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사찰에 묵으면서 검은 장삼에 밤색 가사를 입은 스님들의 행렬을 수시로 보았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머리를 기른 재가자가 반수를 차지하고 있는 게 아닌가. 삭발과 유발의 머리모양만 다를 뿐 복장도 행동도 같았고, 이른 아침과 오후의 이동으로 보아 숙식도 함께하는 것이 분명했다.

 

우리나라로 보면 승가대학과 같은 승려교육기관에서 공부하는 학인스님들이었다. 출가자와 재가자가 엄격히 분리된 우리로선 그 모습이 놀라왔지만, 대만에서는 승속 모두에게 수행할 수 있는 교육기회를 주고 있어 이들 가운데 발심하여 출가하는 재가자 비율이 매우 높다.

 

또 재가불자로 사찰에 남아 신문ㆍ방송ㆍ복지 등의 전법활동에 종사하기도 한다. 4대 문파 가운데 하나인 법고산사(法鼓山寺)처럼 출가를 전제로 입학하는 곳도 있지만, 재가자로 공부하다가 출가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이다.

 

모든 종교의 성직자와 신도는 성(聖)과 속(俗)으로 뚜렷이 구분된다. 대만 또한 예외 없으나 상대적으로 출가자와 속인의 경계를 분명하게 긋지 않는다. 단기출가가 일상화된 남방불교도 그런 편이지만 양상은 사뭇 다르다.

 

남방불교는 재가자의 일방적인 상구보리(上求菩提) 지향으로 그러한 특성이 드러나는 것이라면, 대만의 화살표는 양방향이기 때문이다. 대만의 스님들은 재가자를 향해 활짝 열려있고, 재가자는 출가자 못지않게 불제자로서의 자세가 엄정하다.

 

부모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재가불자와 함께 일구어가는 불교이기에 가족과의 관계가 열려있고 제도적 뒷받침이 잘 되어 있다. 사찰에 스님들의 부모를 모실 수 있는 양로원을 두어, 부모가 연로해도 곁에 모시고 돌보면서 걱정 없이 수행에 임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주기적으로 부모님들을 초청하여 만남의 장을 열기도 한다.

 

“해마다 또는 2년마다 스님들의 부모님을 사찰에 모시는 친속회(親屬會)를 열고 있습니다. 우리 스님들이 이렇게 수행하고 계십니다, 하며 보여드리는 거지요. 부모님들은 이 날을 손꼽아 기다려 많은 분들이 오시고, 자식들의 모습에 자랑스러워하며 기쁘게 돌아가십니다. 큰스님께서도 자기부모님처럼 한 분 한 분 지극히 모시지요.” 불광산사 서울지부 의은스님의 말씀이다.

 

“나 때문에 출가하지 못한다면 산해진미로 봉양한들 효가 되지 못하며 오히려 나를 지옥에 떨어지게 하는 것”이라며 아들을 출가시킨 신라 진정법사(眞定法師)의 어머니는 ‘효행’과 ‘출가’라는 모순을 변증법적으로 승화시킨 바 있다.

 

<삼국유사>에서는 이를 효선쌍미(孝善雙美)라는 제목으로 소개함으로써 궁극의 효와 선이 함께 완성되는 감동을 보여주었다. 대만불교의 효선쌍미는 현실에서 가능한 최선의 방편을 담고 있는 듯하다.

 

많은 점에서 다른 나라와 조금씩 다른 대만불교. 이를 관통하는 일관된 흐름은 전통관습보다 인간을 가장 우위에 두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인간을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라는 목표를 위해 불교의 가르침을 대입함으로써 그 어느 나라보다 순기능이 큰 ‘인간불교’를 일굴 수 있게 되었다.

 

재가자들을 성(聖)의 울타리로 끌어올리면서 사부대중이 다함께 하화중생을 위한 불제자의 도리를 다하는 것, 사후극락을 논하지 않아도 대만불교가 국민의 사랑을 받는 이유이다.

[불교신문3003호/2014년4월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