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2. 16. 19:39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어제 오후 5시부터 시작된 자비참법기도로 삼천배에 가까운 절로 철야를 하고 오늘 일요법회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법문은 소참법문으로 짧고 간단하게 하겠습니다.
오늘 법문은 원효대사의 말처럼 일체 유심조라 했듯이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마음한번 먹기에 달린 것이라고들 합니다.
(원효대사와 자재암,측천무후와 신수대사이야기)
더 쉽게 말한다면 모든 喜老愛樂이라는 것들이 어찌보면 생각 한 번 바꾸기에 달렸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한 생각 좋게 가지려고 하고, 마음을 긍정적으로 돌리려고 노력한다 해도 다겁생 동안 지어온 온갖 업력들로 현실에서 겪는 업보를 감당할 만한 근기가 약한 중생들인지라 현실은 힘들기만 합니다.
눈만 뜨면 밤사이 뉴스를 들어보거나 아니면 하루 동안에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사건사고를 접할 때마다 저는 의문이 생깁니다.
이렇게 많은 교회와 사찰들과 성스럽다는 성당들이 아파트 단지마다 종교부지라고 해서 곳곳에 비집고 들어앉아 매주 일요일 마다 성스러운 기도들을 하는데도 우리가 사는 현실은 이렇게 점점 각박해지기만 하고 악한 일들이 비일 비재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항상 듭니다.
한국의 대표적 종교인 불교, 개신교, 가톨릭이라는 세 종교의 종교인을 합하면 4,700만의 절반이 넘는다고 합니다.
또 다른 군소종교까지를 합해보면 국민의 2/3 정도가 종교인이고, 1/3은 무교라 친다 해도, 어느 종교든지 사람죽이지 말고, 도적질하지 말고, 나쁜 짓 하지 말라고 할건데도 어째서 우리 사는 세상은 이 모양 이 꼴인가 하는 것입니다.
소위, 개독교라고 불리는 일부 기독교의 종교적 위선 때문일까, 아니면 한국불교 장자종단이라는 조계종단의 출가정신이 탁해진 탓일런가, 모든 종교가 잘못 가르친 결과일까. 모두들 종교를 잘못 믿기 때문일까. 이런 의문을 숱하게 해봤습니다.
제 생각하기로는 자신이 믿는 종교와 현실을 이분법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교회에 있을 때만 기독교인이고, 법당에 있을 때만 불자이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한국인들의 종교생활이 모두가 생활 속의 종교가 되는 데는 실패했기 때문에 아는 것과 생활 속에 실천이 일치되지 않는 앞뒤 안 맞는 종교생활로 만들어지는 현상이라고 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적어도 자기가 신앙을 가졌다면 이념적이고 신앙적인 면 못지않게, 현실생활 속에서 종교적이고 신앙적인 가르침들을 응용하고 활용하는 지혜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팔자나 운명론에 떨어지기 보다는 업과 인연법의 이치를 깨달아 부처님 가르침을 그림자처럼 여기고 그 가르침대로 살려는 노력이 좀 더 많아져야 할 것입니다.
불교적 신념이 우리 삶의 축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벌어지는 일상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들이 모여 내일을 만들어가는 씨앗들이라는 불교적 가치관이 배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제 우리는 진정한 생활불교인이 되어야 합니다.
생활불교가 되는 지름길은 불교를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접근해야합니다.
일상을 눈만 뜨면 욕구에 노예가 되어 허겁지겁 불편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삶이 어찌 편안한 심신이 될 것이며 그리살던 사람이 덜컥 죽기라도 한다면 그 영혼은 편안한 영혼이 되겠습니까?
생활 속에 뿌리내린 불교라야 생명력을 지닐 수 있는 것입니다.
어제 인터넷을 보니깐, 잘나가다가 이제 좀 뜸한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의 잘못된 만남에 돌을 던질 사람이 얼마나 될까. “변-신”의 부적절한 관계는 올해 최대 스캔들로 유명세를 탔고 비난 대상이 됐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50대 남성들의 시각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말한 글이 있었습니다.
어떤, 50대 중견기업 임원은 “가족을 위해 평생을 바쳐 왔지만 내 자신을 돌아보면 뭔가 허전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고, 50대 회사원 A씨는 20, 30대 젊었을 때는 지나가는 여성을 보면 이성을 느꼈지만, 지금은 내 생활과 처지를 이해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여자 친구 한 명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보곤 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남성은 중년이 되면서 말이 통하고 영혼을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게 된다고 합니다.
보살님들은 잘들하고 계시겠지요?
한국의 50대 중년 남성은 인생의 전환기라고 합니다.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고령화로 인해 인생의 막바지를 음미하는 과거의 50대가 아니라 퇴직을 당하고 앞으로 수입 없이 살아가야 할 20~30년을 또다시 고민해야 하는 고민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반면에 50대 여성은 젊어서부터 주위 친구들과 네트워킹이 잘돼 있어 자기의 속내를 털어놓을 친구가 많아 정치와 직장 일만 얘기하는 남성보다 심적ㆍ육체적 변화에 비교적 잘 적응한다고 합니다.
