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무신론시대, ‘불교 르네상스시대’에 주류불교(Main stream Buddhism)는

2012. 2. 10. 15:46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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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무신론시대,

불교 르네상스시대에 주류불교(Main stream Buddhism)

 

 

종종 댓글에서 중요한 정보를 얻는다. 본문에서 문제를 제기한 것에 대한 일종의 답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인터넷 뉴스에 실린 댓글을 보면 민심의 흐름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이런 댓글이 비록 편향된 시각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데 있어서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불교관련 인터넷신문에서의 댓글도 마찬가지이다.

 

 

야훼를 당해 낼 수 없어

 

불교인터넷 신문사이트에서 본 댓글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따로 저장하여 보관하고 있다. 주로 공감하는 내용들이다. 댓글이라는 것이 비판을 넘어 비방과 비난으로 흐를 수도 있지만, 그 중 건질만한 내용도 많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스님들의 댓글과 전문성을 갖춘 네티즌들의 글은 읽어 볼 만한 가치가 있는데, 그런 글 중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눈에 띄었다.

 

 

대승의 아미타불이 관세음보살이 약사여래가 아무리 영험하기로
하늘이 있으라 하니 하늘이 생기고 땅이 있으라 하니 땅이 생기고
이렇게 말 한 마디로 천지만물을 창조한 기독교의 전지전능한 유일신

야훼를 당해낼 수 있습니까?

(S법우님, 조계종 스님들의 가르침을 듣고 싶습니다)

 

조계종 스님들의 가르침을 듣고 싶습니다.docx 

조계종 스님들의 가르침을 듣고 싶습니다.pdf

 

 

이는 한국불교의 기복신앙에 대한 비판이다. 기복과 방편으로만 일관한 한국불교가 대승보살을 앞세워 보지만 유일신교의 유일신과 비교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복과 방편으로 먹고사는 한국불교

 

최근 불교인터넷신문에 봉은사 재산관리인스님의 발표가 있었다. 직영분란에도 수입이 증가하였다는 내용이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각종 기도와 천도재 등으로 인한 수입의 증가를 말한다. 신도들의 증감에 대한 것은 발표하지 않고 단지 수입이 증가하였다는 사실은 각종 기도로 인한 기복, 죽은 자를 위한 천도재로 인한 방편에 의존하였다는 말이다. 이런 기복과 방편은 타력적이고 유신론적 불교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와 같이 기복과 방편으로 일관하며 유신론적이고 타력적인 신앙은 전국적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불자들은 유명기도처를 찾아 순례를 다니고, 수입이 좋은 기도처는 총무원에서 직영사찰로 처리하여 관리하고 있다. 관음기도처로 유명한 강화의 보문사’, 입시철만 되면 기도객으로 몰리는 팔공산 갓바위가 있는 선본사가 대표적이다.

 

이렇게 직영사찰과 특별분담금 사찰에서 거두어 들인 수입금으로 조계종의 한해 살림살이 유지되는데, 그 금액은 대형교회 한달 헌금 보다 못하다고 한다.

 

 

유명기도처만 찾아 다니다 보면

 

기도와 방편으로만 일관하는 한국불교에서 불자들은 열심히 기도를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모든 기도를 불보살님이 다 들어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럴 경우 신심있는 불자들은 전국의 유명기도처를 찾아 순례 할 것이다.

 

그래도 불보살님이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면 어떻게 할까. 이번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면 다시는 불보살님을 찾지 않을 것이라고 말할까. 이런 현상에 대하여 어떤 이는 우스개 소리로 유명기도처만 찾아 다니다 보면 결국 교회에 가서 앉아 있게 되더라라는 말을 하였다.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 기복과 방편으로 일관하다 보면 결국 교회로 가게 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로 본다면 관세음보살이 아무리 영험하기로 전지전능한 야훼를 당해 낼 수 없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나이 든 노보살이 말년에 개종이 속출하고, 절에 열심히 다녔다는 불자가 개종하였는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이런 현상은 불자들이 불교를 기복으로만 믿었다는 이야기이다. 또 스님들도 불자들을 수입원으로만 생각하여 방편으로만 일관했다는 말과 같다.

