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어떤 것도 아니다

2011. 10. 21. 08:24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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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은 어떤 것도 아니다

  


대덕들이여!

[밖에는 법이 없다]고 내가 말을 하면, 학인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곧 속으로 알음알이를 지어서, 벽에 기대어 앉아 혀를 윗 입몸에 붙이고 고요히 움직이지 않으면서, 이것을 조사(祖師) 문중(門中)의 불법(佛法)이라고 여긴다. 크게 잘못된 일이다.

그대들이 만약 움직이지 않는 청정한 경계를 불법이라고 여긴다면, 그대들은 저 무명을 주인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옛 사람이, [고요하고 컴컴하고 깊은 동굴은 진실로 두렵다]라고 말한 것이 바로 이것을 가리킨다. 또 그대들이 만약 저 움직이는 것을 불법이라고 여긴다면, 풀과 나무도 모두 움직일 줄 아니 마땅히 도(道)라고 해야 할 것이다.

움직이는 것은 풍대(風大)요 움직이지 않는 것은 지대(地大)인 까닭에, 움직임과 움직이지 않는 것이 모두 자성(自性)이 없는 것이다.

그대들이 만약 움직이는 곳에서 불법(佛法)을 붙잡으려 하면 그것은 움직이지 않는 곳에 있고, 움직이지 않는 곳에서 불법을 붙잡으려 하면 그것은 움직이는 곳에 있으니, 마치 깊은 물 속에서 물고기가 물결을 일으키며 스스로 뛰어오르는 것과 같다.

대덕들이여! 움직이는 것과 움직이지 않는 것은 두 가지 경계인데, 의지함 없는 도인이 움직임으로도 작용하고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도 작용하는 것이다.

본래면목(本來面目)인 마음법(心法)은 모양이 없어서 공(空)이라 하기도 하고, 본래 한 물건도 없다고 하기도 하고, 실상(實相)은 무상(無相)이라 하기도 하고, 모양을 가지고 법(法)을 구하면 결코 얻을 수 없다고도 하고, 어디에도 머물지 말라고도 하고, 얻을 수 있거나 이름 붙일 수 있는 법은 없다고도 한다. 어떤 것이 모양을 가지고 법을 구하는 것인가? 오온(五蘊)과 육식(六識)의 경계를 따라서 법을 구하는 것이 바로 모양을 가지고 법을 구하는 것이다.

육체의 모양을 따라서 법을 구하는 것은, 고요히 앉아서 호흡에 집중하거나,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곧 마음이라고 여기거나, 육체를 움직일 때 느껴지는 힘을 곧 마음이라고 여기거나, 팔다리를 움직이는 것이 곧 마음이라고 여기는 등과 같은 경우들이다. 느낌과 감정의 모양을 따라서 법을 구하는 것은, 미묘하고 황홀한 느낌에 머물거나, 상쾌하고 즐거운 느낌에 머물거나, 편안하고 안락한 느낌에 머물거나, 어떤 느낌이든 느낌 바로 그것이 마음이라고 여기는 등과 같은 경우들이다.

생각의 모양에 따라 법을 구하는 것은, 마음은 진공묘유(眞空妙有)라고 여기거나, 마음은 공적영지(空寂靈知)라고 여기거나, 마음은 성성적적(惺惺寂寂)하다고 여기거나, 마음은 견문각지(見聞覺知)에 오염됨이 없이 항상 청정(淸淨)하다고 여기거나, 마음은 무념(無念) 무상(無相) 무주(無住)라고 여기거나, 마음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중도(中道)라고 여기는 등과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경우이다.

육체든 견해든 느낌이든 어떤 모양에 머물러서 법을 찾는다면, 이것은 영상을 가지고 거울을 찾는 격이며, 물결을 가지고 물을 찾는 격이며, 나무에서 물고기를 찾는 격이다. 만약 어떤 모양에 사로잡히고 머물러서 법이라고 착각한다면, 이것이 바로 풀에 의지하고 나무에 붙어 사는 도깨비이다. 움직이는 모양이든 고정된 모양이든 시끄러운 모양이든 고요한 모양이든 괴로운 모양이든 즐거운 모양이든 불편한 모양이든 편안한 모양이든, 모양은 허망한 모양일 뿐이다. 모양은 모두 허망하다(凡所有相皆是虛妄)고 하지 않았던가?

마음은 있다고 해도 안되고 없다고 해도 안되며, 이렇다고 해도 안되고 저렇다고 해도 안되며, 안다고 해도 안되고 모른다고 해도 안되며, 움직인다고 해도 안되고 머물러 있다고 해도 안된다. 그렇다면 도대체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

마음을 찾고자 하는가? 팔을 오무렸다가 펴 보라. 그래도 모르겠거든, 손가락을 눈앞에 세워서 바라보라. 그래도 모르겠거든, 눈을 깜짝여 보라. 그래도 모르겠거든, 눈앞의 허공을 응시하고 무엇이 있는지 확인해 보라. 보려면 지금 바로 보아야 한다. 지금 바로 보지 못한다면 보지 못하는 것일 뿐, 생각으로 헤아려서 위안을 삼아서는 결코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임제록』을 통한 선 공부 / 김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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