날이 토요일인데다 시간이 오전인지라 상당히 걱정이 됩니다.

일정표는 엽서에도 있고, 다음카페 “우리절 이야기” 방에 있습니다.

많이들 동참해주시어 회주스님께 힘을 실어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자, 이제 저번  1월 달 한 달에 걸쳐 카페 신행상담에 올라온 길거리에서 아는 소리하는 사람들의 혹세무민으로 고민에 빠졌던 사람의 분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 제사와 재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만,


이제 모두를 정리해서 말씀드리니 잘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먼저, 전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우리가 가장 중요시 여기는 49재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49재(四十九齋)라는 의식의 진행절차는 원시불교인 인도의 불교에서 성립된 것이 아니라 6세기경 중국에서 생겨난 의식으로 유교적인 조령숭배(祖靈崇拜) 사상과 불교의 윤회(輪廻) 사상이 절충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불교의 무아설(無我說)로 본다면 개인의 생전의 행위 자체에 대한 업보(業報)는 그 사람 개인에 한정되며, 어떤 방법으로도 자녀 또는 그 후손 누구에게도 전가될 수가 없으며 전가시킬 수도 없다고 할 것입니다만,


소위, 종교는 불교적이면서 생활의 규범은 유교적으로 교육받아온 우리 조상들은 불교적 유교사상으로 49일 동안에 죽은 이의 영혼을 위하여 그 후손들이 정성을 다하여 재를 올리면, 죽은 부모나 조상이 후예들의 공덕에 힘입어 보다 좋은 곳에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고, 또 그 조상의 혼령이 후손들에게 복을 준다는 조상과 후손을 이어주는 가교의 뿌리사상을 심어주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불교에서도 무아설과 달리 육도(六道)의 사상적 해석에 따르면, 모든 중생은 육도, 즉 천상(天上)·인간(人間)·축생(畜生)·아수라(阿修羅)·아귀(餓鬼)·지옥도(地獄道) 등 여섯 세계를 윤회하고 있으므로 죽은 가족이 이 중 이른바 삼악도(三惡道; 지옥·아귀·축생)에 들어가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망자를 위해 기도의 공덕을 지어주는 행위가 49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49재란 불교에서 사람이 죽은 다음 7일마다 재(齋)를 올려 부처님의 진리의 가르침을 읽어 전해주어 죽은 이가 그 동안에 불법을 깨닫고 살아생전의 모든 것들에 대한 애착과 집착과 아쉬움과 서운함과 원결을 풀어버리고 다음 세상에서 수명이 한량없고 빛이 한량없는 아미타부처님이 주재하신다는 극락세계에 태어나거나 다시 사람으로 좋은 곳에 태어나기를 바라는 천도의식인 것입니다.


지장경을 보면 사십구재에 관한 경전상의 근거를 볼 수 있습니다.

“지장보살님이 말씀하시되, 장자여 내가 지금 미래 현재 일체중생을 위해 부처님의 위력을 이어서 간략히 이 일을 설하리라.

장자여 미래 현재 모든 중생들이 명을 마칠 때 다 달아서 한 부처님 이름이거나, 한 보살의 이름을 얻어 듣게 되면 죄가 있고 없음을 불문하고 다 해탈을 얻으리라. ~ 중략 ~ 죽어서 모든 이가 49일 안에는 업보를 받지 않았다가 49일이 지나면 비로소 업에 따라 과보를 받나니, 만일 죄인이 이 과보를 받으면 천 백세 중에 헤어날 길이 없나니 마땅히 지극한 정성으로 49재를 베풀어 공양하되 이같이 하면 목숨을 마친 이나 살아 있는 권속들도 함께 이익을 얻으리라” 라는 구절을 비롯하여 법화경(法華經) 사상과 지장경(地藏經), 아미타경(阿彌陀經), 약사여래경(藥師如來經) 등의 사상에 근거해서 봉행하는 의식이라고 할 수 있으며, 불교의 윤회관이 중국의 시왕사상과 결합되고 유교적인 효사상 까지 합해지면서 나타난 천도의식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십구재는 우리나라 불교의 특징인 동시에 우리나라 고유의 효사상과 뿌리공동체 보전을 위한 민족의식으로 자리잡아 생명존중과 조상공경의 의식으로 발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말입니다만, 우리가 알고 있는 천도의식이라는 것을 하게 되면 시식(施食)이라는 단어도 나오고 제(제사 제 祭)재(공경할 재 齋)라는 말도 나오는데 시식이라는 말은 먹을 것을 베푼다는 의미이고, 제사의 제는 신과 인간이 접한다는 뜻이며, 사찰에서 말하는 소위 각종의 재는 엄숙히 공경하게 행하는 의식을 말합니다.


