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법귀일(萬法歸一)

2010. 3. 7. 20:34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선불교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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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법귀일(萬法歸一) 


만 가지 법이 하나로 돌아가는데,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


萬法歸一   一歸何處

만법귀일     일귀하처


- 『벽암록』

 

 

 

   조주종심(趙州從諗, 778~897) 선사는 고불(古佛)이라는 말을 듣는 천하의 명종장이다. 이 공안은 조주 스님의 말씀인데, 선요에서 고봉 스님이 여러 번 거론하여 우리나라에도 이 화두로 공부하는 선객들이 많다. 조주록, 조당집, 전등록, 벽암록 등에 모두 실려있는 유명한 화두다.


   한 스님이 조주 스님에게 물었다. “모든 것이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갑니까?”

   조주 스님이 대답하였다. “나는 청주에 있을 때 배적삼 하나를 만들었는데, 그 무게가 일곱 근이었다.”


   물론 이 대화는 독자가 스스로 이해할 일이다. 만법이란 한 마디로 모든 존재를 말한다. 일체의 사물이나 사건을 함께 일컫는다. 우주 삼라만상과 일체 만물과 삼라만상에서 벌어지는 일체 크고 작은 일들, 즉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서 날씨가 따뜻하여 온갖 새싹이 돋는 일과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는 일 등등 일체사가 다 포함된다.


   하나란 다름 아닌 마음을 일컫는다. 불교의 견해는 일체를 오직 마음이 만들었다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마음의 법을 심법이라 하여 소승이나 대승이나 선법이나 한결같이 이 마음을 근본으로 한다. 그러므로 하나로 돌아간다는 말은 마음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 하나인 ‘마음은 어디로 돌아가는가?’ 하는 질문이다.


   과거의 조사들이야 무어라고 했든지 처음부터 질문이 좀 그렇다. 틀렸다고 할 수 있다. 처음부터 잘못된 질문인데 옳은 답이 나올까? 평지에 풍파를 일으킨 세존의 49년 설법이나 일체 조사들이 뒤를 이어 중언부언하신 말씀이나 알고 보면 모두가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공안이나 화두가 이와 같은 법주에 들지는 않을까 잘 살펴야 할 일이다.

출처 : 무비 스님이 가려뽑은 명구 100선 ③  [무쇠소는 사자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소풍일기







좋은 인연 맺는 법  ..
살아가면서 우리는 많은 인연을 만나게 된다. 
좋은 인연을 만나게 되면 서로가 편안하고 유익하지만, 
나쁜 인연을 만나게 되면 서로간에 짜증과 분노가 치밀게 되고 
급기야는 서로가 파멸의 길로 치달을 수도 있다. 
부부간에도 악연이 만나게 되면 서로가 싸우고, 
미워하고, 원망하며 원수처럼 지내게 된다. 
반면에 선한 인연으로 만나 부부 연을 맺게 되면 
서로가 이해하고, 아껴주고, 사랑하며, 걱정해 주는 
다정한 사이가 되는 것이다.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남에게 이용만 당하고, 
사기를 당하고 피해를 보는 사람이 있다. 
이는 전생의 악연을 이 세상에서 
그와 같은 인연으로 다시 만난 것이다. 
인생은 너와 나와의 인연이다. 
선연이든지 악연이든지 
항시 서로가 만나고 헤어지고 하는 자체가 인생인 것이다. 
산다는 것은 인연을 맺는 것이다. 
부모, 애인, 아내, 자식, 친척, 친구, 스승, 제자, 선후배, 
이웃, 그 외에도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이 곧 그것이다. 
이와 같이 
많은 만남 중에서 진실한 만남은 그렇게 흔한 것이 아니다. 
평생 몇 번의 운명적인 만남을 가질 뿐이다. 
그렇다면 좋은 인연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첫째는 깊은 만남을 갖는 인연이 있다. 
혼과혼, 마음과 마음, 생명과 생명, 
인격과 인격이서로 포용하는 깊은 만남이 중요하다. 
일시적이고 단편적이고 피상적인 만남은 큰 의미가 없다. 
나와 부처님과의 만남은 깊은 만남이요, 
도반과 은사스님과의 만남 또한 깊은 만남이다. 
반면 길을 가다가 누가 방향을 묻는다든지 가게에서 물건을 사면서 
주인과 얼굴을 마주하는 식의 만남은 일시적인 만남이다. 
사람들은 흔히 이와 같은 일시적인 만남에 대해 
너무나 민감한 반응을 나타내는 경우를 종종 본다. 
예를 들어 남 앞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열심히 
화장을 하고, 좋은 옷을 입고, 머리를 손질하고, 
몸매를 가꾸는 등에 많은 신경을 쓰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행위에 몰두한다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둘째로는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인연이 있다. 
서로 만남으로써 자신도 진실해지고 상대방도 진실해져 
함께 빛과 힘을 얻는 경우이다. 
이러한 만남 속에는 진솔한 감격이 있고, 
정신적인 의지처가 있고, 삶의 보람이 있다. 
하지만 세상에는 서로를 증오하는 파괴적인 만남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 옛 속담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는 말도 있다. 
이렇듯 상대방의 잘못된 모습을 보고 
좋아하는 인연이 많다면 얼마나 불행한 만남인가? 
과연 내 주위에는 선한 인연이 많은가? 악한 인연이 많은가? 
깊이 생각해 보고 선한 인연이 많아지도록 노력해야겠다. 
셋째로는 행복한 인연이다. 
퇴계와 율곡의 만남, 부처님과 가섭의 만남, 나와 부처님과의 만남,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만남, 
괴테와 실러의 만남, 예수와 베드로의 만남. 
이러한 만남에는 영혼의 교류가 일어나고, 정신적인 충족감이 생기며, 종교의 혁명이 일어나고, 
학문과 예술의 꽃이 핀다.이것이 지극히 행복한 만남이다. 
이러한 인연이 인간의 정신을 새롭게 하고 생의차원을 더 높이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인생의 넓은 광장에서 될 수 있으면 
깊은 만남, 창조적인 만남, 행복한 만남이 많아지도록 노력해야겠다. 
"너와 나의 만남은 전생에 깊은 인연이 있었기에 
나의 운명에 큰 이로움을 주었고, 다시 또 이 세상에 태어난다 해도 
나는 꼭너와의 만남을 위해 기도하겠다."는 심정이 되어야 한다. 
너는 전생에서 나의 아내였던가? 애인이었던가? 
아들이었던가? 제자였던가? 친구였던가? 
이처럼 깊은 만남, 우리는 이러한 만남을 가져야 한다. 
만남 그리고 인연이란 말은 참으로 운치있는 말이다. 
너와 나와의 성실한 만남 속에서 인생의 행복함을 찾을 수 있다. 
나는 성실한 내가 되고, 너 역시 성실한 네가 되어 
성실한 너와 내가 성실한 자리에서 성실한 만남을 가질 때 
우리의 만남은 정말 깊고 행복하고 창조적인 만남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인연을 맺고 싶어 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간절한 소망인 것이다. 
배경/음악 : 산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