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4. 4. 17:47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당신이 주인공입니다
‘경전에서 찾아낸 행복한 인생 이야기’를 듣는 시간
‘울림이 있는 유쾌한 배움의 시간’
불교TV방송시간:수(14:30) / 일(22:00, 23:00)
하하하하하하~ 하~ 하~ 그러니까 평상시에 복덕을 많이 짓고 살면은 빨리 가면 좋은 거고. 천상에 갈 날이 땅겨지니까. 하하~ 근데 복덕을 못 쌓고 살면은 빨리 가는 게 두렵겠죠. 하하하하하~
시간이 빨~리 가기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어요. 선방에 있을 때, 참선할 때, ‘아, 빨리 좀 지나갔으면.’하하하하하하하~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는 데가 바로, 감방하고, 선방하고. 하하하~ 하하하~ 하~ 저도 평상시에는 빨리 지나가기를 안 바라는데, 좌선하고 앉아있을 땐 빨리 빨리 지나가면 좋죠. 하하하~ 하~
에피소드 무소유, 무집착의 표본 마하깟사빠 존자
episode 1
마하깟사빠 존자는 두타제일, 두타라는 것은 의식주를 최소화한다고 그랬죠. 그래서 먹는 음식이나, 또는 착용하는 옷, 거주 공간, 이런 것을 아주 정말 육신을 지탱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니까, 복덕을 세이브 해 두는 거죠. 적금 든다 그러나요. 하하하하~ 마하깟사빠 장로 정도 되면은 아라한과도 성취했고, 또 멸진정, 7일 동안에 멸진정에도 자주 들어가고 이랬기 때문에 엄청난 복덕을 쌓아둔 분인데, 그걸 스스로 누리지를 않았죠. 스스로 누리지를 않고, 그 대신 탁발을 나가서 밥을 얻어먹음으로써 그 공양을 올리는 사람에게 복덕이 가게끔. 아~주 그 대단한 분이죠. 그래서 마하깟사빠 존자가 후손이 번창한 거예요. 지금 참선하는 분들이 전~부 마하깟사빠 존자의 후손입니다. 하~ 선방에 있는 분들이. 하하하~
음덕이라 그래요. 그것을 음덕. 그러니까는 후손이 번창할려면은 음덕을 많이 쌓아야 돼요. 자기가 쌓은 복덕을 자기가 안 누리고, 그냥 이렇게 남에게 회향하고 또 음밀하게 남들한테 공덕을 쌓을 기회를 주고. 이게 바로 음덕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면은 음덕을 쌓아야 돼요. 음덕. 양덕은 드러내고 하는 덕이라서 그 공덕을 내가 받죠. 드러내니까. ‘아, 저 사람이 좋은 일 했대.’ ‘저 사람이 올해 보시 많이 했대.’이러면 그 사람이 칭찬과 영예, 이런 걸 받게 되잖아요. 근데 안 드러내고 무주상으로 해 버리면은 누가한지 모르잖아요. 누가한지 모르니까 자기가 그 복덕을 안 누리게 돼요. 근데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왜,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하하~ 알게 되죠. 그러니까 자손들이 누리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마하깟사빠 존자는 본인은 그런 멸진정이라든가, 또 두타행, 또 그런 아~주 엄청난 수행을 많이 해서 엄청난 그 수행 공덕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는 아무 것도 안 누리고. 두타행을 했으니까. 그것을 밑으로, 또 다른 사람에게 회향을 했죠. 계속. 그래서 자손이 이렇게 번창을 하게 됐는데. 심지어는 인간들은 물론이고, 천신, 신들의 왕이라고 하는 제석천왕도 이 마하깟사빠 존자에게 공양을 올리기를 엄청 바랬어요.
