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2. 17. 14:21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1,고제(苦諦)
고제(苦諦)란 삼계(三界) 육취(六趣)의 고보(苦報)니 미(迷)의 과(果)요.
나아갈 취(趣)자. 육취(六趣)나 육도(六道)나 똑같은 것입니다.
삼계육도, 삼계육취의 고보(苦報)란. 고의 과보(果報)를 결과로 받는.
하나의 보답으로서 받는 미혹(迷惑)의 과보란 말입니다.
진리를 모르는 미혹의 결과 입니다.
중생고(衆生苦)의 원인은 무엇인가? 이것은 집제(集諦)입니다
우리 중생을 어떻게 볼 것인가? 중생은 안락한 것인가?
우리 중생은 역시 무어라 해도 어떻게 해부해 보나 ''
결국은 다 고공(苦空)이라. 고(苦)뿐입니다.
중생의 낙(樂)이라는 것은 사실은 흔적도 없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생로병사(生老病死)란 말입니다.
날 때의 고통. 살려는 고통. 또는 늙어서 고통. 병들어 고통.미운사람 만나는 고통.
또는 구해서 얻지 못하는 고통. 이 몸뚱아리 원수가 장기(藏器)가 가득해 있기
때문에 완전히 조화로운 상태는 없는 것입니다.
불교 용어로 말하면 사사일협(四蛇一협)이라 -
넉사(四)자. 뱀사(蛇)자. 한일(一)자. 상자 협(협),자
-네마리 독사가 한 상자에 모여 있는 것이 우리 몸이나 같다는 말입니다.
지(地)와 수(水)와 화(火)와 풍(風)이 란 말입니다.
바람 기운. 물 기운. 불 기운 또는 땅 기운-이런 것들이 한꺼번에 모여서
잠시 동안 조화를 이룬 것이기 때문에 완전무결한 때는 없는 것입니다.
음식을 더 먹으면 더 먹은 대로, 덜 먹으면 덜 먹은대로,추우면 추운 대로 말입니다.
이와같이 우리 몸이라는 것은 우리 업(業)따라서, 없을 긁어모아서 잠시동안
그와 같이 각 원소가 합하여 있는지라 우리 목이 완전무결할 때가 없습니다.
따라서 몸 자체로 보아도 이것이 모두 괴로움 뿐입니다.
생각은 무엇인가? 우리 범부(凡夫)의 생각은 모든 것을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바로 보지 못하니까 바로 생각하지도 못합니다. 바로 보지 못하니까
보로 생각하지 못합니다. 바로 생각하지도 못하고 바로 보지도 못하는 사람이
마음의 안심입명(安心入命)-마음이 편안할 수가 있습니까?
몸도 편안하지 못하고 맘도 평안하지 못하고 ,
끝내는 한계상황에서 오는 여러 가지 핍박만 있습니다.
따라서 생각을 깊이 하지 못한 사람들이'인생은 안락이다'고 생각하다
취생몽사(醉生夢死)해서 죽고 마는 것입니다. 바로 보면 인생은 고(苦)뿐입니다.
따라서 고를 피하기 위해, 고통 이기기 위해 불교가 있습니다.
다른 종교도 마찬가지라고 하지만,다른 종교는 고의 원인을 확실히 모릅니다.
우리는 우선'인생'이라는 것이 고다. 일체개고(一諦皆苦)다.
다시 말해 인생은 고행바다'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자가 깨달아서-우주를 다 통달해서 항시 불성(佛性)을 보는 경지같으면
모르거니와 그렇지 않은 한 우리 중생의 견해로는 아무리 따져봐도 고(苦)뿐입니다.
고를 분명히 느껴야만 참다운 수행자 입니다.
고를 느끼기 때문에 스님들도 출가 수행자가 된 것입니다.
삼계(三界)는 욕계(慾界).색계(色界). 무새계(無色界)아닙니까.
중생이 생사윤회(生死輪廻)해서 왔다갔다
개미 쳇바퀴 돌듯 하는 것이 삼계윤회입니다.
윤회란. 욕심을 미쳐 못 떠난 경계입니다.
음욕(淫慾).식욕(食慾). 수면욕(睡眠慾). 또는 가지가지 욕심을 못 떠난 경계가
욕계입니다. 우리는 지금 욕계에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 함부로 탐심을 내고 아만심(我慢心)을 냅니다만,
사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 못되는 것입니다.
다만 욕계의 저 밑바닥 남섬부주(南贍部州)에 있는것에 불과한 것이지.
욕계 내에도 사람보다 더 훌륭한 욕계천(欲界天)이 있습니다.
올라가면 또 색계가 있고 무색계가 있는데 어떻게
우리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되겠습니까?
따라서 인간은 더 겸허해야 합니다.
욕계도 꼭대기가 아니라 욕계 나의 저 밑에 인간이 존재합니다.
물론 그 보다 저 밑에는 지옥도 있고 하겠지만.
인간은 어정쩡한 존재이기 때문에 만물의 영장은 못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욕계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윤회하는 곳은 욕계보다 더 높은 색계도 있고 무색계도 있습니다.
육도(六道)는 욕계 내의 여섯 갈래입니다.
지옥(地獄).아귀(餓鬼).축생(畜生).수라(修羅).인간(人間).천상(天上)말입니다.
