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3. 16. 10:56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정토사상의 이해
정토사상의 핵심사상 연구(강 동 균)
목 차
Ⅰ. 정토사상의 한국적 위상
Ⅱ. 정토사상의 내용
1. 정토사상이란 무엇인가
2. 정토사상의 所依經典
Ⅲ. 정토사상의 두 가지 흐름
Ⅳ. 정토의 세계
Ⅴ. 본원진실의 세계
정토사상의 핵심사상 연구
Ⅰ. 정토사상의 한국적 위상
한국사에 있어서 정토사상(淨土思想)의 수용, 전개 및 성쇠는 매우 다양한 우여곡절을 시사해 주고 있다. 육조시대에 이어진 담란(曇鸞), 혜원(慧遠), 천태(天台), 길장(吉藏)의 영향이 신라에 정토사상을 흥기하게 하였으며, 도작선도의 열정적인 종교관은 신라후대를 일변시켰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기술된 왕생담(往生潭)만 하더라도 일서를 이룰 분량과 가치를 지니고 있다.2)
신라말에 전래된 선종(禪宗)이 밀교(密敎)와 혼융되어, '도참사상(圖讖思想)', '풍수지리설(風水地理說)' 등을 형성하였으며, 그 후에 시대를 압도한 선종은 '오교구산(五敎九山)'을 기반으로 고려불교를 지배하여 군림하기에 이르렀다. 그런 와중에 정토신앙은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어 역사의 뒤안길로 스며들어 수면 위로 떠오르지 못하였다.
간간히 엿보이는 정토신앙에 대한 언급은 선종의 우수성을 드러내기 위한 들러리였으며 혹은 천태신앙(天台信仰)의 한 방편이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조선조를 지내고 현대까지 정토사상 내지 정토신앙은 사그라졌지만, 민중의 가슴 속에, 혹은 무식한 아낙네의 치마폭에 휩싸여 전수되어졌다. 물론 고려시대의 백련교도들의 활동이라든가, 조선조의 만일염불회(萬日念佛會) 등은 특기할 만한 사료를 제공해 주기는 하지만 그 이상의 발전은 불가능하였다.
Ⅱ. 정토사상의 내용
1. 정토사상이란 무엇인가
인도에서 비롯된 대승불교(大乘佛敎)는 그대로 중앙아시아를 경유하여 중국, 한국, 일본에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정착하였으나, 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사상조류(思想潮流)의 하나가 바로 정토사상이다. 한국불교에 있어서는 원효(元曉)이래로 신라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고 신앙적으로도, 교학적으로도, 괄목할 만한 사상적 발전을 보였다. 그러나 밀교와 선종이 급진적인 발전을 하고 독점적인 위치를 점하자 정토사상은 후퇴하게 되었고, 주술적인 모습으로 변하게 되었다.
정토사상의 기원에 대하여는 많은 부분이 해명되지 않은 상태이기는 하지만, 1883년에 옥스퍼드 대학의 막스 뮐러 교수와 南條文雄 박사의 공동연구의 성과로서 《무량수경(無量壽經)》과 《아미타경(阿彌陀經)》의 산스크리트 원전이 간행되었으며3), 이것은 정토사상 연구에 획기적인 기여를 하였다. 근래에는 1970년에 동경대학에서 藤田宏達 박사에 의해서, 《원시정토사상의 연구》가 출판됨으로 인해서3), 상당부분이 밝혀지게 되었다.
불교에서 정토사상이 구체적으로 형태를 갖추어서 드러난 것은 대승불교가 흥기한 시대이며, 그것은 정토계(淨土系) 경전군(經典群)이 편찬됨으로써 구체화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정토사상', '정토계 경전군'이라고 하는 것은 아미타불의 극락정토에 관한 사상이나 경전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본래 정토라고 하는 용어는 대승불교 일반에서 쓰이는 술어이며, 아미타불의 극락정토에 한정해서 쓰이는 말은 아니다.
다시 말하자면, 정토란, 시방삼세(十方三世)의 모든 불국토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것이 어느 틈에 아미타불의 극락국토만을 정토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것은 인도의 용수(龍樹), 세친(世親)과, 중국의 담란(曇鸞), 도작(道綽), 선도(善導) 등의 대사상가들과 구마라집(鳩滅什), 현장(玄 ) 등의 역경의 거장들, 신라의 원효(元曉), 경흥(憬興), 의적(義寂), 일본의 법연(法然), 친란(親鸞) 등의 저마다의 지역과 시대를 주도했던 대사상가들에 의해서, 아미타불의 극락정토가 가장 뛰어난 대승불국토로 지칭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실로 거의 모든 대승경전에서 아미타불의 극락정토가 언급되고 있으며, 불교의 궁극적 목표가 왕생극락에 있다고 결론짓고 있는 것은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정토사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용어는, '극락(極樂)'과 '아미타불(阿彌陀佛)'과 '본원(本願)'이다.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을 염불하여 극락정토에 '왕생'하는 것이 정토신앙의 요체이다. 왕생은, 아미타불의 본원에서 비롯되며, 그것은 바로 부처의 본질인 중생을 구제하지 않을 수 없는 동체대비(同體大悲)의 지혜와 자비가, 아미타불의 본원을 통해서 중생에게 회향되어지는 것을 말한다. '나무아미타불'은 본원이라고 하는 약속을 통해 중생에게 베풀어지는 귀한 선물이기도 하다.`나무아미타불'이란 아미타불에게 귀의한다는 말이다. 산스크리트어로는 두 가지로 표현된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Namo - Amitabha = Namas + a + mita + abha
Namo - Amitayus = Namas + a + mita + ayus
Namas는 귀의한다는 말이며, a는 부정의 의미를 지닌 접두사이며, mita는 헤아린다·잰다는 말이다. abha는 광명이며, ayus는 생명수명을 뜻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나무아미타불'이라고 하는 말은, '헤아릴 수 없는 광명에 귀의합니다' '헤아릴 수 없는 생명에 귀의합니다'라고 하는 말이다. 무한광명(無限光明)무량광(無量光)에 귀의하고, 무한생명(無限生命)무량수(無量壽)에 귀의한다고 하는 말은, 다르마 법(法)에 귀의하는 것이며, 진리 그 자체에 귀의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신(身)·구(口)·의(意) 삼업(三業)을 총동원하여 진리 그 자체에 귀의하는 것이 바로 `나무아미타불'이다. 그것을 염불이라고 한다. 《무량수경(無量壽經)》에서는 이 부분을 강조하기 위하여 '불불상념(佛佛相念)'의 개념을 도입하고 있다.4) 불(佛)과 불이 서로 염(念)한다, 부처가 염불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해서 미타삼매(彌陀三昧)에 들어 《무량수경》을 설하셨으며, 무한광명(無限光明)과 하나 되고, 무한생명(無限生命)과 하나 되어 저절로 진리 그 자체와 하나 되어 왕생극락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세속적인 욕망이 개입될 여지는 전혀 없으며, 순수가치만이 존재하며, 순수 신앙의 세계에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정토사상의 창으로 불교를 볼 때에, 불교란 염불(念佛)인 것이다. 나무아미타불만이 불교인 것이다.
2. 정토사상의 所依經典
많은 대승경전 가운데에서 가장 많이 읽히고 연구되어 온 경전은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이다. 정토삼부경이란, 정토경전(淨土經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세 가지 경전을 통틀어 말한 것으로서, 강승개(康僧鎧) 역이라고 전해지는 《불설무량수경(佛說無量壽經)》 2권(大經이라 약칭으로 부르기도 하며, 魏譯이라고도 한다) 강량야사(畺良耶舍) 역이라고 전해지는 《불설관무량수경(佛說觀無量壽經)》 2권(觀經이라 약칭으로 부르기도 한다)구마라집(鳩滅什) 역 《불설아미타경(佛說阿彌陀經)》 1권(小經이라 약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을 말한다.