한번은 5백 명이나 되는 천녀들이 마하깟사빠 존자가 멸진정에서 나왔을 때 공양을 올리려고 갔습니다. 찬스를 딱 노리고 있다가. ‘기회는 찬스다.’해 가지고. 멸진정에서 나오셨을 때 찾아갔어요. 그랬더니 깟사빠 존자가 딱 보자마자 “No, Thank you.” 하하하~ 하~ 하~ “나는 부유하고 이렇게 너희들처럼.” 이미 천녀하면은 상당한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는 건데, “당신 같은 존재들에게 나는 공양을 안 받습니다.”공양도 아무한테나 안 받아요. 그러니까. 상대를 가려가면서, 하하~ “잘 사는 사람, 이미 어느 정도의 복덕을 누리는 사람한테 안 받고, 기왕이면은 이 멸진정에서 나온 공양 기회를 아주 가난하고 못 사는 사람한테 나는 주고 싶다.” 이래 가지고 돌려보냅니다. 그래 가지고 5백 명의 천녀가 천상으로 돌아갔죠. 돌아가서 구시렁거리고 있었죠. 하하~ ‘우리가 말이야 이렇게 할라 그랬는데~’ 하하~ ‘야~ 이거 뭐 공덕도 아무나 쌓는 게 아니다.’막 이러면서. ‘사람 차별한다.’뭐~ 이랬겠죠.
그 소리를 제석천왕이 들었어요. 듣고서 “무슨 일이냐?” 했더니, “여차저차해서 저차저차 합니다.”하~ 이래 가지고, “아~ 이놈들아, 머리를 써야지, 머리를.”그러면서 제석천왕이 내려왔어요. 변신을 해가지고. 아~주 못사는 노파로. 하하하~ 머리를 쓴 거예요. 왜냐하면, 영화스런 모습으로 나타나면 마하깟사빠 존자는 안 받으니까. 아예, 베 짜는 노인인데, 막 다~ 쭈글쭈글하고, 옷도 허름~하고, 집도 다 찌그러져 가는 그런 집에서 베 짜는 노인으로 변신을 해가지고, 깟사빠 존자가 공양 나오는 길목에서 그러고 있었어요.
깟사빠 존자가 공양을 받으러 가다보니까는 다~ 허물어져 가는 집에, 허허~ 노인네 둘이 있는데, 흐~ 그냥 뭐 눈도 잘 안 보이는 듯이 침침~하게 그러고 허름한 옷을 입고 있는 걸 보고, ‘아~ 이 사람들에게 공양 복덕을 줘야 되겠다.’하고서 갑니다. 그 집 앞으로 가니까, 발우를 받아들죠. 노인네가. 발우를 받아들고 공양을 올려요. 그래 가지고 공양을 받아가지고 보니까, ‘이렇게 허름한 집에서 이렇게 향기로운 카레가!’하하하~ 카레라이스를 공양을 올렸는데, 카레향이 얼마나 좋은지 막 온~ 성이 진동할 정도라. 그래서 ‘야~ 이것은, 분명히 이것은 삭까천왕이다.’ 하고 그때서야 마하깟사빠 존자가 알아챈 거예요. 그래서 “당신 누구요?” 그랬더니, 그때서야 “제가 사실 삭까천왕입니다.”33천의 왕, 천신들의 왕인 제석천왕이죠.
그래서 “아니, 당신이 삭까천왕이면은 하늘의 천상의 통치자로서 영광을 누리는데, 왜 이런 가난한 사람이 공덕을 지을 기회를 빼앗습니까?” “음~ 만약에 오늘 어떤 가난한 사람이 나에게 공양을 올렸다면 사령관이나 재정관의 지위를 얻을 수 있었을 텐데.” 요러는 거예요. 공양 한 끼만 잘 올리면 사령관이나 재정관 정도의 지위를 얻을 수 있었을 텐데. 그때 삭까천왕이 하는 말이 “저보다 더 가난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러는 거예요. 허허~ 그래서 “아니, 당신은 천상의 통치자인데, 신들 중에서도 왕인데, 무슨 당신이 어째서 가난합니까?”그랬더니 하는 소리가, 삭까천왕이 본래 삭까천왕이 되기 전에 인간의 몸으로 있었어요. 근데 그 당시에는 부처님이나 부처님의 제자들이 없었을 때입니다. 그래서 그 당시 인간의 몸으로 있으면서 도로를 놔주고, 공회당을 설치하고, 오고가는 사람들을 위해서 다리를 놔주고, 이런 여러~ 가지 공적인 복덕을 많이 지었어요. 그러고 절대 화를 내지 않고, 어른들을 잘 공경하고. 그래 가지고 삭까천왕이 천상의 천신의 왕이 되게 된 공덕을 많~이 지어서 왕이 된 거예요. 그런데 그 당시에는 어쨌든 자기가 다른 공덕은 많이 지었지만, 부처님이나 부처님의 제자가 없었기 때문에 부처님이나 부처님의 제자에게 공양 올릴 기회가 없었던 거예요. 그래, 그 공덕은 못 지은 거예요.