삼악도(三惡道).삼선도(三善道)라 나쁜 갈래는 지옥.아귀.축생이고.
육도 가운데에서도 좀 좋은 갈래는 아수라.인간.천상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욕계에 해당합니다.
이와 같이 삼계육도에서 받는 그런 괴로운 과보가 고제입니다.
결국은 미혹해서 진리를 모르는 결과란 말입니다.
우리가 진리를 알았다면 욕계에 태어날 리가 만무합니다.
진리를 모르기 때문에 업에 칭칭 묶여서 이렇게 욕계에 온 것입니다.
부모님의 인연을 만나 우리가 태어날 때도, 역시 업장(業障)이 가볍고
저 천상이나 극락에 가버리면 사람으로올 수가 없습니다.
어정쩡하게 헤매다가 부모님 인연 만나서 욕계로 덜컥 온 것입니다.
이것이 욕계 중생입니다.
두 칸 흙집을 질박한 수행자처럼 가꾸라
[법정스님이 제자에게]
집 짓는 일은 어느 정도 진척이 되었는지,
이엉은 덮었는지 궁금하구나.
장마철이 오기 전에 지붕은 덮어 놓아야 나머지 일은
그 안에서 진행할 수 있다.
나 같으면 벌써 일을 다 했을 텐데 아직도 끝내지 않았다니
그 저력이 대단하구나.
상량을 한 지도 벌써 달포가 지났는데 두 칸 방 집을 짓는
그 진행이 너무 더디다.
물론 날씨와 그럴만한 현장의 사정이 있을 줄 안다.
일을 하면서도 즐겁게 해야 그일의 결과도 좋다.
그러나 내가 우려하는 것은, 자원 봉사의 명분으로 불러다 쓰는
공양주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의 은혜다.
신세를 그렇게 오랫동안 져도 좋을까 하는 생각이다.
시은(施恩)을 많이 입게 되면
그 타성에 젖어 정진이 소홀해진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방 두 칸을 지으면서 얼마나 많은 인력과 재력과 시간과
시은을 들이고 있는지 되돌아 볼 일이다.
상량문에서도 언급한 바 있듯이,
나는 그 두칸 흙집이 진정한 수행자의 거처가 되기를 바란다.
야유몽자불입(夜有夢者不入) 구무설자당주(口無舌者當住)
밤에 꿈이 있는 자 들어가지 못하고,
입에 혀가 없는 자만이 머무를 수 있다.
밤에 꿈이 많은 사람은 그만큼 망상과 번뇌가 많다.
수행자는 가진 것이 적듯이 생각도 절박하고 단순해야 한다.
따라서 밤에 꿈이 없어야 한다.
또 수행자는 말이 없는 사람이다. 말이 많은 사람은
생각이 밖으로 흩어져 안으로 머물 기회가 없다.
침묵의 미덕이 몸에 배야 한다.
나는 그 두 칸 흙집 자체가 질박하고 단순한
수행자의 모습이기를 바란다.
오늘날 우리들은 편리한 문명의 연장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것을 잃고 있는지생각해 보아라.
넘치는 물량을 받아쓰느라고 순간순간
수행자의 덕이 소멸되어 간다는 사실을 똑바로 보라.
이 기회에 몇 가지 당부의 말을 전하고 싶다.
하나,
수행자의 집에는 아예 전기를 끌어들일 생각을 하지 말라.
전기가 들어가면 곁들어 따라 들어가는 가전제품이 한 두가지가 아닐 것이다.
전화도 없어야 한다. 편안함만을 따르면 사람이 약아 빠진다.
불편함을 이겨나가는 것이 곧 도 닦는 일임을 알라.
둘.
수도를 끌이지 말라. 수도가 들어가면 먹고 마시는 일이 따라가고 자연히
사람들이 모여들게 된다. 마실 물은 바로 지척에 있는 암자의 샘에서
길어다 쓰면 될 것이다. 그 집에는 차 외에는 마실 것도 두지 말라.
찻잔은 세 개를 넘지 않아야 한다.
많으면 그 집에 어울리지 않고 소란스러워 차의 청적(淸寂)에 어긋난다.
셋,
수행자의 거처를 '서전(西殿)'이라고 이름 지은 것은 위치가
암자의 서쪽에 있다는 뜻도 되지만, 부처님과 조사님들의 청정한
생활규범인 서래가풍(西來家風)을 상징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 수행자의 집에는 여성의 출입을 금해야 한다.
넷,
수행자의 집에 거처하는 사람은 반드시 새벽 세시에 일어나고
밤 열시 이전에는 눕지 말라.
새벽예불은 수도생활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과이므로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
이상에 당부한 사항을 지키는 수행자라면 우리는
한 부처님의 제자로 같은 길을 가는 길벗이 될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스승과 제자 사이라 할 지라도
뜻은 십만 팔천리가 될 것이다.
끝으로 옛사람의 말을 안으로 새기면서 이 사연을 마친다.
"입 안에 말이 적고, 마음에 일이 적고, 뱃 속에 밥이 적어야 한다.
이 세 가지 적은 것이 있으면 신선도 될 수 있다."
처음 세속의 집을 등지고 출가할 때 그 첫마음을 잊지 말라!
-바이얼린 명연주곡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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