1) 무량수경
《무량수경》에는 고래로부터 '오존칠결(五存七缺)'이라고 말하여지고 있으며, 도합 12역이 있었다고 전하여진다. 그러나 실제로 열두 번의 번역이 되었는지는 의심스럽다. `오존(五存)'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불설아미타삼야삼불살루불단과도인도경(佛說阿彌陀三耶三佛薩樓佛檀過度人道經)》 2권
일반적으로 《대아미타경(大阿彌陀經)》이라고 불려진다. 후한의 지루가참(支Ψ迦讖)이 번역했다는 설이 전해진다. 222년, 혹은 223∼228, 또는 253년에 번역되었다고 한다.
② 《무량청정평등각경(無量淸淨平等覺經)》 4권《평등각경(平等覺經)》이라고 약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후한의 지루가참이 번역하였다고도 하며, 위(魏)의 백연(帛延)이 번역했다는 설도 있으며, 서진(西晋)의 축법호(竺法護)가 번역했다는 설도 있다. 258년경에 번역되었다고 한다.
③ 《불설무량수경(佛說無量壽經)》 2권
《대경(大經)》, 혹은 《위역(魏譯)》이라고 약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중국한국일본에서 가장 많이 유포된 경전이며, 일반적으로 《무량수경》이라고 할 때에는 이 경전을 가리킨다. 중국의 사상가들이나 한국의 사상가들과 일본의 사상가들도 거의 모두가 이것을 바탕으로 하여 정토사상을 피력하였으며, 정토신앙을 고취시켰다. 위(魏)의 강승개(康僧鎧)가 252년에 번역한 것으로 전하여진다. 그러나 근래의 연구 보고에서는 조심스럽게 동진의 불타발타라(覺賢)와 유송(劉宋)의 보운(寶雲)과 공동 번역이 아닌가 하고 추정되어지고 있으며, 그렇다면 421년에 번역되었다고 추정된다. 한편으로는 서진의 축법호(竺法護)가 308년에 번역했다고 하는 설도 있다.
④ 《무량수여래회(無量壽如來會)》 2권
《대보적경(大寶積經)》 권 1718. 《여래회(如來會)》라고 약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당의 보리 유지(普提流志)가 706년에서 713년에 걸쳐서 번역하였다.
⑤ 《대무량수장엄경(大無量壽莊嚴經)》 3권
송(宋)의 법현(法賢)이 991년에 번역하였다.
《무량수경》의 산스크리트 원전은 이제까지 50부 이상의 사본이 발견되었으며, 현재 다섯 종의 원전이 간행되었다. 그것은 모두 네팔 사본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원전과 한역된 원전을 비교하여 대조해 보면, 한역 가운데에서는 《무량수경여래회(無量壽經如來會)》와 가장 가깝다. 한편 티베트말로 된 번역본도 <티베트 대장경> 가운데에 수록되어 있으나, 이것은 8세기 초에 번역된 것이며, 산스크리트 원전과 거의 내용이 같다.《무량수경》은 정토사상의 모든 근거를 제시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에서 가장 많이 유포된 위역(魏譯)의 《무량수경》의 내용을 살펴보기로 한다.
《무량수경》은 상하 양권으로 되어 있다. 상권은 여래정토(如來淨土)의 인과(因果)를 설하고 있으며, 하권은 중생왕생(衆生往生)의 인과를 설하고 있다. 여래정토의 인(因)은 48원이며, 과(果)는 극락정토이다. 중생왕생의 인은 염불이며, 과는 왕생극락이다. 이것은 신라의 원효성사(元曉聖師)와 경흥대사(憬興大師)의 주석서에 잘 드러나 있으며, 이후에 이어진 한중일의 정토사상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무량수경》은 마가다국의 교외에 있는 영취산에서 많은 장로격의 대제자들과 보현, 문수 등의 대보살들을 위시한 많은 대중 앞에서 아난다(阿難) 존자의 물음에 응답하는 형식으로 설하여졌다. 그 중심사상은 아미타불의 본원에 있다. 구원의 과거에 정광불(錠光佛)이 이 세상에 출현하시어 한없는 중생을 제도하여 해탈에 들게 한 연후에 조용히 열반에 드시었다. 이어서 53불이 차례차례로 출현5)하시어 중생을 제도하여 열반에 드시었다. 마지막으로 출현하신 부처님이 세자재왕불(世自在王佛)이었다. 이때에 한 국왕이 모든 명예와 재산을 버리고 출가하였으니, 그가 바로 법장(法藏)비구이다. 본경에서는 54불이 출현하지만, 다른 번역본들에 의하면 반드시 일정하지만은 않다. 혹은 34불이 출현하기도 하며, 많게는 81불이 언급되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는 제불(諸佛)의 숫자가 아니라 그 내용이다. 영원의 옛날, 태초로부터 오랜 시간을 걸쳐서 수많은 부처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진리 그 자체의 드러남이다. 마치 헤아릴 수 없이 엄청난 물을 머금은 샘이 저 깊은 산속 골짜기에서부터 시작되면서, 계속하여 모든 살아 있는 것에 대한 자비심으로 충만한 엄청난 힘(如來의 위신력 = Tathagatasya - anuvabha)으로 능동적으로 온 누리에 작용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과거의 수많은 제불이 불불상염(佛佛相念)하여 석존의 배후에서 다르마의 근거로서 존재하고 있으며, 석존을 통하여 다르마가 시방삼세(十方三世)의 모든 중생들에게 연설되어지는 것이다. 그것을 설법이라고 한다.
그리고 불불상념의 근거는 본원에 있는 것이다. 법장 비구는 세자재왕 여래를 통하여 210억의 불국토의 장엄6)을 관찰하였으며, 오겁사유(五劫思惟)를 거친 연후에 48원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중생을 향한 약속이며, 그 약속은 아미타불의 성불이란 형태로 이행되었다. 그리고 극락정토는 완성되었다.
제불보살(諸佛菩薩)의 본원을 관찰해 보면, 일관되게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下化衆生)의 정신을 저변에 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가운데서도 제불이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은 하화중생이다. 이제 아미타불이 극락정토를 준비하신 것도, 오로지 정토에 중생을 맞이하기 위한 것이다. 법장보살(法藏菩薩)은 전념염불(專念念佛)하는 사람들을 남김없이 모두 정토에 맞이하겠다고 약속하였으며, 이 약속[願]을 성취하기 위하여 조재영겁(兆載永劫)에 걸친 수행을 쌓았으며, 수행의 공덕을 모두 중생들에게 회향하신 것이다. 우리들은 오탁악세(五濁惡世)에 태어나 말법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아미타불의 서원에 의탁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아미타불은 스스로 '아건초세원(我建超世願)'이라 선언하셨지만, 이렇게 간절하게 거듭 거듭 약속을 확인하면서 본원을 세운 부처는 달리 찾을 수 없다.
"모든 중생이 그 이름을 들어 지심(至心)·신락(信樂)·욕생(欲生)의 타력삼신(他力三信)을 얻어 나무아미타불이라고 염불하거나, 그렇게 열 번 하는 사람이 극락정토에 왕생하지 못한다면, 나는 부처되지 않으리."(제18원)라고 굳은 약속을 했으며, 그 약속은 성취되었다. 또 경 가운데에, "아미타불의 본원력은, 중생이 그 이름을 들어 왕생하고자 바란다면, 누구든지 모두 극락정토에 왕생하여 스스로 불퇴전에 이르게 하리라." 하고 또 강조하고 있지만, 이것은 본원력의 불가사의함을 드러내 보이는 말이다.
