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과의 대담/법정스님

2010. 11. 14. 12:19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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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선(禪)의 요체(要諦)를 한마디로 표현해 주시겠습니까

 

종정: 요즘 추우니까 핫옷 입었제?

<주(註)..추우면 핫옷(누비솜옷)입듯이 있는 그대로의 현실과 현상의 정체를 자각할 수 있는 개안(開眼)이 곧 선(禪)이라는 뜻이라고 법정스님은 풀이했다>

 

법정: 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합장) 이건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신문사 측의 주문이기도한데 요즘 신문을 비롯하여 TV등 언론에 대해서 스님께서 느끼고 계신 바를 말씀해 달라는군요. 그리고 스님의 언론관(言論觀), 특히 신문에 대해서 듣고 싶데요.

 

종정: 요즘 신문을 비롯하여 TV도 안보고 라디오도 안 듣습니다. 그러니 언론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지요. 언론은 사회의 공기(公器)라고 봅니다. 그러니 불편부당, 어느 쪽에도 치우치거나 편파 됨이 없어야합니다. 어떤 언론이든지 그 근본정신이 불편부당하여 어느 기관이나 어떤 단체의 이용물이 되어서는 절대 안될 것입니다. 아무리 어렵고 곤란한 환경에 처해있다 하더라도 춘추필봉(春秋筆鋒) 그대로 세워나가야만 사회에 대해서 공헌을 하고 공기의 기능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법정: 어떤 시대, 어떤 사회에서나 인간은 이상과 현실의 간격에 부닥쳤을 때 회의와 좌절감을 맛보게 됩니다. 특히 꿈과 미래상을 설정하여 자신의 잠재력을 추구하려는 젊은 대학생들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 스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종정: 대학생은 학문하는 사람 아닙니까? 학문의 목적은 인격양성에 있지 기술습득에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요즘실태를 보면 인격양성보다도 기술습득에 치우쳐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물질문명이 발달된 나머지 대학이 앞으로의 직업을 준비를 위해 있는 것같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학은 어디까지나 학문을 통해 원만한 인격을 도야하는 진리 탐구의 전당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하는데 완성된 인격이야말로 영원한 예술이 아니겠습니까

 

법정: 요즘 대학생들의 사고(思考)와 행동양식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그리고 청년기의 인격형성과 자아(自我)확립을 위해서는 어떻게 했으면 좋을까요?

 

종정: 방금도 이야기했듯이 진리를 탐구하는 학생이 되어야지 직업을 위한 학생이어서는 안되겠습니다.

 

법정: 물론 밥부터 먹고 봐야하는 것 아닙니까? 그렇지만 밥을 먹는 사람이 되어야지 밥에 먹히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요즘 보면 밥에 먹히는 사람이 허다한데 이것도 인간자신의 존엄성을 상실하였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러니 인간의 존엄성부터 복구시키는 학문이 되어야합니다. 그래야 서로가 돕고 의지하는 인간다운 사회를 이룰 수 있습니다.

 

법정: 스님께서는 이 기회에 오늘의 한국 불교교단에 대해서도 한 말씀 해주셔야 하겠습니다.

 

종정: 내가 항상 걱정하는 것은 우리 불교 교단이 일반사회보다 여러 가지로 낙후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만큼 무엇보다도 승려들의 자질 향상을 위한 도제교육(徒弟敎育)이 시급합니다. 이를 위해 종단에서는 온갖 방법으로 총력을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수행자들에게 수행이 없으면 늘 시비(是非)가 끊이지 않게 됩니다. 종단구성원 전체가 대오각성해서 수도인의 본래 사명에 충실할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봅니다.

 

법정: 스님의 일상적인 생활신조라고 할까 좌우명(座右銘)같은 걸 이번 기회에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종정: 그건 비밀인데. . .

법정: 비밀이시더라도 조금 봉지를 터 보시지요 기왕 내친 걸음이시니 (웃음)

 

종정: 내가 장 (항상) 생각하는 새말뚝이 있지. 그것이 아직도 박혀있거든.

『영원한 진리를 위해 일체를 희생한다』이것이 내 생활의 근본자세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더러 책도 읽어보고 했는데 그래도 불교가 가장 수승(殊勝)<특히 뛰어남>합니다. 불교보다 나은 진리가 있다면 나는 언제든지 불교를 버릴 용의가 있습니다. 나는 진리를 위해서 불교를 택한 것이지 불교를 위해 진리를 택하지는 않았습니다.

 

법정: 스님의 형성에 영향을 끼친 書冊과 존경하는 인물을 말씀해 주실까요?

 

 종정: 내가 주로 선(禪)을 하기 때문에 제일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되는 것이 『조주록(趙州錄)』과 『운문록(雲門錄)』입니다. 그리고 역사상에 위대하고 훌륭한 인물도 많은데 내가 볼 땐 참으로 자기회복의 길을 개발하여 우리에게 소개해 준 인물은 석가모니부처님과 중국의 대조혜능(大祖慧能)스님입니다. 이 두 분을 존경하는 인물로 들겠습니다.

