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부처님 같이(Buddha Sakyamuni)!!~

2011. 6. 6. 11:17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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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부처님 같이(Buddha Sakyamuni)!!~ >>

 

 

 

불자님들

내일은 부처님 오신 날입니다.

 

오늘은 인류의 등불이신 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심을 봉축하오며,

아울러

우리도 부처님같이 살아가는 길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 부처님께서는 2500여 년 전 인도 카필라국의 왕자로

태어났습니다.

 

부처님은 부귀와 영화를 버리고 생사문제를 해결하고

오직 중생의 행복을 위해 출가를 하였습니다. 오랜 고행과 수행 끝에

위없는 깨달음을 여신 부처님은 48년 동안 고통의 바다에 해매는

수많은 중생들에게 참된 행복의 길, 해탈의 길을 알려주시고

열반에 드셨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도 이렇게 성스럽고 위대한 부처님처럼 살아가기

위해서 부처님께서 우리 중생에 보이신 모범이 되신 세 가지 사례를

통하여 “부처님 삶의 모습”에 대하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 부처님(Buddha)의 삶의 모습 (세 가지 단면)

 

(1) 악성 피부 병자를 손수 씻기시다.

 

한 때 사밧티의 한 젊은이(팃사)가 출가, 수행 중 악성 피부병을 앓고,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피고 름으로 헛간에 홀로 죽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냄새가 얼마나 지독한지 아무도 병을 앓고 있는 그 젊은 수행자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친히 물을 데워서 비구의 몸을 씻기고, 가사를 벗겨 손수 세탁하시고, 말리셨다. 그리고 햇볕으로 옮겨 목욕시키고, 몸을 닦아내고 가사를 입히시었다.

 

● 『오래지 않아 이 몸 흙바닥에 버려지고 마음 또한 어디론지 사라져

버리리. 그 때 덧없는 이 몸은 실로 썩은 나무토막보다 더 소용없으리.』

<법구경 - 41>

이렇게 팃사 비구의 고요한 죽음 앞에서 무상(無常)법을 설하셨습니다.

 

 

[교훈1] 이렇게 부처님(Buddha)께서는 먼저 행동하시고 뒤에 설하십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떠합니까?

일본의 동북부의 대지진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불쌍하게 죽는 큰

참상을 겪고 있는데 어떤 목회자는 하느님을 믿지 않은 죄라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보면서도, 가슴으로 행동으로 자비실천을

하기보다, 머리를 굴리고 냉소적인 입장이나 방관자적인 입장에서

서 있는 것은 아닐까요?

 

 

(2) 농부에게 먼저 밥을 공급하시다.

 

한 때 알라위 지방의 가난한 농부가 부처님을 찾아갔는데(30 요자나), 마침 부처님께서 대중공양 받으시고, 침묵하시고 계셨다.

그 농부는 잃어버린 소를 찾아 헤매다, 겨우 찾아 놓고 허기진 몸으로 법회로 달려온 것이었다.

부처님께서 ‘저 농부에게 먼저 밥을 주라’고 하셨다.

그리고 대중을 향하여 法을 설하셨다.

 

『 배고픔은 으뜸가는 질병.

오온은 으뜸가는 괴로움.

지혜로운 이는 이 같은 진실을 알아 으뜸가는 행복, 열반을 이룬다.』

<법구경 - 203>

 

[교훈2] 배고픈 농부에게 밥을 주는 것이 말없는 설법이다.

 

위에서 부처님께서 법을 설하기에 앞서 배고픈 농부에게 밥을 주셔서 주린 배를 달래게 했습니다. 그리고 법을 설한 것입니다.

설법은 현재의 문제를 해결한 과정입니다.

법(法)은 추상적 이론이 아닙니다.

법(法)은 구체적인 문제해결의 방법론입니다.

법(法)을 통하여 현재(現在)의 문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입니다.