하권의 후반부에서는 대고중(對告衆)이 미륵으로 바뀌면서 이 경의 유통을 부촉하신다. 부처님께서 미륵에게 말씀하셨다. "저 아미타불의 명호를 들어서 환희용약하며 일념으로 염불하는 사람은 큰 이익을 얻게 되리라. 이들은 무상의 공덕을 구족하게 되는 것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하고 설해지고 있지만, 이것은 부처님께서 마지막으로 미륵보살에게 이 경전을 부촉하시는 자리에서까지 염불의 공덕이 매우 뛰어남을 명백하게 드러내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2) 관무량수경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은 흔히 '왕사성의 비극'이라고도 불려진다. 이 경은 그 첫 부분에 '송(宋)의 원가년중(元嘉年中)에 강량야사(畺良耶舍)가 번역하다.'라고 되어 있다. 송이라고 하는 나라는 중국 역사상 두 번 있었다. 하나는 수, 당, 오대, 그 다음에 일어난 송나라가 있고, 또 하나는 그보다도 훨씬 이전 남북조 시대에 생긴, 유(劉) 무제(武帝)가 양자강 남쪽 건업(建業)에 도읍을 정하고 세운 송 나라가 있다. 이것을 유송(劉宋)이라고도 한다. 여기서는 후자를 가리킨다. 그 시대에 서역에서 강량야사라고 하는 사람이 송(宋)을 찾아 왔으며, 종남산의 도림정사에 살면서 이 경을 번역하였다고 전하여진다.
인도에서 전래된 경전들은 거의 두 가지 이상의 이역(異譯)이 있지만, 이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은 한 가지 번역밖에 없다. 물론 인도말로 된 원전도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 경은 역사사상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경이다.
《관무량수경》이라는 제목은, 본래의 이름을 '관극락국토무량수불관세음보살대세지보살(觀極樂國土無量壽佛觀世音菩薩大勢至菩薩)'이라고 한다. 이것을 줄여서 《관무량수경》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 경의 이름의 내용은 극락 국토의 장엄과 그 나라에 계시는 무량수불(아미타 부처님)과 좌우에서 부처님을 보좌하고 계시는 관음(觀音)세지(勢至)의 양대 보살을 `관(觀)'하는 경이라는 말이다.
'관'한다고 하는 말에는 `관견(觀見)'과 `관지(觀知)'의 두 가지 뜻이 있다. '관견'이란, 극락 정토의 아름답고도 불가사의한 장엄을 마음 속에 그려 보는 것을 말하며, '관지'란, 아미타 부처님께 귀의하는 절대 신심을 말한다.왕사성의 비극이라고 불려지는 연유는, 이 경의 첫머리에 태자 아자타삿투가 그 아버지를 가두고 어머니마저 가두어 버리고, 감옥에 갇힌 어머니가 부처님을 부르는 장면이, 현대에도 있을 수 있는 비극적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아자타삿투가 그런 끔찍한 사건을 왜 일으켰는지에 대하여 《경(經)》에서는 말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 먼저 그런 비극이 발생하게 된 배경을 《아자세왕국경》을 비롯하여 여러 경전에 언급되어 있는 것을 발췌(拔 )하도록 하자.
마가다국의 왕인 빈비사라왕은 어진 정치를 펴고 국민의 절대적인 신망을 받고 있는 왕이었다. 부처님께 귀의하여 항상 진리에 접하였으며, 곁에는 언제나 아름답고 총명한 왕비 위제희 부인이 있었다. 이 세상에 행복이라고 이름 지을 수 있는 것은 모두 갖추고 있었다. 단 한 가지 나이가 이미 50줄에 들어섰는데도 불구하고 아직 슬하에 아들이 없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었다. 그래서 하루는 점치는 사람을 불러 점치게 하였더니, "안심하십시오. 반드시 왕자를 얻게 됩니다. 저 건너 산에서 수행하고 있는 선인이 있는데, 그 선인의 수명이 다하면 부인의 몸에 왕자로 잉태될 것입니다. 그것은 앞으로 3년 후의 일입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대단히 기뻐하였지만, 그 아이가 태어나는 것은 앞으로 3년이나 지나야 한다는데, 그것은 너무나 긴 시간이었다.
더구나 더 다급한 것은 부인이었다. 이제 40이 넘고 여성으로서의 매력도 한물 가버린 지금, 3년을 기다린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여러 모로 생각한 끝에 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삼년 후에 아이를 갖게 된다는 것은 선인이 앞으로 3년을 더 산다고 하는 말이지요. 그 말은 바꿔 말해서 그 선인이 죽기만 하면 곧 태자로 태어나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 선인도 나이 들어 그렇게 서글프게 사는 것 보다는 하루라도 빨리 태자로 태어나는 편이 훨씬 나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참으로 무서운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왕은 곧 사신를 보내서 그 선인을 죽였다. 그러나 아무리 선인이라고 하더라도 목숨이 아깝지 않은 사람은 없다. 죽음에 임해서 그 선인은 원한을 품고 반드시 두 사람에게 원수를 갚을 것을 다짐하였다.그런 저런 일이 있은 다음 달에 부인은 아이를 갖게 되었다. 위제희 부인이 아이를 갖게 되었다는 소식은 금방 온 성안에 퍼졌다. 왕을 비롯하여 온 국민이 모두 기뻐하였으며, 그렇게 세월은 흘러 갔다. 이윽고 산달이 다가오자 왕은 다시 점을 치도록 하였다. 점치는 사람은 점괘를 보고는 안색을 바꾸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분명히 왕자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이 아이는 두 분을 몹시 원망하고 있으며, 성인이 된 다음에 반드시 두 분에게 복수할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왕과 왕비는 매우 두려워하였다. 잔인하게도 자기네의 행복을 위해 무고한 선인을 죽인 일이 있으며, 그 선인이 죽음에 임해서 복수하겠다고 다짐했던 일이 생생하게 떠오른 것이었다. 그로부터는 매일 밤마다 그 선인이 꿈에 나타나서는 무서운 형상을 하고서 복수하겠다고 소리치는 것이었다.
왕과 왕비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다시 무서운 계획을 세웠다. 산실을 높은 누각에다 마련하고 그 밑에 칼을 빽빽히 세우고서 아이를 낳아 떨어뜨렸다. 참으로 끔찍한 일을 실천에 옮긴 것이었다.그러나 아이는 죽지 않았다. 새끼손가락 하나만 잘리고 기적적으로 살았다.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고, 그 울음 소리를 들은 왕비는 모성이 살아나 그 아이를 키우게 되었다. 아이는 예쁘게 자랐으며, 어느덧 왕도 왕비도 끔찍한 일들은 말끔히 잊어버리고, 태자는 어엿한 성인이 되도록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 성인이 된 태자는 총명하였으며, 부모를 존경하고 따랐다.여기에 조달(調達=提婆達多, Devadatta)이 등장한다. 조달은 부처님의 사촌 동생이며, 대단히 뛰어난 수행자였다. 그러나 부처님의 교단을 탐내고 분열을 조장했던 악인이다.
그가 아자타삿투를 현혹시키고, 과거에 두 번이나 자신을 죽이려 하였던 사실을 환기시키면서 쿠데타를 일으키도록 종용하였다. 그래서 아버지를 가두고 그 아버지를 살리려고 애쓰는 어머니마저 감옥에 가두게 된 것이다. 《관무량수경》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자기의 잘못은 깊이 뉘우치지 못하고, 순전히 남의 탓만 하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여성 위제희 부인을 통해서, 불교의 깊은 신앙의 세계를 열어 보인 경전이 바로 이 《관무량수경》이다.이 경전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는데, 그 첫째는 악인을 구제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악인이란, 진실을 구하면서도 진실과 거리가 멀고, 선을 가까이하려 하지만 선할 수 없는, 영겁의 시간과 공간에서, 죄업이 막중한 범부 중생을 말하는 것이다.
