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화된 하나, 변질된 하나.

2009. 12. 4. 22:29일반/금융·경제·사회

728x90
퇴화된 하나, 변질된 하나.

(서프라이즈 / 내과의사 / 2009-10-19)

이명박이 드디어 ‘부동산 알카에다 자폭테러 조직원’임을 커밍아웃했다.
어제 뉴스를 보니 세종시 계획을 원천 무효화시키려는 모양이다.
 
이명박에게는 그가 믿는다고 뇌까리는 기독교 신앙
(상식을 가진 사람이 보기엔 그는 얼치기 사이비 예수쟁이에 지나지 않지만)보다 더욱
목숨 걸고 사수할 대상이 하나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바로 부동산 투기 시장의 거품이다.
상위 1%의 기득권들에게 대도시는 사람으로 바글거릴수록 살기 좋아진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이 사람대비 면적이 좁아질수록 땅값은 사람값보다
기하급수적으로 비싸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의 인턴 시절. 40평짜리 방 하나에 인턴 30명이 2층 침대 15개를 놓고 숙식을 해결했다.
같은 병원에서 하룻밤에 몇 십만 원짜리 VIP 병실에 입원한 환자는 40평
공간을 혼자서 사용했다.
 
서울과 수도권이 지금보다 몇 배 사람으로 미어터져도 상위 1% ‘강부자들’은 쾌적한 주거공간을
 보장받는다는 뜻이다. 땅값은 더더욱 올라가기 때문이다.
 
대신 사람값은 한없이 저렴해진다. 이렇게 가다간 3D 업종뿐 아니라 거의 모든 분야에서
서민들은 외국 이주 노동자들과 일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여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아예 의사도 수입하면 좋을 듯싶다…….^^)
 
서울과 수도권에 사람이 불나방처럼 묻지마 정신으로 맨땅에 헤딩하듯 모이는 이유는
그래도 서울과 수도권에 먹고살 만한 거리가 상대적으로 많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제대로 머리가 돌아가는 정부와 국가지도자라면
 
서울만 따져 국토의 0.5% 전후한 면적에 인구의 1/5가량이 몰려 사는 황당한 모순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풀려고 노력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렇게 하려면 일단 서울에 가지 않고도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된다는 믿음을 주는
정책이 수립되고 집행되는 게 당연하다.
 
노무현이 대선공약으로 제시했고, 이후 총선을 거쳐 여야 합의로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특별법이 통과된 이유는 지역 간 정치투쟁과 탄핵정국이라는 변수가 작용한 까닭이 크지만,
수도권 집중화의 가속이 모두에게 결코 득이 될 수 없다는 정책 주체와
 
 
국민정서의 교감이 뒷받침된 상황도 만만찮게 작용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러한 국민정서는 수도권 주민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으리라.
그러나 헌재가 들고 나온 ‘관습헌법’이라는 해괴한 논리는 사람들의
이성을 한 방에 마비시켰다.
 
그 이면에는 수도권 공동화 = 집값 폭락이라는 공식이 먹혀들어갔다. 코난 도일이
신문 익명 광고란에 “모든 것이 탄로 났소.
당신, 어서 몸을 피하시오!’라는 광고를 내자 갑자기 수많은 런던
시민이 잠수를 탔다는 일화가 있다.
 
마찬가지이다. 행정수도 옮기면 집값 떨어진다는 협박에 심지어 코딱지 만한 집도 없는
인간들도 관습헌법 논리에 찬성을 했거나 묵시적 동의를 던졌다.
그래야 나도 천민이라고 무시 받지 않거든.
 
한국 사회의 대표적 기득권 족속인 내가 초지일관 반 이명박, 반 한나라당
정치노선을 고수하는 이유는 내가 정의로운 사람이기 때문은 절대로 아니다.
 
 (나로 말하자면 한국 사회의 평균적 속물이다.)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를 하나로 묶어주는
의식과 정서가 무너지는 순간, 가장 먼저 파멸하는 대상이
바로 나 같은 족속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과 한나라당, 그리고 조중동은 공동체 의식을 붕괴시키는 삼위일체 공공의 적이다.”라는
신앙에 버금가는 신념으로 나는 서프에 글질을 한다.
 
노무현의 지역 균등 발전 전략은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이권투쟁을 촉발하고자
함이 아니었다. 계획대로 추진되었다면, 지역 균등 발전 전략 최대의 수혜자는
다름 아닌 수도권 주민들이었을 것이라 나는 확신한다.
 
