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과 파동, 그리고 울림-행원의 노래를 불러라!

2010. 2. 25. 22:56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화엄경·보현행원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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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과 파동, 그리고 울림-행원의 노래를 불러라!]

 


이 세상은 물질로 구성되어 있으며(허공도 물질입니다) 물질의 근본은 파동성입니다.
물질의 근본은 입자(粒子)로, 입지가 물질을 구성하며 에너지나 파동은 물질과 다른 존재로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물리학자 드 보르이가 물질의 파동성을 주장하고, 아인슈타인이 에너지의 특이한 형태가 물질인 것을 밝혀냄으로써(E=mc2) 물질과 에너지, 그리고 파동은 별 개의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물질은 파동으로 표현될 수 있으며, 물질의 파동성을 극명하게 설명하는 것이 최근의 '초끈이론'입니다.

 


그러나 물리학에서 말하는 파동을 세상의 근본으로 보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파동은  어디까지나 '물질'(불교적 용어로는 色)에 지나지 않으며, 물질의 가장 근본 형태가 파동이라는 것이지 파동 자체가 물질과 다른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보이는 세상과 보이지 않는 세상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보이는  세상의 근본이 파동이라는 것이지(물질의 최소 크기는 플랑크 길이로 표현되며, 10x(-33)cm 의 크기를 말함)
보이지 않는 세상의 근본마저 파동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이 보이지 않는 세상의 근본인가? 저는 그것이 '울림'이라고 생각합니다.
울림이 보이는 세상, 보이지 않는 세상을 포함한 '모든 세상의 근본 자리'라고 봅니다.

 

 

그리고 그러한 울림은 보이는 세상에서는 파동으로 나타나기에 불교의 큰 스승이나 세상의 성자들이 '파동성'이라 말씀하시는 것으로 저는 생각합니다. 즉,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개념으로 파동이 세상의 근본 자라인 울림과 가장 닮았기에 파동이라 말씀하시는 것이지, 그 파동을 물리학의 물질 대립 개념으로서의 이르시는 것은 아니십니다. 근본자리로서의 파동성, 파동의 성질을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보현행원은 울림의 가르침입니다.

행마다 원을 세우고 일체 중생을 섬기고 공양하는 보현행원은, 생명의 가장 기본 자리, 울림을 가져오는 가르침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행원은 단순한 교리, 가르침이 아니라 '노래'입니다. 

따라서 보현행원을 한다는 것은 내 생명의 울림을 창출하는 것이며

생명의 장엄한 노래, 생명의 장엄한 합창을 부르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이유로 고려 시절 균여대사는 보현행원을 노래로 만들어 군중 속에 울리게 하셨으며, 현대의 고승, 불광의 광덕큰스님께서는 보현행원을 '내 생명의 노래'라고 하셨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 노래는 깨달음과 상관없습니다. 깨닫기 전에도 부를 수 있고 깨달은 후에도 부를 수 있습니다. 범부 중생도 행원의 노래요(출전의 보현), 불보살님도 행원의 노래(입전, 과후의 보현)입니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퍼질 때, 모든 잠자던 생명들이 잠을 깨고 온갖 모습으로 봄날을 장엄하듯, 행원의 노래 울려 퍼질 때, 세상 모든 중생들은 무명의 깊은 잠에서 깨어나 진실 생명의 노래를 함께 부르기 시작합니다.

 

 

비록 힘없고 찰나를 살더라도, 그 작은 생명이 바로 진실 생명이며 생명은 그 모습, 크기, 생존 기간, 능력에 관계없이 모두가 장엄한 이 우주를 구성하고 꽃피우는 진실 생명, 평등 생명, 영원한 생명일지라!

 


내 찰나 찰나 생명이 피고 사라짐으로써 이 우주는 더 큰 진실 생명으로  나아갈지니, 오늘의 나의 삶은 결코 헛되지 않은 것.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한껏 나의 진실 생명을 꽃피우고 찬란히 가리라!

