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을 따를 뿐-수연무작(隨緣無作)/대우거사

2009. 12. 15. 21:11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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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준 wrote:
 

안녕하십니까. 저는 불교를 접한지 1년 정도 되는 초심자 입니다.
스님들의 법문이나 이 홈페이지에 있는 글들을읽다보면
수긍하고 받아들여지지만 실상 실생활과 수행의 괴리가 너무 멀게만 느껴집니다.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을하고 돈을 벌어야 하고
사람들 저마다 자신이 이루고 싶은 것들을 위해 살아갑니다.
그런데 스님들이 말씀하시는 것을 듣다보면
이런것들이 다 덧없는 것이고 여기저기 끌려다니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를 종종 듣게 됩니다
 

한가지 여쭙겠습니다.
그렇다면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목표라는것을 세우는것이
불 필요한것인가요?
이런 것이 부질없다면 그럼 다들 수행자가 되어야 하는 것인가요?
정말 헛갈리기만 합니다. 좋은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답/대우거사

 

 이 세상의 모든 현상은 인연으로 말미암을 뿐이요,

주재자(主宰者), 즉 <작용의 주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곧 <짓는 자>가 있어서 작용을 일으키는 게 아니라,

다만 인연을 따를 뿐이라는 말입니다.

 

마치 저 바다의 물결은 스스로의 계획을 따라서 스스로의 힘으로

물결치는 게 아니라, 다만 바람이 부는 대로 물결칠 뿐이라는 말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이 세상엔 인연으로 말미암지 않고 일어나는 일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들이 독립적인 실재(實在)인 줄로 굳게 믿고 있는 이 육신도

조금만 자세히 살펴보면, 필경 <밥과 물과 공기 등>의 기운을

빌리지 않으면 아무 짓도 못하는 게 분명한데도 사람들은

이 <나>가 모든 일을 주도적으로 계획하고 도모하고 실천하는
힘이 있다고 여겨 의심치 않거든요.

 

그런데 인연으로 말미암아 나는 모든 일들은 
- 그것이 유정이건 무정이건 막론하고 ― 자체로는 성품이 없는,

마치 그림자 같고 메아리 같은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만약 그것들이 자체성(自體性)이 있는 것이라면

구태여 인연에 기댈 것이 뭐가 있겠어요?

마치 물체가 있어야만 그림자가 드리우고, 음성이 있어야만

메아리가 나듯이,  따라서 그림자나 메아리는

자체의 성품이 없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일이 인연으로 말미암지 않고 생겨나는 일은

하나도 없으므로, 따라서 이 세상의 일체만유(一切萬有)는

모두 꿈같고, 환(幻) 같고, 그림자 같고, 메아리 같아서,

전혀 실다움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요컨대, 흥망성쇠(興亡盛衰) 길흉화복(吉凶禍福)이 다

꿈속의 일처럼 부질없고 덧없는 것임을 밝힌 사람은

특별히 일을 도모하고 획책하는 일 없이,

<그저 시절과 인연을 따르되 조작하는 일이 없는>,

 수연무작(隨緣無作)이야말로 원기인(圓機人)의

초연한 삶임을 알아야 합니다.

 

- 현정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