물론 수도권에서 곡소리 내는 인간들도 없지는 않았으리라. 다름 아닌 이명박이
견마지로를 다하여 충성을 바치는 ‘강부자 1% 귀족’들 말이다.
 
하지만, 개혁세력의 가장 무서운 적은 이들 1% 귀족들이 아니었다. 귀족 근처에도 못 가는 주제에
귀족인 척 하면서 귀족 편을 드는 등신들이 문제였지.
 
이명박의 세종시 무효화 정책을 이유로 나는 이명박을 ‘부동산 알카에다 자폭테러 조직원’이라고
단정했다.
 
아마도 세종시 무효화는 한나라당, 수구 언론과 길들여진 관제언론, 부동산에 이해관계가
사무친 기득권층, 그리고 귀족도 아닌 주제에 귀족인 척 행세하는 등신들의 환호 속에
무대포식으로 진행될 것이고,
 
이는 국민 모두에게 수도권 부동산 올인 지령으로 인식될 것이다.
부동산 거품의 한없는 팽창……. 만약 필연적 물리법칙에 따라 거품이 터진다면
대한민국은 경제적으로 파멸할 것이 명약관화하다.
 
그리고 부동산 불패론자들의 주문처럼 물리법칙을 무시하고 거품이 4차원 수준으로 팽창한다면
역시 대한민국은 파멸할 것이다. 왜? 1% 부동산 귀족이 나라의 부를 송두리째 쓸어담는 상황에서
과연 사회구성원을 하나로 묶어주는 최소한의 공동체 의식이 존재할 수 있을까?
 
이명박이 ‘부동산 알카에다 자폭테러 조직원’이라 불릴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그는 그가 견마지로를 다하는 1% 강부자의 이익 수호를 위해 대한민국을 경제적,
혹은 공동체 수준에서 근본적으로 파멸시켜 자신뿐 아닌
 
기득권자들의 알량한 이익마저 날려버리려는 자폭 테러를 자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가 막힐 노릇은 이러한 자폭테러가 모두의 환호성 속에 태연자약하게 진행된다는 사실이다.
황금알 대량 노획을 위해 거위의 배를 가르는 어리석음이
 
대한민국 사회에 기본 상식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정말 이명박 만세라고 아니할 수 없다…….
전쟁터에서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이유는 둘 중 하나라고 한다.
하나는 적군에 대한 증오심이요,
 
또 하나는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비정한 전쟁 원칙이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에 맞서 일어섰던 시민들의 저항 또한 나는
전쟁터의 군인이 지니는 이 두 가지 속성의 연장선상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불의에 대한 분노, 그리고 나의 소박한 삶을 짓밟는 추악한 권력을 막지 못하면
내가 죽는다는 절실한 위기의식이다.
이것은 노무현과 김대중이 마지막 순간까지 희망을 걸었던
시민 최후의 보루이기도 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명제이지만, 나는 이명박의 거침없는 무한 독주에서 최후의 보루를
일그러뜨리는 균열을 발견한다.
 
불의나 불합리에 대한 증오는 위축되어 퇴화되었다. 전과 14범 대통령에 논문표절
탈세 국무총리가 감투를 쓰고서 법치주의를 읊조리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김연아 덕에 대한민국 만세라며 무던히 삶을 이어나간다.
(김연아 욕하자는 거는 아니다.)
 
이명박이 ‘부자감세’를 통해 눈에 보이지 않게 털어가는 100만 원에는 눈길도 주지 않으면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저렴한 인생끼리는 100원 동전 하나라도 빼앗기지 않으려
악다구니를 쓴다.
 
부정의에 대한 증오의 몸짓은 이제 ‘사소한 일에 목숨 거는’ 멍청한 짓거리로
비아냥의 대상이 될 뿐이다.
 
더더욱 내가 전율하는 것은 죽이지 않는다면 내가 죽는다는 원칙의 변질이다.
나를 죽이려 덤비는 적에 맞서는 방법도 두 가지이다.
 
하나는 목숨을 건 진검승부이고, 또 하나는 무조건 항복이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 ‘님은 먼 곳에’를 보면
 
미군에게 베트콩으로 오인 받은 한국 연예인들이 살기 위해 ‘대니 보이’ 팝송을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니들 노래 아니까 난 니들과 같은 편이다.
 
죽이지 마라는 생존을 위한 절규의 몸부림이 인상 깊었던 장면.
이명박은 1% 강부자 귀족의 탐욕을 위해 99% 국민을 제물로 바치겠다고 덤빈다.
 
