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뜩한 개신교의 ‘공격적 몸짓’
|
|
요즘 정부와 개신교가 불교를 향해 드러내는 공격적 몸짓은 섬뜩하다. 주류 개신교도들의 행동을 통제할 수 있는 건 결국 이 정권 사람들밖에 없다. | | |
|
기사입력시간 [176호] 2011.02.07 10:35:57 조회수 6996 |
고종석 (저널리스트) | |
영국인 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은 <축(軸)의 시대>(정영목 옮김, 교양인 펴냄)라는 책의 전반부에서, 고대 이스라엘인들이 섬기던 신이 여럿에서 하나로 줄어드는 과정을 기술한다. 본디 전사신(戰士神)이었을 뿐인 야훼는 바알이나 아나트 등 고대 이스라엘인들이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함께 섬기던 여러 신 가운데 하나였으나, 엘리야를 비롯한 소수 예언자들에게 힘입어 만사를 관장하는 유일신이 되었다.
<구약성서>를 읽은 이들에게는 새로울 것 없는 얘기다. 그러나 암스트롱이 새삼 일깨우는 것이 하나 있다. 야훼가 이스라엘인들의 유일신이 되고, 더 나아가 예수와 사도 파울로스에 힘입어 오늘날 세계 최대 종교의 유일신이 된 것이 순전히 우연이었다는 사실이다. <축의 시대>(본디 제목은 <거대한 변화: 석가, 소크라테스, 공자, 예레미야 시대의 세계>)는 독일인 철학자 카를 야스퍼스가 ‘축의 시대’라고 부른 인류 정신의 혁명기를 다룬 교양 역사서일 뿐, 종교 비판서는 아니다. 그러나 이 책은 저자의 기술적 엄정함에 얹혀, 오늘날 유대교도와 기독교도가 섬기는 하느님의 출신 성분이 고대 서남아시아 신화 속 잡신(雜神)일 뿐임을 드러낸다.
신앙 공동체 바깥에까지 자신들의 믿음 강요해서야
그것이 사실이라고 해서 유대·기독교인들이 죄다 개종을 하거나 무신론자가 될 필요는 없겠다. 유대교와 기독교, 그리고 이것들과 한 뿌리인 이슬람교 등이 상정하는 ‘인격신’이 존재할 가능성을 대다수 일급 과학자들은 부정하고 있지만, 이 종교들은 이미 수천 년간 인류 태반의 마음을 지배해왔다. 또 이런 역사와 상관없이 인류의 마음 깊은 곳에는 종교적 심성이라 부를 만한 기질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 앞에서 경건해질 때, 심지어 나뭇잎 하나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가벼운 상실감을 느낄 때, 우리는 부분적으로 신앙인이다.
비록 인격신을 믿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주를 지배하는 원리나 질서 같은 것을 믿는다면, 그 또한 넓은 의미의 신앙이라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기실 우리들 대부분은 ‘믿음의 사람들’인 셈이다. 그 믿음에 기대어 우리는 정념이나 슬픔이나 분노 같은 마음의 요동을 다스리고, 연민이나 사랑이나 존중 같은 마음의 고귀함을 키운다. 그것이, 신이 존재하든 그렇지 않든, 종교가 인류에게 베푸는 혜택이다.
그런 한편 인격신, 특히 유일신을 섬기는 종교들의 공격성은 인류사에 커다란 상처를 남겼다. 야훼가 본디 싸움의 신이어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기독교의 역사는 피 냄새로 비릿하다. 기독교도들은 십자군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중세 말기의 동지중해 연안을 피로 물들였고, 신구교로 갈린 뒤에는 같은 하느님을 믿는 형제들의 시신으로 산을 만들었으며, 종교재판이라는 허울로 애매한 사람들의 숨을 수없이 끊었다. 기독교 세계와 그 바깥 세계의, 또는 기독교 세계 내부의 전쟁들은, 그 본질적 동인(動因)이 정치적·경제적 이해관계였다고 하더라도, 흔히 종교적 신념을 통해 발화하거나 확산되었다.
나 말고 다른 신은 믿지 말라, 엄명한 야훼의 질투에 기독교 신자들은 너무 깊이 감염되었다. 문제는 이들이 야훼에 대한 믿음을 자신들의 신앙 공동체 바깥에까지 끊임없이 강요한다는 점이다. 그런 공격적 ‘선교’는 세속 사회의 분쟁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몇 해 전에도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교도를 개신교로 개종시키려다 이역만에서 형제를 잃은 한국 교회의 예를 보았다.
서울시장 시절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하겠다’는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이명박씨가 대통령이 된 뒤, 우리 사회에서 종교적 갈등이 눈에 띄게 깊어졌다. 정부와 개신교가 특히 불교를 향해 드러내는 공격적 몸짓은 섬뜩하다. 여당 지도자의 ‘좌파 주지’ 발언이나 서울 봉은사의 ‘땅 밟기’ 사건, 불교 관련 예산 삭감 따위는 상황의 일단일 뿐이다. 정치권력과 개신교 주류가 이 기회에 불교를 아예 뿌리 뽑겠다고 나선 모양새다. 정말 이들은 이 땅에서 피비린내 나는 종교전쟁이라도 치르고 싶은 것인가? 주류 개신교도들의 몰상식한 행동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이들이 ‘형제’라고 여기는 이 정권 사람들밖에 없다. 종교의 정치적 중립만이 아니라 정치의 종교적 중립까지 요구되는 상황이다. 대통령 말대로, ‘국격’도 좀 생각하며 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