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를 타고 소를 찾는구나/전강선사

2010. 10. 31. 18:25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선불교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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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요(逍遼)스님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자비하여 성동(聖童)이라고 고을 사람들한테 칭송을 받았다. 13세에 출가하여 부휴(浮休)대사 밑에서 일대시교(一代時敎)를 통달하고 수백 명의 학인 가운데 운곡(雲谷), 송월(松月)스님과 더불어 법문삼걸(法門三傑)이라고 칭호를 받았던 17세의 소년 강사 소요스님이 아무리 생각하여 보아도 부처님의 경전을 아는 것만으로는 도저히 생사대사(生死大事)를 마칠 것 같지 않았다.

   어느 날 묘향산에 계신 서산(西山)대사를 찾아가서 법을 가르쳐 줄 것을 청하니, 서산대사는 보자마자 법기(法器)인 줄 아시고 그날부터 시봉을 시키면서 <능엄경> 한 토씩을 매일 가르쳐 주셨다. 이미 경전을 통달한 강사인지라 <능엄경>을 모를 리 없지만 서산대사의 가르침이라 매일 배우다보니 3년이 다 지나갔다.

   소요스님이 생각하여 보니 한심하였다. 대선사요, 대도인이라 하여 찾아왔는데 법은 가르쳐 주지 않고 이렇게 다 알고 있는 능엄경만을 가르쳐 주니 화가 나는 것이다. 그러나 참고 계속 배워 가는데 소요스님이 잠깐 밖으로 나갔다가 들어오면 서산대사는 웬일인지 때묻은 작은 책을 보시다가는 곧 안주머니에 넣곤 하는데 이렇게 여러 번 계속되고 보니 소요스님은 그 작은 책에 대하여 매우 관심이 많았다.

   하루는 서산대사가 잠자는 틈을 타서 그 작은 책을 보려고 하니 서산대사는 깜짝 놀라 깨어나서 그 책을 더욱 소중히 감추는 것이다. 그러니 더욱 관심이 많아지고 또 무슨 책인지 점점 의심이 커졌던 것이다. 그러나 그 작은 책을 보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단속이 심하고 또 그냥 그대로 아무런 법도 얻지 못하였으니, 더욱 화가 나서 그곳을 떠나기로 결심하였다.

   그래서 소요스님은 서산대사에게 하직을 고하니 그때야 비로소 서산대사가 그렇게도 소중히 여기던 때와 콧물이 묻은 그 작은 책을 주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가려고 하거든 이 책이나 가지고 가게." 하셨다. 서산대사가 주신 책을 펴보니 게송이 있는데,

작래무영수(斫來無影樹)하여
초진수중구(燒盡水中구)로다
가소기우자(可笑騎牛者)여
기우갱멱우(騎牛更覓牛)로구나

그림자 없는 나무를 베어다가
물 가운데 거품을 태워 다할지니라.
가히 우습다 소 탄 자여
소를 타고 다시 소를 찾는구나.


   이 게송을 가지고 호남으로 내려가 20년간을 참구하였으나 깨닫지를 못하고 나이 40에 이르러 다시 묘향산에 돌아가서 서산대사를 뵈오니 감개가 무량하여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20년간을 하루도 잊어본 적이 없는 스승이 아니었던가. 서산대사께서 말씀하시기를

 

   "공부가 어떻게 되었느냐?"


   "떠날 때 주신 게송의 의지를 아직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서산대사께서 "가히 우습다 소 탄 자여, 소를 타고 다시 소를 찾는구나." 하시는 바람에 소요 스님은 언하에 확철대오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