 

 

그리하여 이 우주가 더 큰 생명의 장으로 나아가는데 이바지하리라!

비록 나는 찰나를 살고 허망하게 갈지라도, 나는 영원한 진리 생명, 부처님 생명!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 모두를 섬기고 공양하리라... 

나는 지금 당장 진리로 살아가리라...  이것이 행원의 노래입니다.

 


행원의 노래를 부르면, 이런 울림이 내 안에서 일어납니다. 불교가 무언지 몰라도, 수행이 뭔지, 깨달음이 뭔지 몰라도 이 노래 자체만으로 내 안의 잠자던 나의 울림이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행원은 우주의 노래이며, 내 자신이 진리 생명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울림은 나의 울림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의 울림으로 이어집니다. 그것은 울림이 파동성을 갖는 까닭입니다. 파동은 혼자만 울리는 것이 아니라 진동수가 같은 파동을 함께 울리는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학이 눈부시게 발달하고 물질이 풍부해지고 인류의 지적인 경지가 일찍이 이른 바 없는 최고 수준에 이른 21 세기는, 이제는 행원의 노래가 울려퍼질 시대(시절인연)가 되었습니다. 생명의 시대요 대통합의 시대인 21 세기는, 일체 만물을 공경하고 섬기는 보현행원의 세기가 된 것입니다.

 

 


행원의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진실 생명, 부처님 생명으로 살아간다는 이야기요, 그것은 군림하고 아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부처님이니 나를 섬기고 내 이야기를 듣고 나를 따르라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내가 일체를 부처님으로 섬기고 내 스스로 그 분들에게 한없는 공경과 자비로 대한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부처님은 군림하시는 분이 아니요 일체를 섬기는 분이시며, 공경을 요구하는 분이 아니라 공경을 바치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일체가 스승이요 제자라, 법을 설해야 할 입장일 땐 기꺼이 법을 설하지만, 법을 들어야 될 땐 또한 기꺼이  청법자가 되는 것이 보현행원입니다. 그러니 아는 자 모르는 자, 가진 자 못 가진, 깨친 자 못 깨친 자가 조금도 차별이 없습니다. 모두가 스승이요 모두가 제자요 모두가 친구요 부모 형제입니다.

 

 


불자님들이시여! 이제는 행원의 노래 부릅시다.
그리하여  온 나라 온 세계 방방곡곡에, 행원의 노래 울려 퍼지게 하십니다.

 


행원의 노래 울리는 곳에 대립과 갈등이 사라지며, 미움이 있던 곳에 사랑이, 다툼이 있던 곳에 행복과 화합의 꽃이 피기 시작합니다. 그러한 꽃들이 가득 차 있는 세계가 바로 화엄 세계요 연화장 세계, 우리가 그토록 가고자 하는 진리의 나라, 부처님 계시는 곳입니다.

 

 

보현행원에는 아무 조건이 없습니다.
업장을 해소할 필요도, 목숨을 건 고된 수행도,  무명 중생이 깨쳐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종교가 같아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오직 행원의 노래만 부르면 됩니다.

 

업장 가득한 이 자리에서, 수행도 못하고 무명 가득한 이 자리에서, 일체를 공경하고 찬탄하며 섬기고 공양하는 내 진실 생명의 노래를 부르기만 하면 됩니다. 아무 것도 어려운 것이 없습니다. 노래방에서 노래 부르듯, 그렇게 내 생명의 노래를 부르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저절로 업장은 사라지고 무명은 걷히며, 밝은 부처님 진리 광명이 내 앞에 광활히  펼쳐지며 잠자고 있던 나의 불성 또한 찬란히 솟아오르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일체가 성불하고 일체가 부처님 진리 생명으로 피어나며 나 또한 부처님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행원은 영원한 나의 생명 나의 노래일지니,
행원의 노래여 울려 퍼져라! 모든 잠자는 중생들을 깨우시라!
그리하여 일체 모든 중생이 이제는 서글픈 중생 놀음 그치시고,
모두 함께 저 찬란한 진리 생명,  부처님 생명으로 살아가시라!

