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선(參禪)을 어떻게 하는 것인가? 우리 마음이 좋다 궂다, 밉다 이쁘다, 이와 같이 흩어지면 우리 마음도 괴롭습니다. 우리 마음이 복잡해 보십시요. 산란스러우면 결국은 마음이 괴롭고 동시에 몸도 아프단 말입니다. 마음이 가지런히 하나로 딱 모아지면 마치 잠자는 잔잔한 파도(波濤) 모양으로 됩니다.
아! 그전에 보조국사(普照國師)가 원교대사(원교大師)에게 - 원교대사는 국사의 법우(法友)인데 - 자기 법우한테 한 말이 있단 말입니다. ‘그대 마음을 산심(散心)에서 정심(定心)으로 돌이켜라!’ 그대 마음을 산심에서 정심으로 돌이켜서 마치 잔푸른 파도 모양으로 잔잔한 마음을 만들어라. 그러면 만상(萬象)의 진(眞)모습은 참모습은 거기에 비춰올 것이다. 이와 같이 말씀했단 말입니다. 그 분 뿐만 아니라, 어떤 누구나 도인(道人)들은 보통 그와 비슷한 말씀을 했습니다. 우리 마음이 산란스러우면 마음이 내내야 흩어져서 산심(散心)아닙니까. 안정(安定)된 고요한 그때는 이제 선정(禪定)에 들어간 정심(定心)입니다. 우리 마음 가운데는 산심 정심 두가지가 있습니다.우리가 분별시비(分別是非)하는 흩어진 마음이 산심인 것이고, 우리 마음이 그런 어지러움을 거두어서 하나로 딱 모아지는 마음, 이 마음이 정심입니다.
우리 마음이 하나로 모아지면 그때는 눈도 밝아지고 머리도 시원합니다. 사실 굉장히 좋은 것입니다. 이런 마음이 익혀지고 익혀지면 결국은 부처님한테 걸음걸음 다가간단 말입니다. 그러면 그때는 우리 근본을 보는 것입니다.
불교를 믿든 안 믿든 간에 우리 인간이라는 것은 본래종자(本來種子)가 불성(佛性)입니다. 그리고 잘나나 못나나 사람이나 개나 돼지나 다 근본 종자는 불성입니다. 근본 종자는 불성이기 때문에 우리가 종당(終當)에 가는 길도 불성까지 가버려야 끝나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 고향(故鄕)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고향은 내내야 불성인 것입니다. 따라서 불성까지 못 가면 결국은 몇만 생(生)을 그때는 우리가 헤맨단 말입니다.
그래서 법화경(法華經)에 보면 우리 인간을 가리켜서 면전궁자(面前窮子)라, 마치 갈 길도 모르고 자기 집도 없이 그저 항시 비렁뱅이로 헤매는 그런 거지와 같단 말입니다. 고대광실(高臺廣室) 높은 집이 있고 제아무리 지위(地位)가 높다 하더라도 근본을 모르는 사람은 앞서 비렁뱅이와 똑 같습니다. 어디로 갈 곳을 모른단 말입니다. 그런 것을 몰라버리면 결국 죽어지면 자기 업장(業障)에 그때는 구속(拘束)되어서 자기 지은 대로 자기 몸을 받고 만단 말입니다.
기세경(起世經)이란, 일어날기(起)자 일어날세(世)자 기세경이란 경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이 죽어지면은 염라대왕(閻羅大王)이 아주 자비스러운 얼굴을 하고서 그 죽어서 온 영혼(靈魂)한테 ‘그대가 내가 보낸 세 사람의 천사(天使)를 보았는가? ’ 이렇게 묻는단 말입니다. 그때 염라대왕이 하는 말은 ‘내가 보낸 천사는 다름이 아니라 그대의 노병사(老病死), 그대의 늙음과 병과 죽음, 이와 같은 세 사람의 천사를 못 보았는가?’
우리 사람들이 한번 태어나면 병 안 들고, 늙지 않고, 죽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 연륜(年輪)을 그냥 먹는 것이 되서는 안됩니다. 주름살이 하나 늘어나면 하나 늘은 만큼 성숙해야 합니다. 있는 것은 반드시 멸하는 것이고, 만나면 헤어지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제행무상(諸行無常) 시생멸법(是生滅法)이라, 모두가 다 무상(無常)한 것인데 우리는 가히 늙어갈 때 아파올 때 우리가 반성(反省)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경각심(警覺心)을 일으키므로 그것이 결국은 우리의 귀중한 스승이란 말입니다. 우리의 천사(天使)입니다. 우리한테 인생을 바로 가라. 인생의 근본을 찾아라. 이와 같이 우리를 경각(警覺)시키는 천사가 이것이 이제 죽음이요 이것이 이제 늙음이요 병인데 그걸 못 본단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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