그래서 자기가 명색이 천상의 왕인데, 지금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출현하시자 세 명의 천신이 부처님께 공양올린 공덕으로 천상에 태어난 거예요. 근데 자기가 누리는 공덕보다 훨~씬 큰 영화를 누리고 사는 거예요. 임금보다. 기분 나쁘죠. 내가 천상의 왕인데, 나보다 더한 으리으리한 집에서 나보다 더한 많은 종들을 거느리고, 나보다 더한 영광을 누리고 세 명의 천신이 사는데. 그 연유가 뭐냐면은, 그 세 명의 천신은 부처님께 공양을 올린 공덕으로 그렇게 자기보다 훨씬 더 수승한 영광을 누리고 사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왜 밭에다 씨를 뿌려도 기름진 밭에다 뿌리면은 수확이 풍성하죠. 중간 밭에다 뿌리면 중간이고, 자갈밭에 뿌리면 나는 둥 마는 둥이잖아요. 그러니까 똑같은 공덕을 지어도, 보시를 해도 어디다 하는냐에 따라서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겁니다. 무조건 그냥 아무나 뭐. 물론 도와주는 건 좋은 거죠. 누군가 어려운 사람을 돕고, 공덕을 짓는 건 좋은 거지만, 그것을 잘 선택할 줄 알아야 된다. 부처님도 그 말씀 하셨어요. 마치 기름진 밭과 중간 밭과 자갈밭에 씨를 뿌렸을 때 수확이 다르듯이, 보시공덕도 역시 어디다가, 누구에게 했느냐에 따라서 완전히 달라진다는 거죠.
그래서 이렇게 부처님하고, 부처님 제자한테 공덕을 드렸기 때문에 명색이 임금인 자기보다 더한 영광을 누리고 있으니까, 그래서 ‘나도 가난한 사람입니다.’하하하~ 하하~
그래 가지고 그런 말을 해요. “그 말이 사실이라 해도 다음부터는 이렇게 속여서 공양을 올리지 마십시오.” 하고 깟사빠 존자가 얘기하죠.
그때 삭까천왕이 묻습니다. “제가 속여서 공양을 올렸는데, 속여서 올린 공양은 공덕이 안 됩니까?”이렇게 물어보는 거예요. 그때 “그래도 공덕은 됩니다.”하고 얘기했더니 하하~ 너무 좋아가지고, 하하~ 춤을 추면서 자기 본래 공중으로 날아가면서 기쁨을 노래했어요. “오, 공양이여, 깟사빠 장로님께 올린 최상의 공양이여!”이렇게 노래를 부르면서 공중을 날아갔다.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부처님께서 사원에 계시면서 그 소리를 들었어요. 제석천왕이 하늘로 날아가면서 천상세계로 돌아가면서 “오, 공양이여, 깟사빠 장로님께 올린 최상의 공양이여!”하고 세 번이나 막 기쁨을, 벅차오르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는데, 음악으로 한번 표현해 볼까요? 그 벅차오르는 기쁨을 어떻게 표현하죠? 하하~ (기타연주)♩~♪~♬~
오~ 하하하하하~ 조금 미흡한 거 같기는 하지만. 어쨌든 하하하하하~ 없는 거 보다는 훨씬 좋았다고. 하하하하~
그래서 그 기쁨을 세 번을 노래하면서 “오, 공양이여, 깟사빠 장로님께 올린 최상의 공양이여!” 그말을 듣고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비구들이여, 기쁨을 노래하면서 하늘을 날아가는 삭까천왕을 보라.” 이렇게 얘기를 했어요. 이래서 비구들 중에 상당수는 천안통이 열렸기 때문에 볼 수가 있죠. 그래서 참, 요새 이런 말을 하면은 실감이 안 나죠. 무슨 하늘을 날아가는 삭까천왕? 이게 뭐 천안통이 열려야 이게 보이는데. 이렇게 해서 상상은 할 수 있잖아요. 우리가 그죠. 환타지로. 그러고 영화의 한장면처럼. 좍~ 날아가는 모습을 우리가 연상을 하면서.
