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는 이것이 자기의 부처/백장어록에서

2011. 8. 26. 10:04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선불교이야기

728x90

<백장어록에서>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는 이것이 자기의 부처인 줄을 애초에 알지 못하고,

밖으로 치달려 부처를 찾는다.

本來不認自知自覺是自己佛, 向外馳求覓佛.

 

선지식의 설법을 의지하여 빠져나올 때에는,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는 것으로

약을 삼아, 밖으로 치달려 찾는 병을 치료한다.

假善知識說出, 自知自覺作藥, 治箇向外馳求病.

 

이윽고 밖으로 치달려 구하지 않게 되면, 병이 나았으니 약은 버려야 한다.

旣不向外馳求, 病瘥須除藥.

 

만약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는 데에 머물러 집착한다면,

이것은 선병(禪病)이니, 철저히 성문(聲聞)이다.

若執住自知自覺, 是禪那病, 是徹底聲聞.

 

마치 물이 얼음이 되면 얼음이 모두 물이지만 목마름을 풀어주기 어려운 것과 같으니,

 “반드시 죽을 병은 세상의 뛰어난 의원도 손쓸 수 없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如水成冰, 全冰是水, 救渴難望, 亦云: “必死之病, 世醫拱手.”

 

원래 부처란 없으니, 부처라는 견해를 내지 말라.

無始不是佛, 莫作佛解.

 

부처란 중생에게 사용하는 약이다.

佛是衆生邊藥.

 

병이 없으면 약을 먹을 필요가 없다.

無病不要喫.

 

약도 병도 모두 사라지면, 맑은 물과 같다.

藥病俱消, 喩如淸水.

 

부처란 감초를 넣은 물이나 꿀물과도 같아 매우 달콤하지만, 맑은 물 쪽에서

헤아려 본다면, 잘못이라는 말조차 할 수 없으니, 본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佛似甘草和水, 亦如蜜和水, 極是甘美, 若同淸水邊數, 則不著不是, 無是本有.

 

그러므로 “이 도리는 모든 사람에게 본래 갖추어져 있다.”라고도 말한다.

亦云: “此理是諸人本有.”

 

모든 부처와 보살을 일컬어 구슬(珠)을 보여주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구슬은 원래 한 개 물건이 아니므로, 그렇다고 알거나 이해할 필요도 없고,

그렇다거나 그렇지 않다고 할 필요도 없다.

諸佛菩薩喚作示珠人, 從來不是箇物, 不用知渠解渠, 不用是渠非渠.

 

다만 상대적인 양쪽의 말을 끊어 버려라.

但割斷兩頭句.

 

있다느니 있지 않다느니 하는 말을 끊고, 없다느니 없지 않다느니 하는

말을 끊으면, 양쪽의 자취가 나타나지 않아서, 양쪽에서 그대를 잡아당길

수도 없으며, 어떠한 테두리(量數)도 그대를 얽어매지 못한다.

割斷有句不有句, 割斷無句不無句, 兩頭跡不現, 兩頭提汝不著, 量數管汝不得.

 

부족하지도 만족하지도 않고, 범부도 성인도 아니고, 밝지도 어둡지도 않고,

 앎이 있지도 앎이 없지도 않고, 얽매이지도 벗어나지도 않아서,

어떠한 이름도 아니니, 어찌 참된 말이 아니랴?

不是欠少不是具足, 非凡非聖, 非明非暗, 不是有知不是無知,

不是繫縛不是解脫, 不是一切名目, 何以不是實語?

 

어찌 허공(虛空)을 다듬어 부처의 모습을 만들 수 있으며, 어찌 허공이 푸르니

누르니 붉으니 희니 하고 말할 수 있으랴?

若爲雕琢虛空作得佛相貌, 若爲說道虛空是靑黃赤白作得?

 

“법은 견줄 수 없으니, 비유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如云: “法無有比, 無可喩故.”

 

법신은 분별이 없으니, 어떠한 테두리에도 떨어지지 않는다.

法身無爲, 不墮諸數.

 

그러므로 “성인의 본바탕은 이름이 없어 말할 수 없으며,

참된 도리인 공문(空門)에는 닿기 어렵다.”고 하는 것이다.

故云: “聖體無名不可說, 如實理空門難湊.”

 

마치 파리가 어디든지 붙을 수 있지만 오직 불꽃 위에는 붙지 못하듯,

중생도 그러하여 어디든 머물 수 있으나 반야에는 머물지 못한다.

喩如太末蟲, 處處能泊, 唯不能泊, 於火燄之上, 衆生亦爾, 處處能緣, 唯不能緣, 於般若之上.

 

 

 

 

 

                                              창   공(蒼空)/윤동주

 

                                                                                              

                                       그 여름날

                                       열정(熱情)의 포플라는

                                       오려는 창공(蒼空)의 푸른 젖가슴을

                                       어루만지려

                                       팔을 펼쳐 흔들거렸다.

                                       끊는 태양(太陽) 그늘 좁다란 지점(地點)에서.

                                       천막(天幕) 같은 하늘 밑에서

                                       떠들던 소나기

                                       그리고 번개를,

 

                                       춤추던 구름은 이끌고

                                       남방(南方)으로 도망하고,

                                       높다랗게 창공(蒼空)은 한폭으로

                                       기지 위에 퍼지고

                                       둥근달과 기러기를 불러왔다.

                                       푸드른 어린 마음이 이상(理想)에 타고,

 

                                       그의 동경(憧憬)의 날 가을에

                                       조락(凋落)의 눈믈을 비웃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