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갑표 선생의 뉴라이트 역사 교과서 분석 연제 1탄

2010. 3. 1. 19:17일반/금융·경제·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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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갑표 선생의 뉴라이트 역사 교과서 분석 연제 1탄

뉴라이트 대안교과서‘한국근현대사’ 說 (1)

 

뉴라이트 대안교과서는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전공한 사람들이 집필한 것이 아니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철학 윤리 등등을 전공하거나 그 분야에 종사한 사람들이 우익의 입장과 견해로 종합한 것이기 때문에 나 한 사람이 정밀 분석하기가 어렵다.



더구나 나는 학자도 아니고 중등학교에서 수년간 역사를 가르치고 한때 KBS에서 교육방송을 한 경험이 있는 것이 전부다. 그래서 분석이라기보다 ‘민족적 양심’의 잣대로 이 교과서를 읽어가면서 說해보고자 한다.



내 입장과 견해는 우리 민족의 자주, 민주 통일에 기여하고자 하는 염원에 있으며 내가 설하기 전에 존경하는 전 한신대 김상일 교수님이 이 대안교과서에 대하여 어느 소 모임에서 간략히 말씀하신바가 있어 잠시 소개하고 그 후 계속하여 대안교과서를 읽어가며 설하고자 한다.



이론이나 분석이라기보다 상식선에서 얘기하려고 한다. 상식이 체계화 된 것이 이론이란 말이 있기는 하나 수필을 쓰듯 펼쳐 나가겠다.

 

뉴라이트 역사 교과서 분석방 http://cafe.daum.net/antimb/NOkl/8 



<말씀의 소개>



교과서 포럼<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약칭: 대안교과서)에 대한 공개 토론 자료를 요약한 것이다.



1. 펴낸 이유와 주동자들은 안병직의 제자들이 주로 참여했는데 2001년 1월 서울대 박효종(국민윤리학과) 이영훈(경제학과) 등이 주동이 되었다. 주동자들 중에는 한국 근현대사 연구 전문가가 거의 없으며 현행교과서를 좌파시각의 교과서로 규정하고 문제점을 바로 잡겠다는 명분을 세웠다. 2006년 11월 ‘대안교과서 시안’학술대회를 갖고 2008년 3월 24일 출판하였다. 



2. 역사를 움직이는 주인공은 누구인가?

* “대한민국의 건국은 역사적으로 발전해온 개화파에 의해 주도되었다”(148쪽)고 기술함으로써 ‘엘리뜨 중심사관’을 펴고 있다.

* 동학 농민군은 부적을 몸에 지니고 다닌 우민들이었다(43)는 등 의병투쟁을 격하시키고     소량으로 언급하였다.

* 5.16주도 세력은 조국근대화의 포부를 가진 엘리트들이라고 서술했다.



3. 이승만과 박정희를 위한 교과서인가?

* 이승만에 대하여 “대한민국의 기틀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로 올바로 잡는데 동시    대 어느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커다란 공훈을 하였다”(158)

* 박정희에 대하여 “그의 집권 기간에 한국 경제는 고도성장의 이륙을 달성했으며, 사회는    혁명에 가까운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 (186)



4. 개항이후 일본의 침략정책에 대하여

* 청일전쟁에 대하여 “침략‘이 아닌 ’진출‘이란 표현.

* 러일전쟁에 대하여- 러시아에 대해서는 ‘야심’이라고 하고 일본에 대해서는 ‘진출’이라 함(이는 후소샤 교과서 표현과 완전히 같음)

* 헤이그 밀사에 대하여 “일본이 강경책을 쓰게 한 빌미를 주었다”.

* 동학농민전쟁에 관하여 “복고적 개혁”, “배고파서 일으킨 운동”



5. ‘식민지 근대화’에 대하여

* 근대문명의 제도적 기초가 놓여졌다.

* 근대 문명의 학습기

* 수탈이 아닌 경제 성장기, 철도 도로 ,항만, 등과 건설 교육 위생, 의료 부분의 근대화가 됨. - 일본의 은덕의 결과임. 근대화=진보라는 등식.



6. 민족 운동에 대하여

* 소량으로 기술하고 있는 중에도 이승만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김구를 간략하게 기록 심지어“김구는 한국애국단을 조직하여 항일 테러 활동을 시작하였다.”고 기술 ‘의열투쟁’을 ‘테러’로 바꿈.

* 독립운동은 분열을 하다 좌초하고 만다고 기술

* 일본군 위안부에 대하여 강제 연행, 인신매매, 유괴가 아닌 ‘취업사기’로 묘사.



