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을 외칠 만한 사람이 없구나

2010. 3. 19. 21:09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선불교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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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외칠 만한 사람이 없구나


말세에 이 슬픈 현상을 깊이 슬퍼하도다.

불법을 외칠 만한 사람이 없구나.

아직은 글 읽을 줄도 모르면서 강석에 앉고

일찍이 행각도 못했는데 법상에 앉네.

돈을 들고 절을 하는 모습은 마치 미친 개와 같고

속은 텅 비었는데 마음만 높은 것은 벙어리 염소와 같다.

뒷사람들에게 엎드려 권하노니

이러한 풍속 이제 그만 두어

오랫동안 지옥 고통 받을 일 면하기를 바라노라.


深嗟末法實悲傷  佛法無人得主張

심차말법실비상    불법무인득주장

未解讀文先坐講  不曾行脚便陞堂

미해독문선좌강    부증행각편승당

將錢討院如狂狗  空腹高心似啞羊

장전토원여광구    공복고심사아양

奉勸後賢休繼此  免敎地獄苦時長

봉권후현휴계차    면교지옥고시장


- 영지(靈芝)

 

 

   이 글은 영지원조(靈芝元照, 1048~1116) 율사가 진정한 주지 노릇에 힘쓰기[勉住持]를 바라면서 경계한 게송이다. 여기에서 주지란 요즘과 같은 의미의 주지가 아니다. 도덕에 안주[住]하여 교화하는 일을 잘 지켜나간다[持]는 뜻이다. 또 진실한 마음에 머물러서[住] 그것을 지켜 잃어버리지 않는다[持]는 뜻이다.


   불교의 말세적 현상을 개탄하는 말씀이다. 우선 불법을 제대로 주장할 사람이 없다. 경전을 강의하려면 먼저 경문을 잘 알아야 한다. 그런데 경문도 제대로 읽을 줄 모르면서 경을 강의하고 불교를 이야기 한다고들 한다. 보통의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또 법상에 올라 법을 거량하려면 오랫동안 행각을 하면서 총림을 두루 섭렵해서, 견문을 넓히고 지식도 많이 쌓고 무엇보다 안목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와 같은 경험은 전혀 없는데도 법상에 올라 별의별 법을 다 설한다. 심지어 사찰에서 소를 키워 장에다 소를 갖다 판 이야기까지 하면서 법문이라고 주장자를 구른다. 신문이나 주간지에서 읽은 이야기나 늘어놓으면서 할을 한다.


   눈이 어두운 사람들은 주지라는 소임만 보고 있으면 도가 있고 법이 있는 줄을 알고 껌벅 넘어간다. 그래서 스님들은 거기에 편승해서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모두들 돈을 싸들고 주지 한자리 맡으려고 야단들이다. 박이 터지게 싸우다가 세속의 법정 싸움으로까지 간다. 그것도 안 되면 스스로 절을 지어서라도 주지 노릇을 한다. 그래야 직성이 풀린다. 영지 스님 당시에 이렇게 미친 개처럼 날뛰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이 글은 강원에서 치문을 배울 때 다 들은 말이다.


   또 아무 것도 배운 것이 없으면서 마음만 높아서 불교에 대해서 무엇을 물으면 그만 벙어리 염소가 된다. 먹기는 잘 먹는데 소리를 못 낸다는 뜻이다. 설법하지 못하는 스님을 아양승(啞羊僧)이라고 한다. 후현들에게 엎드려 권하노니 제발 이런 풍속일랑 계승하지 말라. 부처님과 인연을 맺었다가 도는 이루지 못할망정 지옥에 가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능엄경에도 말세 중생들이 나의 옷을 빌려 입고 여래를 팔아서 의식주에 보태 쓴다는 말이 있다. 모두들 도적들이라고 하였다.   

출처 : 무비 스님이 가려뽑은 명구 100선 ③  [무쇠소는 사자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당근입니까? 달걀입니까? 커피입니까?



당근과 달걀 그리고 커피가 있습니다.
물이 담긴 세개의 냄비를 불위에 올려 놓습니다.

