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사체험을 하신 분이 들려주신 이야기

2010. 1. 31. 20:37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화엄경·보현행원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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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콕 공항에서

 

[최근에 임사체험을 하신 분이 들려주신 이야기]

 


저에게는 친형제 이상으로 가깝게 지내는 의과대학 선배 형님과 형수님이 한 분 계십니다. 형님은 유능한 이비인후과 전문의이시고, 형수님은 독실한 불자로서 수행 깊이가 보통을 훨씬 넘은 분이십니다. 제가 봐도 언제나 밝은 에너지가 형형하십니다.

 

마음이 늘 맑고 고요하며, 보통 사람들은 고요한 곳에서만 들 수 있는 삼매(禪定)를, 일상에서 저와 대화 중에도 드실 수 있을 정도입니다. 공부가 채 익지 않았던 몇 년 전에는 아는 이의 도움을 받아 십 수 생의 전생까지 보신 분입니다. 그런 형수님이 오랜만에 제게 연락을 주셨는데, 그 내용이 가히 놀라와 말씀을 드립니다.

 

평소와 달리 매우 피곤하고 심지어는 약간의 병색(?)마저 느껴질 정도로 약해지신 형수님은 왜 그러신지 안부를 묻자, 웃으시며 약간은 농담조로 '죽다(?) 살아나서 그렇다' 시며 일 주일 전의 임사체험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일 주일 전 형수님은 새벽에 어떤 기연으로 임사체험을 했는데, 그 때 너무 에너지 소비가 많아 지금껏 기운을 못 차리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 이야기를 담담히 들려주셨습니다(그 내용은 제가 알던 정신과 전문의, 퀴블로 로서 박사의 임사체험 3 단계와 너무 비슷합니다).

 


형수님은 유체 이탈을 하시며 그동안 궁금하던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보셨으며, 마지막으로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그리고 이 때까지 전혀 경험하지 못한, 너무나 강렬한 밝은 에너지를 만났는데, 그 순간 형수님은 이것이 '우주의 근원 에너지'라고 직감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형수님은 그동안 '붓다(佛)의 에너지'까지는 어느 정도 느끼고 또 알고 있었는데, 이 에너지는 당신이 평소에 느끼던 그 엄청난 '붓다 에너지'보다도 더 강렬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에너지를 만나고 그동안 품었던 마지막 의문의 대답을 얻는 순간 다시 되돌아 오셨다고 합니다.


그 와중에 그동안 같은 독실한 불자이심에도 불가사의한 세계를 그다지 믿지 않으시던 형님은 부인이 사망하는 것으로 알고 얼마나 놀라셨는지 모른다고 합니다. 더구나 인공호흡을 하려는 형님을 향해 형수님이 갑자기 눈을 뜨며 모기 만한 소리로 '나를 그대로 놔 두세요.'라고 부탁 말씀까지 하셨다고 하니, 그 날 밤 불가사의한 세계를 크게 믿지 않으시던 형님의 충격이 가히 짐작이 갑니다.

 


형수님이 당신이 보고 오신 실상에 세계에 관해 제게 들려주신 이야기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지금 우리 눈에 보이고 잡히는 물질의 세계가 얼마나 허망한가 하는 것,
그리고 우리가 정말로 지향해야 할 삶의 목표에 관한 것입니다.

 

 

형수님 말씀에 의하면, 우리가 비록 물질에 의지하고 있지만, 그리고 물질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모두 비물질의 세계로부터 나오는 것으로 그 중요성은 비물질의 세계에 비하면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이요 티끌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 물질에 사로잡히는 우를 범해서는 아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우리는 물질을 끌어안는 쪽으로만 살기에 거기서 많은 인과가 지어지며, 그리고 그러한 인과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모두 지은 사람이 나중에 갚아야 한다고 합니다. 물질의 집착으로 짓는 잘못된 인과에는 정당하지 못한 부(富)는 물론, 우리 생각에 정당하다고 여겨지는 부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즉, 그러한 부는,  인간의 상식으로는 정당할지 몰라도 우주의 기준으로는 정당하지 않은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너무 물질, 부에 집착하지 말며, 그저 먹을 걱정 없고 평균적인 자녀 교육시킬 정도면 충분한 것을 알아 지족(知足)하며 물질 걱정하지 말고 물질에 쏟을 에너지를 다른 곳에 쏟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모두의 성장, 모든 생명의 성장'이라는 것입니다.