 

● 부처님은 보편적인 법칙인 연기법(緣起法)을 깨닫고, 그가 자각한 내용을 사람들에게 설(設)하였지만, 설법의 방법이 처음부터 체계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장소에 따라 경우에 따라 또한 그때그때의 사정에 따라 연기(緣起)나 무아(無我), 무상(無常) 등의 가르침을 설하였던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자각한 법(法)은 보편적인 진리(眞理) 그 자체였지만, 그것이 문자나 언어로 나타날 때에는 생노병사(生老病死)의 괴로움에 시달리고 있는 개개의 인간 자신의 지극히 구체적인 것이 되었던 것입니다.”

 

 

(3) 대중 앞에 무릎 꿇고 참회하시다.

 

한 때 사밧티 동쪽 근교 Migaramata 강당에서 안거(安居)가 끝나는 보름 밤에 5백 명의 대중들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제일 먼저 부처님께서 대중 앞에 나가 무릎 꿇고, 두 손을 합장한 채 높이 들고 외치셨습니다.

『 대중이여, 나는 이제 참회하노니, 대중들은 내 행위와 내 언어에서 무엇인가 비난할 만한 것을 보고, 듣고, 또는 의심하는 생각을 내지 않았던가?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나를 가엾이 여겨 부디 지적해 주오. 죄를 알면 마땅히 그 죄를 제거 하리다.』

이에 모든 대중들은 이구동성으로 부처님께서 어떠한 행위와 언어에서도 또 어떠한 생각에서도 비난받을 만한 아무런 것이 없었다고 말하였다.

그 다음 대중들이 차례로 부처님처럼 참회를 하였다.

<雜阿含經 45. 15>

 

[교훈3] 무아(無我)의 실천은 자자(自恣)에서 부터

- 수행(修行)은 이 교만심을 소멸시켜 가는 과정이다.-

 

아상(我相)인 아만심과 교만심을 버려야 무아(無我)를 체득하게 됩니다.

위 내용이 바로 자자(自恣=스스로 대중 앞에서 참회하는 것)의 시초 인 것입니다.

● 깨달음을 가로막는 최대의 장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교만심(我相)입니다. 즉 아상(我相)인 것입니다.

수행(修行)은 이 교만심을 소멸시켜 가는 과정인 것입니다.

 

3000배를 하는 이유도 바로 이 교만심을 소멸하는 과정입니다.

자자(自恣)란 이 아상(我相)을 버리게 하는 수행으로

대중 앞에서 “자기 참회”를 하는 것을 말합니다.

 

◇ 위와 같이 부처님은 먼저 행동을 하시고 법을 설하십니다.

또한 중생의 고통을 먼저 해결해주시고 그 과정에서 법을 설하십니다.

그리고 스스로 무아의 완전한 실천을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부처님의 모습은 우리 인류의 영원한 모범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부처님같이 열심히 살아갈 때

우리는 깨달음을 실현(實現)하는 것이며,

이것이 부처님과 함께 살고, 부처님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부처님같이(Buddha Sakyamuni)” 사는 것을

우리 삶의 지표(指標)나 수행(修行)의 등불로 정합니다.

 

 

◇ 그렇습니다.

불교(佛敎)가 불교(佛敎)인 까닭!

부처님이 부처님이신 까닭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법을 설하기에 앞서 먼저 실천합니다.

대중을 위해 먼저 봉사합니다.

 

깨달음의 내용을 설하기에 앞서

먼저 중생들의 고통의 내용을 다 들어주십니다.

 

그리고 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 줍니다.

그리고 평생 쉬지 않고 수행정진 합니다.

 

아상(我相)을 완전히 멸해서 무아(無我)가 될 때까지

수행하고 정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중 앞에서 자신의 말과 행동과 생각을 점검 받습니다.

 

◇ 부처님은 지구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현이십니다.

 

부처님은 많은 사람들의 행복과 이익을 위하여

평생을 봉사하시다가 가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도 부처님같이 살기를 맹세합니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우리 모두 함께 다짐합시다.

 

“ 우리도 부처님 같이”

“ 우리도 부처님 같이”

“ 우리도 부처님같이(Buddha Sakyamuni)!!”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