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혜종고 선사의 죽비이야기

2011. 7. 15. 20:55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선불교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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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혜종고 선사의 죽비 이야기>

 

나는 방장실(方丈室)에서 늘 선객(禪客)들에게 묻는다.
“죽비(竹篦)라고 부르면 사물을 따라가고, 죽비라고 부르지 않으면 사물을 무시한다.

말을 해도 안되고, 말을 하지 않아도 안되고, 생각을 해도 안되고, 헤아려 보아도 안되고,

소매를 떨치고 곧장 가 버려도 안되고, 어떻게 하든지 안된다.”

 

그대들이 곧 죽비를 빼앗아 버리면, 나는 우선 그대들이 죽비를 빼앗도록 내버려 둔다.

내가 주먹이라고 부르면 사물을 따라가고, 주먹이라고 부르지 않으면 사물을 무시한다고

하면, 그대들이 또 어떻게 빼앗겠느냐? 다시 그대들이 “스님 내려놓으십시오.” 하고 말한다면,

 나는 우선 내려 놓는다.

내가 기둥라고 부르면 사물을 따라가고, 기둥라고 부르지 않으면 사물을 무시한다고 하면,

그대들은 또 어떻게 빼앗겠는가?

내가 산하대지(山河大地)라고 부르면 사물을 따라가고, 산하대지라고 부르지 않으면 사물을

무시한다고 하면, 그대들이 또 어떻게 빼앗겠는가?

 

주봉(舟峯)이라는 장로(長老)가 있는데 이렇게 말했다.
“제가 스님의 죽비 말씀을 보니, 마치 죄인의 재산을 모조리 기록하여 몰수하고는

다시 그에게 재물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말했다.
“그대의 비유가 지극히 묘하구나. 나는 참으로 그대에게 재물을 내놓으라고 요구한다.

그대가 내놓을 방도가 없다면, 곧장 죽음의 길로 가야만 한다. 물로 뛰어 들든지 불로 달려

들든지 하여 목숨을 서슴없이 버려야 비로소 죽을 수 있고, 죽어 버리면 도리어 서서히

다시 살아난다.”

그대들을 보살이라 부르면 좋아하고 그대들을 도적놈이라 부르면 싫어하지만,

그대들은 여전히 다만 이전의 그 사람일 뿐이다. 그러므로 옛 사람은 말했다.

“절벽에 매달려 손을 놓아 버려야, 스스로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다.

죽은 뒤에 다시 소생한다면, 그대를 속일 수가 없게 된다.”
여기에 이르러야 비로소 나의 죽비 이야기에 계합할 것이다.

 

 

有箇舟峰長老云 : ‘某看和尙竹篦子話, 如籍沒卻人家財産了, 更要人納物事.’

妙喜曰 : ‘你譬喩得極妙. 我眞箇要你納物事. 你無從所出, 便須討死路去也. 或投河赴火,

 拚得命方始死得, 死了卻緩緩地再活起來.’ 喚你作菩薩便歡喜, 喚你作賊漢便惡發,

依前只是舊時人. 所以古人道 : ‘懸崖撒手, 自肯承當. 絶後再甦, 欺君不得.’ 到這裏,

始契得竹篦子話.” 學人麤走大步, 便把一句子禪要祗對人, 且不是這箇道理.

 所以妙喜室中常問禪和子 : ‘喚作竹篦則觸, 不喚作竹篦則背. 不得下語, 不得無語,

不得思量, 不得卜度, 不得拂袖便行, 一切總不得.’ 你便奪卻竹篦, 我且許你奪卻.

我喚作拳頭則觸, 不喚作拳頭則背, 你又如何奪? 更饒你道箇‘請和尙放下著’, 我且放下著.

我喚作露柱則觸, 不喚作露柱則背, 你又如何奪? 我喚作山河大地則觸,

不喚作山河大地則背, 你又如何奪?


 

- 無事人

 


능소화 연가 / 이해인

이렇게 바람 많이 부는 날은
당신이 보고 싶어
내 마음이 흔들립니다.

옆에 있는 나무들에게
실례가 되는 줄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가지를 뻗은 그리움이
자꾸자꾸 올라갑니다.

저를 다스릴 힘도
당신이 주실 줄 믿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내게 주는
찬미의 말보다
침묵 속에도 불타는
당신의 그 눈길 하나가
나에겐 기도입니다.

전 생애를 건 사랑입니다.

 

 

 

Stradivarius / Kurt Bes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