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8. 20. 09:53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선불교이야기
<찻잔속의 개화>
선가귀감(禪家龜鑑)/서산대사
14. 도가 높아질수록 마(魔)가 치성하다
마군(魔軍)이란 나고 죽는 생사를 좋아하는 귀신의 이름이고,
8만 4천 마군이란 중생의 8만 4천의 번뇌이다.
악마란 본래 종자(種子)가 없는 것인데
수행자가 바른 생각을 잃는 데서 그 움이 트게 된다.
중생들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이 공존(共存)하나,
수행하는 도인은 그 환경에 거슬리므로 악마가 대들게 된다.
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방해하는 마(魔)가 드세다"고 한 것이다.
어떤 스님이 선정(禪定)에 들었는데
상복을 입은 사람이 "네가 우리 어머니를 왜 죽였느냐?"고
대들어서 옥신각신 시비 끝에 도끼로 그 사람을 찍었는데
자기 다리가 찍혀서 피가 났으며,
또 어떤 스님이 선정에 들었는데
멧돼지가 쫓아와 대들기에 멧돼지 코를 붙잡고
소리를 치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자기의 코를 붙잡고 있었다는 일화가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악마를 보게 된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온갖 시비와 분별에 움직이지 않는
부동심(不動心)이면 악마가 아무리 많은 재주를 부려도
마치 칼로 물을 베거나,
광명(光明)을 입으로 부는 격이 될 것이다.
옛말에 "벽이 갈라져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 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악마가 들어온다"고 했다.
밖으로 일어나는 마음은 천마(天魔)이고,
일어나지 않는 마음은 음마(陰魔)이고,
일어나기도 하고 혹은 일어나지 않기도 하는 것은
번뇌마(煩惱魔)이다.
그러나 우리 불교의 바른 정법(正法)가운데에는
본래 그런 일이 없다.
무심(無心)한 것이 불도(佛道)이고,
분별(分別)하는 것이 악마의 짓이다.
악마의 일이란 허망한 꿈 속의 일인데
더 길게 말할 것이 무엇이랴.
마음을 밝히는 공부를 한 단계라도 이루었다면
비록 금생(今生)에 깨치지 못하더라도
죽어서 눈을 감을 때에 악업에 끌리지는 않을 것이다.
이기적인 행위는 어리석은 무명(無明)이고,
선정(禪定)은 밝은 지혜이다.
밝은 것과 어두운 것이 서로 맞설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참고:
工夫가 到行不知行하며 坐不知坐하면 當此之時하야
공부 도행부지행 좌부지좌 당차지시
八萬四千魔軍이 在六根門頭伺候라가 隨心生起하나니
팔만사천마군 재육근문두사후 수심생기
心若不起하면 爭如之何리요.
심약불기 쟁여지하
起心은 是天魔요 不起心은 是陰魔요 或起或不起는
기심 시천마 불기심 시음마 혹기혹불기
작韶彿ご?然이나 我正法中엔 本無如是事니라.
시번뇌마 연 아정법중 본무여시사
工夫가 若打成一片則縱今生에 透不得이라도 眼光
공부 약타성일편즉종금생 투부득 안광
落地之時에 不爲惡業所牽이니라.
낙지지시 불위악업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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