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연선사의 주지살이

2014. 11. 16. 19:22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선불교이야기

728x90

 

   

▲ 일러스트=이승윤

 

법연선사의 주지살이

 

 


송나라 서주(舒州) 태평산(太平山) 흥국선원(興國禪院)에 새로 주지가 부임하던

날이었다. 선원을 이끌던 전임 주지는 황룡 혜남(黃龍慧南)선사의 제자인 유청(惟淸)

이었고, 신임 주지는 오조 법연(五祖法演)선사의 제자 혜근(慧懃)이었다 .

인사치례는 약소하기 그지없었다. 유청 스님은 대중방에서 차 한 잔 마시며 소임자들을

소개하고는 곧바로 혜근의 손을 방장으로 끌었다.

툇마루에 지팡이 하나 달랑 걸쳐진 방장은 그 속도 휑했다. 바닥엔 방석 두 장, 벽엔

삿갓과 바랑이 전부였다.

귀밑머리가 희끗한 유청은 넉넉한 웃음을 보이며 후배에게 물었다.

“자네 주지살이가 처음이지.”
“네, 스님.”
“만만치 않을 거야. 그래, 자네 스승께서는 뭐라 말씀하시던가?”
“서주태수 손정신(孫鼎臣)의 청을 받고 하직인사를 올리자 오조 스님께서 당부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뭐라 하시던가?”

“주지는 자기를 위해 네 가지를 조심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첫째, 세력을 다 부려서는 안 된다.

둘째, 복을 다 누려서는 안 된다.

셋째, 규율을 다 시행해서는 안 된다.

넷째, 아무리 좋은 말도 다 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던 유청이 재차 물었다.
“혹시 그 이유도 말씀해 주시던가?”
“네.”
“왜 세력을 다 부리면 안 된다고 하시던가?”
“권한이 주어졌다고 함부로 휘두르면 반드시 재앙이 닥친다고 하셨습니다.”

“왜 복을 다 누리면 안 된다고 하시던가?”
“심지 않고 거두는 곡식은 없는 법입니다. 복을 누리기만 하고 심을 줄 모르면 인연이

뿔뿔이 흩어져 반드시 외로운 처지에 떨어질 것이라 하였습니다.”

“왜 규율을 다 시행하면 안 된다고 하시던가?”
“대중의 안위와 이익을 위해 규율이 필요한 것입니다. 만약 규율을 앞세워 대중을

다그친다면 사람들이 분명 번거롭게 여길 것이라 하였습니다.”

“왜 좋은 말도 다하면 안 된다고 하시던가?”
“사람들이 분명 쉽게 여길 것이라 하셨습니다.”

눈을 감고 한참을 말이 없던 유청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슴에 새길 말씀이군. 그렇게 삼갈 줄 안다면 주지노릇하기에 충분하지. 특히

그 네 번째 당부를 절대 잊어서는 안 되네.”

혜근이 물었다.
“좋은 말이라도 다하면 안 되는 이유를 스님께서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유청이 머쓱한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다가 대답하였다.
“대중이 추위에 떨지 않고 배곯지 않게 하고 평화롭게 어울려 살도록 하는 것도 주지가

할 일이지.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주지의 역할은 부처님 가르침으로 선도하는

것이지. 그러자면 말이 없을 수 없는데, 이게 참 곤란한 일이야.

자네는 부처님께서 45년 동안 수없이 많은 말씀을 하신 까닭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생사의 고뇌에서 벗어나 안락한 삶을 누리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 하지만 주변을 한번 둘러보게. 요즘 학인들은 다들 똑똑해. 부처와 조사의

말씀을 많이 알고 있고, 뜻을 물으면 술술 설명도 잘 해. 하지만 생사의 고뇌에서

벗어난 이들이 그리 흔하던가?”

혜근이 가볍게 웃었다.
“드물지요, 스님.”
“자네는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아상(我相)을 버리지 못한 탓입니다.”

“그렇지. 그런 사람에게는 ‘아상을 버리라’고 하신 부처님 말씀도 ‘내가 알고 있는 것’

또는 ‘내 알아야 할 것’에 불과해.

그건 ‘나’를 높이고 ‘내 것’을 늘리려 발버둥 치는 도둑놈 심보(偸心)야.

하긴 학인들의 잘못이라기 보단 스승들의 잘못이 더 커. 학인은 스스로 도둑놈

심보를 버릴 능력이 없어. 그럴 수 있다면 학인이 아니게.

그걸 없애주는 건 스승이 해야 할 일이지. 자네, 한(漢) 고조(高祖)와 한신(韓信)의

고사를 알지?”

“네, 스님.”
“한신이 누린 부와 권력은 다 고조가 하사한 것들이야. 헌데 고조가 모든 것을 몰수

하고 죽음을 명했을 때, 한신이 수긍했던가?”
“겉으로는 명에 따라 순순히 죽음을 맞이했지만 속마음까지 수긍한 것은 아닙니다.

토끼몰이가 끝나자 사냥개가 삶긴다고 한탄했지요.”

“그렇지. 바른 선지식이라면 고조와 같아서는 안 돼.

만약 제자들이 선지식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언구를 자신은 가지지 못한 기묘한 지혜로

여겨 차곡차곡 머리에 쌓으면서 기뻐한다면 그것은 도리어 제자들의 도둑놈 심보를

키워주는 꼴이 되겠지.

그러면 선지식은 제자들의 어리석은 짓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어 그들의 알음알이를

몽땅 부정해 버리겠지. 그럴 때 벌겋게 달은 쇠도 쉽게 다루는 대장간의 집게와 망치

처럼 선지식의 솜씨가 빼어나다면 참 다행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고조의 위세에 눌려 죽음을 받아들인 한신처럼 스승의 위세에

눌린 제자들은 입을 닫고 겉으로 죽은 시늉만 내겠지.

한신이 고조보다 세력이 강했어도 죽음을 받아들였을까? 아마 역모를 일으켰을 거야.

자기가 스승보다 똑똑하고 말도 잘한다고 판단할 때, 제자는 분기탱천하여 그

 도둑놈 심보를 만방에 떨치려 들겠지.”

혜근도 고개를 끄덕였다.
“오조 스님께서도 ‘선지식이라면 모름지기 밭가는 농부의 소를 빼앗고 허기진 자의

밥까지 빼앗는 솜씨가 있어야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모조리 흙장난이나 하는

놈들이다’고 하셨습니다.

스님께서도 주지를 살며 명심할 바에 대해 한 마디 일러주십시오.”

유청이 다시 머쓱해하며 뒷머리를 긁었다.
“자네 스승께서 다 말씀하셨는데…. 굳이 보태라면 주지 마치는 법에 대해 한마디

할까?”

유청이 합장하고 청하였다.
“일러주십시오, 스님.”
“주지를 마치고 떠날 때의 살림살이는 발우 든 보따리 하나에 지팡이와 삿갓이면

족해. 납자는 가벼울수록 좋거든.”

자리에서 일어난 혜근은 유청 스님의 발아래 공손히 절을 올렸다.
이후 지해사(智海寺) 등지에서도 주지를 살며 후학들을 인도한 혜근은 황제로부터

불감선사(佛鑑禪師)라는 호를 하사받았고, 불과 극근(佛果克勤) 불안 청원(佛眼淸遠)

과 함께 오조 문하의 삼불(三佛)로 제방에 명성을 떨쳤다.

 

 

성재헌 tjdwogj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