 

 

불교르네상스시대

 

이처럼 유신론적이고 타력적인 기복과 방편불교는 유일신교가 득세하는 한국적 현실에서 개종하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전세계적으로 불교는 르네상스를 맞고 있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왜 생기게 되었을까. 그것은 신의 죽음과 관계가 있다. 유럽에서 신은 이미 죽었다. 근대와 현대철학의 다리 역할을 하는 니체는 자신의 저서에서 신은 죽었다고 구체적으로 선언하였다.

 

그런 신은 스스로 죽은 것이 아니라고 한다. 불교TV사이트에서 김종욱 동국대교수의 강의에 따르면 유럽인들이 신을 죽여 버린 것이라 하였다. 왜 유럽인들은 신을 죽여 버리고 용도폐기하여야 하였을까.

 

 

신은 어떻게 죽었을까

 

이에 대하여 김종욱 교수의 강의(불교로 이해하는 현대철학 -제13 니체 철학과 불교 - 신은 죽었다)를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전에 블로그에 올렸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이데아론으로 날개를 단 야훼

   

기독교는 중동의 사막지대에서 ‘셈족’으로 부터 발생되었다. 그런데 유럽민족들은 ‘아리안족’계통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종족이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종교로 공인되면서 유럽의 아리안족은 셈족의 종교를 믿게 되었다. 그렇다면 기독교가 들어 오기 전에는 무엇을 믿었을까.

 

문명이 가장 발달하였다는 고대 그리스의 경우 다신교를 믿었다. 이는 셈족의 유일신교와 다른 것이다. 그런데 사막의 부족종교인 기독교가 세계적인 종교로 비약하게 된 동기는 그리스철학과 만나고 나서 부터이다.

 

야훼라는 극악무도하고 잔인하고 자신의 부족밖에 모르는 사막의 유일신이 플라톤의 ‘이데아론’과 결합되면서 날개를 달게 된 것이다. 이것이 중세신학의 출발로서 천년왕국을 지탱하게 해 준 버팀목이 된 것이다.

 

 

신중심에서 인간중심으로

 

하지만 이런 신 중심의 기독교는 르네상스와 종교혁명을 맞아 위기를 맞게 된다. 유럽에 있어서 근대는 ‘신중심에서 인간중심으로’ 옮겨간 것이다. 그런 인간중심도 현대에 들어와 ‘무신’으로 바뀌었다. 이에 대한 표는 다음과 같다.

 

 

유럽의 시대구분

 

  

   

 

 

과거~4세기

로마 멸망까지

다신(多神)

 

5~14세기

로만 가톨릭시대

유일신중심

공백기

문예부흥시대

15세기

Renaissance

우회공격

종교개혁시대

16세기

Reformation

직접공격

근대

 

(Modern)

17~19세기

인간중심

 

(Post-mordern)

20세기~현대

무신(無神)

 

  

이처럼 유럽에 있어서 신 중심시대는 오로지 중세 1,000년 밖에 없었다. 그런 신 중심시대는 르네상스시대에 우회공격을 당하고, 종교개혁시대에 직접적인 공격을 당하여 신의 자리에 인간이 차지하게 되었다. 이것이 유럽의 근대시기(17~19 )이다.

 

 

오늘 날 불교가 유럽에서 자연스러운 이유

 

그런데 유럽의 현대철학에서 더 이상 신은 언급되지 않는다고 한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현재 서양의 현대철학에서 신은 완전히 사라졌다고 한다. 그렇게 된 이유는 그 이전에 문예부흥시대와 종교개혁, 그리고 근대를 거치면서 철저히 비판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근대철학과 현대철학의 가교역할을 하고 있는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선언 하였다. 이때 니체가 죽었다고 말한 신은 셈족의 유일신을 말한다.

 

유일신이 죽었다면 그 자리에 누가 들어온 것일까. 그것은 다름아닌 고대그리스의 다신(多神)이다. 다시 중세이전으로 복귀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문명사적으로 보았을 때 셈족과 아리안족의 대결과 같은 것이다. 이에 대한 표를 만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셈족과 아리안족

 

종족

지역

명칭

 

셈족

(Semites)

메소포타미아

(IL)

IL을 공통어로 하는

유일신

유태교

엘로힘(Elohim)

기독교

야훼(Yahweh)

이슬람

알라(Alilah)

아리안족

(Aryan)

그리스

디오니소스(Dionysus)

니체가 선호

페르시아

차라투스트라(Zarathustra)

페르시아 아리안의 대표

인도

붓다 (Buddha)

인도 아리안의 대표

 

 

셈족과 아리안족은 종족도 다를 뿐만 아니라 언어도 다르다. 하지만 아리안족은민족적 동질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셈족의 종교가 천년을 지배 하고 물러간 자리에 다시 고대그리스의 다신을 올려 놓은 것이다.

