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삼삼 후삼삼 (前三三 後三三) / 무비스님 강설

2012. 6. 1. 00:31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선불교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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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삼 후삼삼 (前三三 後三三) / 무비스님 강설

 

 

옛날에 無着文喜(무착문희)선사라고"" 아주 신심 지극한 선사가 계셨습니다.

오대산에 문수보살 친견하러 간다고 일보 일 배하면서,

일보 일배가 그 때부터 생긴 겁니다.

티벳 사람들은 지금도 일보 일배하면서 저~~ 포탈라 궁을 향해서 몇 개월씩,

또는 몇 년씩 그렇게 걸어가고 있지 않습니까? 아~ 그런 정진도 대단하지요.

 

이 무착문희 선사가 그렇게 갑니다. 많은 세월이 걸려서 오대산 문턱에 이르렀어요.

날은 저물었는데 어떤 노인을 만나서 오대산 입구에서 대화를 나누는 데,

“어디서 왔느냐?”

“ 저~ 남방 어디서 왔습니다.”

“ 남방불교는 어떠냐?”

“말세의 비구들이 그저 계율이나 좀 지키고 그걸로 그냥 수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중은 얼마나 되느냐?”

“혹 500명도 모여살고, 혹 700명도 모여살고, 혹 300명도 모여살고,

총림에 그렇게 삽니다.”

그랬습니다.

그 다음에 무착문희 선사가 물어 야 될 것 아닙니까?

우리도 객실에서 걸망 풀어놓고 만나면 어느 절에서 왔느냐?

거기서 대중이 얼마나 사느냐? 거기에는 가풍이 어떠냐? 선방 분위기 는 어떠냐?

그때 질문이나 요즘 질문이나 똑 같아요. 수행의 전통은 이렇게 오래고 깊습니다.

 

"오대산의 불법은 어떻습니까?" 하니까

“凡聖이 交參(범성교참)하고 龍蛇가 混雜(용사혼잡)이라.”

범부와 성 인이 어울려 있고, 용과 뱀이 함께 산다.

야~ 이것, 처음부터 못 알아 들을 말입니다.

범부와 성인이 한데 산다. 뒤섞여 있다. 용과 뱀도 뒤섞 여 있다.

알 듯, 알 듯도 하지요?

지금까지 공부한 것을 가지고 가만 생각해보면 알 듯, 알 듯합니다.

 

“그럼 대중은 몇이나 됩니까?” 하니까

그때 그 노인이 대답한 것이“前三三後三三이라.”

무착문희 선사는 혹 300명도 모여살고 혹 500명도 모여 삽니다.

상식적으로,속제로 대답했지요. 세속적인 관점에서 대답했는데,

이 노인은 그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래 알아들을 수가 없지요.

객실로 동자가 안내하는 겁니다. 안내하는 동자한테

 

“야야, 스님이 말한 전삼삼후삼삼 이라는 것이 대 중이 얼마라고 하느냐?”

차마 노장님한테는 물을 수가 없고 동자한테 묻기를

 “전삼삼후삼삼 이라는 것이 대중 몇을 두고 하는 소리냐?”

그렇게 물으니 동자가 하는 말이

“스님~” 했어요.

“어?” 대답했습니다.

“얼마나 됩니까?”

여기에 아주 중요한 열쇠가 있습니다.

불교를 깨닫는 열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얼마나 됩니까?”

여기에, 前三三後三三. 항하강의 모래 수 곱하기 항하강의 모래 수.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 은 놓아버리고, 전삼삼후삼삼 이라고 했다는 것도

놓아버리고, 

“스님~” 하니까 “왜?” 하고 이렇게 대답을 하는 겁니다.

“얼마나 됩니까?”

그 대답하는 당체가 도대체 얼마냐? 숫자가 얼마 냐? 거기에 무슨 숫자가 있을

수가 있습니까? 온 우주가 거기에 그냥 있을 뿐입니다.

묻고 답하는 바로 그 순간 그 자리에 모든 것이 있을 뿐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 저~ 총림에 500명이 있고, 5000명이 있으면 무슨 의미 가 있습니까?

이 순간에 우리는 살아 있는 불법을 서로 주고받아야 되 고 봐야합니다.

살아 있는 불법을 대중 안에서 봐야지, 오대산에 천명이 있든 만 명이 있든

그것이 나하고 무슨 상관입니까?

저 남방에, 총림에 300명도 살고 500명도 사는 것이, 그것이 지금 여기 서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지금 여기서는 아무 소용없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있지도 않고요.

바로 이 자리에 활발발하게 살아있는 존재.진정으로 생명이 불꽃 튀 는 그 불법.

진짜 살아있는 불법. 그것은 묻고 답하는 그것이다 이겁니 다.

 

그 동자가 “스님~” 하니까, “응?” 이렇게 대답하니까

“얼마나 됩니까?” 이렇게 물은 겁니다.

그것이 무슨 얼마나 되느냐? 지금 숫자 알자고 하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 이겁니다.

그러니까 차원이 그렇게 차이나는 것이지요.

무착문희 선사는 참 신심 있는 분입니다.

일보 일 배하면서 오대산에 문수보살을 친견하려고 갔으니까요.

그런 역사가 있습니다.

 

그 뒤에 문수보살이 그 동자보고

“이것이 무슨 절이냐?” 그랬어요.

“노장님이 있고 네가 있는 이것이 무슨 절이냐?” 하니까 동자가,

-중국 절에는 보면 금강신장을 대개 많이 모셔 놨습니다. 지금도 그렇고 한데요.

금강신장 상을 가리켰어요.

그러니까 그 쪽을 돌아보는 사이에 그만 동 자도 없어지고 노장님도 없어져 버렸어요.

 

그래서 금강신장을 가리킨 그 곳을 뒤에 “금강 굴” 이라 했는데, 지금도 금강굴이

오대산 입구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제가 확인을 못해봤습니다.

그런 아주 의미심장한 이야기가 있 는 전삼삼후삼삼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그냥 숫자에 놀아나서 ‘아~~ 이것이 몇 을 두고 이야기하는가?’

그래가지고 옛날 무슨 주석 서에 보면 이래 곱하고 저래 곱하고 해서 숫자를 뭐

 “만 명이다.” 이 런 식으로 해놓은 주석서도 있고 그래요.

 

- 무비스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