그러자 비구들이 “무슨 일로 그럽니까?”그러자 부처님께서 “그는 나의 아들 깟사빠에게 신분을 속이고 공양을 올리고서 기쁨을 노래하며 공중으로 날아가고 있다. 그러니까 “부처님이시여, 그가 어떻게 장로에게 공양을 올릴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까?”이렇게 비구들이 묻자 부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셔요.
비구들이여,
천신이나 인간이나
나의 아들과 같이 항상 평온하고
주의 깊게 깨어있고
탁발만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비구들을
존경하고 공양올리고 싶어 한다.
비구가 탁발을 나간다.
다른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고
오직 자신의 몸을 지탱하기 위해서
천신들은 그런 비구를 존경한다.
예, 이래 가지고 탁발하고, 계율을 잘 지키고, 깨어있는 그런 비구들은 인간, 사람들은 물론이고 천신들도 존경한다는 거죠. 그래서 전에도 얘기한 것처럼,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종교가 있다. 하나는 신을 섬기는 종교, 또 하나는 신이 섬기는 종교. 잘 알아듣네. 이제. 하하하~ 이 불교의 특색은 ‘신이 섬기는 종교다.’ 그러니까 여래의 아들, 깟사빠 존자 같은 경지에 이르면은 인간은 물론이고 신들조차도 역시 존경하고 공양을 올리고 싶어 한다. 속여서라도 공양을 올리고, 공덕을 쌓고 싶어 하죠. 그래서 신들도 역시 신들의 영광을 지속해서 누리기 위해서는 공덕을 또 지어야 되니까. 거기도 또 영광에 또 차이가 있으니까. 그래서 부처님께서 이런 감흥을 노래하였다 그래요. 다함께 한번 게송을 해볼까요.
비구가 탁발을 나간다.
다른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고
오직 자신의 몸을 지탱하기 위해서
천신들은 그런 비구를 존경한다.
예, ‘항상 평온하고 주의 깊게 깨어있는 사람을.’요 대목이 맨 뒤에 붙어있네요. 그래서 평온하고 주의 깊게 깨어있다. 그래서 ‘비구들이여, 삭까천왕은 계행의 향기를 지니고 있는 나의 아들에게 다가와 공양 올린다.’부처님은 이 아라한들을 아들이라고 불렀어요. “나의 아들.” 그래서“나의 아들 마하깟사빠와 같은 경지에 이르면”이런 식으로. 그래서 초기불전에 보면은 부처님께서는 아라한과에 이른 비구, 비구니들을 아들, 딸로. 이렇게, 나의 딸, 비구니는. 비구는 나의 아들, 이렇게 불렀습니다. 근데 나중에 법화경 같은 대승경전에 보면은 아라한과에 이른 이는 물론이고, 모~든 중생을 다 나의 아들, 딸이다. 이렇게 호명하고 계시죠. 그래서 거기 보면은 마지막으로 또 게송을 읊으셨는데, 고것도 같이 한번 해 볼까요.
따가라향과 전단향이
아무리 짙은들
하늘까지 이르지 못하지만
계율을 갖춘 이의 향기는
하늘까지 퍼져간다.
그래서 세속의 향기는 바람을 거슬리지 못하죠. 또 하늘까지 올라가지 못하지만. 이 계율의 향기. 우리가 예불드릴 때 오분향례를 하잖아요. 계향, 정향, 혜향, 해탈향, 해탈지견향. 요 다섯 가지의 향기는 바람을 거스르는 향기입니다. 바람을 거스르고 하늘까지 올라가는 향기. 그래서 계율을 갖춘 이의 향기, 선정을 닦는 이의 향기, 선정을 잘~ 닦으면은 사람이 안정되고 차분해지잖아요. 그 다음에 깨어있고. 그러면 거기 향기가 나는 거예요. 그 다음에 혜향. 지혜를 갖춘 이의 향기. 아~주 지혜로운 현자들. 이런 분들은 옆에만 가도 벌써 지혜의 냄새가 나잖아요. 지혜의 향기. 하하~ 그게 혜향입니다. 그리고 해탈한 분들은 벌써 해탈향기가 나고. 해탈지견이라는 것은 자기가 해탈했음을 알고 있는 것. 그것이 해탈지견이예요. 그런 분들까지 가면 해탈지견의 향기가 나죠.
