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하고 즐겁지 않은 삶
우리 모두는 행복하고 즐거운 삶을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편안하지 않습니다. 즐겁지 않습니다.
무릇 생명이 있는 것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과정들이 편안하고 즐겁다고 생각하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또한 갖고 싶은 것이 많지만 쉽게 가져지지 않으니 즐겁지 않습니다.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들을 다행히 가졌더라도 영구히 내 곁에 둘 수는 없습니다.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는 내 목숨도 언젠가는 끝나게 되어 있으니, 내 것이라고 여기고 애지중지 하는 것들 역시 어느 때인가는 나를 떠나가므로 괴로운 일입니다. 혹시 당분간 내 곁에 둘 수 있더라도 그때는 내 좋아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시들해져 역시 괴롭습니다.
하기 싫은 일, 만나기 싫은 사람을 만나고, 무한경쟁을 부추기고 치달리게 하는 현대사회에서 살아가는 것도 불편하고 즐겁지 않습니다.
이 몸뚱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하루 세끼를 꼬박 먹어야 하고 잠을 자야 하니, 100년이 채 못되는 인생에서 먹고 자는 시간을 빼면 내 삶을 위해 내 마음대로 쓸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내 마음대로’라고 표현을 했지만, 곰곰이 파고들면, ‘내 마음’의 실체가 모호해지고, 내 마음 조차 내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쉽게 ‘내 마음을 왜 내 마음대로 못해?’ 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요즈음은 증거기반(Evidence-based)주의 시대이니, 당장 실험을 해보면 되겠지요. ‘편안해져라’라고 해서 마음이 편안해질까요?
이상은 조금 생각을 하며 사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부딪치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쉽게 해답이 안 나오니 다른 바쁜 일을 찾아서 잊으려하거나, 술이나 마약에 의존해 잊으려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잠시 문제를 외면한 것이지 근본해결책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요? 행복하고 싶지 않다면 풀 필요가 없겠지요. 그러나 모두가 행복하고 싶어하니 꼭 풀고 넘어가야 할 문제입니다.
이쯤에서 조금 주변을 돌아보면 이는 현대의 우리들 뿐 아니라, 과거의 사람들도 겪고 해결하고자 노력한 문제이니, 철학과 미학과 종교와 사상이 나오는 배경이기도 합니다.
인류의 공통적인 이 문제를 가장 과학적으로 접근하고, 본인의 몸과 마음을 대상으로 실험을 통해 증거에 기반한 해답을 제시한 분은 제가 아는 한에서는 고오타마 싣달타라고 여겨집니다. 많은 분이 공감하시겠지만, 물론 다르게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겠지요.
공감하시는 분들은 고오타마 싣달타가 증명하고 제시한 해결책과 그 시대에 따른 수정본을 함께 보시도록 하고, 공감하지 않는 분들은 다르게 생각한 해결책과 고오타마 싣달타의 방법을 비교해보는 의미에서 함께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