탐욕에 영혼을 팔아먹은 저들에게선 조폭의 살기마저 감돈다. 그
렇다면,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내가 죽지 않기 위해서라도 맞서 싸우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나를 죽이겠다고 겁박하는 저들에게 사람들은 스스로 무장해제 선언을 한다.
그리고 나도 알고 보면 1% 강부자 귀족과 같은 종자들이라고 간증의 지랄을 떤다.
 
연예인들이 양키도 아닌 주제에 양키 흉내 내며 ‘대니보이’를 복창한 것은 그래도
전쟁터에서 미군이 우방이니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가진 것도 없는 주제에 가진 놈인 척 행세하며 자신들 주머니 털어먹자는 놈들과
배꼽 맞추지 못해 안달복달하는 모습은 그저 무식의 소치려니
가엽게 봐주려고 해도 그런 종자 때문에
 
온 가족이 망가지는 꼴을 보자면 정말 아구창이라도 한 대 날려주고 싶은 심정뿐이다.
전쟁에서 진다는 것은 내가 죽는다는 의미, 혹은 내가 포로가 된다는 의미이다.
 
역사의 대부분 기간동안 전쟁포로는 노예의 가장 중요한 공급원이었다.
나의 소박한 삶을 짓밟으려는 추악한 권력에 직면하여 죽이지 않는다면
죽는다는 원칙의 변질,
 
스스로를 추악한 권력과 동일시하여 그들의 이익에 무임승차하려는 기회주의는
결국 스스로를 전쟁포로라는, 노예라는 운명에 방치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선택이다.
 
담배를 많이 피우면 비타민 C가 파괴된다는 보도를 듣고 골초 친구 녀석 하나는
‘ 아, 그럼 레*나 C를 많이 먹어야 되겠네.’라는 반응을 보였다.
 
죽어도 금연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국감장에서 전경들만
미국산 소고기 먹였다는 보도를 보면서
 
사람들은 마찬가지 반응을 보인다. “음, 내 자식새끼는 절대로 군대 보내면 안 되겠네.”
죽어도 미국산 쇠고기는 안전하니까
 
자기들 먼저 열심히 처먹겠다는 약속을 개무시한 정권을 때려잡을 생각은 하지 않는다.
 
시민 최후의 보루. 하나는 퇴화되었고, 하나는 노예심리로 변질되었다.
 

(cL) 내과의사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2&uid=91455

 

 

 

서핑하던중 기가막힌 논객을 발견했습니다

이 내과의사님의 필명을 쓰시는 논객이야말로

 

시대의 애국자라고 감히 말하겠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속박하는

 

이 노예심리에서

얼마나 자유롭게 벗어났다고 생각하십니까?

 

종교에서 생활에서

국민에서

민주주의에서

그리고 나자신의 잣대에서 ,,

 

금강산의 여름





















8




















































































 

 

♬ 그리운 금강산 ♬
홍혜경, 플라시도 도밍고의 "그리운 금강산" 

 

불교계, 자존심도 없는가?

 

 
종교편향 정치인 사찰출입 금지시켜야
]
 

2007년 12월에 실시될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권을 거머쥐어 보겠다고 나선 정치인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이른바 야당의 대권후보들만 해도 자천 타천에 4~5명이 거론되고, 침몰 직전의 집권 여당 쪽에서도 자천타천으로 후보군 물망에 오르내리는 정치인이 대여섯 명이나 되며 그 밖에 군소 정당과 무소속까지 합치면 대권에 뜻을 두고 있는 정치인은 어림잡아 1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이와 때를 같이 해서 대권을 향한 ‘야무진 꿈’을 꾸고 있는 정당대표들과 정치인들이 기회만 있으면 불교계를 기웃거리며 핑계만 있으면 불교종단을 방문하고, 불교행사에 끼어들어 이른바 불심(佛心)을 붙잡기 위해 온갖 아양을 다 떨고 불교계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고개를 숙이며, 허리를 굽실거리고 불교를 찬양하는 아부성 발언을 쏟아놓고 있다.

 

그야말로 불교계를 향한 정치인들의 구애작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 같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이 치사한 정치의 계절을 앞두고, 일부 종단의 일부 불교계 인사들은 유력한 후보자로 알려진 정치인들과 미리 특별한 인연을 맺어놓고자, 약삭빠르게 그들을 불교행사에 특별히 모셔 얼굴을 알리게 해주는 기민함을 발휘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더더구나 일부 지방의 일부 불교계 인사들은 평소 불교를 폄하하고 서양 종교를 광신적으로 신봉하며 “수도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한다”는 망언으로 전 불교계의 지탄을 받고 있는 전 서울시장 이명박 씨를 불교행사에 참석시켜 뜻있는 불교계 인사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이에 앞서 대한불교청년회 부산지구는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한다”고 망언을 했고, ‘Again 1907 in Busan'이라는 기독교 기도회에 축사를 보낸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공개적으로 대국민사과를 하기 전에는 이명박 전 시장의 부산사찰 방문을 저지하기로 결의한바 있었는데, 다른 일부 지방의 일부 불교계 인사들은 어이없게도 이명박 전 시장을 불교행사에 참석시켜 미리 간접적인 선거운동을 도와준 셈이 되고 말았다.

