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般若)]반야는 없다(空)는 뜻이니

2013. 3. 23. 11:12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화엄경·보현행원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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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般若)]반야는 없다(空)는 뜻이니,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반야는 없다(空)는 뜻이니,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게 실상은 없다는 것이다.

지금 네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네 눈앞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 모든 게 사실은 없다는 것이니, 이처럼 쉽고 간단한 게 어디 있는가?
그러함에도 사람들은 이 <없다!>는 뜻을 모른다.


지금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또 무엇이 사실 있는가?
아름다운 아내? 자랑스런 아이들? 빛나는 자동차? 눈부신 행복?
아니면 지나친 궁핍, 쓰린 회한? 저린 아쉬움? 다른 사람한테는 다 있는 그런 풍족의 결핍?
그런데 그런 게 <없다>는 것이다.
반야는 그런 게 <사실은> 없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 모든 것이 너의 <망상>이요 네 <착각>이란 것.
그것이 반야이다.


따라서 반야를 어렵게 생각할 필요없다.
만약 지금 네게 있는 것 또는 네게 부족한 것이 있다면 그게 실상은 없다고 알면 된다.
그것이 반야다.
그렇게 생각하고 눈앞에 것, 끊임없이 솟아나는 내 상념을 붙들고 집착하고 울고 웃고 하지 않는 것이 반야.
반야는 이렇게 쉽다.


지금 네게 일어나는 일체의 것을 <없다>, 고 생각하라.
그리고 자꾸 일어나는 집착, 아쉬움, 자랑, 교만에다 대고 <없다!>라고 속삭여라.
그렇게 하면 반야를 <아는 것>이고, 반야를 <행하는 것>이다.
그것이 반야바라밀이다.

 

이것이 평온바라밀이다



그 당시(과거생)의 붓다는 절제를 가르쳤고 삶의 부침에 취착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그는 깨달음의 요건들을 갖추었고 지혜가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기에게 잘하는

사람들에게나 못하는 사람들에게나 평등하게 대하였다.

모든 존재들에게 치우치는 마음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그가 말했다.

‘나는 행복할 때나 불행할 때에도 나의 마음은 평온하다.

명예나 비난을 받을 때에도 평온하다. 나는 모든 것에 치우치지 않는다.’
이것이 평온바라밀이다.
평온바라밀은 균형이 잘 맞추어진 저울과 같이 행복으로도 기울지 않고 불행으로도

기울어지지 않는 것이다. 치우침이 없는 것이다.

 

붓다께서는 모든 중생들을 대함에 치우침이 없었다.

삶의 부침에 대해서도 흔들림이 없었다.

 이러한 붓다의 평온은 일반인들의 평온과는 다르다.


 

ㅡ <불소행장(佛所行藏)>의 주석서 중에서

 

우리 모두 남모르는 아픔이 있다

 

 


우리 모두 남모르는 아픔이 있다.
밝게만 보이는 곳에도 그늘이,
웃음 속에서도 슬픔이.

그래서 중생은 겉모습, 나타나는 모습이 어떻더라도 똑같은 것.
조금 더하고 덜한 차이는 있을지언정.

 


비극은 언제나,
나와 남이 다른 줄 아는 데서 비롯된다.
내가 다르고 네가 달라,
나는 너를 이해 못하고 너는 나를 이해 못하니,
차마 내가 내겐 하지 못할 짓을 남에겐 쉽게 하고,
멀쩡한 이웃을 파렴치범으로 몰고,
괜히 미워하고 괜히 풍파를 일으킨다.

 


알고 보면 우리는 조금도 서로 다르지 않은 것.
내가 가진 만큼 이웃은 덜 가지고,
내가 모자란 만큼 또 이웃은 다른 것을 더 가지고 있다.
모습이 어떠하고 사는 게 어떠해도,
모두가 사바 고해의 번뇌 중생임은 조금도 다르지 않다.

 


영광과 오욕은 모두 시차를 두고 물결치지만,
서로가 서로를 다를 줄 아는 까닭에,
질투, 시기, 분노, 좌절의 억하심정이,
밝은 우리의 본성을 가리고 어둠과 갈등으로 몰아넣는다.

 


부처님이 깨치시고 처음 하셨다는 말씀,
일체중생이 나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모두가 똑같다!
모두가 존엄하고 모두가 훌륭하다!
모두가 잘나고 모두가 뛰어나며,
모두가 대접받고 모두가 축복받아야 마땅하다!

이 말씀은 나와 남이 다른 줄 알아.
그래서 서로 싸우고 한숨지으며 내 행복 내 꿈에 취해 아픔 주던 미망 중생들에게 던진,
중생의 잠을 깨우는 감로의 북소리와 같은 사자후였으리라.

우리는 서로 다르지 않다.

 


모습이 어떻게 다르든 하는 짓이 어떻든,
우리는 그들과 서로 다르지 않은 것이다.

가난한 이와 그렇지 않은 이,
잘난 듯 보이는 이와 그렇지 못한 이.
행복하기만 해 보이는 이와 그렇지 않은 이가 모두 모두 다르지 않다.
그저 드러난 겉모습에 눈앞에 보이는 그 세계에 우리 모두 속고 있는 것.
보이는 저 너머에서는 우리 모두가 똑같다. 차별이 없다.