최저최하의 열악한 악인 범부이기는 하지만, 현실생활 가운데서는 왕비라고 하는 최고의 지위에 있는 위제희 부인이 바로 그런 악인의 전형적인 모습이지만, 그런 악인이야말로 아미타 부처님의 구제 대상이라고 하는 것이다. 두 번째 특징은 여인성불(女人成佛)이다. 이 부분에 대하여는 후대의 사상가들에 의하여 많은 논란이 있었다.
3) 아미타경
《불설아미타경》은 5세기 초에 구마라집이 번역하였다. 그밖에도 현장이 650년에 번역한 《칭찬정토불섭수경(稱讚淨土佛攝受經)》 1권이 있다. 산스크리트 원전과 티베트어 번역본도 현존한다. 산스크리트 원전은 앞에서 소개했던 영국의 종교학자 막스 뮐러와 南條文雄이 공동 출판한 교정본이 1883년에 발표되었다.7) 산스크리트 원전은 《불설아미타경》과 거의 일치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유포되어 알려진 것도 이 《아미타경》이다.
《아미타경》은 극락정토에 있어서의 여러 가지 공덕장엄을 설하고 있다. 이러한 공덕장엄은 국토, 의복, 음식, 그리고 육체나 정신에까지 미치고 있다. 이렇게 공덕장엄을 널리 설하는 이유는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극락정토에 왕생하고자 하는 마음을 내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을 원요(願樂)라고 한다. 또 한편으로는 중생의 업인 작은 선근(善根)으로는 왕생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하루 내지 이레 동안 염불한다면 반드시 왕생할 수 있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그러나 중생이 이것을 믿기는 매우 어렵다. 그래서 육방의 항하사제불(恒河沙諸佛)이 광장설(廣長舌)을 내어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덮으면서 증명하고 있으며, 경계하고 있다.
그리고 석존을 향하여, "매우 하기 어려운 일을 하셨다."고 찬탄하고 있음은 매우 희유한 일이다. 이 부분을 선도는 다음과 같이 단언하고 있다. "이 증명에 의해 중생이 왕생할 수 없다면 육방여래의 광장설은 한 번 입에서 나온 다음에 다시는 입으로 돌아오지 않아 그 혀는 썩어버릴 것이다." 얼마나 자신에 찬 믿음의 선언인가를 알 수가 있는 말이다. 바꿔 말해서, 왕생극락을 의심하는 것은 육방의 항하사제불의 말씀을 의심하는 것이 되며, 왕생극락을 믿는 것은 미타의 본원을 믿는 것이다. 미타의 본원을 믿는 것은 석존의 말씀을 믿는 것이며, 석존의 말씀을 믿는 것은 육방의 항하사제불의 말씀을 믿는 것이다.
《아미타경》은 믿음에 관해서 많은 시사를 하고 있지만, 육방의 항하사제불의 증명이 클라이막스가 된다. "이 오탁악세에서 모든 중생을 위하여 일체세간난신지법(一切世間難信之法)을 설하는 것은 심난희유한 일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도저히 믿기지 않은 매우 어렵고도 있기 어려운 일을 석존께서는 하셨고, 이 일은 육방제불마저도 찬탄하지 않을 수 없는 불가사의한 본원력에 근거하고 있음을 신지(信知)해야 한다.마지막으로 《아미타경》은 '구회일처(俱會一處)'의 사상을 가지고 화합정신을 도모하고 있다. 모든 중생이 마침내는 극락정토에서 모두 함께 만남을 성취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매우 깊은 사색이 요구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Ⅲ. 정토사상의 두 가지 흐름
불교에 있어서 궁극적인 목표는 성불이다. 성불이란 중생이 스스로 주체적으로 부처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중생에게 부처가 될 가능성이 갖추어져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중생 자신이 스스로 '불성적 존재(佛性的 存在)이다'라는 것을 자각하는 것이다. 그러한 대전제에도 불구하고 정토교의 흐름은 '불성적 존재가 아닌 자기자신'에 대한 자각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그 특징이다. 중국에 있어서의 담란, 도작, 선도의 사상체계가 그러하며, 한국에 있어서의 원효, 일본의 법연친란의 사상체계가 그러하다.
일찍이 도작은, 《안락집(安樂集)》 가운데에서 불교를 크게 둘로 나누어서 '성도문(聖道門)'과 '정토문(淨土門)'이 있다고 규정했다. 말하자면, 전자는 성도문이요, 후자는 정토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8) 《大正藏》 第47卷, p.4a. 그러나 정토교라 하더라도 반드시 불성적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여산( 山)의 혜원(慧遠)도 정영사(淨影寺)의 혜원도, 또한 가상 길장(嘉祥吉藏)이나 천태 지의(天台智 )에 있어서의 정토사상도 불성적 존재를 부정하고 있지 않다.
천태의 상행삼매(常行三昧)는 불성적 존재를 자각하기 위한 염불행이다. 여기서 말하는 염불은 자력의 수행이며 깨달음을 얻기 위한 방편이었다. 이렇게 정토교 내지 정토사상에도 크게 두 개의 흐름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자력적인 정토사상과 타력적인 정토사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엘리트 집단의 정토교와 범부구제(凡夫救濟)의 정토교라고 하는 입장으로도 구별할 수가 있다.
초창기의 중국불교에 있어서 정토사상에 관심을 보여 정토왕생을 원했던 사람들은 궐공칙(蹶公則, ∼265∼)승현(僧顯, ∼318∼)지둔(支遁, 327∼402) 등을 들 수가 있지만, 뒤에 중국 정토교의 시조가 된 것은 여산의 혜원(慧遠, 344∼413, 또는 350∼409)이다. 종효(宗曉)의 《낙방문류(樂邦文類)》(1199) 권3의 <연사시조여산원법사전(蓮社始祖 山遠法師傳)>에서는 혜원을 정토교의 시조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이어서 <연사계조오대법사전(蓮社繼祖五代法師傳)>에서는 혜원을 이은 정토교의 계보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一曰 善導師, 二曰 法照師, 三曰 少康師, 四曰 省常師, 五曰 宗師8)
이것을 받아 지반(志磐)의 《불조통기(佛祖統紀)》(1269년) 권26의 <정토립교지(淨土立敎志)>에서는, 혜원(慧遠)―선도(善導)―승원(承遠)―법조(法照)―소강(少康)―연수(延壽)―성상(省常)이라고 정토교의 계보를 밝히고 있다.9) 지반은 종효(宗曉)의 6조설을 계승하면서 법조의 스승 승원(712∼802)을 덧붙여 다시 선정융합사상(禪定融合思想)을 주장한 영명 연수(永明延壽, 904∼975)를 덧붙이고 있지만, 종효와 큰 차이는 없다.
후대의 정토교의 계보를 보이는 자료도 똑같은 경향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이 주장은 문제 의식이 결여되어 있다고 생각되어진다. 앞에서도 말했던 것처럼 같은 정토사상이라 하더라도 커다란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혜원과 선도를 일직선상에 두었다고 하는 것은, 그 내용을 보지 않고 모양만을 취함에 지나지 않는다.가재(迦才:生沒年代未詳, 七世紀後半에 活動)는 그의 저술인 《정토론(淨土論)》의 첫 머리에 다음과 같이 비판하고 있다. 상고(上古)의 선장(先匠)인 원법사(遠法師)사령운(謝靈運) 등 모두 서경(西境)을 기(期)한다고 하더라도 마침내 홀로 일신을 좋게 할 뿐이다. 후의 학자는 승습(承習)할 바가 없다.10)
불교에서는 특히 대승불교에서는, '자리이타(自利利他)' '자타일시성불도(自他一時成佛道)' '자미득도선도타(自未得度先度他)'라고 하는 대명제를 제외하고서 말할 수 없다. 이 대승불교의 근원을 정토교 내지 정토사상을 통해서 받아들이고, 악인범부의 자각으로서 불성적 존재가 아닌 자기자신을 바라보며 절망하면서도 더욱 중생구제에 몸을 내던진 선각자들에 대하여 우리는 주목해야 할 것이다.
