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량광불(無量光佛) - 청화큰스님

2013. 10. 3. 19:26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728x90

무량광불(無量光佛)

청화큰스님

 

 

소슬한 금풍(金風)이 산란한 푸념을 필경 돌아가야 할 머나먼 고향으 로 실어 보내는 천혜(天惠)의 계절입니다.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에 부처님께서 이르시기를 "법신(法身) 부처님은 법계(法界: 온 누리)를 몸으로 하는 것이니, 일 체 중생의 마음 가운데 들어 계시느니라" 하였듯이 우주만유가 그대로 부처님 자신의 몸이며, 나고 죽고 변천하는 일체만상 또한 부처님 자신 의 심심미묘한 활동 양상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모든 중생들은 자기자신이 우주의 실상인 부처님과 하나임을 깨닫지 못하는 한, 인간의 근원적인 불안과 갈등은 영구히 해소할 길 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주의 목적의지(意志)를 불교의 표현으로는 부처님의 서원 (誓願)이라 하는데, 이를 간추리면 사홍서원(四弘誓願 : 중생무변서원 도 등)이라 하고, 보다 구체화하면 아미타불의 48서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내용은 다 한결같이 모든 중생을 본래 자기 성품(自性)인 부처(부처님)가 되게 하는 광대무변한 원력(願力)으로 충만해 있습니다.

특히 그 제3서원에서 "온 세계 중생들의 몸이 모조리 진정한 금색광명이 되지 않는다면, 나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으리라" 하였고 제11서원에서는 "온 세계 중생들이 필경에 부처가 되지 못한다면, 나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으리라"였으며, 제12서원에서는 "내 광명이 무량무변하여 헤아릴 수 없는 모든 국토를 비출 수가 없다면, 나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으리라" 하였고 제18서원에서는 "내 나라인 극락세계에 태어나고자 하여 환희심을 내어, 내 이름(아미타불이나

관세음보살)을 지성으로 다만 열번만 외우거나 불러도, 그 소원을 이루지 못한다면, 나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으리라" 하였습니다.

이와 비슷한 법문들이 여러 경전에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그 런데 그 상징적인 의미를 풀이한다면, 진실한 부처님 곧 법신부처님은 바로 우주 자체임을 설파하였으며, 그리고 그것은 온 누리에 충만한 부 사의한 생명의 광명임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인간을 비롯한 일체만유 또한, 깨닫고 깨닫지 못하는 차이는 있을지라도, 모두가 동일한 생명인 불성(佛性)의 광명으로 이루 어진 화신(化身)부처님이 되는 것입니다.

현대물리학의 량자역학(量子力學)에서도 밝히고 있는 바, 일체존재를 구성하는 근본요소인 양자(陽子), 전자(電子), 중성자(中性子) 등의 소 립자(素粒子)란, 우주에 충만한 장(場)에너지(Energy of Field)인 광명 의 파동(光波)으로부터 인연 따라 이루어진 광명의 입자(光粒子)임을 증 명하고 있으니, 일체물질 현상은 그대로 광명의 형상화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일찌기,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보리수 아래에서 큰 깨달음을 성취하시고 많은 사람들을 제도하시다가, 아버지인 정반왕의 간청으로 가비라성을 떠난지 12년 만에 귀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허공으로 솟아올라 자재롭게 거니시며 상서로운 광명을 말하시어 정반왕을 비롯한 모든 대중들을 환희에 넘치게 하셨습 니다.

그리고 이내 좌정하시어, "일체만법이란 인연따라 잠시 모였다가, 인연이 다하면 흩어지지 않 을 수 없는 덧없고 허무한 것이니, 이를 집착하지 말고 오직 번뇌를 여의고 해탈을 구함이 인생의 정도(正道)라" 는 해탈법문을 설(說)하시어, 모든 이에게 보리심(菩提心: 위없는 진리를 깨닫고 만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키게 하셨습니다.

이때, 정반왕이 부처님을 향하여 "세존(부처님의 다른 이름)이 부처님이 되시어, 그 광명이 이렇듯 형 언할 수 없이 장엄 하거니와, 부처님이 열반하신 뒤에 말세 중생들은 어 떻게 부처님의 한량없는 광명을 알 수가 있으리요, 원컨대 세존께서는 나와 여러 중생들을 위하여 자세히 말씀하여 주소서" 그때 부처님께서 온 누리에 광명을 충만케 하는 삼매(遍色身三昧)에 드시니, 홀연히 부처님의 입으로부터 청정미묘한 5색광명이 나와서 온 세계를 두루하고, 다시 부처님의 정수리로 거두어

들어 갔습니다.

