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의 불가사의한 10대 현상

2013. 3. 8. 17:48일반/생활일반·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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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의 불가사의한 10대 현상 

 
항상 신비로운 베일에 가려져 있는 서장,
중국 서장(西藏, 티벳)에 10가지 불가사의한 현상이 있다.
 
1] 불가사의한 붉은 눈(雪)


 
히말라야 산 5000미터 이상 되는 산에 덮인 눈은

 

항상 진붉은 반점으로 점철되어 있다.
이런 붉은 반점은 혈홍소를 많이 가지고 있는 藻類에 의해

 

변색된 것으리고 추측하고 있다.
 
2] 눈사람(雪人)

 
설인, 즉 눈사람(野人)의 전설은 끊어지지 않고 있다.
최근들어 또 히말라야 산에서 야인을 발견했다는 사람들이 있다.
이미 세계 4대 불가사의로 된 "설인",
과연 히말라야 깊은 산 속에는 아직 우리들이 모르는 "형제"들이 있는 것인지?
 
3] 무사(巫師, 무당)

 
장족들은 무사가 하늘과 인간사이를 오고가는 "신"으로 보고 있으며,
이들은 길흉화복과 과거와 미래를 안다고 한다.
이들은 장족들 속에서 절대적 권위를 가지고 있다.
 
4] 무지개로 화하는 고승(化虹)

 
득도한 고승이 원적(圓寂, 입적)할 적이면

 

이들은 무지개로 화하여 하늘가로 사라진다고 한다.
이들은 불경에서 말하는 공행정토(空行淨土)의

 

무량궁(無量宮)에 들어간다고 한다.
 
5] 쵸몰랑마봉의 깃발구름(期雲)

 
맑은 날,
쵸몰랑마봉의 산봉우리에는 깃발같은 흰구름이 뜨는데,

 

이를 깃발구름(旗雲)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구름의 높이와 크기에 따라 바람의 크기를 판단하는데

 

조금도 차이가 없다고 한다.
 
6] 상웅(象雄)의 수수께끼

 
상웅은 "대붕의 땅"이라는 뜻인데,
서기 6~7세기에 서장에 군림했던 나라로,

 

서기 8세기에 토번에 의해 철저히 정복되었다.
그러나 왜 상웅의 문화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는지는

 

지금까지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7] 노래하는 예인(藝人)들

 
사시"거쌀왕 전"은 장족의 장편영웅서사시이다.
그러나 이 100여부에 달하는 서사시는 문자로 전해져 내려온 것이 아니라
노래로서 전해 내려오고 있다.
"거쌀왕" 전도 그렇지만, 이 서사시를 전해 온 예인들의 전기 역시

 

불후의 명작들이기도 하다.
 
8] 구거(古格)의 수수께끼

 
서기 10세기에 건립된 구거왕조,
1630년 라다인에 의해 정복되었다.
구거왕조의 문화는 마야 문화마냥 갑자기 종적도 없이 사라졌다.
당시 상황으로 보아 라다인은 구거왕조 문화를 전멸시킬

 

실력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지금도 구거왕조의 유적지에 가면 10호의 사람들이 수 천명이

 

살만한 빈 성을 지키고 있으나
이들은 구거왕국의 후예들은 아니다.
그러면 구거왕조의 10여만 인구는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지금까지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9] 복장(伏藏)의 수수께끼

 
복장이란 불교를 포함한 서장 종교집단에서
큰 환란을 당할 때 숨겨두었던 경서를 다시 찾아낸 것을 말한다.
복장은 서장(書藏), 성물장(聖物藏)과 식장(識藏)으로 나눈다.
서장은 경서를, 성물장은 대덕, 고승의 법기나 유물을 말하는데
가장 신비로운 것은 식장이다.
식장은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에 숨겨진 복장을 말한다.
전하는데 따르면 경전이나 주문이 재난으로 유전될 수 없을 때,
신령이 특정한 사람의 마음속에 숨겨둔다고 한다.
그랬다가 다시 전수할 여건이 되면,
그 사람은 신명의 계시로 마음에 숨겨진 식장,

 

즉 경전이나 주문을 읊거나 써낸다는 것이다.
(그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은 글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이것이 신비로운 식장이다.
 