50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부부간 대화를 늘리고 서로 이해하는 마음의 출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이 종교를 갖고 신앙생활을 함께 하고 같은 취미를 갖는 것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종교를 아무리 갖는다 해도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잘 조절해가는 스스로 마음의 주인이 되질 못하고 매사를 신의 뜻으로 돌리고 신에게만 의지하면서 신의 종으로 자처하는 삶을 산다면 늘그막에 미래가 안 보이는 뜬 구름으로 사는 거나 같을 것입니다.
기쁘다는 것도, 괴롭다는 것도, 즐겁다는 것도 모두가 다 이 한 마음이 만들어내는 幻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웃기냐면, 먹고 싶은 것 못 먹어도 병이 되고, 먹기 싫은 것 억지로 먹어도 병이 된다고 하니 병 생기는 원인이 음식에 있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에 있다고 하질 않습니까?
(정신병자의 괴력과 일반인의 힘)
우리 속담에 체면치레 잘하는 양반들은 냉수 마시고도 이쑤시듯, 먹고 싶은 마음 달래주면 먹지 않아도 먹은 듯하고 먹기 싫은 마음 위로해주면 먹어도 탈이 안나니 어리석은 사람은 음식 탓을 하지만 현명한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듯, 일체가 한 생각 마음먹기에 달린 일이건만, 중생들은 이 진리를 머리로만 알고 생활 속에서 막상경계에 부딪치면 실천하질 못하는데서 우리 주변에는 황혼이혼이니 뭐니 하는 한 치 앞도 모르는 어리석음들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미래 생에 또다시 만나 복리 고리로 이자까지 쳐서 서로 원수로 만날 것인데 말입니다.
절대로 이혼할 생각은 말고 어떻게 하면 금생에 저 웬수한테 진 빚을 다 갚을 것인가만 생각하시고 마음 한번 상할 때마다 아이고! 한 가지 빚 갚았다! 하고 후련함을 가져야 한단 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는 그게 능사는 아닙니다.
그럼 어찌 해야 하는가?
(풍양 곽씨 마누라 길들이기 이야기)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업과 인연법과 윤회의 실상을 깨닫게 해주신 부처님께 머리를 조아려 감사드려야할 것입니다.
제가 볼 때 현대인들의 불치병의 원인은 여섯 가지입니다.
오염된 공기와 오염된 물과 오염된 먹거리와 자기 마음을 조절하지 못해서 생기는 만병의 근원인 스트레스와 수맥과 과거생의 업으로 인해 오는 여섯가지입니다.
옛말에 힘이 센 사람을 장땡이라지만, 힘센 사람도 머리 좋은 사람은 당해낼 수 없고, 아무리 머리가 좋다 해도 돈 많은 사람을 당할 수 없고 돈이 아무리 많은 사람이라도 명이 긴 사람은 당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모두들 만병의 근원인 스트레스는 자기가 만들어 자기가 받는다는 것을 깊이 새기시기 바랍니다.
자기 병은 자기가 만드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지혜는 이렇게 살아가는 삶 속에서 지혜로 번뜩이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죽더라도 극락직행을 하는 것이지 살아생전에 주처정토가 되질 못한 영혼들이 어찌 왕생정토를 쉽게 갈 수 있겠습니까?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가꿔가는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성불하십시오.
老年을 즐기는 생각들 .. !
첫째.
학생으로 계속 남아 있어라.
배움을 포기하는 순간 우리는 폭삭 늙기 시작한다
둘째.
과거를 자랑 마라.
옛날 이야기밖에 가진 것이 없을 때
당신은 처량해진다.
삶을 사는 지혜는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즐기는 것이다.
셋째
젊은 사람과 경쟁하지 마라
대신 그들의 성장을 인정하고
그들에게 용기를 주고 그들과 함께 즐겨라.
넷째
부탁 받지 않은 충고는 굳이 하려고 마라.
늙은이의 기우와 잔소리로 오해받는다.
다섯째
삶을 철학으로 대체하지마라.
로미오가 한 말을 기억하라.
"철학이 줄리엣을 만들 수 없다면
그런 철학은 꺼져버려라"
여섯째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즐겨라.
약간의 심미적 추구를 게을리 하지 마라.
그림과 음악을 사랑하고 책을 즐기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것이 좋다.
일곱째
늙어 가는 것을 불평하지 마라.
가엾어 보인다.
몇 번 들어주다 당신을 피하기 시작할 것이다.
여덞째
젊은 사람들에게 세상을 다 넘겨주지 마라.
그들에게 다 주는 순간 천덕꾸러기가 될 것이다.
두 딸에게 배신당한 리어왕처럼 춥고
배고픈 노년을 보내며 두 딸에게 죽게 될 것이다.
아홉째
죽음에 대해 자주 말하지 마라.
죽음보다 확실한 것은 없다.
인류의 역사상 어떤 예외도 없었다.
확실히 오는 것을 일부러 맞으러 갈 필요는 없다.
그때까지는 삶을 탐닉하라.
우리는 살기 위해 여기에 왔노라.
- 세익스피어가 주는 교훈 중에서 -.
배경음 : Pavane / Tol & T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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