Ⅳ. 정토의 세계
정토란 크게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되어진다. 하나는 '청정한 국토' 혹은 '정화된 국토'라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국토를 청정하게 한다'라는 뜻이다.
정토란 의미의 용어는 모든 대승경전에서 사용된다. 심지어는 '아미타(阿彌陀)'란 말과 `극락(極樂)'이라는 용어가 거의 언급되지 않는 '반야계(般若系)' 경전군에서도 정토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가 상당한 비중을 두고 사용되고 있다. 정토는 대승불교에 있어서 공통된 과제이며, 동시에 정토의 개념을 제외하고서는 대승불교가 성립 불가능하게 된다.
'정토'란 '정불국토(淨佛國土)'란 말이다. 많은 대승경전에서 사용되는 '정토'의 개념은 '정불국토'를 상정하여 언급되며, 또는 직접 '정불국토', '청정불국토' 등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구라마집 역의 《유마경(維摩經)》 권1 <불국품(佛國品)>에서 사용된 `정토'란 용어는 20회나 되며, 그 가운데서 3회는 '정불국토(buddhaksetra - parisuddhi)'란 원어에 대한 번역이며, 나머지 17회는 단순히 '불국토(buddhaksetra)'란 말을 `정토'라고 한역한 것이다. 이 `불국토'는 그 의미내용으로 볼 때에 `정화된 국토' 혹은 `청정한 국토'를 뜻하는 말이 분명하다. 한역에서 표현된 '직심시보살정토(直心是菩薩淨土)'란 말은, '직심의 국토(asayaksetra)는 보살의 불국토(buddhaksetra)이다.'에 대한 한역이다. 이것은 말할 것도 없이 `정불국토'의 의미내용을 가진 '정토'의 뜻이기에 구마라집의 번역을 오히려 타당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토에 관한 묘사는 앞서 말한 '반야계' 경전군을 비롯하여 많은 대승경전에서 구체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곳은 또한 '불국토'이기에 우리들이 흔히 생각하기 쉬운 이상세계와는 그 성격을 달리하고 있다. 거기에 '생(生)'하는 사람은 모두가 불타와 동격이며, 따라서 지배하는 왕과 지배받는 국민이라는 개념은 애당초 없다. 수명이 무량하니 윤회하지 않으며, 대승의 청정불국토이기에 오욕과 삼독이 없으며, 사견(邪見)과 이승(二乘)이란 이름조차 없다. 이러한 불국토를 중국에서는 구마라집 이후 '정토'란 용어로 표현하였고, 신라에서도 또한 주로 `정토'라는 용어를 불국토라는 의미로 사용하였다.
대승불교에 있어서는 현재타방불의 존재를 인정하며, '정불국토'가 공간적으로 많이 존재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물론 《유마경》에서 말하는 그 유명한 '심정토정설(心淨土淨說)'을 무시할 수는 없다. 말하자면 <불국품>에 "만약 보살이 정토를 얻으려거든 그 마음을 맑게 하라. 그 마음이 맑게 됨에 따라 불토도 맑게 된다."라고 되어 있는 것이 그것이다. 이것을 사상적으로 고찰하여 해석하여 볼 때, 정토를 무형적인 것으로 정의하려는 표현으로 받아들일 수가 있으며, '마음을 맑게 하면 바로 그곳이 정불국토'라는 의미로 집약시킬 수 있다. 이것은 앞서 말한 '정토의 두 가지 의미' 가운데 두 번째인 `국토를 청정하게 한다'는 쪽의 해석인데, 《유마경》에서는 곧이어 사리불과 나계범왕의 문답이 나오고, 나계범왕이 "석가모니 불국토의 청정함이 마치 자재천궁과 같다."고 하자, 석존은 그것을 실증하여 보였다. 이것은 정불국토가 유형적인 것으로 묘사된 구체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정토는 '심정토정설'에서와 같이 그 마음을 위주로 한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것으로 수용될 수도 있으나, 결국은 중생에게 전달되기 위해서 유형적이고 구체적인 것으로 묘사되지 않으면 안 되었고, 정불국토사상은 유형적인 정토를 상정하는 사상일 수밖에 없다. 이것은, 대승불교사상의 근간이 현재 타방불사상(他方佛思想)에 있으며, 그 교리적인 근거가 타방불국토(他方佛國土)라는 공간적인 차원에서 논의되는 한, 당연한 귀결이 아닐 수 없다.
불국토를 공간적으로 설정한다는 것은 이미 유형적인 세계의 묘사를 의미하며, 그러한 세계를 정화한다는 것도 유형적인 것으로 수반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서 정불국토의 사상은 유형적인 정토를 상정하는 사상으로 받아들여져야 할 필연적인 요청이 형성되는 것이다.
극락정토의 개념은 이러한 정불국토사상을 배경으로 해서 성립하였다. 그리고 극락정토는 모든 대승불교의 정토관의 전형(典型)으로 되었다.위와 같은 유형적이고 감각적이고 구체적인 표현으로 인하여, 대승불교의 정불국토사상은 누구나 가까이 할 수 있고, 파악하기 쉬운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으며, 종교적인 실천 대상으로서도 피부에 와 닿을 수 있게 되었다.
원효가 추구했던 정토는 본원진실의 세계인 '극락'이다. '정토사상', `정토신앙'이라는 말은 이 극락정토에 왕생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가 된다. 왕생의 근거는 아미타불의 48원에 있다. 중생의 입장에서 정토신앙이 성립하기 위하여는 '본원'이 있어야 하고, '아미타불'이 있어야 하고 '극락'이 있어야 한다. 극락은 《아미타경》에서의 아름다운 묘사로 꾸며지는 장엄이 갖추어져 있으며, 아미타불의 무진법문이 펼쳐져야 하며, 그 모든 근거는 `본원'에 있다.정토의 본질을 명확히 파악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정토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면 왕생 그 자체가 근거를 상실하게 되어 버린다. 그래서 정토를 다시 살펴보면 '정토는 예토가 아니다.'라고 하는 지극히 상식적인 데에 이르게 된다. 그야 당연히 정토는 예토가 아니다. 그런데 정토를 관념화할 때 흔히 저지르는 오류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토는 예토와 같이 생사의 세계가 아니다. 따라서 정토에 태어난다고 하는 것은 성립하지 않는다. 정토가 진실로 정토이기 위하여는 생사를 초월해야 한다. 그러면서 정토왕생을 거론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따라서 왕생은 '무생(無生)'이며, '무생의 생'이 왕생이다. 여기에는 중생의 분별지에서 말하는 '태어난다'라는 개념은 일체 부정된다.원효는 다음과 같이 갈파하고 있다.
