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3. 3. 13:39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모든 법이 이미 공(空)하다면 누가 도를 닦습니까?
누구라는 것이 있으면 모름지기 도를 닦아야 하고,
만일 누구라는 것이 없다면 곧 도를 닦을 필요가 없다.
누구란 역시 나(我)이니,
만일 아(我)가 없다면 대상(物:경계)을 만나더라도 시비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시(是: 옳다)란 나 스스로가 옳다고 여기는 것이지, 대상(상대)이 옳은 것이 아니요,
비(非: 그르다)란 나 스스로가 그르다고 여기는 것이지, 대상(상대)이 그른 것이 아니다.
마음이 무심(無心)하면 바로 불도에 통달하게 된다.
경계를 대하되 견해(생각)를 일으키지 아니하면 '도에 통달했다.' 하며,
경계를 대해서 곧 바로 통달해 그 본원(本源)을 알게 되면,
이사람은 지혜의 눈이 열린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대상에 맡기고 자기에게 맡기지 아니하나니,
곧 취하거나 버리거나, 어기거나 따르는 것이 없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에게 맡기고 대상에 맡기지 아니하고,
곧 가지고 버리고 어기고 따름이 있다.
한 물건이라도 보지 않는 것을 '도를 본다(見道)'라고 하고,
한 물건도 행하지 않는 것을 도를 행한다(行道)라고 한다.
어떤 곳에 있더러도 머무는 바가 없으며,
행하는 곳에서 행하는 바 법이 없으면 곧 이것이 부처를 보는 것(見佛)이다.
만약 모양(相)에 집착하면 어디에서든지 헛것(허상)을 보게 된다.
형상을 취하므로 괴로움에 떨어지며, 법(상이 공한 성품, 즉 공)을 관하므로 해탈하게 된다.
만약 생각으로 분별하면 가마솥이나 화로불과 같은 고통을 받아
지금 여기에서 바로 나고 죽음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만약 법계(法界: 진리의 세계)의 성품을 본다면 곧 열반의 성품이며,
분별하는 생각만 없으면 곧 법계의 성품이다.
마음은 물질(色)이 아니기 때문에 있는 것도 아니요,
끊임 없이 작용하여 멈춤이 없기 때문에 없는 것도 아니다.
또 작용하되 항상 공(空)하기 때문에 있는 것도 아니요,
공(空)하되 항상 작용하기 때문에 없는 것도 아니다.
마음 마음 마음이여 진실로 찾기 어렵도다.
넓을 때는 법계에 두루하고,
좁을 때에는 바늘조차 용납하지 않는구나.
<안심법문>
해설:
하루 종일 생각해도 한 생각도 일으킨 바가 없고
하루 종일 돌아다녀도 한 걸음도 움직인 바가 없구나.
어린 중생 한 생각만 일으켜도 온 세상에 먼지 일어나고
어린 중생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았는데 벌써 육도를 돌고 왔네.
상(相)을 보되 성(性)을 보면 견성(見性)인 것을
분별상에 취해 하루 종일 울고 웃는구나.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부처인데 부처가 또 부처를 찾는구나.
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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