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선과 아상/월호스님

2012. 6. 7. 12:13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선불교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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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선과 아상 / 월호 스님
       
    선을 하면 할수록 매사를 자기 입장에서 생각하는 마음(아상)이 적어지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볼 줄 아는 안목이 늘어나야 한다. 마음 씀씀이도 한결 넉넉해져 너그러움이 저절로 넘쳐 나오도록 되어야 한다.

     

    그와는 반대로 ‘참선을 합네’하고 오히려 아상이 더욱 강해져서 남들을 우습게 보거나 까탈스러움이 점점 늘어나는 이가 있다면, 그이는 얼른 지금 하고 있는 참선 수행(?)을 걷어치워야 한다.

     

    참선 수행은 자꾸만 자기를 낮추는 마음이 근본이 되어야 한다. 내 생각 내 깜냥을 일단 접어두고 다른 사람의 생각, 다른 사람의 깜냥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귀는 열어두되, 입은 닫는 것이 좋다.

     

    돌이켜보면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와 얼마나 그릇된 판단을 해왔던가? 대부분의 생각들을 그저 내 위주로 해왔었던 것은 아닐까? 심지어는 단체나 남을 위한다는 명분 하에 해 온 일들조차도 알고 보면 자신을 위한 욕심에서 해왔던 것은 아닐까? 중요한 판단을 내릴 때,

     

    나는 어떠한 기준으로 결정을 지었던가? ‘나’가 완전히 없어지는 건 고사하고, 나라와 민족, 나아가 중생들을 위한 마음가짐이

     나에게는 과연 있었던가?

     

    십수 년 전 태국의 청백리로 이름난 잠롱 시장의 말이 생각난다. 나라가 어려운 이유가 똑똑한 인재가 부족한 탓인 줄로만 알았는데,

     

    실상 알고 보니 진정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마음을 지닌 이가 희박한 것이 문제였다는 것이다. 똑똑한 이들은 많다. 하지만 그들이 각자 자신의 똑똑함을 다만 자신의 이익을 위한 곳에 사용한다면,

     과연 국가가 잘될 턱이 있겠는가?

     

    참선도 다만 ‘나’를 위하는 마음으로 한다면, 아상 연습 밖에는 안된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참선하고, 일체 중생을 위해서 참선을 하여야 한다. 그래서 내가 사라져야 한다. ‘나 나의 나를’이 사라지고, 국가와 민족 그리고 중생들로 꽉 들어차야 한다. 그렇다면, 더 이상 무슨 수행이 필요할 것인가? ‘내’가 사라졌는데, 누가 수행하고 누가 깨달을 것인가?

     

    부처님은 무엇을 하든 중생을 위하고,

     중생은 무엇을 하든 자신을 위한다.”

    참선 수행은 자꾸만 자기를 낮추는 마음이 근본이 되어야 한다. 

     

     

     

    이 나 라는 아상 죽이기, 남을위해 살아가는법, 참회하는삶 ,이것이야말로

    불교의 수행법이겠습니다

    나를 조복 받는일은 철저히 겸손해지는 일이요 완전이 순수해지는 일 일것입니다

    왜 우리 중생들은 자신을 들어내 보이고 싶어할까요

    아마도 그건 우리가 중생이기 때문일것입니다

     

    무슨일을 하면 남에게 보이고 싶고 자랑하고 싶고 때로는 거들먹거리고 싶어하며

    더군다나 남을 위한다고 하면서 남의 위에서 아래로 보는 그런 하찮은

    중생들이 많은 시대입니다

     

    우리가 부처님법을 받자와 제일 먼저 해야하는일이 겸손함이요

    나를 낮추는 하심일것입니다

    우리도 부처님처럼 무엇을 하든 중생을 위해 하고 자신은 그 남을위해

    무엇을 했다는 것 조차 머리속에서 지우는 일일것입니다

    불교방송에도 자주 나오시는 월호스님의 법문 보고계셨습니다

     

    원공법계제중생자타일시성불도 (),,,

     

     

     

 


    ♧수선화 노래 / 다산 정약용♧

     
    뭇 나무는 넓다넓은 진토에 뿌리 박았는데
    맑은 물에 뿌리 내린 너 혼자 맑구나.
    한 점의 진흙에도 더럽힘 받지 않고
    희디힌 얼굴빛 세속을 벗어났다.
    기어코 이름 날려 혼탁한 세상 일깨우려고
    꽃향기 가려 숨기고 깊은 골에 있는 건 못견딘다오.
    깊은 겨울 차가운 날 화분 물이 얼 때면
    꽃병을 깊이깊이 더운 방에다 간직하네.
    궁벽한 시골에 처음 와서 얼굴이 붉어지니
    농부들이 서로 보고서도 어린 싹에 살이 많아.
    무우가 잎이 이리 곱냐고 다투어 말들 하고
    마늘인데 매운 냄새가 부족타고 다시 말하네.
    그 전신은 이래봬도 능파선(凌波仙) 으로서
    비단버선 먼지 날리며 사뿐사뿐 곱고 맑은 자태
    지렁이 창자 채우는 흙덩이 먹기는 부끄럽고
    매미 배를 적셔주는 맑은 이슬만 마신다오.
    ※-凌波仙=수선화의 다른 이름-
    하얀 꽃은 설 안에 피는 매화 마침내 압도하고
    푸른 잎은 서리 맞은 대나무와 참말 같구나.
    몸 전체가 대체로 차가움이 뼈까지 미쳐
    일생 눈을 즐겁게 하는 아리따움 지녔다.
    묻노니, 우뚝 솟은 모습이 무엇과 같냐 하면
    서촉의 아미산 눈빛이라오.
    우스위라 섬돌 앞에 서 있는 옥잠화야
    네가 그를 배우려다간 각곡(刻鵠)같이 되리라.
    ※-刻鵠=진짜는 아나라도 모양이 비슷함을 뜻한다-
    어느날 밤 연못 누각에 보살필 사람 없어
    가슴 깊이 슬픈 원한 맺히게 만들었을까.
    흰바탕 시들어서 모래 먼지에 버려지면
    기어다니던 개미떼들이 서로 와서 더럽히리.
    
     
    ◐시상의 배경◑
    귀양지에서 혼자 외로이 살다보니
    꽃 하나를 보아도 옛날이 생각나는 모양이다.
    수선화의  희고 깨긋함을 노래했다.
    다산은 귀양 오기 1년 전인 1800년 북경에 사신으로 갔다가 온
    복암 이기양이 중국에서 가져다 선물한 수선화를 화분에 길렸었다.
    이기양이 북경으로 떠날 때 써준 '이기양을 북경에 떠나보내며'가
    "다산문학선집"에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