 

특히 아리안족은 유럽뿐만 아니라 페르시아와 인도로 갈라졌기 때문에 민족적 원형은 같은 것으로 본다. 이는 오늘 날 왜 유럽에서 불교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지에 대한 이유가 될 것이다.

 

 

‘비웃음’으로 죽여 버린 유일신

 

그렇다면 중세천년을 지배하였던 셈족의 유일신은 어떻게 죽었을까. 김종욱 교수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를 들고 있다.

 

첫째 신들이 신을 죽인 케이스이다. 이는 고대 그리스의 다신이 셈족의 유일신을 죽인 경우를 말한다. 예를 들어 기독교의 십계명 중에 “나 이외 다른 신을 믿지 말라”는 첫 번째 항목이 있다. 이는 오로지 야훼만을 믿으라는 강압적인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중세를 지나 근대에 이르러 인간중심시대가 되었을 때 이런 주장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리스의 다신들의 입장으로 보았을 때 한 마디로 “웃기고 있네”라고 말할 것이다.

 

또 자신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는 이야기는 말도 안되는 ‘개그’를 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처럼 유일신의 행태는 ‘조롱’거리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그리스의 다신들은 ‘비웃음’으로 죽여 버린 것이다.

 

둘째, 인간이 신을 죽인 케이스이다. 근대 서양인들이 너무 천박하게 살다보니, 그 천박한 존재도 모두 신의 피조물이어서 창조자의 존재이유가 없어서 신을 죽여 버린 것이다.

 

셋째, 초인이 신을 죽인 케이스이다. 니체는 신을 죽인이유가 초인이 되기 위해서라고 하였다. 초인이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때 초인은 그리스적 다신을 말한다.

 

이런 면으로 보았을 때 유럽의 근대철학은 셈족의 유일신을 죽여 버리고, 그 자리에 본래 자신들의 종족이 신봉하였던 그리스의 다신을 그 위치에 올려 놓은 것이라 볼 수 있다.

 

 

신대륙으로 이민간 유일신

 

현대철학에서 신은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고 있는데, 그렇다면 유럽에서 죽은 신은 어디로 갔을까.

 

니체의 안티크리스트에 따르면 “신이 애들처럼 길을 잃었나? 화장실 갔거나 숨었나? 이민 갔나?”라는 표현이 있다. 여기에서 “이민 갔나?”라는 표현은 ‘신대륙’을 말한다.

 

유럽의 근대시기에 신은 몰락하여 죽었다고 볼 수 있는데, 신이 아직도 살아 있는 곳은 그 때 당시 신대륙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신대륙에서 북미는 청교도가, 중남미는 가톨릭이 번성하고 있어서 유일신은 여전히 살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미국으로 이민간 신은 청교도(Puritan)의 신인데. 청교도는 어떤 종교일까. 인터넷 백과사전에 따르면 16세기에서 17세기 사이에 영국의 ‘칼뱅주의’ 계열의 개신교를 일컫는 말이라 한다. 이들은 도덕적 순수성을 추구하고 성서에 철저하고자 하는 ‘성서주의적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김종욱 교수의 불교로 이해하는 현대철학 -제13 니체 철학과 불교 - 신은 죽었다에서, 불교TV2008-01-14)

 

 

이것이 유럽에서 신이 사라진 이유이다. 그 결과 유럽은 무신론의 시대가 되었다. 그런 허전함을 메꾸기 위한 그 무엇인가가 필요하였는데, 그 대안이 불교라는 것이다. 유럽의 무신론과 불교의 무아사상이 만난 것이다.