 

철없는 아이들이라면 몰라도 그동안 수없이 권력으로부터, 공직자로부터 부당한 차별대우는 물론 공격과 중상모략을 끊임없이 받아온 불교계 인사들이 극단적인 종교편향자의 본색을 여지없이 드러내놓고 있는 저 유명한 ‘망언의 주인공’을 불교행사에 참석케 했다는 것은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권력에 아부하는 것도 좋고, 권력에 줄을 대는 것도 좋지만, 그렇다고 타종교 맹신자로 ‘사찰이 무너지도록 기도하는’ 기독교 기도회에 축사를 보낸 사람을 불교행사에 참석시켜 아부의 눈도장을 잽싸게 찍는다는 것은 참으로 서글프기 그지없는 일이다.

 

만일 불교계에도 자존심이 있다면, 평소 특정종교에 편향된 언행을 해서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공직자나 정치인들은 어떤 불교단체나 어떤 사찰의 불교행사에도 참석을 금지시키는 최소한의 자존심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

 

평소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불교를 폄하하고 공직을 이용해서 특정종교의 선교활동을 하는가 하면 국민이 낸 세금으로 특정종교의 선교활동을 도우려고 한 얼빠진 공직자는 전불교계가 하나로 뭉쳐 단호히 응징함으로써 두 번 다시 공직자의 종교편향 행위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그와는 정반대로 불교를 비방하고 불교를 폄하하며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한다”는 망언을 서슴없이 하고도 공식적인 사과 한마디 할 줄 모르는 그런 인사를 불교행사에 참석시킨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앞으로 선거가 가까워질수록 정치인들의 불교계 짝사랑은 더욱 노골적으로 확산될 것으로 보여지는데 과연 오늘의 한국불교계는 밸도 없고, 자존심도 없는가. 종교편향 정치인들은 사찰 출입을 금지시켜라.

윤청광 방송작가


 

정권과  불교 / 현대불교역사에서 펌

 

조선왕조 오백년

태종이 왕에 즉위하면서 불교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이 시작되었다.

태종은 태조의 견제를 받지 않을 수 없었지만 결국 숭유억불(崇儒抑佛)의 방침을

시종 견지하여 정책상으로는 많은 변화를 가져오게 했다.

 

 세종에 이르러서는 억불보다 더한 훼불(毁佛)정책이 강행되었다.

태종 때의 불교 종단이 11개에서 7개로 통폐합되었던 것이 세종 때

다시 선.교양종(禪.敎兩宗)으로 통합되었다.한때는 승려들을 노동에 참여하게 하여

노동력을 이용했지만 그 이후로는 승려의 파계를 이유로 도성내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금지했다.

이 때 세종의 친형이 효령대군이 불교를 숭신하여 천태종 승려 행평(行平)에게 사사,

제자가 되어 노승의 사실(師室)에 귀의하고  초파일 연등행사가 나라의 억제 조치에도 불구하고

매년 행해졌다. 이러한 상황에 감화 받은 세종은 점차 숭불의 왕으로 변신해 갔다.

말년에는 세종도 불교를 신봉하게 되어 석가불의 일대기를 엮도록 명하였고

우리글자 훈민정음으로 불교 서사시 [월인천강지곡]을 짓기도 했다.

 

세조의 불교 장려정책

조선의 대호불왕(大護佛王)이라 할 수 있는 세조는 유신(儒臣)들의 반발을 억누르고

독실한 신자로 자처하며 불교를 중흥시켰다.

 

성종은 간경도감을 폐지하고 출가를 완전히 금했고 승려들을 환속시켜

절이 텅텅비는 사태가 곳곳에서 도출되었다.

 

연산군에 이어 중종에 이르러 억불정책은 최고조에 다달았다.

그는 지난날의 사화(士禍)로 거세되었던 사림파 유학자들을 적극 등용하여

그들에 의한 도학정치가 실시되었고 불교는 더욱 억압 받게 되었다

 

1954년 5월 21일 이승만 정권은 불현듯 정화유시를 내린다.