정토란 모두가 여래의 원과 행이 이루는 바이며, 저 정토에 생하는 자의 자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예토 등의 기세계가 오직 중생의 공업(共業)만으로 이루어지는 것과 같지 아니하다. 이런 까닭으로 통칭하여 청정토라고 이름하는 것이다.《無量壽經宗要》
자력을 부정하고 여래의 원(願)과 행(行)을 부각시키고 있는 점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Ⅴ. 본원진실의 세계
역사란, 그것이 아무리 좋은 역사라 할지라도 언제나 뭔가 시체와 같은 마치 묘지에서 나는 냄새를 풍긴다(괴테의 말이라고 기억하지만). 원효의 시대를 향해 사방에서 풍겨오는 묘지의 냄새, 그것이 원효로 하여금 역사를 새로이 보게 하였던 원동력이 된 것이다. 백제의 공격으로 마을이 타고 사람들이 죽었으며, 그나마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슬픔과 아픔이 남겨졌다. 문화나 과학면에서 그 시대보다 훨씬 앞선 오늘날일지라도 사정은 비슷할 것이다. 지금도 캄보디아, 유고슬라비아 등 전쟁의 아픔에 시달리고 있는 곳이 지구상에는 많다. 지금 우리가 전쟁에 시달리고 있지 않더라도 매일 신문의 사회면을 장식하는 살인, 방화, 교통사고, 뺑소니, 산업재해, 지도자급 인사들의 비양심적 범죄행위 등등 이루 말할 수조차 없이 많은 묘지를 보고 시체가 썩어가는 냄새를 맡는다. 원효가 밤새 잠 못 이루고 시달렸던 묘지의 냄새는 바로 우리의 이야기가 아닌가.
인류의 역사는 문화적으로 진보발전한다고 하지만, 이런 생생한 현실을 보면서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그런데 많은 수의 사람들이 의심조차 하지 않는다. 그저 맹목적으로 발전이라 생각하고는 행여 뒤질세라 수레바퀴의 안쪽을 부지런히 돌고 있다. 수천 년 동안 보고 듣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초등학생이 여름방학을 보내듯이 부지런히 흘러왔었다. 여러 가지 발명으로 인한 발전, 그럴 듯한 문화와 종교와 철학을 지니면서도 그 내면으로 시선을 돌리려하지 않고 표면에서만 맴돌았다. 그 표면에다가 껍데기까지 씌워놓았다. 수박 겉핥기는 그래도 수박이라도 만진다. 거기에다가 라카칠을 하고서는 만족해 한다. 마치 보지도 않을 껍데기만 번지르르한 책으로 장식된 넋 나간 사람의 거실을 보는 것과 다름이 없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인류에게 신선한 광명을 비춘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진지하고 겸허하게 보는 것이다. 그것을 여실지견(如實知見)이라고도 하지만, 보는 데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불교의 실천덕목은 팔정도에서 비롯되는데 그 첫번째가 정견이다. 그리고 정사유로 이어지는 것이다. 맹목적으로 쳇바퀴를 도는 것이 아니라 실로 진지하게, 진실로 겸허하게 관찰하여야 한다. 그래서 문제를 제기하여야 한다. 인류에게 광명을 비추는 것은 결코 대중운동이라든가 그런 류의 것이 아니라 진지하고 겸허하게 보는 데에 있는 것이다. 보는 것은 지혜이며, 지혜는 자비에 바탕을 두어야 하고, 무한한 자비에 바탕을 두지 않은 지혜는 진정한 지혜가 아니다. 이렇게 보는 것을 '관자재(觀自在)'라 하는 것이다.
관자재는 객관적으로 사물을 보는 것이 아니다. 사물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서양의 지혜와 불교의 지혜는 여기서 그 개념을 달리한다. 객관적인 실험과 관찰, 이것이 서양이라면, 불교는 주관적인 실험과 관찰이다. 예를 들면, 어느 고찰에 낡은 범종이 있다. 이것을 분석하고 관찰하는데, 그 구성비율이 구리가 몇 %이고 주석이 얼마이고 납과 인 등 기타 어떤 성분으로 되어 있으며, 다시 크기와 경도, 공명의 조건 등을 정확히 관찰하여 보고서를 작성하였다. 그것도 훌륭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우리가 진실을 본 것은 아니다. 이것이 서양의 지혜이다. 냉철하고 명쾌하다. 이것이 인류를 발전시킨 원동력이다. 그러나 불교는 그렇지 않다. 그것이라면 앞에서 말한 초등학생의 여름방학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다시 지루하게 역사의 쳇바퀴를 돌아야 한다.
범종이 한 번 울리면 그 소리는 골짜기를 울리고 마을을 스친다. 울리고 스치는 그 종소리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훈훈하게 하였는가. 아픔을 달래며 같이 아파했고, 슬픔을 어루만지며 같이 슬퍼하였다. 사람과 종은 하나가 되어 자연 그대로가 된다. 모든 수식과 장식을 떼어버리고, 모든 유위를 떨치고 무위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불교의 지혜이다. 불교의 관찰이다. 더 쉬운 예를 들어보자.
여기 수재민이 있다. 엄청난 피해를 입은 수재민이다. 재산도 다 떠내려가고, 일가 친척이 모두 피해를 입은 데다가 남편도 죽고 자식도 죽었다. 그 현실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것은 서양의 지혜다. 그것을 나의 아픔으로 관찰하는 것이 불교의 지혜인 것이다. 아니 오히려 더 아파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인식주관이 대상을 객관화하지 않고 대상 그 자체가 되는 것은 자비 없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관자재는 무한한 자비와 무한한 지혜이어야 하는 것이다.
원효가 얻었던 것은 바로 이것이다. 진정 얻으려 하거든 먼저 버려야 한다는 것, 그리고 버린 다음에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버릴 것은 다람쥐 바퀴 돌듯이 돌아가는 상식, 윤리, 계율, 깨달음이며 선택하는 것은 오직 여래본원에 대한 신심인 것이다. 그래서 원효는 중생을 구제한다는 입장이 아니라 중생과 하나가 될 수 있었고, 계율을 지키고 안 지키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인위적이고 유위적인 상식이나 윤리, 도덕은 인간을 구제하지 못한다. 구제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겠지만, 그것은 수레바퀴의 다른 한쪽일 따름이다. 더욱이 기도나 주문 따위로 현세의 안락을 구한다는 것이 얼마나 덧없는 일인지 진지하고 겸허하게 보아야 한다.원효에게 구도자의 길로 나아가게 하였던 원동력은 자비와 지혜의 자각이다. 시체의 냄새가 풍기는 것을 고약하다고 피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시체의 냄새로 받아들일 수 있는 자비가 있었기에, 그 악취 삼독번뇌를 통해서 지혜가 샘솟는 것이다. 그래서 점잖고 위엄 있는 원효대사를 버리고, 중생과 하나일 수 있는 복성(卜性) 거사를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시체의 냄새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시체일 수 있고 시체의 냄새일 수 있어야 한다. 악인을 악인이라 손가락질하고 `심판' 하는 것은 불교가 아니며, 불자의 갈길이 아니다. 그 악인의 아픔을 같이 아파할 수 있는 진지함과 겸허함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나는 더한 악인이지만 선인인 척하는 위선자일 따름이다.'라고 나의 내면을 비춰볼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참회해야 한다. 원효에게는 무엇보다도 이 참회할 수 있는 용기가 있었다. 그것을 원효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지금도 우리들은 이 유일하고 진실한 삼보의 세계에 있다. 어떤 죄악도 더러움도 없는 세계에 있으면서도 귀머거리나 장님처럼 그 아름다운 세계를 보지도 듣지도 못하고 있다. 부처의 생명이 작용하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스스로의 무명으로 인하여 사물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밖으로 객관세계를 만들고 있으며, 나다 혹은 나의 것이다 하고 집착하여 온갖 업을 만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스스로 부처의 생명을 덮어버리고 진실을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것은 마치 아귀가 강을 보고 불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그런 까닭에 이제 부처님 앞에 깊이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일으켜 발보리심하고 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참회해야 한다. 나와 중생은 다 함께 무한한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무명에 취해서 그 지은 죄가 헤아릴 수 없다. 오역, 십악에 이르기까지 짓지 아니한 것이 없다. 스스로 지을 뿐 아니라, 그것을 남이 하도록 하여 놓고, 사람의 죄악을 헐뜯으며 기뻐하였다. 이렇게 해서 지은 죄를 어찌 다 헤아리겠는가. 그것은 모든 부처와 성자들이 모두 알고 있다. 이미 지은 죄는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아직 짓지 아니 했거든 지으려 하지 말아야 한다. 《大乘六情黎悔》
남에게 '나쁜 짓 하지 말라.'라고 할 게 아니라, 자기자신에게 '나는 나쁜 짓만 골라 했던 악인이었다.'고 나무라며 스스로 안으로 부끄러워하고, 밖으로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일으켜 참회할 수 있는 용기는 마치 《금광명경(金光明經)》 <사신품(捨身品)>에 나오는 마하살타(摩 薩 왕자의 용기와 같은 것이다.