 


이것이 밝은이가 알려주는 대평등 대긍정의 세계.
그리고 또한 이것만이 참이다.

우리는 모두 똑같다.
아픈이나 아프지 않은 이나,
괴로움을 주는 이나 그 괴로움을 받는 이나,
모두가 장엄하고 거룩한 존재.
비록 나툼은 거칠고 온갖 조악이 난무하지만,
우리 모두는 똑같은 존재.
우리는 어리석어 드러난 영광만 보고 숨어있는 오욕과 회한은 못 보고,
또는 애써 그늘은 감추고 밝음만 보임으로써,
스스로를 속이고 이웃을 기만한다.
정녕 이 얼마나 어리석고 통탄할 일인가.

그러니 나의 불행 탓하지 말고 남의 행복 부러워말고,
반대로 남의 불행에 안도하고 내 행복 자랑도 말고,
저 장엄한 대평등 대긍정의 세계로,
보이는 것에 아랑곳없이 내 이제 애써 힘껏 달려갈지니...

찬탄에 부치는 기원

 

경에 말씀하시기를 [일체 부처님의 한량없는 공덕을 찬탄하라. 미진수 세계에 계시는 일체 부처님을 눈앞에 대한 듯 깊이 믿고 변재천녀의 미묘한 재간을 다하여 부처님의 한량없는 공덕을 끝없이 찬탄하라]하셨습니다. 그러할 때 한량없는 부처님의 공덕이 성취된다 하셨습니다.

 

부처님을 찬탄합시다. 일체 세계 미진수 부처님을 찬탄합시다. 동시에 일체 세계 미진수 중생을 찬탄 합시다. 왜냐하면 모든 중생이 범부의 잘못된 눈으로 보기에는 보잘 것 없는 중생일지 몰라도 진리의 눈으로 볼 때, 실로 중생은 중생이 아니며 부처님의 무량공덕 생명을 온전히 지니고 쓰고 있는 자이기 떼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중생은 거짓입니다. 오히려 눈에 보이지 않는 원만상이 실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부처님을 찬탄하며 일체 중생에게서 일체 부처님과 똑 같은 공덕을 갖추고 있음을 눈앞에 대한 듯이 깊이 깊이 일체 중생을 찬탄 합시다.

 

우리들이 일체 중생을 찬탄한다 함은 결코 중생의 추악상, 허무상, 죄업상을 인정하고 그를 찬탄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일체 중생이 원만 구족한 부처님 공덕을 지지고 있음을 깊이 믿고 그것을 찬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찬탄은 진리 참모습을 보고 믿으며 긍정하는 말입니다.

진리의 실상을 보고 믿고 긍정하는 말은 이것이 실상의 말이며 진리의 말입니다. 원래 실상의 말, 진리의 말은 그대로 막강한 실천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찬탄하는 대로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생각하고 말하는 대로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부처님을 찬탄하며 일체 중생에서 부처님 공덕을 믿고 보고 그를 찬탄합시다.

 

저희들은 찬탄으로 부처님의 공덕을 받아쓰고 우리 생활을 아름답고 참되게 이루어 나가겠습니다. 겉모양이 아무리 모질고, 겉 말이 아무리 차갑고, 겉 표정이 아무리 가시 돋치고, 겉 행동이 아무리 막되어도 우리들은 그의 거룩한 원만 실상을 긍정하고 찬탄하겠습니다. 부모님을 찬탄하겠습니다. 아내를 찬탄하겠습니다. 남편을 찬탄하겠습니다. 형제와 이웃과 착한 사람 미운 사람 할 것 없이 나를 원수로 삼는 사람까지도 진정 찬탄하겠습니다. 그의 원만 덕성만을 인정하고 찬탄하겠습니다.

 

믿음이 있는 말은 창조적 성취력이 있는 것을 저희들은 굳게 믿습니다.

찬탄이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환경위에 행복과 번영을 가져다 주는 열쇠임을 믿습니다.

저희의 생명이 물질적 육체생명이 아니라 진리에서 온 법의 생명인 까닭에 이 생명이 영원히 활활 진동하듯 저희들의 찬탄도 쉴 날이 없겠습니다. 부처님 위덕이 영원히 함께함을 믿으면서.

 

 

<76.>

 

광덕 큰스님 지음 빛의 목소리 p424 – p426 감사하고 찬탄하자에서, 불광출판사

 

 

 

 

청보리 / 김현철

 

 

어쩌면 그리움인지도 몰라요
사월의 연녹색 여린 가슴에 파아란 하늘이 있고
당신은 뜬구름처럼 자꾸
마음속에서 뭉게뭉게 안개 되어 피어나나요


 

아련한 보리피리 소리 다시 들리는 봄날
청보리 익어 가는 계절에만 오시는 당신
나에게 그리도 그리운 시절

 

 

 

 

 

 

 

 

靑보리밭 / 유당

 

 

내가 가장 좋아하는 풍경
그것은 '靑보리밭'. . 

 

 

보리밭 사잇길로 같이 걷다가
그대 안고 싶으면

 

 

보리숲 속에서 난
'뽕3'가 된다.

 

 

 

 

 - 김현철 회원님시의 댓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