천도의식(薦度儀式)이라는 말뜻은 천거할 천(薦) 법도 도(度)자를 써서 “법도에 맞게 영가를 천거하여 천거된 망자의 영혼을 좋은 곳으로 내보내기 위한 의식이다.” 라고 알아주시면 되겠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천도의식의 진행을 알아본다면 주로 독경·각종법회·시식·불공 등으로 행해지며 그 종류도 49재·100일재·연년기제·소상·대상 등 정기적 천도재와 수륙재, 특별히 필요에 따라 시설하는 부정기적인 천도재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소위 참선을 한다는 사람들은 말하기를 절집이 무슨 무당집이냐, 부처님의 진리만을 설해야지 사찰에서 천도재나 하고 각종 재를 지내며 무속화 된다고들 말들을 합니다.


그런 말들을 하는 이들을 보면 참 한심한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조석으로 부처님 전에 기도하고 사시에 공양을 올리는 것 자체가 바로 재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중생들을 위해 진리를 설해주신 부처님 전에 감사의 예를 올린다는 의미라고들 하지만, 그 자체가 바로 재이기 때문입니다.


참선을 한다는 사람들은 참선 외엔 아무 것도 필요 없다고 하면서 사찰을 운영하는 살림 사는 주지들은 잘사는게 아니라고 폄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이 비바람을 피하고 등 따뜻하게 편히 좌복 위에 앉아 공부하고 온갖 대중공양물을 공양 받고 편히 공부할 수 있는 것은 누구의 수고로움인지를 헤아리지 못하는 어리석음과 같은 단견에 떨어진 소견들인 것입니다.


일체 중생이라는 말들을 쓰면서도 그 일체 안에 유주와 무주까지 포함되고 있음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의 소치인 것입니다.


중생은 자기 눈높이로 모든 것을 사량하려 들기에 인간중심의 사고나 판단에 빠지는 것이며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의 가치인 냥, 착각하는 것입니다.


또, 어떤 절에 가보면 스님들은 영가들에게 올린 과일이나 음식은 지혜종자를 끊는다고 안 먹는 경우들이 있습니다만, 이 또한 얼마나 우스운 꼴입니까?


지혜종자를 끊는 것은 분별없이 마셔대는 술이나 계율에 어긋나는 생활의 자세이지 남들 다 청해서 법석을 열고 종종진수를 차려 “어서드십시오.” 하고는 정작 주인인 스님은 그 음식을 안 먹겠다.?


그러면 일체중생계의 다른 세계에서 오신 영가들께서 편히 공양을 드실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들께서 손님을 청하시고 드시라고만 하면서 정작 본인은 안 드신다면 그 얼마나 우스운 꼴입니까?


속가에서 제사를 지내고 음복을 하면 그 후손들은 다 지혜종자가 끊어졌게요.?


우리는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어리석은 단견으로, 아무런 의심 없이 남들이 그러니까 나도 그런 생각에 빠져드는 오류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일체 중생이라는 말들은 곧잘 쓰면서 어찌 진정한 일체의 의미를 실천하지 못할까요.?


그것은 가슴으로 알기보다는 머리로만 알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제 이러한 도리를 아셨다면 이번 정초기도에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 기간에 법당엘 못 오시더라도 집에서라도 지극함과 간절함으로 발원문을 손수 지어 기도 전에 발원문을 읽고 반야심경 한편이라도 독송하시길 재차 말씀드립니다.


이제 아까 말씀드린 대로 재를 올려 모든 기도를 할 때마다 시식(施食)이라는 것을 하게 되는데 이 시식이라는 것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시식이란, 망자를 천도하여 극락정토에 왕생시키기 위해 재를 올리고 법식(法食)을 주면서 법문을 들려주고 경전을 읽어 주며 염불을 해 주는 의식, 또는 스님에게 재식(齋食)을 공양하는 것과 아귀(餓鬼)에게 음식을 베풀어 먹이는 의식 등을 말합니다.


그 유래는 소아귀경(召餓鬼經)이라는 경에 “아난존자가 길을 나섰다가 돌아올 때 갠지스 강가에서 아귀들이 불타 죽는 것을 보고 처소에 돌아와 부처님께 여쭈니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다라니의 법식으로 그들에게 시식을 베풀면 모든 귀신들이 주림을 벗고 포만을 얻어서 해탈할 수 있다.”고 한데서 연유한 것입니다.


일반의 재의 경우 그 의식절차는 먼저 죽은 이의 영가를 맞아들이는 시련(侍輦)을 하고, 먼 곳에서 온 영가에게 우선 간단한 다과를 대접하고 예불하게 하는 대령을 행하고, 다음으로는 영가가 세세생생에 걸쳐 지어온 생사업보의 때를 씻고 법문을 듣는 관욕을 해줍니다.


이어서, 시식을 통하여 법식(法食)을 베풀어주는데 이때 이런 큰 잔치에 일체의 아귀·유주무주 고혼도 함께 청하여 법식을 받도록 해줍니다.


그리고 끝으로 봉송 편에서는 불전에 하직인사를 하고 유족의 인사를 받고 극락으로 돌아가도록 해주는 것이며, 우리가 49재가 끝나고 나면 소위 영가의 겉옷과 속옷 한 벌과 세면도구 일체와 신발과 대야를 준비하여 봉송하면서 소대에 가서 살라줍니다.