원효는 스스로 중생임을 자각했다. 그것도 '하지하(下之下)'의 극악무도한 '복성(卜性)' 중생임을 자각하였다. 그리고 절망하며 방황하였다. 몇 번이고 '나는 대원효이다. 성자원효이다.' 라고 외치며 달아났지만, 원효의 절망은 더 깊어지기만 하였다. 그 절망은 모든 것을 포기하게 하였으며, 버릴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을 과감하게 버린 그 순간 원효는 자연이 되었고, 우주가 되었고, 중중무진연기(重重無盡緣起)가 되었다. 그리고 본원진실(本願眞實)의 세계를 보았던 것이다. 그것은 원효가 본 것이 아니라 눈을 떴을 따름이란 것도 알게 되었다.
오탁악세를 윤회하는 것도, 피안에 이르러 열반하는 것도 모두가 큰 꿈이다. 눈을 떠라. 생사열반이 하나인 것을. 《無量壽經宗要》
본원진실의 세계, 그것을 정토라 한다. 본원진실이야말로 바로 정토사상의 핵심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각주모음
1) * 동아대학교 교수
2) 黃浿江 著, 《新羅佛敎說話》, 一志社, 19741980, pp.164∼170에는 20余例의 往生說話를 例示하고 있으나, 《三國遺事》에 나타난 往生譚만 골라도 10余例를 들 수가 있다.
3) Sukavati-vyuha, De-scription Sukavati, the Land of Bliss, ed. by F. Max Muller and Nanjio(Anecdota Oxoniensia, Arian Series, Vol Ⅰ, Part Ⅱ), Oxford, 1883, London.
4) 《大正藏》 第12卷, 266c.
5) 많은 大乘經典 가운데서 53佛이 등장하는 것은 이 經뿐이다. 다만 《華嚴經》에서 53 善知識이 등장하는 것은 매우 흥미있는 부분이며, 《無量壽經》과 《華嚴經》의 관계를 연관지어서 보는 학자도 있다.
6) 이 부분도 前註와 같이 《華嚴經》에서 언급되는 210億 華藏世界와 비교하여 이야기되기도 한다.
7) 註 2)·3) 참조.
8) 《大正藏》 第47卷, p.192c.
9) 《大正藏》 第49卷, p.260c.
10) 《大正藏》 第47卷, p.83b.
정토신앙
정토신앙이란 불교가 지닌 타력적 신앙의 궁극이다. 서양의 종교학자 오덴 베르크가 한 말은 불교의 종교로서의 부분을 설명하고 있다. "석가모니 당시의 불교는 엄밀한 의미에서 종교라고 할 수 없다. 그것은 위대한 철학이었다. 그러나 대승불교가 일어나면서 불교가 종교로 승화한 것이다."
이는 귀담아 들을 말이다. 일반적 입장에서 생각해 볼 때 철학이나 종교는 구분해서 사용되어 왔다. 철학이 이성(理性)의 계발을 목표로 삼는 것이라면, 종교는 신행을 목표로 삼고 있다. 불교는 미타신앙을 통해 종교로서의 형태를 갖춘다. 불교의 내세관에 의하면 서방으로 10만 8천의 국토를 지나야 아미타(阿彌陀)라고 하는 부처님이 계시다고 한다. 아미타란 한량없는 빛을 말한다. 고통스럽고 모든 것이 여의치 못한 현실에서는 무량한 수명과 광명의 공덕을 얻는 이상향을 꿈꾸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미타는 전생에 법장이라는 법명을 지닌 비구였다. 그는 보살로서 수행하면서 48대원을 세운다. 즉 자신의 노력을 통해 현실을 정토로 가꾸며, 동시에 정토의 기쁨을 온 누리에 펼치리라는 서원이다. 그는 부단히 정진하여 부처가 된다.
아미타 신앙은 타력적이고 기도 중심적 특징을 가진다. 즉 서방 정토에 왕생하려면 지심으로 염불해야 한다고 했다. 이와 같은 사상은 고매한 이론적 배경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따라서 민간 신행으로 널리 유포되어 왔다. 우리가 아미타부처님을 지심으로 섬기면 임종시에 아미타불이 시자들을 거느리고 마중 나온다고 하는 신앙이다. 극락왕생을 위한 가장 큰 공덕은 염불이다. 불교는 분명 자력을 중시하는 종교이기는 하지만 자력과 타력이 적절하게 조화되어야 한다. 여기서의 타력이란 기독교의 타력과 엄밀히 다르다.
기독교의 타력신앙이란 어떤 절대자를 인정하고 완전히 귀의해, 그의 은총으로 구원을 얻게 된다고 하는 신앙이다. 이에 반하여, 불교는 자력 중심인데 자성성불(自性成佛)의 의미가 바로 이것이다. 내 안의 가능성, 그 무한한 잠재력을 계발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과연 자력만으로 모든 일이 가능한가? 불 보살의 가피는 없는 것일까? 이와 같은 의문에 봉착할 때 대승불교는 이 둘의 조화를 내세운다. 즉 의타성과 자력성의 조화를 통하여 궁극적 목표가 실현된다고 보는 것이다. 우리의 이성과 자력을 통해 성불하더라도 마지막의 허전한 공간은 존재한다. 그것을 인간의 원초적 욕망과 결부시켜 해명해 보려고 한 노력이었다. 바로 이 점에 대승불교의 종교성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정토신앙은 이 자력, 타력의 조화가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있다.
정토사상의 핵심사상 연구(강 동 균)
정토사상(淨土思想)
인도에서 비롯된 대승불교는 그대로 중앙 아시아를 경유하여 중국, 한국, 일본에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정착하였으며, 그 가운데서 널리 신앙되어진 사상 조류의 하나가 바로 정토사상이다. 한국불교에서도 원효 이래로 신라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고 신앙적으로나 교학적으로도 괄목할 만한 발전을 보였다. 그러나 밀교와 선종이 급진적인 발전을 하고 독점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자 정토사상은 후퇴하게 되었고 점차 주술적인 모습으로 변하게 되었다.
정토사상의 기원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부분이 해명되지 않은 상태이지만 대체로 정토사상이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어 드러난 것은 대승불교가 흥기한 시대라고 보고 있다. 이는 정토계 경전군이 편찬됨으로써 구체화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정토사상, 정토계 경전군이라고 하는 것은 아미타불의 극락정토에 관한 사상이나 경전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본래 정토(淨土)라고 하는 용어는 대승불교 일반에서 쓰이는 술어이며 아미타불의 극락정토에 한정해서 쓰이는 말은 아니다. 다시 말하면 정토란 시방삼세(十方三世)의 모든 불국토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것이 어느 새 아미타불의 극락국토만을 정토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거의 모든 대승경전에서 아미타불의 극락정토가 언급되고 있으며 불교의 궁극적인 목표가 왕생극락에 있다고 결론짓고 있는 곳도 있다.
