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2. 27. 12:40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2.집제(集諦)/청화스님
집제(集諦)란
탐(貪).진(嗔).치(痴)등의 번뇌(煩惱)와 선악(善惡)의 제업(諸업)으로서
차이(此二)가 능(能)히 삼계육취(三界六趣)의 고보(苦報)를 집기(集起)
함으로 미(迷)의 인(因)이다.
번뇌라는 것은 무량무수의 번뇌이지만,
간추리면 탐심(貪心).진심(瞋心).치심(癡心) 아닙니까?
다 아는바와 같이 3독심(三毒心)아닙니까?
이러한 3독심 등의 번뇌와 선악의 제업으로서.
업(業)이라는 것은
우리가 생각할 때에 악업도 있지만 선업도 있지 않겠습니까?
남한테 보시도 하고, 잘되기 바라고,
또 중생을 위해서 애도 쓰고 하는 것이 선업 아닙니까?
업의 종류는
악업(惡業)과 선업(善業)과 도업(道業)등 세 가지로 구분됩니다.
악업은 자기와 남을 해롭게 하는 것이고, 선업은 자기와 남을 이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선업 역시 비록 보시도 하고 여러가지를 베풀지라도
자기라는 상(相). 남이라는 상(相). 그런 상을 못 떠나면 그때는 선업에
머무는 것일뿐. 참다운 성불(成佛)의 도업(道業)은 못 됩니다.
따라서 업에는 악업과 선업이 있고, '나'라는 상과 '너'라는 상을 떠나서
참다운 해탈에 이르는 도업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불교인들은 도업을 지어야 합니다.
선업을 짓는 것은 악업보다는 낫지만,
상에 매여 있으면 해탈의 원인은 되지 못합니다.
아무튼 이와 같이 탐심이나 진심이나 치심이나 이런 번뇌가 있으니까
입으로 행하면 나쁜 말도 나오고 좋은 말도 나오겠지요,
그리고 몸으로 행하면 살생 등 여러가지 업을 짓습니다.
이런 번뇌가 있으면 자연히 우리 몸이나 입이나 뜻으로
발동(發動)할때는 업이 되어 버립니다.
이런 모든 업으로서'차이(此二)'-이와 같은 번뇌와 제업(諸業).
이 둘이 능히 삼계육취의 괴로운 과보를 모아 일으키는 집기(集起)라.
결국은 집기란 미혹의 인(因)이 된단 말입니다,
아까도 말했습니다만 인생고의 원인은 집기(集起)입니다.
다시 말하면 탐진치 삼독심에서 우러나온 여러가지 선악의 업이
인간의여러가지 번뇌나 고생의 원인 입니다.
사회나 가정이나 개인이나 모두가 다 따지고 보면 결국은 이와 같이
삼독심이나 거기에서 우러나온 선악 악행의 과보 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분명히 느껴야 합니다
인간 번뇌. 인생고. 사회혼란은 그 원인이 무엇인가?
가장 근원은 결국은 삼독심입니다.
따라서 사회 정화나 자기 마음의 안정을 얻으려면 먼저
삼독심을 맑혀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떠나서 겉만 들어 사회운동을 하려고 하면''''
사회 정화도 못 되고 더럽히고 업을 짓고 마는 것입니다.
마땅히 우리 불교인들은 근원적인 문제-일체 인간의 여러가지 모순.
인간의 고생은 모두 다 원인이 "삼독심"에서 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삼독심을 제거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결국
"참선염불"(參禪念佛)아닙니까?
어느 산중에서 가만히 있다 하더라도 참선염불을 하고 있으면
삼독심을 제거하는 것이니까 '''''
악의 뿌리를 뽑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기가 속해 있는 좁은 범위 내에서 악의 뿌리를 뽑는 데만
그치지 않습니다. 나중에 다시 설명을 하겠습니다.
우리 인간의 마음은 우주에 상통합니다.
가령 여기서 얼른 한 생각을 일으키면.우리 생각의 형상은 없어진다
하더라도 염파(念波)는 소멸이 안 되고 그냥 천지 우주의 불성에
파동을 일으킵니다.
따라서 도인들은 여기서 한 생각을 일으키면 저 미국에 가서
그냥 직통으로 느낍니다. 전파 이상으로 빠릅니다.
한번 생각을 일으키고 한번 행동하고 하는것이'''
다 천지 우주에 영향을 줍니다.
그러므로 아까 말한 바와 같이.
우리가 이렇게 앉아서 사회참여를 하지 않고 데모도 하지 않고 있다
하더라도 공부를 바로 하고 마음을 맑히면 내 스스로의 마음을 맑힘과
동시에 그 주변도 맑힐 수 있습니다.
또한 동시에 우주의 그런 성력(聖力)즉 말하자면 우주의 성스러운 힘에
더 플러스(plus)하는 위대한 힘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우리 생각 자체가 그대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마음 정화가 우리 주변 정화이며 동시에 우주 정화입니다.
그러므로 꼭 현상적인 사회참여만을 권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영향을 줍니다.
나도 지나치는 바람이려니 / 어신 이재복
길을 묻지 마라
처음부터 정해진 곳은 없으니
눈으로 보는 세상 틈 사이로
그저 조금 알게 되는 표식이 필요 없는 길
억지로 마주치려 하지마라
때로 돌아갈 길도 있거니와
우연히 앞에 놓인 길은 아닐 터
마음이 데려다준 그 길이
삶의 흐름이리라
얼굴 부비는 바람의 숨소리
굳이 들으려 애쓰지 마라
올곧음의 길은
흐르는 이치대로 조화를 이루는 것
결국은 나도 지나치는 바람이려니
마찰음의 질곡을 벗어나면 자유로우리.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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