10] 샹바라(香巴拉)의 수수께끼

 
샹바라는 샹그리라(香格里拉)라고도 하는데, 불교의 신화세계요,

 

시룬교법의 발생지이기도 하다.
불경에서는 샹바라에 대해 상세히 기록하고 있지만,
불교계에서는 신화세계의 세외도원으로 추측하면서

 

그 존재에 회의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샹바라가 진짜 존재하는지는 지금까지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톨스토이 Lev Nikolayevich Graf Tolstoy,

Leo Tolstoy, Лев Николаевич Толстой

1828~1910

 

 


바람 한점 없는 파란 하늘이지만 대기조차 얼어붙어 숨을 들이쉬는 것조차 힘겨웠던 러시아의 어느 겨울날이었습니다. 2001년 겨울, 저는 톨스토이의 안나가 그랬던 것처럼 상트페테르브르크행 기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차가운 붉은 도시 모스크바를 떠난 기차는 어느 덧 도시를 벗어나 은빛 자작나무을 내 눈앞에 펼쳐놓았습니다. 가도가도 끝이 없는 자작나무 숲은 하늘을 찌르고 빽빽한 나무들은 한 치의 여유도 없이 대지를 뒤 덮고 있었습니다. 난방이 부실해서 으슬으슬 한기가 몰려오는 싸구려 침대칸에, 화장실 물은 제대로 나오지도 않은 낡은 기차였지만 그런 것은 아무 상관도 없었죠.

침대에 기대어 스쳐 지나가는 자작나무 숲을 바라보며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를 읽습니다. 그녀와 함께 상트페테르브르크에 도착하면, 안나가 몸을 던져 자살했던 그 기차역 플랫폼이 저를 맞이하겠지요.

 

 

<안나 카레니나>는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의 장편소설입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로 시작되는 소설은 1873년 어느 날 신문 사회면에 보도된 한 고관 부인의 자살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고 합니다.

어느 날, 모스크바 기차역에서 귀족부인 안나와 브론스키는 서로에게 운명적인 사랑을 느낍니다. 운명은 알 수 없는 것일까요? 중매로 만났지만 존경했던 남편과 사랑하는 아들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살았던 안나는 젊고 매력적인 브론스키를 향한 격렬한 사랑에 결국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립니다. 브론스키에 대한 사랑은 안나에게 자신의 행복했던 삶을 ’아무것도 아니었던 무료한 삶’ 으로 느끼게 만들었습니다. 존경하는 남편을 권위적이고 따분한 관료로, 행복했던 가정을 인형의 집처럼 의미없는 공간으로, 우아한 귀족부인을 사랑에 목말라하는 한 여인으로 뒤바꿔 버린 것입니다.

 

안나는 자신이 누리던 모든것을 버리고 브론스키와의 사랑을 선택합니다. 그녀는 사교계에서 냉대를 받았고 사회에서도 지탄의 대상이 되었죠. 하지만 안나와의 스캔들로 브론스키는 오히려 그 명성이 더욱 높아졌습니다. 그러나 막상 안나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자, 불타던 브론스키의 사랑은 점점 식어갔습니다. 절망한 안나는 상트페테르부르크 기차역에서 열차에 몸을 던져 자살을 합니다.



어느덧 기차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역에 도착했습니다. 저는 기차역 플랫폼에 서있습니다. 기관차가 뿜어내는 증기가 제 몸을 감싸자 안나의 슬픔이 몸 속으로 전해져 옵니다. 안나의 죽음, 사람들의 행복한 웃음 소리, 먹을 것을 파는 잡상인들, 따뜻한 차의 향기와 함께 저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을 했습니다. 

 


톨스토이는 위대한 작가이자, 개혁가, 사상가였습니다. 그의 삶은 러시아 문학은 물론 정치에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톨스토이는 1862년 결혼 이후 문학에 전념하여 불후의 명작 <전쟁과 평화>를 발표, 명성을 얻기 시작하여 <안나 카레니나>, <부활>로 러시아 대문호의 반열에 오릅니다.



그러나 <안나 카레니나>를 완성할 무렵 톨스토이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삶에 대한 무상함으로 심각한 정신적 갈등을 겪게 됩니다. 그리고 1910년 정신적 갈등에 시달리던 톨스토이는 가족들 몰래 가출, 그해 11월 7일 라잔 우랄 철도의 작은 간의역 아스타포브(현 톨스토이역) 역장 관사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위대한 거장의 쓸쓸한 죽음이었지요.

 

 

위대한 작가이자, 예술가 사상가, 종교가로서 톨스토이는 자신의 전 생애를 통해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교훈을 줍니다. 그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대문호로서 근대 세계문학의 거장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인도주의와 무저항주의 사상을 실천한 사상가로써 유럽의 지성계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구 소련의 대통령이었던 레닌은 톨스토이에 광적으로 집착했는데요, 톨스토이를 ’혁명의 거울’이라고 했던 레닌의 침대 머리맡에서 톨스토이의 3대 장편소설 <안나 카레니나>와 <부활>이 항상 준비되어 있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