그래서 천녀들 5백 명이 내려오고, 또 삭까천왕도 공양을 올리려 내려오고, 그래서 이 천상까지도 울려 퍼지는 향기, 야~ 그거를 우리가 닦아야 돼요.
지혜의 향은 정말 그 세상의 모든, 이런 일에 막힘이 없는 그런 지혜. 걸림이 없는. 그런. 우리가 왜 세상을 오래 살은 지혜로운 현자들도 그런 향기가 있잖아요. 어떤 코로 맡는 향기가 아닌 마음으로 맡는 향기. 그죠. 그 다음에 사람마다 또 향이 있습니다. 다 코로 맡는 향도 다 다르고. 하하하하~ 하~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평상시에 계행을 갖추고, 그 다음에 선정을 닦고, 지혜를 닦으면은 향기로운 사람이 되죠. 향기로운 사람은 천상에서도 알아본다고 그러죠.
또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이 깟사빠 장로는 그런 그 공덕을 많이 회향을 했기 때문에, 한번은 그런 일화도 있어요. 부처님께서 제자들하고 같이 탁발을 가다가 8십 명의 대 장로와 5백 명의 비구들이 탁발하러 성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래요. 부처님께서 직접. 근데 5백 명의 젊은이들이 축제기간이라서 과자바구니를 어깨에 메고 성에서 나와 공원으로 놀러가고 있었대요. 서로 이렇게 지나친 거죠. 부처님은 제자들하고 같이 탁발하러 성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고, 그 젊은이들은 5백 명이 빵바구니를 짊어지고 공원으로 나가고 있었고, 성에서. 근데 비구들이 탁발하러 가면 벌써 모습이 다 보이고, 5백 명이나 되니까. 근데도 이 젊은이들이 자기네들이 먹을라고 준비한 거니까, 안 주고. 하하~ 하~ 지나간 거예요. 그냥. 부처님을 지나쳐서. 부처님과 그 뒤에 8십 명의 대 장로들. 흐~ 얼마나 멋있었겠어요. 부처님이 좍~ 가시고, 그 뒤에 아라한과를 얻은 8십 명의 대 장로들이 쫙~ 따르고. 고 뒤에 또 5백 명의 비구들이 좍~ 따라서 줄지어서 가는 모습. 영화의 한 장면이죠.
그와 반대로 빵바구니를 짊어진 5백 명의 젊은이들이 공원으로 놀러가는 모습. 알록달록하게. 쫙~ 지나가는데, 아무도 쳐다보지 않고 그냥 서로 지나친 거죠. 지나쳤는데 부처님이, 지나가자마자 비구들에게 그랬어요.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빵이 먹고 싶지 않은가?”하하~ 이랬어요. 그러니까 “부처님, 빵이 어디 있는데요?”그랬더니, “방금 전에 5백 명의 젊은이들이 빵바구니를 메고 지나갔지 않는가?” “그러기는 했지만 다 가버렸는데요?” 그랬더니, “음~ 잠시 앉아서 기다려보자, 우리가. 그러면 오늘 우리가 그 빵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하고 나무 밑에서 앉아 계셨어요.
근데 그 젊은이들이 그렇게 오다가, 마하깟사빠 장로가 맨~ 뒤에 따라 왔던 거예요. 그 무리에. 마하깟사빠 장로를 보자마자 갑자기 알 수 없는 기쁨이 넘쳐흘렀다 그래요. 막~ 희열이. 보자마자. 야~ 이 얼마나 참 대단한 공덕이 있으면은 보자마자 희열이 넘쳐 가지고. 빵바구니를 내려놓고 장로에게 삼배를 드렸어요. 땅바닥에서. 5백 명이. 하~ 기쁨이 막 넘쳐흐르니까. 삼배를 올리고, 과자바구니를 올리면서, 이 빵 과자. “이 빵 과자를 좀 드십시오.”하고 드린 거예요. 그러자 깟사빠 장로가 “여기 비구들과 함께 부처님께서 앉아계시는데 먼저 부처님과 비구들에게 공양을 올리도록 하십시오.” 이랬죠. 그랬더니 탁~ 줄줄이 가서 부처님하고 비구들에게 공양을 올리고 또 깟사빠 장로에게 공양을 올린 거예요. 그러고 장로를 바라보면서 한쪽에 서 있다가 장로가 빵 과자를 다 드시자 물까지 갖다드린 거예요.