7 친일파에 대하여

* 일제의 차별을 벗어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

* 박정희는 군인이 되고픈 소박한 생각에서 출발하여 1940년 만주군관학교에 입학 1942년 졸업이라 함

* 전쟁 말기 한국인들은 자진해서 전쟁에 참가 황국신민이 된 영광을 스스로 누리려 했다고 함. 창씨개명도 대부분 자발적이었다고 함

8. 건국절 논란에 대하여

* 8.15를 건국절로 하자-1948년 8월 15일 정부수립에 근거하여, 반공과 시장경제만이 대한민국의 정통성이라 는데 근거하여

* ‘반공국시’와 ‘친일파 미화’에 근거한 건국절 개념 정립, 친북좌익의 척결의 수단이 건국절 논란의 발단.

* 이는 항일 투쟁을 전적으로 무시한 처사임.

* 결국 친일을 해도 빨갱이 마녀사냥만이 건국의 기준이라는 뜻. 그래서 친일파도 얼마든지 애국자 그리고 건국의 공헌자가 될 수 있다.

* 결론적으로 대한민국 건국은 조선총독부의 근대화 성과의 후과에 불과하다 함



9 4.19와 5.16에 대하여 / 북한사에 대하여

* 4.19를 ‘민주혁명’이라 하면서 동시에 5.16을 ‘근대화 혁명’이라고 함

* 시안(2006년 11월)에서는 4.19을 ‘의거’라 하고 5.16을 ‘혁명’이라 함.

* 5.18에 대해서는 유언비어와 지역감정의 작용이라 하면서도 지역감정의 원인에 대하여서는 일언번구도 없음

* 북한사는 대한민국사의 보론 정도이고 언젠가는 흡수 통일되어 사라져 버릴 역사로 기술, 실패한 역사, 막창에 도달한 역사, 공산혁명을 허구의 세계혁명이라 하여, 남북이 동시 가입되어 있는 마당에 북을 전혀 독립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음. 자본주의 대승리와 함께 흡수되고 말 정권이 북한이라고 함. 이승만의 멸공 통일의 화신임. 이상



위를 간략히 읽어보기만 해도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길이 없다. 앞으로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일제의 주구보다도 더한 철천지원수 일본 놈들 자신이 쓴 교과서 보다 한술 더 뜨고 있다. 앞으로 위의 문제점들을 같이 풀어나가기로 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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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행진과 야간 성화 (1950년대)

 

 

3.1민주올레 길

3월 1일 오후 1시, 중앙고 
-3.1 민주올레 출발 행사(올레 취지와 길 설명)

1.중앙고보 숙직실(3.1운동 도화선/현 계동 중앙고 내)

2.한용운 스님 옛집(천도교계.기독교계,불교계 3자 통합의 장소/현 계동43번지)

3.손병희 옛집터(민족대표 33인 첫 대면장소/현 가회동170번지)

4.최린 옛집터(3.1운동 실질적 실행자,경성부 재동(齋洞) 68번지-현 헌법재판소 내)

5.천도교 중앙총부 옛터(천도교계와 기독교계 3.1운동 일원화 장소/ 현 송현동34번지 덕성여중자리)

6.보성사 옛터(독립선언문 인쇄터, 수송동 44번지)

7.이종일 옛집터(독립선언문 배포터/현 경운동88번지 수운회관 앞)

8.명월관 분점 태화관 옛터(33인이 독립선언식을 거행한 장소/현 인사동194번지 태화빌딩 자리)

9.승동교회(삼일운동 학생지도부 구성과 역할 배분터/ 현 인사동137번지)

오후 3시, 탑골공원 - 2010 3.1 만주선언문 낭독 및 만세3창

10.탑골공원(3.1운동 발화지)

11.YMCA회관(3.1운동 학생지도부 구성 초기 모임)

12.3.1운동 당시 종로경찰서(김상옥 열사 의거터, 현 장안빌딩 자리)

13.경성지방법원 옛터(3.1운동 독립운동가 재판장소)

14.비각(3.1운동 시위장소)

15.대한문 앞(3.1운동 시위장소)

16.정동 미대사관저 앞(3.1운동 시위장소)

17.정동제일교회(2.27 기독교대표자 서명 장소/2.28 중등학교대표자모임 터)

18.배재고보 기숙사 터(3.5 학생연합시위 예비모임 터)

19.유관순 우물터(현 이화여고 내)

20.경교장(해방후 백범 김구 선생 거처, 암살 터)

21.딜큐샤(3.1 당시 UPI통신 서울특파원 알버트 테일러 거처.홍파동2-38번지)

22.독립문

23.서대문형무소

오후 5시, 서대문형무소 역사박물관 - 문화행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