그리고, 가비라성의 넓은 정원에 난데없이 금빛 찬란한 카다란 연꽃이 솟아오르니, 그 꽃잎이 1천(千) 잎사귀며, 그 천 잎으로부터 천갈래의 광명이 일어나고, 그 광명 가운데 천(千)분의 화신부처님이 나투시어, 각기 부처님은 천 분의 시자(侍者)와 함께 하고 계셨습니다.

이때 부처님께서 정반왕에게 여쭈시기를 "부처가 열반에 든후에, 중생들이 애써 죄악을 멀리하고 생각을 오롯 이 하여 한량없는 부처의 광명을 생각한다면, 부처가 생존해 있지 않더 라도 부처를 보는 것이 될 것이며, 필경에는 반드시 위없는 진리를 깨닫 게 될 것입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참으로, 번뇌를 여읜 성자의 청정한 안목에는 유정무정 천차만별의 모 든 존재들이 다 한결같이 청정미묘하고 영생 불멸하는 생명의 광명 아님이 없습니다.

그래서, 무량수경(無量壽經)에도 부처님의 광명을 12광불(光佛)로 찬 탄하셨는데 부처님의 광명이 영원히 멸하지 않는다 하여 무량수(無量壽) 불이요, 그 광명이 온 누리에 충만하다고 하여 무량광(無量光)불이며, 그 무엇에도 걸리지 않는다 하여 무애광(無碍光)불, 우주만유가 오직 다 만 생명의 광명뿐이기에 무대광(無對光)불, 훨훨 타오르는 불꽃같이 빛난다 하여 염왕광(琰王光)불, 미묘청정한 광명이니 청정광(淸淨光)불, 모든 지혜공덕이 원만히 갖추어 있어서 지혜광(智慧光)불,

끊임없이 언제나 빛나기에 부단광(不斷光)불,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부사의한 광명이 니 난사광(難思光)불, 해와 달빛으로 비교할 수 없는 영롤한 광명이어서 초일월광(超日月光)불, 그래서 부처님의 광명은 바로 영원한 행복 자체이기에 환희광(歡喜光)불이라 찬탄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인간을 비롯하여 일체 생명의 실상(實相)인 불성(佛性: 인격적으로는 부처님)은, 모든 공덕을 갖추고 온 누리에 충만하여 영원히 멸하지 않는 청정미묘한 광명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림자같고 메아리같이 허망한 현상세계에 집착하는 번뇌만 소멸하면리 스스로 생명의 본질인 광명 자체 바로 부처님이 되어, 광 명세계 곧 극락세계의 영생의 복락(福樂)을 온전히 보고 느끼고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물질과 정신, 유(有)와 무(無), 너와 나 등 일체 상대적 대립 을 초극한명의 실상인 광명세계의 상념(想念)을 굳게 지니고 올바른 도덕적 생활을 기조로 하여, 제각기 인연에 따라 주문을 외우든, 염불을 하든, 화두를 참구(參究)하든, 또한 명상이나 기도(祈禱)를 하든지 간에 모두가 다 한결같이 견성성불(見性成佛)의 지름길인 선(禪)이 되는 것입 니다.

결국, 참선 곧 선(禪:Dhyana)이란, 우리 마음을 중도실상(中道實相)인 생명의 본질에 머물게 하여 산란하지 않게 하는 일상삼매(一相三昧)와 일행삼매(一行三昧)의 수행법(修行法)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진실한 수행을 간단없이 지속할 때, 마치 흐린 물이 쉴새 없이 흘러가노라면, 그 자정작용(自淨作用)에 의하여 저절로 맑아 지듯, 어두운 번뇌의 그림자는 가뭇없이 스러지고, 날로 생명의 광명인 부처님과 가까워지며, 필경 부처님과 하나가 되는 생명의 근본목적을 달 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일체 존재의 동일한 성품인 불성(佛性)을 자각하고, 그 불 성에 입각한 보편적인 예지와 자비에 의해서만, 비로소 유물(唯物)주의 에 멍든 갈등과 분열의 역사적 위기는 극복되고 인류의 사무친 비원(悲 願)인 진정한 자유와 평등과 영생의 행복을 얻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

<불기 2530년 11월 "금륜" 제 7 호>

 

 

 

단풍 드는 날 / 도종환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방하착(放下着)
제가 키워 온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
제 몸 하나씩 내려 놓으면서

가장 황홀한 빛깔로
우리도 우리도 물이 드는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