 

 

부와 물질, 명예, 영광... 이런 것은 모두 모든 생명의 성장과 행복을 위해 누군가가 잠시 대표로 가져가는 것이지, 그 자체가 개개인의 것으로 머무른다면 그런 물질, 영광이 오히려 그 사람을 망치는 원인이 될 수 있으며, 지금은 그렇게 얻은 물질과 명예로 부러움 가득한 생활을 할지 모르지만, 그 인과는 반드시 갚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주(主) 에너지를 이웃을 돕고 이웃을 성장하고 이웃을 살리는 그런 쪽으로 향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현재 부유하든 가난하든 영광스럽든 창피스럽든, 그런 것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열린 기회'라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건강하며 이웃을 사랑하고 아파하고 양보하고 인내하는 일은, 알고 보면 세상에서 성공하고 좋은 대학을 가며 부를 축적하고 심지어 도(道)를 구하는 일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과 함께 형수님은 무슨 대단한 일을 따로 구하지 말고,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로써 이웃을 돕고 생명의 희망을 주는 일이 매우 중요한 것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사연인즉, 형수님의 대단한 능력을 알아 본 일부 재력가들이 명상 센터 건립 등으로 이웃에 대한 봉사를 함께 하자고 권유한 일이 몇 번 있었고, 형수님 당신께서도 상업적이지만 않으면 그런 방법으로 당신의 에너지를 써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셨는데, 이번 일로 그런 일도 좋겠지만 그보다 지금 당장 내 이웃에 나를 필요로 하는 분이 있으면 그 분을 위해 힘을 쏟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몸이 회복되면 그런 길을 가시겠다는 말씀으로 오랜 이야기가 끝났습니다.

 

 

 

普賢合掌

 


*註

1.'붓다보다 강력한 우주 근본 에너지'에 관해 오해가 있을 수 있어 설명을 드립니다.
이러한 우주 근본 에너지를 일부 천문학자들은 우주심(宇宙心)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퀴블로 로스 박사는 '우주적 의식(consciousness)'이라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런 우주 의식은 붓다 에너지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불교에서 '부처'란 말은 여러 의미로 쓰이는데, '불교라는 종교의 교주로서의 부처'가 우리가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부처라면, '우주의 근본 존재로서의 부처'의 의미가 불교에는 또 있습니다.

 


후자의 의미로서의 붓다는 일반적인 불교경전에는 잘 보이지 않으나, 불교 사상의 최정수인 '화엄경'에서는 여러 곳에서 나타납니다.


즉, 화엄경에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바세계의 부처님'은 석가모니불, 혹은 비로자나불이라 표현하지만, '우주 전체를 대표하는 근본 부처님'은 아예 이름이 없이 그저 '부처님'으로만 나옵니다. 그리고 그 부처님 속에 비로자나불과 여러 보살들도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제가 볼 때 형수님이 평상 시 체험하신 붓다 에너지는 불자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불교 교주로서의 붓다'로서의 부처님이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임사체험에서 만난 강력한 에너지는, 화엄경에서 말하는 불교의 부처마저도 뛰어넘는 '완전한 근본 자리로서의 부처'가 아닌가 합니다(이 말씀은 대화 도중에 제가 설명해 드렸습니다).

 


2.'인간의 상식으로는 정당할지 몰라도 우주의 기준으로는 정당하지 않은 부'는 가령 이런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합법적인 고리대금업자, 사채업자, 땅 투기 등 말입니다.

 

 

3.오늘 올린 글의 끝 부분을 특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형수님은 수십년의 참선으로 시작해서 현재는 명상을 하시는 분인데, 결국 그 공부의 종착점이 '보현행원!'인 것을, 이 곳에서 그동안 행원을 공부하신 분들은  금방  아셨으리라 봅니다.

 

 

아픔(통증)과 마하반야바라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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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전의 불안과 수술 후의 극심한 통증은

수술을 두려워하게 하는 큰 요인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지난 연말연시 병원신세를 지면서 보현행원과 인연되어 마하반야바라밀 염불로 큰 위기를 잘 넘겼음에 무한한 감사를 느끼기에

우리 도반님들께서 마하반야바라밀염불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하실 수 있는 계기를 삼고자 저의 작은 경험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입원 1일째는 보현행원품독경과 마하반야바라밀염불과 불자게송으로 편안하게 보내고,

2일째 병실에서 수술실로 옮겨져서 마취할 때까지는

의사선생님과 부처님의 위신력을 믿고 마하반야바라밀 염불과 불자게송으로 아주 편안하게 무념의 세계로 빠져들었습니다.

 

수술 후 다시 의식이 있는(제가 기억하는...) 첫 순간이 병실침대로 옮겨진 순간,

첫 마디는 아프다, 진통제였습니다.

진통제의(무통) 양을 조금 더 넣고부터 시작된 통증극복 기도들...

 

마하반야바라밀염불과 자비수관 불자게송, 호흡법 등...

수술 후의 극심한 통증 속에서 조금이라도 통증을 줄여보려고 동원한 온갖 방법들.

 

호흡이 긴 불자게송도 ‘나는 불자다 부처님의 위신력이’를 넘지 못하고 집중과 순간의 변화를 알아차려야 하는 자비수관도 지속할 수도 없고,

자꾸 아픔으로만 마음이 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평소 좋아하는 석굴암 부처님의 미간에서 나오는 백색광명이 나를 비추는 모습을 관하면서 아픈 부위에 손을 놓고(자비광명수의 제 멋대로 변형...) 끊임없이 마하반야바라밀염불을 하니 통증을 잊고 잠속으로 빠져들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깨면 또 다시 마하반야바라밀.....

