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에 죽어가는 강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통곡’ 뿐이라니…

2010. 2. 24. 22:49일반/금융·경제·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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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에 죽어가는 강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통곡’ 뿐이라니…

수경 스님, 불자들께 드리는 호소의 글 -- 23일 여주 신륵사 생명의 강 방생법회

 

 


모든 생명은 존엄합니다. 우주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아침 우리에게 생명의 기운을 불어 넣어 준 밥 한 그릇, 물 한 잔도 온 우주가 힘을 모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우리 몸속으로 들어오기 전 그것들은 존귀한 생명체였습니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다른 생명체의 도움으로 생명을 유지합니다. 사람들 또한 생명이 다하면 흙으로, 물로, 불로, 바람으로 돌아갑니다.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다른 생명체의 거름이 됩니다. 이렇듯 천지간의 모든 유정․무정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찮은 생명은 없습니다.

 

“모든 중생은 그 뿌리가 같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는 <화엄경>의 가르침은 생명의 실상에 대한 통찰입니다. 모든 생명을 내 몸처럼 여기라는 간곡한 당부입니다. 부처님께서 갖은 고행 끝에 얻은 깨달음도 바로 그것입니다. 모든 존재의 상호연관성,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으므로 이것이 있다는 ‘연기’의 가르침입니다.

 

‘연기’의 가르침은, ‘나’라고 할 것이 없으니 ‘나’라고 하는 집착과 욕망의 감옥으로부터  벗어나라는 ‘생명 해방’의 선언입니다. 나 아닌 다른 모든 것이 바로 ‘나’라는 ‘생명 존중’의 선언입니다. 그리하여 부처님께서는 계율의 으뜸으로 ‘불살생’을 내세운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는 다른 생명에 빚지는 것으로 목숨을 이어갑니다. 인간을 제외한 다른 생명들은 되먹임을 통하여 생명을 나눕니다. 필요 이상을 취하지도 않습니다. 오직 인간만이 즐거움을 위하여, 더 가지기 위하여 다른 목숨을 취합니다. 인간사의 비극은 여기서 출발합니다.

 

참으로 모진 것이 사람살이입니다. 그래서 참회가 필요합니다. 기도가 필요합니다. 걸음걸음 생각 생각이 참회이고 기도여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대 문명은 최소한의 부끄러움도 모르는 포식과 탐욕의 길로만 달려 왔습니다. 부끄러운 줄 모르니 참회할 줄도 모릅니다. 참회할 줄 모르니 감사할 줄 모릅니다. 감사할 줄 모르니 존경할 줄 모릅니다. 이것은 인간 스스로 ‘인간의 존엄’을 허무는 행위입니다.

 

이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 여러분! 기꺼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겠다고 발원한 이 땅의 불자 여러분!

모름지기 불자라면 부처님과의 첫 번째 약속만은 지켜야 합니다. 그것을 위하여 오늘 우리는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방생’은 불살생의 적극적 실천입니다.

 

방생이 무엇입니까? 멀쩡한 물고기를 잡아다가 놓아주는 것이 방생이 아닙니다. 억압 받는 중생, 힘없고 여린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 방생입니다. 왜곡된 생명을 질서를 바로잡는 것이 방생입니다.

 

 

MB 정부 폭력,

폭력으로 맞설 수 없기에 부모의 마음으로 눈물 흘리며 기도합시다
정부 죽임의 죄업, 우리가 지고 참회해야


불자들에게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바로 ‘법’입니다. ‘법’이란 글자를 보십시오. 물 수()에 갈 거(去) 자를 합한 것입니다. ‘물 흐르는 이치’가 바로 법입니다. 생명의 실상과 자연의 본성이 법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 이러한 자연의 이치를 전면으로 부정하는 무차별적 대량 살상의 현장에 와 있습니다. 살과 핏줄과 같은 관계인 대지와 강을 인위적으로 갈라놓는, 대지의 생살을 헤집는 비극의 현장에 와 있습니다. 수많은 물고기가 산란터를 잃고, 새들이 날개를 접을 강둑을 콘크리트로 바르겠다는 국토 유린의 현장에 와 있습니다.