 

 

유럽아리안과 인도아리안의 만남

 

더구나 유럽민족은 아리안족으로서 불교발상지인 인도아리안과 같은 조상이라는 것이다. 그런 증거는 언어학적으로도 매우 유사하여 빠알리 니까야에서 보는 용어와 영어의 단어에서도 확인 될 수 있다.

 

빠알리어 띠사라나(Ti-sarana,삼귀의)에서 띠(Ti)  이라는 뜻으로서 영어의 three와 어원이 같다. 맛지마니까야 할 때 맛지마(Majjiama) 중간이라는 뜻인데, 영어의 middle과 어원이 같다. 또 빠알리어에서 빤짜칸다(panca-kkhandha)오온으로 부르는데, 빤짜(panca)다섯이라는 뜻으로 영어의 five와 어원이 같다.

 

이처럼 인도아리안 계통의 언어와 유럽아리안 계통의 언어는 어원이 같기 때문에 뿌리가 같은 민족이라 볼 수 있다. 이런 점이 유럽에서 인도아리안을 대표하는 붓다(Buddha)호의적으로 보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국으로 이민 온 극성스런 신

 

이렇게 유럽에서 죽임을 당한 신은 미국으로 이민가게 되었고, 그 결과 오늘날 북미와 중남미에서 번성하고 있다. 그런 이민신은 또 다시 한국으로 이민 오게 되었는데, 그 신은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보는 극성스런 기독교도들이 믿는 신이 된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한국의 기독교가 가장 극성스럽다고 한다. 이는 바이블에 기반을 둔 칼뱅주의의 기독교로서 이를 전해 준 미국에서는 이미 사라지고 볼 수 없는데, 전승받은 한국에서만큼은 그 전통을 이어나가 오늘날 극성스런 이미지의 기독교가 된 것이다. 그 결과 공존을 거부하는 듯한 선교정책에 따라 불교의 존립마저 위협받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전세계적으로 불교는 매우 우호적이다. 그리고 미래 새로운 패러다임과 사상의 대안으로 떠 오르고 있는데, 그것은 시대와 역사성때문이라 볼 수 있다.

 

 

지금은 무신론 시대

 

역사적으로 정치와 경제는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여 왔다. 과거 역사를 보면 인류의 인지가 높어짐에 따라 노예제에서 봉건제를 거쳐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대로 발전하여 왔듯이 종교 시대와 역사에 따라 발전하여 왔다.  

 

원시대의 종교는 다신교신앙이었다. 만물에 정령이 있어서 인간의 길흉화복을 좌지우지 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큰 나무나 바위에도 영적인 힘이 있다고 하여 제사를 지내곤 하였다. 이런 현상은 다큐프로에서 원시그대로 삶을 살아가는 부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다신신앙은 시대가 발전함에 따라 유일신교 신앙으로 바뀌었다. 이른바 신들의 전쟁에서 가장 우세한 신이 패권을 차지한 것이다. 대표적으로 이스라엘 민족이 믿었던 야훼를 예로 들 수 있다. 이런 유일신교 신앙은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다.

 

유일신신앙은 문예부흥시대를 거쳐 근대로 넘어오면서 인간중심사상으로 바뀜에 따라 용도폐기된다. 그 결과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자신의 저서에서 공식적으로 선언한 것이다. 그결과 유럽의 철학자들은 더 이상 신을 찾지 않게 되었는데, 이는 무신론사상으로 발전한 계기가 된다.

 

특히 영국에서 무신론은 강세인데, ‘이기적 유전자를 저술한 영국의 리차드 도킨스는 “신이 없어도 인간은 열정적이고 영적일 수 있다 ”고 주장하여 창조론 등으로 대표되는 기존 기독교신앙을 비판하고 있다.

 

 

 

 

"There's probably no God. Now stop worrying and enjoy your life".

Ariane Sherine and Professor Richard Dawkins pose in front of a London bus featuring an atheist advertisement with the slogan 'There's probably no God. Now stop worrying and enjoy your life'

( 프지 ,2009)

 

 

 

무신론과 무아사상의 만남

 

이런면으로 보았을 때 정치체제와 경제방식이 시대와 역사에 따라 발전 되어 왔듯이 종교 역시 다신에서 유일신, 유일신에서 무신으로 변천해 온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불교의 경우 이미 2600년에 연기법에 따른 무아사상을 주장하였다는 사실이다.