 

내 생명 부처님 무량 공덕 생명!
보현행원으로 보리 이루리!
보현행원으로 깨달음의 삶을 살아가리.........

 


나무마하반야바라밀
나무보현보살마하살

 

 

                          普賢合掌

 

 


*註
1.여기서 말하는 보이지 않는 세상이라는 것은,  작거나 형체가 없어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과학이 발달하여 새로운 측정법이 생기면 측정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물질이 아니므로 측정할 수 없는 세계를 말합니다. 물질은 크기가 아무리 작아도 과학(측정방법)만 발달하면 원칙적으로 모두 볼 수 있습니다.

 

 

2.보현행원은 종교, 민족, 사람, 축생 미물의 구분이 없습니다. 어느 종교라도 공경, 찬탄은 할 수 있고 어느 민족도 섬김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성질은 인간만의 특성이 아니라 산하대지 온 만물에 다 깃들여 있습니다. 그러니 보현행원은 어느 특정 종교, 특정인들에게만 제한된 가르침이 아니라 범우주적 가르침입니다. 물리학적으로 말하면, 모든 것의 근본 이론(T.O.E.:Theory Of Everything, 가령 물리학에서는 통일장 이론같은 것)인 셈입니다.

 

 

3.정보를 전달하는데는 입자보다는 파동이 훨씬 안성맞춤입니다. 입자는 개개의 낱개가 모두 가야 하지만, 파동은 전체가 밀려갈 수 있습니다. 운동 경기 때 응원의 하나인 '파도타기'가 그런 예의 하나입니다.

 


4.우리가 흔히 감동의 물결이라 할 때 그 물결이 바로 보이지 않는 세계와 보이는 세계를 이어주는 울림이라 할 수 있습니다.

 

 

5. 더 자세한 이야기는 카페의 '화엄경 보현행원품 강의'란에 연재됩니다.



 


    


인생은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실상 살아간다는 것은
        나 자신을 찾아가는 여행입니다.
        자신을 들여다보지 않고 맹목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자신이 제대로 살고 있는지,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이라도 제대로 살고 있어야만 합니다.
        나를 제대로 발견하지 못할 때 우리는 무엇엔가 쫓기듯 불안하고, 허무해지며, 지나치게 우울해
        져서 삶을 포기하고 싶기도 합니다.

         

        진정한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내 삶에 가치를 부여하며, 소중한 내 인생을 느낄 때
        우리는 건강한 정신을 갖게 됩니다.


         

        우리는 사실 멀쩡하다고 생각하지만
        정상적인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우리에게 무엇이 중요한지를
        모르고 있는 우리는 치료정도는 아니더라도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할 정신질환이 있는 셈입니다.

         
        세상이 바쁘다고 무작정 달려만 가는 우리는 정작 소중한 것을 잃고 살아갑니다. 혼자서는 아무 의미도 없는 세상인데도 우리는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우기 보다는 혼자 살아남는 법만 생각합니다.

         

        백성이 없는 왕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처럼 혼자만이
        존재하는 세상,혼자만의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어쩌면 흘러나오는 문제들은 해결할 생각도 없이
        이미 흘러 나와버린 문제들에만 매달려 있는지도 모릅니다.

         
        과거에만 집착하는 사람,
        과거를 후회만 하고 있는 사람, 과거에 사로잡혀서 사는 사람은
        자기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미 지나간 일들을 자랑하거나 이미 지나간 일들에
        아쉬움만 갖는 사람은 늘 실패자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과거에 내가 어떠하든 과거에 대한 집착보다는 미래를 믿으며
        현실에 최선을 다하는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야만 합니다.

         

                                                            내 삶의 우선순위를
                                             제대로 정하면서 사는 지혜를 가졌으면 합니다. 

         
          생명의 마음  

                                                                                        -좋은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