 

이것을 강 살리기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한반도의 대지에 깃들어 사는 모든 생명을 기르는 자연의 힘을 죽인다는 점에서, 그 어떤 살상보다도 무거운 악업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강은 인공 수로와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굽이돌고 여울지며 사람들에 의해 상처받은 몸을 스스로 치유하고, 물고기와 새들을 기르는 살아 있는 생명체입니다. 우리네 생명의 젓줄입니다. 4대강 사업은 바로 이러한 생명의 순환 고리를 끊는 가장 나쁜 형태의 살생입니다.

 

이런데 이 정부는 22조의 혈세를 쏟아 부어 수십억년 동안 이 땅을 생명을 길러온 강을 콘크리트 수로에 수장시키려 합니다. 마땅히 이 돈은 가난 때문에 밥을 굶는 아이들을 위해 쓰여야 합니다. 그것이 방생입니다. 갈수록 깊어지는 빈부 양극화의 골을 메우는 데 쓰여야 합니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에 맞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건 파괴적 물신주의입니다. 오로지 경제와 경쟁 논리만이 모든 사회적 의제를 압도하며 무소불위의 맹위를 떨치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반생명입니다.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만, 아이티 지진을 통해서 봤듯이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건 땅의 흔들림이 아니라 콘크리트와 같은 문명의 산물이었습니다. 현재의 인류는 지난 어떤 세기보다도 더 자연에 겸손해져야 합니다. 더 늦기 전에 죽임의 문명에서 살림의 문명으로 바꾸어 나가야 합니다. 단순한 삶, 소욕지족의 삶으로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방생입니다.

 

사부대중 여러분!

 

오늘 우리는 방생 법회와 함께 수륙재를 봉행합니다. 다 아시다시피 수륙재는 물과 땅에서 헤매는 외로운 영혼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의식입니다. 하지만 죄 많은 우리가 감히 누구의 영혼을 달랜단 말입니까. 오늘의 우리를 살린 다른 모든 죽음에 대한 존경과 감사가 수륙재여야 합니다. 이것을 모르고 단순한 의례에 그친다면 우리는 위선의 악업만을 더할 뿐입니다.

 

이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 여러분! 기꺼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겠다고 발원한 이 땅의 불자 여러분!

 

그런데 우리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법 절차도, 국민 여론도 무시하고 막무가내로 공사를 강행하는 정부를 상대로 아무런 할 일이 없습니다. 참회와 기도와 통곡 말고는 할 게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의 법회는 통곡입니다. 생명과 자연에 대한 감사와 존경을 잃어버린 죽음의 시대에 바치는 조사입니다. 이것이라도 하지 않으면 우리는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품위와 양심을 지킬 수 없을 것입니다.

 

<범망경>에 이르기를 “모든 땅과 물은 나의 옛 몸이고, 모든 불과 바람은 나의 본체”라 했습니다. 지금 정부가 강행하는 4대강 사업은 우리의 몸을 허무는 행위와 같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정부의 폭력에 폭력으로 맞설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아파 우는 아이에게 아무것도 해 주지 못하는 부모의 심정으로 눈물이라도 흘려야지요. 정부의 죄업까지 우리가 지고 대성통곡이라도 해야지요. 그리하여 콘크리트 같이 단단하고 싸늘한 심장에 인간의 온기가 스며들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오늘 우리들이 바친 참회와 기도의 가피겠지요.

 

고맙습니다.

 

생명의 근원에 귀의합니다.
자연의 본성에 귀의합니다.
온 생명의 스승이신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불기 2554년 2월 23일
불교환경연대 상임대표 화계사 주지 수경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