 

통증이라는 실체가 없기에, 내가 잠 속에 빠져 있을 때는 통증을 느낄 수 없음은 물론 편안한 세상까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잠에서 깨어나면 이리 저리 몸을 뒤척이면서 조금이나마 통증이 줄여드는 자세까지 찾아내기까지 하고요....(자비수관에서는 아픔의 변화를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시거든요)

마하반야바라밀과 손바닥으로 전해지는 따듯한 부처님의 자비광명은 통증을 줄여주는 명약이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무통의 부작용으로 하루 만에 무통기구를 떼어버리고도 하루 1차례의 진통제만으로도 2,3일째를 보내고,

이 정도면 너무나 감사하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많이 하였습니다.(귀한 딸 얻느라고 2번의 경험이 있거든요)

 

끊임없이 이어지는 마하반야바라밀은 온 정신을 한 곳으로 집중시키니 아픔을 느낄 수 없었고, 아픔이 느껴지면 더더욱 열심히 마하반야바라밀염불을 하였습니다.

그러하기를 반복하면서 아픔의 변화를 조금씩 알 수 있었습니다.

 

끊임없는 마하반야바라밀염불로 아픔을 잊고 잠속으로 빠져들 수 있었으니 이것이 사마타로 가는 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하여 보았습니다.(주관적인 착각이지만요...)


수술 첫날, 같은 병실에 있던 분이

어쩌면 저렇게 아프다는 소리 한 번 안 하고, 소변도 펑펑 잘 나오느냐고 부러운 소리까지 하셨습니다.(이 분은 수술 후 소변장애 때문에 퇴원을 못하신 분이었거든요)

생각보다 길어진(다 이유가 있더라고요. 알지 못하는 오묘한 세계...) 병원생활에

마지막 3일은 1인실에서 혼자 잠을 자는데도 전혀 무섭지도 불안하지도 않고 오히려 편안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유난히 얼굴이 편안해 보인다면 말을 걸어온  병원동료가

무섭지 않느냐고, 어떻게 그렇게 편안해 보이느냐고 물었던 것도

끊임없이 하였던 마하반야바라밀의 위신력과 의료진을 믿고 감사하였던 마음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병원생활을 하면서,

병으로써 양약을 삼는다는 보왕삼매론의 말씀이 새삼 간절하게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이런 고통을 겪지 않았다면 마하반야바라밀염불의 위신력을 부처님의 가피를 어찌 알 수 있었겠는지요.

 

평소 놓치지 않을려고 하였던 마하반야바라밀.

평소의 습관이 중요함도 또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극심한 통증 속에서 마하반야바라밀의 위신력을 체험할 수 있어서 감사한 병원생활이었습니다.


아직은 컴도 오래 할 수 없고 책도 많이 볼 수 없지만 더 건강한 몸으로 이렇게 감사한 부처님 법을 더 많이 전할 수 있기를 발원합니다.


부처님 고맙습니다.

그 동안 힘을 보내어주신 많은 분들께도 다시 한 번 감사 올립니다.


보현행원으로 이 땅이 불국토가 되는 그 날까지 나아갈 것을 발원합니다.

마하반야바라밀......_()_

 

 

능엄주암송대회

 

 

읽으면 머리가 좋아진다 !

읽으면 많이 본다 !

바로 알아 듣는다 !

부처님과 바로 만난다 !

 

 

주문수행을 하면 알파파나 기타 느린 서파(徐波)가 발생할 확률이 높아진다.

이는 좌반구와 우반구를 동시에 사용하는 전뇌(全腦)적인 수행이기 때문이다.

 

TM자료에 따르면 만트라(주문)를 할 경우

주의력을 우반구의 활동으로 이동시킨다고 한다.

우반구는 직관력을 주장하고 있다.

수행자에게 있어 직관력은 곧 생명이다.

이처럼 주문수행은 소리와 직관력을 병행하기 때문에

우반구를 쓴다는 것은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좌반구는 언어능력을 주관하는데

주문수행은 소리를 내는 수행법으로 당연히 좌반구 활동을 촉진시킨다.

더군다나 그 언어라는 것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무미건조한 언어가 아닌

매우 특별한 파장을 지닌 언어들인 것이다.

 

주문은 뇌파를 떨어뜨리고

염파는 올라가게 하는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다.

따라서 여러 가지 초자연적인 현상은

물론 우리가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어지는 일들을 해낼 수 있다.

염파란 단순한 생각의 파장이 아니다.

왜냐하면 염파(念波)는 곧 영파(靈波)이기 때문이다.

 

과학을 종교처럼 신봉(信奉)하는 현대인들에게,

최근 과학계에서 이해를 돕는 연구자료들이

속속 공개 되는 일은 매우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뇌파의 종류: 아래로 갈수록 파장이 늦어진다.>

 

      베타파 ( 14~30 사이클/초): 긴장, 흥분 상태에 나타남.

      알파파 ( 8~14 사이클/초): 명상 같은 편안한 상태에서 나타남.

      세타파 ( 4~8 사이클/초): 잠들었을 때 나타남.

      델타파 ( 1~4 사이클/초): 깊은 수면 상태에서 발생됨.

                                         마취없이 수술가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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