우리가 자녀 중에 타지에 나가 공부하고 있을 때, 계절에 따라 소포로 옷가지를 보내주었고 학비는 송금했던 시절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와 하등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이승을 떠나 저승 세계에 계신 가족들을 위해 이런 것들을 보낼 방법은 바로 형상을 태워서 재로 만들어 보내는 방법을 택했던 것입니다.


이것을 호마법이라 하여 소대를 만드는 법이 있습니다만, 여기에서 망자의 옷가지를 불에 살라주고 태우지 못할 것은 대야에 담아 사르는 불 위에서 마음속으로 망자를 위해 염불을 해주면서 좌에서 우로 세 번을 돌리고 내려놓은 뒤, 봉송이 끝나고 모든 의식이 끝나면 남은 물건들은 영가를 대신하여 사찰에서 일용하여 영가가 이마저도 공덕을 짓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또, 시식의 종류로는 전시식(奠施食)·관음시식(觀音施食)·화엄시식(華嚴施食)·구병시식(救病施食)이 있습니다.


제사 지낼 奠자를 쓰는 전시식(奠施食)은 일체의 외로운 영혼을 지장보살의 위신력에 의탁하여 음식을 베푸는 것으로 영혼에 올리는 불교식 제사의례로서 모든 의식이 그러하듯이 반드시 시식 전에 불보살님들께 귀의하고 그 가피를 구하는 일반적인 의식을 하고 나서 하단(下壇)에서 행하게 됩니다.


관음시식(觀音施食)과 화엄시식(華嚴施食): 관음시식은 선망부모·친족·일체 고혼을 위해서 불교의 사대명절인 불탄일·성도일·열반일·백중일과 삼대재일(49재·백일재·기재), 그 밖에 좋은 날을 택해서 행하는 것이며, 화엄시식은 관음시식과 마찬가지이나 화엄신앙을 바탕으로 하고 초하루나 보름에 간단히 의식을 집행하는 것이며 주로 스님들의 재를 대표한다 할 것입니다.


구병시식(救病施食): 업으로 인했거나, 원결로 인해 몸이 아픈 사람을 위해서 귀신들에게 베푸는 시식으로 옛 사람들은 병의 깊이와 원인을 잘 판단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귀신의 침범으로 병이 생겼다고 생각하여 굿을 하여 물리치거나 시식을 하여 귀신을 쫓아내는 기도를 했습니다.


지금도 기독교에서는 “심령대 부흥회”다 뭐다 하면서 귀신 쫓는 안수를 한답시고 손톱으로 긁고 때려서 실신시키다 죽게 되는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만,


아난존자에 의하여 비롯된 불교의 시식은 배고픈 귀신들에게 법식(法食)을 통해 포만을 알게 하는 의식이지 귀신을 쫓아내거나 겁을 주는 행위가 아닌 것입니다.


또, 유교와 도교에서는 귀신을 불러 응징하기도 하고, 또 귀신의 포악으로 사람이 당하는 일도 종종 있으며, 무속에서는 귀신의 원한을 풀어주거나 무섭게 하여 쫓아내거나 무경으로 귀신을 가두는 의례를 행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불교의 천도의식 중에 향화청 이나 가영을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빚진 사람 원수가 되어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 그치지 못했기에 지금 시식을 베풀어 법식을 제공하오니, 무릇 깨달아 원한을 푸소서.”


영혼에게 드리는 노래인 향화청이나 가영(香花請, 歌詠)의 내용을 보면 구병시식의 뜻이 전생의 빚을 갚고 원한을 푸는 것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여기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성불하십시오.

1 통도사 

 

 

 

이날 통도사의 하늘은 쪽빛이었다.

 

 

통도사는 지금 화엄살림 법회 중... 

 

 

이상하게 통도사에 갈 때마다 이녀석을 만난다.

점점 추워지는 날씨에도 아직 먹이 활동이다.

 

이번 기회에 통성명이나 하고 지내자 하니

"작은 멋쟁인 나비"라고 이름을 알려준다.

짜식 정말 멋쟁이 같다 ^^*

 입에 있는 빨대로 꽃술 하나하나를 더듬으며 꿀을 빠는 모습이 너무나 예뻣어요.

작은 생명이 더욱 신비하고~귀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차나무 꽃에서 만났다.

 

 

통도사 법당 앞에서 익은 산수유열매는

더 좋은 약재가 될까?

 

 

2 운문사

 

 

 

운문사엔 아직도

떠나는 가을이 미련을 버리지 못한채

자꾸 뒤돌아보며 서있다. 

 

 

나 못생긴 건 세상이 다 아는 일-

하지만 감추어진 향기는 겨울을 따듯하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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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님!  좋은 그림 감사합니다.

편집 : 유당 

첨부파일 Wang_Sheng_Di-Lotus_Of_Heart.w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