그러자 비구들이 불쾌하다는 듯이 말했다. “젊은이들이 편견으로 한쪽으로 치우쳐서 공양을 올리는구나. 그들은 부처님과 대 장로들에게는 올리지도 않고 마하깟사빠 장로를 보자 바구니를 들고 가서 그에게만 과자와 물을 올리다니.”하고, 하하~
부처님도 계시고 그 당시에 사리뿟뜨라, 마하목갈라나를 비롯한 십대제자들, 8십 명의 대 장로들, 다 계신데 그건 지나치고 마하깟사빠 장로에게만. 그게 바로 왜 그러느냐면 마하깟사빠 장로가 음덕을 많이 쌓아서 그래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본인은 엄청난 절제된 생활을 했고, 그러면서도 또 멸진정이라든가, 이런 수행은 엄청나게 많이 했고. 수행공덕은 많이 지었는데 자기 스스로 그걸 누리지를 않으니까, 그게 쌓여가는 거예요. 그러면 그런 사람을 보면은 자기도 모르게 기쁨이 쏟고, 자기도 모르게 뭔가 주고 싶은 거예요. 막. 있은 거를 다 막 내주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서. 그래, 후손이 번창하게 된다고 그랬잖아요. 하하하~ 하~ 그래서 그런 말을 하니까 부처님께서 그 말을 듣고, 또 이런 말씀하셨어요.
비구들이여,
나의 아들 마하깟사빠 비구는
신들과 인간들이 모두 사랑하고
기꺼이 네 가지 필수품을 제공한다.
계행과 지혜를 갖추고
법에 머물며
진리를 깨닫고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사람
사람들이 모두 그를 좋아한다.
예, 그러니깐 뭐 천신과 인간들이 모두 마하깟사빠 장로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 예. 같이 해볼까요.
계행과 지혜를 갖추고
법에 머물며
진리를 깨닫고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사람
사람들이 모두 그를 좋아한다.
예, 이래서 심지어는 부처님보다도 더 이렇게 공양을 올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물론 이것은 단편적인 일화에 불과하지만 어쨌든 신들도, 또 사람들도 마하깟사빠 장로에게 공양 올리는 것을 즐거워하고 깟사빠 장로를 존경했다. 그런 의미에서 마하깟사빠 장로가 지금까지도 모든 수행자들의 표상이 되어있죠. 심지어는 중국이나 우리나라의 선방 같은 데 일부에서도 선방 안에다가 마하깟사빠 장로 벽화 이런 걸 걸어놓은 데가 있습니다. 중국에 가도 있고.
그래서 참선에서 부처님으로부터 가장 먼저 선법을 전수 받은 이가 바로 마하깟사빠 장로고, 그만큼 수행에 철저했고, 또 자기가 지은 그런 수행 공덕이나 이런 것들을 가난한 이들에게 회향하기를 즐겨했고, 또 자기 자신은 두타제일의 제자로 진짜 의식주를 아주 최소화해서 살았고. 그러니깐 뭐 본보기가 완전히 되는 거죠.
깟사빠 장로는 이미 의식주에 대한 콤플렉스를 완전 소멸하신 분이예요. 출가하기 전부터 최고의 부잣집에서 최상의 옷과 최상의 음식을 먹고 살았기 때문에 의식주에 대한 콤플렉스가 없습니다. 하하하하~ 우리가 뭔가에 열중하고 뭔가 자~꾸 좋은 거, 좋은 거, 더 나은 걸 할라 그러는 것은 그 만큼 그 분야에 콤플렉스가 있다는 거예요. 예. 자동차 한 대 사고, 더 좋은 차, 더 좋은 차. 막 자꾸. 하하~ 집도 하나. 예를 들어서 뭐 20평짜리, 30평짜리, 뭐 사는데 지장 없으면 되는데, 자~꾸 더 큰 집, 더 큰 집 이렇게. 그게 바로 그 분야에 콤플렉스가 있다는 소리예요.