정토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용어는 ‘극락’과 ‘아미타불’ ‘본원(本願)’이다.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여 극락정토에 왕생하는 것이 정토신앙의 요체이다. 왕생은 아미타불의 본원에서 비롯되며 그것은 바로 부처의 본질인 중생을 구제하지 않을 수 없는 동체대비(同體大悲)의 지혜와 자비가 아미타불의 본원을 통해서 중생에게 회향되어지는 것을 말한다.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이란 아미타불에게 귀의한다는 말이다. 범어로는 두 가지로 표현된다. 즉 Namo-Amitabha은 Namas + a + mita + abha과 Namas + a + mita + ayus의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Namas는 귀의한다는 말이며, a는 부정의 의미를 지닌 접두사이다. mita는 헤아린다는 말이다. abha는 광명이며 ayus는 생명을 뜻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나무아미타불이라고 하는 말은 ‘헤아릴 수 없는 광명에 귀의합니다’ 내지는 ‘헤아릴 수 없는 생명에 귀의합니다’라는 말이다. 무한 광명(無限光明)에 귀의하고 무한 생명(無限生命)에 귀의한다고 하는 말은 법에 귀의하는 것이며, 진리 그 자체에 귀의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을 총동원하여 진리 그 자체에 귀의하는 것이 바로 나무아미타불이다. 그것을 염불(念佛)이라고 한다. <무량수경>에서는 이 부분을 강조하기 위하여 불불상념(佛佛相念)의 개념을 도입하고 있다. ‘불(佛)과 불(佛)이 서로 염한다’는 것은 부처가 염불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해서 미타삼매에 들어 <무량수경>을 설하셨으며 무한 광명과 하나가 되고 무한 생명과 하나가 되어 저절로 진리 그 자체와 하나가 되어 왕생극락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세속적인 욕망이 개입될 여지는 전혀 없으며, 순수 가치만이 존재하며 순수 신앙의 세계로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정토사상으로 불교를 볼 때에 불교는 염불이며, 나무아미타불만이 불교인 것이다.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
많은 대승경전 가운데서 가장 많이 읽히고 연구되어 온 경전은 ‘정토삼부경’이다. 정토삼부경이란 정토 경전 가운데 가장 중요한 세 가지 경전을 통틀어 말한 것으로 강승개(康僧鎧) 역이라고 전해지는 <불설무량수경(佛說無量壽經)> 2권, 강량야사(畺良耶舍) 역이라고 전해지는 <불설관무량수경(佛說觀無量壽經)> 1권, 구마라집 역으로 전해지는 <불설아미타경(佛說阿彌陀經)> 1권을 말한다.
<무량수경>에는 옛날부터 오존칠결(五存七缺)이라고 말하여지고 있으며 모두 열 두 가지의 번역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실제로 열두 가지로 번역되었는지 의심스럽다. 현재 남아있는 다섯 가지의 번역내용은 다음과 같다. <불설아미타삼야삼불살루불단과도인경(佛說阿彌陀三耶三佛薩樓佛檀過度人道經)> 2권은 일반적으로 <대아미타경>이라고 불려진다. 후한의 지루가참이 번역했다고 한다.
<무량청정평등각경(無量淸淨平等覺經)> 4권은 <평등각경>이라고 줄여서 부르기도 한다. 후한의 지루가참이 번역하였다고 하며 위나라의 백연이 번역했다는 설도 있으며 서진의 축법호가 번역했다는 설도 있다. <불설무량수경> 2권은 <대경(大經)> 혹은 <위역(魏譯)>이라고 줄여서 부르기도 한다. 중국, 한국, 일본에 가장 많이 유포된 경전이며 일반적으로 무량수경이라고 할 때에는 이 경전을 가리킨다. 위나라의 강승개가 252년에 번역한 것으로 전해진다. <무량수여래회(無量壽如來會)> 2권은 당나라의 보리유지가 706년에서 713년에 걸쳐 번역하였다. <대무량수장엄경(大無量壽莊嚴經)> 3권은 송나라의 법현이 991년에 번역하였다.
<무량수경>은 정토사상의 모든 근거를 제시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 가장 많이 유포된 위나라의 강승개가 번역한 <무량수경>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무량수경>은 상하의 두 권으로 되어있는데 상권은 여래정토(如來淨土)의 인과를 설하고 있으며 하권은 중생왕생(衆生往生) 즉 중생들이 극락에 왕생하는 인과를 설하고 있다. 여래정토의 원인은 48원(願)이며, 그 결과는 극락정토이다. 중생이 극락정토에 태어날 수 있는 원인은 염불이며 염불의 결과는 왕생극락이다.
<관무량수경>은 흔히 ‘왕사성의 비극’이라고도 불리워진다. 인도에서 전래된 경전들은 거의 두 가지 이상의 다른 번역이 있지만 이 <관무량수경>은 한 가지 번역밖에 없다. 물론 범어로 된 원전도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관무량수경>이라는 제목은 본래의 이름은 관극락국토무량수불관세음보살대세지보살(觀極樂國土無量壽佛觀世音菩薩大勢至菩薩)인데 이것을 줄여서 <관무량수경>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 경의 이름의 내용은 극락국토의 장엄과 그 나라에 계시는 무량수불과 좌우에서 부처님을 보좌하고 계시는 관음, 세지의 양대 보살을 관하는 경이라는 것이다.
관(觀)한다는 말에는 관견(觀見)과 관지(觀知)의 두 가지 뜻이 있다. 관견이란 극락정토의 아름답고도 불가사의한 장엄을 마음 속에 그려 보는 것을 말하며, 관지란 아미타부처님께 귀의하는 절대 신심을 말한다. 이 경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는데 첫째는 악인을 구제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악인이란 진실을 구하면서도 진실과 거리가 멀고 선을 가까이하려 하지만 선할 수 없는 영겁의 시간과 공간에서 죄업이 막중한 범부 중생을 말하는 것이다. 두번째 특징은 여인성불(女人成佛)이다. 이 부분에 대하여는 후대의 사상가들에 의하여 많은 논란이 있었다.
<불설아미타경>은 5세기 초에 구마라집이 번역하였으며, 그 밖에도 현장이 650년에 번역한 <칭찬정토불섭수경(稱讚淨土攝受經)> 1권이 있다. <아미타경>은 극락정토에 있어서의 여러 가지 공덕장엄(功德莊嚴)을 설하고 있다. 이러한 공덕장엄은 국토, 의복, 음식 그리고 육체나 정신에까지 미치고 있다. 이렇게 공덕장엄을 널리 설하는 이유는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극락정토에 왕생하고자 하는 마음을 내게 하기 위한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중생의 업인 작은 선근으로도 왕생할 수 없다고 구정하고 있다.
다만 하루 내지 이레동안 염불한다면 반드시 왕생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중생이 이것을 믿기는 매우 어렵다. 그래서 동서남북과 상하의 육방(六方)의 항하사제불(恒河沙諸佛)이 광장설(廣長舌)을 내어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덮으면서 증명하고 있으며 경계하고 있다. 왕생극락을 의심하는 것은 육방의 항하사제불의 말씀을 의심하는 것이 되며, 왕생극락을 믿는 것은 아미타불의 본원을 믿는 것이다.
아미타불의 본원을 믿는 것은 석존의 말씀을 믿는 것이며, 석존의 말씀을 믿는 것은 육방의 항하사제불의 말씀을 믿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미타경>은 구회일처(俱會一處)의 사상을 가지고 화합을 도모하고 있다. 모든 중생이 마침내는 극락정토에서 모두 함께 만남을 성취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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