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는 닦을 필요 없다/마조어록

2011. 7. 24. 10:40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선불교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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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조어록』에서

도는 닦을 필요가 없다.

 

 


도 닦을 필요 없다. 다만 더럽히지만 말라.
어떤 것이 더럽히는 것인가?
분별하는 마음으로써 조작하고 추구하는 것들이 바로 더럽히는 것이다.

 

示衆云 道不用脩 但莫汙染 何爲汙染 但有生死心 造作趨向 皆是汙染

 

즉시 도를 알고자 하는가?  평상심(平常心)이 바로 도이다.
무엇을 일러 평상심이라 하는가?
조작하지 않고,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으며, 취하거나 버리지도 않고,

끊어짐이 있다거나 끊어짐이 없다고 헤아리지 않으며, 범부도 아니고

성인도 아닌 것이 바로 평상심이다.
경전에 말하기를, 「범부의 행위도 아니고 성인의 행위도 아닌 것이

바로 보살의 행위이다.」라고 하였다.

 

若欲直會其道 平常心是道 何謂平常心 無造作 無是非 無取捨 無斷常

無凡無聖 經云 非凡夫行 非聖賢行 是菩薩行

 

다만 지금 가고․머물고․앉고․누우며 때에 따라 사물을 대함이 모두 도이다.
왜냐하면 도는 곧 법계(法界)인데, 온갖 묘한 작용이 모두 법계를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무엇을 일러 마음의 문이라

말하고 무엇을 일러 꺼지지 않는 등불이라 말하겠는가?

 

只如今行住坐臥 應機接物 盡是道 道卽是法界 乃至河沙玅用

不出法界 若不然者 云何言心地法門 云何言無盡燈

 

모든 것은 전부 마음이다.
모든 이름은 전부 마음의 이름이다.
온갖 것들이 모두 마음으로부터 생겨나니 마음이 만물의 근본이다.
경전에, 「마음을 알아 근원에 통달하니 그 때문에 사문(沙門)이라고 한다.」

라고 하였다.  따라서 이름도 같고 뜻도 같고 모든 것들이 전부 같아서

순수한 하나이고 잡스러움이 없다.

 

一切法 皆是心法 一切名 皆是心名 萬法皆從心生 心爲萬法之根本

經云 識心達本源 故號爲沙門 名等義等 一切諸法皆等 純一無雜

 

만약 교문(敎門) 속에서도 언제나 자재(自在)할 수 있다면, 법계를 세우면

모두 법계 아님이 없고, 진여(眞如)를 세우면 모두 진여 아님이 없고,

이치를 세우면 모든 법이 이치 아님이 없고, 사실을 세우면 모든 법이

사실 아님이 없다.
하나를 들면 천 가지가 따라오니, 이치와 사실이 서로 다르지 않다.
모두가 오묘한 작용이고 다시 무슨 특별한 원리는 없다.
모두가 마음의 작용에서 말미암는다.
비유해서 말하면, 달그림자는 여럿이 있으나 달은 하나뿐이며,

샘은 여럿이 있으나 물은 하나뿐이며, 삼라만상은 다양하나 허공은

하나뿐이며, 도리를 말하는 것은 다양하나 막힘없는 지혜는 하나뿐임과 같다.

 

若於敎門中 得隨時自在 建立法界 盡是法界 若立眞如 盡是眞如

若立理 一切法盡是理 若立事 一切法盡是事 擧一千從 理事無別

盡是玅用 更無別理 皆由心之迴轉 譬如月影有若干 眞月無若干

諸源水有若干 水性無若干 森羅萬象有若干 虛空無若干

 說道理有若干 無礙慧無若干

 

여러 가지가 성립되지만 모두가 한 마음으로부터 말미암는 것이다.
세울 수도 있고 없앨 수도 있는 것이 모두 오묘한 작용이며 모두 자신의 일이다.
진리를 떠나서는 설 곳이 없으니 서는 곳이 바로 진리이며,

모두가 자신의 본바탕이다.  만약 그렇지 않은 자라면, 또 어떤 사람인가?

 

種種成立 皆由一心也 建立亦得 掃蕩亦得 盡是玅用 盡是自家

非離眞而有立處 立處卽眞 盡是自家體 若不然者 更是何人

 

모든 것이 전부 불법(佛法)이니, 모든 것은 곧 해탈(解脫)이다.
해탈이란 바로 진여(眞如)이니, 모든 것은 진여를 벗어나지 않는다.
가고 머물고 앉고 눕는 것이 모두 생각으로는 헤아려 볼 수 없는 작용이며,

때를 기다려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경전에서는, 「곳곳이 바로 부처 있는 곳이다.」라고 하였다.

 

一切法皆是佛法 諸法卽是解脫 解脫者卽是眞如 諸法不出於眞如

行住坐臥 悉是不思議用 不待時節 經云 在在處處 則爲有佛

 


 

        가죽나무 / 도종환
  
             나는 내가 부족한 나무라는 걸 안다
             내 딴에는 곧게 자란다 생각했지만
             어떤 가지는 구부러졌고
             어떤 줄기는 비비 꼬여 있는 걸 안다
    그래서 대들보로 쓰일 수도 없고 좋은 재목이 될 수 없다는 걸 안다 다만 보잘것 없는 꽃이 피어도 그 꽃 보며 기뻐하는 사람 있으면 나도 기쁘고 내 그늘에 날개를 쉬러 오는 새 한마리 있으면 편안한 자리를 내주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내게 너무 많은 걸 요구하는 사람에게 그들의 요구를 다 채워줄 수 없어 기대에 못 미치는 나무라고 돌아서서 비웃는 소리 들려도 조용히 웃는다

     

    이 숲의 다른 나무들에 비해 볼품이 없는 나무라는 걸 내가 오래전부터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늘 한 가운데를 두팔로 헤치며 우렁차게 가지를 뻗는 나무들과 다른 게 있다면 내가 본래 부족한 나무라는 걸 안다는 것뿐이다

     

    그러나 누군가 내 몸의 가지 하나라도 필요로 하는 이 있으면 기꺼이 팔 한 짝을 잘라 줄 마음 자세는 언제나 가지고 산다 부족한 내게 그것도 기쁨이겠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가죽나무일 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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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성 우리꽃 식물원 (2)─금오 김종기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