그래서 마하깟사빠 장로야말로 의식주에 대한 콤플렉스가 완전히 떨어진, 그런 분이다. 예, 그래서 그렇게 될려면 콤플렉스를 떼어야 돼요. 하하하~ 하하하하~
그러니까는 일반적인 세속생활을 하면서는 사실 좀 어려워요. 그래서 깟사빠 장로는 무소유의 표본이라고 하는데. 근데 무소유라는 것은 출가자에게는 어느 정도 가능한 얘기가 되겠지만은 재가자들한테는 쉽지 않죠. 그래서 재가자들에게는 제가 무소유보다는 묘소유를 권장해드려요.
소유의 형태에 세 가지 형태가 있어요.
하나는 착소유. 애착으로 소유하는 거. 집착으로.
두 번째는 무소유.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는 거.
세 번째는 묘소유. 묘하게 소유하는 거. 하하하하~ 착소유의 반대죠. 그러니까.
착소유라는 것은 내 꺼, 내 꺼. 애착으로 소유하는 거고. 묘소유는 소유하되 소유당하지 않는 거. 사람들이 사실 소유한다는 게 소유당하는 거잖아요. 그만큼, 거기에 대해서. 애착을 하게 되니까. 그런데 묘소유는 금강경에 나오는 ‘응무소주 이생기심’의 경지죠. 그러니까는 진공은 묘유다. 이래서 참다운 공은 텅 비어서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텅 비었기 때문에 무엇으로든 채울 수 있는 거. 그게 바로 묘소유죠. 그러나 묘소유는 소유하되 애착을 하지 않기 때문에 관리자의 입장에서 살아야 돼요. 그럴려면은.
우리가 이 몸뚱이에 대해서도 관리자로. 이게 내 몸뚱이가 아니라 관리를 맡은 몸뚱이. 하하하~ 가족에 대해서도 내 가족이 아니고 관리를 맡은 가족. 통장도 내 통장이 아니고 관리를 맡은 통장. 집도 내 집이 아니라 관리를 맡은 집. 법당도 내 법당이 아니고 내가 관리를 맡은 법당.
관리인의 시각으로 사는 거. 이게 바로 묘소유입니다. 소유자의 시각이 아니고 관리자의 시각. 내가 만약에 법당을 관리자의 시각으로 살면은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관리를 해야 되죠. 청소도 해야 되고, 뭐 불이 나가면 불도 갈아 끼워야 되고, 아침, 저녁으로 향도 올려야 되고. 그렇게 관리를 맡고 살다가 연이 다해서 여기를 떠나게 되었을 때, 여기에 더 이상 애착을 안 하고 떠날 수가 있죠.
근데 이게 ‘내 꺼다.’ 라고 생각하고 살면은, 누가, “떠나라.” 그러면 “못 떠나.” 하하~ 죽으면 죽었지 못 떠나. 하하하~ 죽어서도 못 떠나는 거죠. 죽어서도 귀신이 여기 와 가지고 영단에 머물고 막,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게 관리자의 시선에서 살아야 완전연소가 가능하지, 소유자의 시선으로 살면은 절대 완전연소가 안 됩니다. 머물게 돼요. 어느 사람에, 어느 돈에, 집에, 예금통장에.
그래서 이 마하깟사빠 존자는 말 그대로 무소유, 무집착의 본보기다. 정말 그 수행자에게는 표상 같은. 그런 분이고. 거기에 비유하면은 저는 부끄럽죠. 아, 가진 게 점점 늘어나고. 하하하~ 처음에는 걸망 하나밖에 없었는데. 자꾸 주거하다보니까 이거 필요하고 저거 필요하고. 뭐 사는 건 별로 없는데, 또 신도님들이 갖다 주니까. 또 자꾸 쌓여가고. 자꾸 이런 마하깟사빠 존자의 일화를 보니까는 야~ 정말 맞아. 부럽다. 이렇게 생각이 될 정도예요.
어쨌든 재가자들에게는 무소유보다는 묘소유를 권장하고 싶죠. 그래서 소유하되 소유당하지 않는. 소유자가 아니라 관리자의 그런 시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그게 지혜롭고 아주 정말 모범이 될 수 있는 그런 소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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