이것이 1차 정화유시였으며 그 내용은 처자를 거느린 사람은 승려가 아니므로

사찰에서 물러가라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대처승 추방유시나 다름없었다.

불교에 각별한 애정도 갖지 않고 있었던 독실한 크리스챤 대통령이 왜 하필

이런 미묘한 문제에 대한 발언을 서슴없이 하였을까?

대통령은 크리스챤이었기에 당연히 불교현실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결여되었기

때문에 돌출한 사건이라고 여기면 될까?

아니면 의도된 정치적 계산이었던 것일까?

 

한편, 대처 승단은 태고종으로 발족하게 된다. 이 때가 1962년 이였다.

이 와중에서 망실된 재산과 토지는 그 양을 측량할 수 없을 정도였다.

결과적으로 불교에 대한 정부 관권의 개입이라는 바람직스럽지 못한 형태를 낳게 된다.

또 5.16 쿠데타 직후 종교의 자유를 내세워서 불교계의 여러 종파들을 등록시킨 것도 문제였다.

비슷비슷한 종풍(宗風)을 내건 불교 단체들이 문공부에 등록하였다.

이 때를 전후하여 한국 불교에는 26개의 종파가 난립하게 된다.

조계종의 첫번째 수행 과업은 태고종이 소유하던 사찰들의 합법적인 접수였다.

정화라는 기치아래 거의 모든 사찰들이 조계종으로 등록하게 된다.

 

 이 접수 과정에서 무자격한 승려들이 대거 조계종 안으로 스며든다.

이들은 수행이나 사회제도에는 관심이 없고 재산권의 이득만을 노리는

이들이 승복을 걸치게 된 것이다.

조계종단 안에서 폭력이 활개를 치게 된 동기이며

오늘의 비극은 바로 이 보이지 않는 악연(惡綠)이 뿌린 인과응보이다.

 정화불사를 주도했던 청담(淸潭) 스님은 이점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문민정부의 탄압

한편 문민정부를 자칭하고 나선 김영삼 정부(1993~1996)는 출범 이후

역사 바로 세우기 등  세인이 납득할 수 없는 억지논리를 전개,

일신교적 흑백사상으로 민족의 뿌리를 송두리째  뒤흔드는 누를 범했다.

단군성조이래 5천년 역사를 싸잡아서 비난 매도하는가 하면

 연꽃이 불교를 상징하는 꽃이라 하여 곳곳에서 죄없는 연꽃이 뽑혀 나가는

수난을 당하고, 이 시대에 편승하여 일부 몰지각한 종교단체들이,

각급 학교교정에 홍익인간의 교육이념으로 세워진 우리민족의 뿌리이자 근원인

단군상을 파괴하고, 훼손하는 등의 민족성이 의문되는  어이없는 일들을 저질렀다.

 

1993년1월4일 육군 제17사단 전차부대장이 불교가 자신이 신앙하는

종교가 아니라는 이유로 부대 내 법당을 폐쇄하고 불상을 유기한 사건이 발생하였으며,

동년 5월에는 경남지사가 부임 직후 관사에 모셔져 있던 미륵반가상을 창고에 폐기처분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김대중대통령

딱히 특정종교를 두둔하지는 않았지만 기독교신자 200만명이 늘었다는 후문.

 

차기대통령은 ?

불교에 미치는 영향이 어떠할지 가늠해 보십시오.!!

 

개인적으로 바라본 정권과 불교계

이승만시절에 대처승 몰아내라고 유시를 내린 이유가 불교를 분열시키기 위한

술책이었음을 간과하지 못하고 치고받고 싸우는 모습에 어느종교에서는 회심의 미소를.....?

결과는 권력승 깡패승을 만들어낸 현 불교모습입니다.

 

불교정화한다고 할 때 그렇게 급진적으로 하지 말고 해인사등 도량은 독신승이 맡고

포교는 대처승이 맡는 것으로 하는 안이 있었는데 그렇게 했다면 수행은 수행대로 살고

포교는 포교대로 살았을 것이라는 혜거스님 말씀입니다.

뭉치지 못하고 분열하면 집안싸움에 서로 죽는 결과 뿐 입니다.

이미  지난일들이지만 지난일을 돌아보고 어리석은 일을 반복할 수는 없습니다.

 

사부대중 여러분~~~

정권이 불교에 미치는 영향이 어떤지 가늠해 보시고  눈앞의 이득에 휘둘리지 말고

바른 선택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불교를 지켜야할 의무가 있는 불자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