 

불교의 연기론적 무아사상에 따르면 창조신은 있을 수 없다. 신이 있다면 그 신은 제행무상의 과정에 있는 연기론적 존재일 뿐이다. 그래서 오늘날 유럽을 비롯한 전세계의 지성들이 불교를 주목하는 것이다. 신이 죽어 버린 시대, 아니 신을 죽여 버린 시대에 그 신을 대신 할 수 있는 것으로서 불교의 무아사상을 주목하는 것이다.

 

 

유독 한국에서만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만큼은 칼뱅의 후손이라 불리우는 기독교가 극성이다. 더구나 공존자체를 거부하는 듯한 그들의 행태를 보면 세상의 흐름과 거꾸로 가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본다.

 

세상의 흐름과 거꾸로 가기는 불교도 마찬가지이다. 2600년 전 부처님의 가르침이 전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있는 시대에 기복과 방편으로만 일관하여 유일신교화 되고 있는 것이 한국불교의 모습이다.

 

이처럼 기독교이든 불교이든 한국에서의 주류종교는 전세계적 사조와 역행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주류불교(Main stream Buddhism)

 

지금 세계는 불교의 르네상스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미래세계는  불교적 패러다임으로 바뀌게 될 것이고, 결국 연기와 무아사상을 특징으로 한 불교가 각광을 받을 것이라고 전세계의 지성과 미래 학자들은 예측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 불교는 어떤 것일까. 두 말 할 필요도 없이 부처님의 가르침에 입각한 주류불교(Main stream Buddhism)’이다. 빠알리 니까야에 기반을 둔 불교를 말한다.

 

그런 빠알리 니까야는 1800년에 유럽에 처음으로 알려졌고, 이후 담마빠다(법구경)가 덴마크 학자 빈센트 하우스 뵐에 의하여1855년 최초로 라틴어로 번역되었다. 이후 1869년에 독일어로 번역되었고, 1870년에 영어로 번역되었다. 또한 1881년 빠알리성전협회(PTS)가 설립되어 본격적으로 번역되었는데, 이로 인하여 유럽의 지성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그 결과  니체, 하이데거 등과 같은 철학자들은 불교에 영향을 받아 자신의 사상을 만들었고, 이런 현상은 대문호들에게도 영향을 주어 헤르만 헤세의 경우 맛지마니까야에 영감을 받아 소설 데미안을 썼다고 한다.

 

그런 빠알리 니까야는 1947년 일본에서 남전대장경이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었고, 우리나라의 경우 전재성박사가 1999상윳따니까야를 우리말로 완역함으로서 비로서 원음의 빠알리경전을 갖게 되었다. 불과 13년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측면으로 보았을 때 미래사상의 흐름은 빠알리니까야를 기반으로 한 부처님의 근본가르침에 대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런 불교를 UCLA대 교수이자 동국대학술원장인 로버트 버스웰교수는 불교TV사이트 강의에서 우리나라에서 소승불교라고 부르고 있는 테라와다불교(Theravada Buddhism)’주류불교(Main stream Buddhism)’라고 말 하였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 속에
파도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이
어디 한 두번이랴.
그런 날은 조용히 닻을 내리고
오늘 일은 잠시라도
낮은 곳에 묻어 두어야 한다.

우리 사랑하는 일 또한 그와 같아서
파도 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은
높은 파도를 타지 않고
낮게 낮게 밀물져야 한다.
사랑하는 이여
상처 받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
추운 겨울 다 지내고
꽃필 차례가 바로 그대 앞에 있다.

 

 

 

 

 

 

 

 

감동의 뉴에이지 연주곡 모음

 

01. Jeux Des Scenes / Pierre Porte
02. J'aime / Caravelli Orchestra
03. Moldova / Sergei Trofanov
04. Amar Y Vivir / Giovanni Marradi
05. Loving Cello / Ralf Bach
06. Lembrando Chopin / Bau
07. Cancion Triste / Jesse Cook
08. Non Same Love / Praha
09. A Kiss Unexpected / Hiko
10. Gypsy Nights / Craig Chaquico
11. Pavane / Tol & Tol
12. Cherry Hill / Linda Gentille
13. Toute Une Vie /Jean Philippe Audin
14. Eternity / Steve Barakat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