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일품) 진실한 도를 바르게 이해한 자의 지혜라면 방일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대부분 건성 건성으로 이해한 것에
불과하고 실제로 깨달아 느낄 수 있는 감각적인 이해는 얻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몸과 마음이 따로따로 움직이며 실없이 방일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 말에 반론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열심히 산다고...
그러나 그것은 대부분 세속적인 삶이요 노력이지 진실한 도는 아니다.
그것을 증명해 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즉 예쁜 여자가 지나가면
순간 눈이 따라가는 것과 좋은 차를 보면 타고 싶고, 좋은 집에서 살고
싶고 입에 맞는 음식을 원하고, 승복을 입었다고 하더라도 남보다 크
게 불사를 이루어 이름 내는 것을 원하여 경쟁하다시피 하고,,, 팔만
대장경을 법보로 모셔놓고도 국민을 위한 한글창제 500년이 넘도록
선학이란 미명으로 농인들 수화나 보디랭귀지에 불과한 선문답을 대
승으로 신봉하여 대장경판을 일반 신도들에게 빨래 판쯤으로 연상케
한 것이 그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이런 일들은 엄밀히 관심법으로 살펴보면 다 탐심이요 명리에서 비롯
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현실은 대승이란 이름으로 스스로의
무지와 모순을 변명하고 합리화하여 착각이란 타성에 깊이 물들어 궤
변과 회론을 신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실은 세간과 출세 간 모두가 불나방처럼 화려한 것에 매달려 있으므
로 진실한 도를 바르고 깊게 이해하여 지혜로서 도를 지켜 실행하며 방
일하지 않는 지혜롭고 현명한 자가 드물다는 것이다. 이것은 부처님이
예견하신 바와 같이 세월이 흐르면 차쯤 계율에 대한 방임, 수행 정진에
대한 방임으로 부처님이 가르치신 정법이 흐려질 것임을 예견 하신 바
와 같은 것이니 정법의 지혜를 유통시키고 배우며 방임하지 않아야 할
것이 불자의 본분이요 즐거움이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