첫번째 냄비에 당근을
두번째 냄비에는 계란을 넣고
세번째 냄비에는 커피를 넣습니다.
이 3개의 냄비를 15분 동안 끓입니다.



이제 우리가 넣은 것들을 꺼내 봅시다.

당근은 들어갈 때 딱딱했지만 물컹물컹해졌고
계란은 들어가기 전에 부드러웠지만 단단해졌습니다.
그러나 커피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렸습니다
대신 물은 색을 갖게 되었고 좋은 향이 납니다.




삶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인생은 언제나 쉽지만은 않습니다.
인생이 언제나 편할순 없습니다.
때론 너무 힘들기까지 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사람들도 내가 바라는 것처럼 나를 대하지 않습니다.
열심히 일하지만 대가는 항상 작은 것 같습니다.

3개의 냄비를 생각해 보세요
끓는 물은 우리 인생의 고난과도 같습니다.




우리는 당근 처럼 될 수 있습니다.
자신감 넘치고 힘차게 들어가지만
나올 때는 물렁하고 유약해 집니다.
너무 힘들어 지치고 희망을 잃고 결국 포기합니다.
맞서 싸울 투지를 잃게 됩니다.
당근처럼 되지 마십시오.



우리는 달걀처럼 될 수도 있습니다.


시작할 땐 부드럽고 감성적이지만
결국 무뚝뚝하고 무감각해집니다.
서로를 헐뜯고 우리 자신도 미워하고
감정이 무딘 사람이 됩니다.
따뜻한 감정은 온 데 간 데 없고
결국 인생의 씁쓸함만이 남습니다.
달걀처럼 되지 마십시오.





그러나 우리는 커피처럼 될 수 있습니다.
물은 커피가루를 변화시키지 않습니다.
커피가루가 물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물은 커피로 인해 변화합니다.

보고..
향을 맡고..
마셔보세요...

뜨거울수록 맛은 더 좋아집니다.
우리는 커피같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겪는 시련을 통해
더 나아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새로운 것을 배웁니다.
새로운 지식, 새로운 기술, 새로운 능력...
우리는 경험 속에서 성장하는 것입니다.

더 좋은 환경과 성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 합니다.

< BR>


우리가 하는 것에 신념을 가지고
포기하지 않으며 끈기있게
계속 밀고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겪는 시련은
우리가 더 나아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때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당근입니까?
달걀입니까?
커피입니까?





그저, 비우고 고요히 살아가게나
캄캄한 밤 하늘의 별을 헤며
반딧불 벗삼아 막걸리 한 잔
쏘쩍새 울음소리 자장가 삼아
잠이 들어도 마음 편하면 그만이지.

가진 것 없는 사람이나
휘황찬란한 가진 것 많은 사람이나
옷입고, 잠자고, 깨고, 술 마시고,
하루 세끼 먹는 것도 마찬가지고
늙고 병들어 북망산 갈 때
빈 손 쥐고 가는 것도 똑 같지 않던가
우리가 백년을 살겠나 천년을 살겠나?




한푼이라도 더 가지려, 발버둥쳐 가져본들
한 치라도 더 높이 오르려,
안간힘을 써서 올라 본들
인생은 일장 춘몽
들여 마신 숨 마저도 다 내뱉지 못하고
눈 감고 가는 길 ···






마지막 입고 갈 수의에는 주머니도 없는데
그렇게 모두 버리고 갈 수 밖에 없는데
이름은 남지 않더라도 가는 길 뒤편에서
손가락질 하는 사람이나 없도록 해야지 않겠나?
허망한 욕심 모두 버리고

      



베풀고, 비우고, 양보하고, 덕을 쌓으며
그저, 고요하게 살다가
조용히 떠나 보세나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사랑을 베풀고 살아가기에.....

저 초록의 잎들의 움트는 소리를 들어 보라
지상에 이보다 더 아름다운 소리가 없으리
아~아름다운 봄이여~
어서 내 가슴에 안기렴-이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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