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흐르고 꽃은 핀다/해월스님(대구불교대학장)

2009. 12. 24. 00:01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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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흐르고 꽃은 핀다


 

萬里靑天    멀고 먼 푸른하늘

 

雲起雨來    홀연히 먹구름 일어나니 비가 내린다 

 

空山無人    산은 비었고 사람도 없으니

 

水流花開    물은 흐르고 꽃은 핀다

 

 

 

 

 

 

 

<시 감상> - 해월스님(대구불교대학장)

 

 

 내가 거처하는 팔공산 동화사 비로전 다실에는 두개의 족자가 걸려 있는데 하나는 빈 족자요, 하나는 위의 古詩가 걸려있다.  이 시는 참 글 맛과 속 맛이 있는 글이다.

 

萬里靑天은 동서남북이 없고 상하가 없고, 시작도 끝도 없다. 여기 허공에는 이념도, 종교도, 사랑도, 집착도, 부처도, 조사도 세울 수 없다.그 어떤 말과 언어와 이론으로도 세울 수 없다. 

언어는 사실을 말할 수 없다. 우리가 산바람이 지나간다고 할 때 바람이란 말은 내 생각이다. 바람이란 말을 알기 전에 바람은 무엇일까?

 

성철스님의 유명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법문에는 삼구가 있었다. 1구(句)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2구는 '산은 산이 아니요, 물은 물이 아니다', 3구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1구은 관념의 눈이다. 2구는 관념의 해체다. 3구는 관념이 해체된 눈이다. 관념이 해체된 눈으로 보는 세계를 무엇이라고 할까?

 

雲起雨來는 본래면목 그 자리에 홀연히 먹장구름 일어나고 비가 내린다. 인연의 구름이 모여드니 희노애락이 일어난다. 인연이 모여드니 지식이 생긴다. 지식이란 명사들의 집합과 작용일 뿐이다. 구름이 일어남이 무명이라면 비는 무명의 인연들이다.

 

空山無人은 산은 움직이지 않는 부동이라면 사람은 움직이는 것이다. 산도 비워졌고, 움직이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주관과 객관이 사라진 경지다. 주객이 사라진 삼매이다.

 

水流花開는 주관과 객관이 사라지면 거기에는 여실지견이 생긴다. 있는 그대로의 세계, 천연 그대로, 인연 그대로, 실상 그대로를 들어낸다. 관념이 해체된 눈으로 보는 것 이것이 妙用이다.

글씨 없는 족자는 처음부터 글이 없기에 무엇으로도 읽을 수 가 없다. 그러므로 글 없는 글에서 글을 읽는다. 소리없는 無生之曲을 듣는다. 보지 못하는 곳에서 본다. 

 

만공스님이 어느 날 대중 대중스님들과 점심공양을 드시로 차를 마시며 대중스님들에게 물었다.

"여보게 ! 여기 차 잔이 있는데 찻잔이라고 하지말고 말해보게"  하시니 여러 소리가 있었다. 그때 해월 스님이 들어오시다 이것을 보시더니 잔을 마당에다 던져버리고 만공스님에게 물었다.

" 여보게, 만공! 잔이 없을 때는 무엇으로 묻는가?" 선사란 이처럼 이전을 드러냄에 그 어떤 수단과 방법도 용납하지 않는다.

 

수좌들은 관념이 있기 이전, 물음과 말이 있기 이전, 꽃이 피기 이전, 내가 오기 이전, 부처님 오시기 이전, 관념, 생각, 지식, 앎이 있기 이전을 묻는 분들이다.

아! 이전 소식, 言前소식, 未生前소식, 만리청천 그 소식을 누가 들려줄 것인가? 소식을 간절히 기다리고 기다린다.

 

   - 편집

 
 노을/산사의 명상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