 

법정: 그리고 스님께서는 어린이들을 아주 좋아하시지요? 그전에 스님 방에는 천진하고 귀여운 어린애의 달력 그림이 붙어 있던데요.

 

종정: 어린이는 내 친구지. 그애들은 거짓을 모르니까. 그래 어떤때는 어린애들이 오면 춤도 추게하고 노래도 부르게하지요. 이게 바로 천진불(天眞佛)의 유희삼매(遊戱三昧)아니겠어요.

 

법정: 사람은 누구나 한번은 죽습니다. 많은 생물 가운데서도 유달리 인간만이 자기는 언젠가 죽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죽을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는 모든 종교의 중요한 과제로 되어 있습니다. 큰스님의 생사관을 듣고싶은데요.

 

종정: 모를 때는 생사(生死)지만 알고 보면 생사란 본래 없습니다. 눈을 감고 있을 때는 캄캄하다가도 눈을 뜨면 온천지가 광명인 것과 같이. 생사이대로가 열반(涅槃), 즉 자유요 해탈입니다. 일체 만법(萬法)이 해탈 아닌 것이 없습니다. 방편으로 볼 때는 윤회를 말하지만 윤회도 눈감고 하는 소리지요. 눈을 뜨고 보면 자유가 있을 뿐 윤회는 없습니다. 생사 밖에서 해탈을 구한다고 하면 그 사람은 눈을 감은 사람이지요. 그러니 행복을 딴 데서 구하지 말고 이 현실을 바로만 보면 지상(地上)이 곧 극락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육신은 옷에 비유할 수 있어요. 옷이 낡아 그 옷을 벗었다고 해서 사람이 죽은 것이 아니잖아요.

 

법정: 스님, 또 한해가 동텃습니다. 새해에 우리 국민들에게 한 말씀 하셔야겠지요. 이 세상 살아가는데 길잡이가 될 시원한 법음(法音)을 들려주셨으면 합니다.

 

종정: 내가 볼때는 전생도 없고 내생도 없고 장 금생 뿐입니다. 새해라는 것도 달력이 바뀐다고 그러는 모양인데,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새해, 지난해 구별할 것 없이 중생이 본래 부처임을 자각하자는 것입니다. 우리들 전체가 그대로 광명입니다. 우리 불교용어로는 이것을 본지풍광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모든 대상을 부처님으로, 부모로, 스승으로 섬기자는 것입니다.

 

법정: 우리 모두가 새해에는 더욱더 귀가 밝고 눈이 맑아져 찬란한 광명속에서 본지풍광을 활짝 드러내어 날마다 좋은 날 이루기를 빌면서 이만 마치겠습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청산행(靑山行)/이기철


 

손 흔들고 떠나갈 미련은 없다
며칠째 청산(靑山)에 와 발을 푸니  
흐리던 산길이 잘 보인다.
상수리 열매를 주우며 인가(人家)를 내려다보고
쓰다 둔 편지 구절과 버린 칫솔을 생각한다.


남방(南方)으로 가다 길을 놓치고
두어 번 허우적거리는 여울물
산 아래는 때까치들이 몰려와
모든 야성(野性)을 버리고 들 가운데 순결해진다.


길을 가다가 자주 뒤를 돌아보게 하는
서른 번 다져두고 서른 번 포기했던 관습(慣習)들.
서쪽 마을을 바라보면 나무들의 잔 숨결처럼
가늘게 흩어지는 저녁연기가
한 가정의 고민(苦悶)의 양식으로 피어오르고


생목(生木) 울타리엔 들거미줄
맨살 비비는 돌들과 함께 누워
실로 이 세상을 앓아 보지 않은 것들과 함께

잠들고 싶다.

 

〈1978〉

 

 

이기철 시집"청산행"[민음사]에서

 

 

 

산은 그 겹겹이 집이다. 산만한 집이 없다. 집이란 아득한 품이다.

또한 나만의 공간에 있다

그러한 산의 집에는 수천 수만 세월의 기억과 삶이 놓여져 있다.

청산은 우리들 가슴에 그 기억의 힘을 갖게 해 준다.

그 청산에 의지하여 한 삶의 생을 살아왔던 사람들,

순결하다못해 청산의 생목과 같이 베어지면 베어지는 아픔 까지도

그대로 껴앉고 세상을 살았던 순수의 빛만 간직한 사람들,

그 청산행은 세상을 얻는 또 다른 통찰의 관문이다.

 

산의 집은 단순한 집이 아니라 선행의 마음을 우러나게 만드는 집이다

그 선한 마음의 집에 들어서는 듯 한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