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泉 喚院主 主應諾 師云 佛九十日 在利天 爲母說法 時優王 思佛請目連 以神通 三度攝諸匠人 往彼彫形佛形相 只彫得三十一相 唯有梵音相 彫不得 院主乃問 如何是梵音相 師云殺人
남전선사가 원주를 부르니 원주가 대답하였다.
남전선사가 말씀하였다.
“부처님이 90일 동안 도리천에 계시면서 어머니를 위하여 설법하셨다.
그 때에 우전왕이 부처님을 사모하였다. 목련존자를 청하여 신통으로
세 번이나 조각가를 데려와서 그곳에 가게 하여 부처님의 형상을 조성하였는데
다만 31상만 조성하고 오직 아름다운 음성의 상은 조각하지 못하였느니라.”
원주가 물었다.
“어떤 것이 아름다운 음성의 상입니까?”
남전선사가 말씀하였다.
“사람을 속이는구나.”
첫 불상 조성 내용으로 ‘법거량’ - 남전참묘 남전모란 등 공안 전해
해설 : 남전보원(南泉普願, 748~835) 선사는 마조도일 선사의 전법제자로서
속성은 왕(王)씨며 하남성 정주(鄭州) 신정(新鄭) 사람이다. 당나라 지덕 2년,
서기 757년에 대외산의 대혜(大慧)스님에게 수업(受業)하다가 30세에
숭악산에 가서 계를 받았다. 뒷날 마조 선사에게 입문하여 법을 전해 받고
정원(貞元)11년(795)에 지양(池陽)의 남전(南泉)에 선원을 짓고 30년 동안
산에서 내려가지 않으면서 조주종심(趙州從諶) 선사와 장사경잠(長沙景岑)
선사 등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냈다. 태화 8년(835) 12월 87세로 입적하였다.
선사는 특히 학인을 제접하는데 방편의 언구가 뛰어나서 남전참묘(南泉斬猫),
남전수고우(南泉水牛), 남전모란(南泉牧丹) 등의 공안이 전해진다.
여기 <직지>에 소개된 이야기는 불상이 맨 처음 만들어진 연기에 대한 내용을
들어 선법의 이치로 법을 거량한 것이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싯달타 태자를
낳은 어머니 마야부인은 7일 만에 돌아가셨다. 태자는 그 뒤 출가하여
깨달음을 성취한 후에 어머니를 위하여 도리천에 올라가 90일 동안 설법하고
계셨다. 우전국의 왕이 부처님을 그리워한 나머지 부처님과 똑같은 불상을
전단향 나무로 조성하게 하여 항상 부처님을 대신하여 참배하며 뵙고 싶은
마음을 달래었다고 한다. 이것이 최초의 불상이라고 전한다.
그리고 32상중에는 범음심원상(梵音深遠相)이라는 것이 있다.
맑고 청아한 아름다운 음성이 깊고 멀리까지 들린다는 것이다.
형상을 아무리 잘 조각한다 하더라도 음성만은 조각할 수가 없다.
남전선사가 그것을 새삼 조각하지 못하였다고 거론한 뜻이 무엇이었을까?
원주 스님이 “어떤 것이 아름다운 음성의 상입니까?”라고 물었는데
남전선사는 “사람을 속이는구나”라고 하였다.
부처님의 음성이란 부처님의 설법을 의미한다. 부처님 일생동안의
설법이란 곧 진리의 가르침이다. 그런데 진리라는 것을 실로 음성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일까? 이 문제를 따져본다면 남전선사의 말씀에
짐작이 가는 바가 있으리라.
<금강경>에 “수보리야, 설법이란 법을 가히 설할 수 없는 것이다.
그 이름이 설법이다(須菩提 說法者 無法可說 是名說法)”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 내용에 대하여 착어를 하였다.
옛 사람이 말씀하시기를 “49년간 수많은 공을 쌓은 것이여,
거북의 털과 토끼의 뿔이 허공에 가득 찼구나. 한 겨울에 눈이 펑펑
쏟아져서 시뻘건 화로의 뜨거운 열기 속에 떨어졌구나
(四十九年積累功 龜毛兎角滿虛空 一冬臘雪垂垂下 落在烘爐烈焰中)”
라고 하였다.
모습이나 설법이나 역사적인 사실을 떠나서 부처님을 이해할 길은 없다.
그러나 그와 같은 현상에만 부처님이 존재한다고 알면 그 또한 삿된
도를 행하는 것이다. 실로 죽은 부처만 이해한 것이다. 생명이 없는
형해뿐인 부처를 보는 것이다. 부처님은 이와 같은 사실들을 이해시키려고
이 땅에 온 것이 아니다. 그토록 고생스럽게 인도의 뜨거운 길을 걸으면서
49년간 설법을 하신 것이 아니다. 사람 사람들의 진실한 생명의 부처를
이해시키려고 이 땅에 와서 그 많은 설법으로 우리들의 눈을 열게 하신 것이다.
무비스님 / 동국역경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