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의 공함이 전변함은 모두 망령된 견해 때문이다/신심명

2015. 3. 20. 14:33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신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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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공함이 전변함은 모두 망령된 견해 때문이다.
     前空轉變 皆由妄見        - 신심명 중에서

텅 비어있다, 모양이 없다는 방편의 말을 잘못 알아들어 텅 빈 경계나 모양이

없다는 모양[생각]을 지어 이해하면 모두 망령된 견해에 불과합니다.

경계나 모양은 반드시 전변(轉變), 곧 변화합니다.

<금강경>에 이르기를 "모양을 취하지 않아 여여하여 움직임이 없다" 하였습니다.

공이니, 알아차림이니, 각성이니 하는 경계를 지키고 있으면

반드시 그 변화에 일희일비, 흔들리게 됩니다.

가지를 잡고 나무에 오르는 일은 기이한 일이 못 되니  得樹攀枝未足奇
벼랑에 매달려 손을 놓아야 장부라 할 수 있네.           懸崖徵手丈夫兒
물은 차고 밤도 싸늘하여 고기 찾기 어려우니             水寒夜冷魚難覓
빈 배에 달빛만 가득 싣고 돌아오도다.                      留得空船載月歸

바로 지금 눈앞에 순수하고 투명한, 모양 없는 텅 빈 각성이

온갖 현상들로 가득 찬 모양으로 드러나 있습니다.

아무런 내용이 없는 의식 자체, 살아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있음이 바로 의식 자체이며, 살아있는 공간입니다.

존재가 그대로 순수하고 투명한, 모양 없는 텅 빈 각성입니다.

바로 지금 여기에 의식과 의식 없음이 오가고,

잠과 꿈과 깸의 경계가 전변하고 있습니다.

온 우주가 바로 지금 내가 있는 방 안이라 할 때,

방 안의 기물들을 모두 없애고 나면

사방의 벽과 위 아래의 천장과 바닥만 남습니다.

벽과 천장, 바닥을 없애면 텅 빈 허공과 나만 남습니다.

텅 빈 허공마저 없애면 나란 몸과 마음만 남습니다.

바로 그 때, 몸과 마음인 나마저 없애버리고 나면 무엇이 남아있을까요?

아시겠습니까?

마음 달이 홀로 둥글어
빛이 온누리를 삼키도다.
빛이 경계를 비추는 게 아니요
경계 또한 있는 게 아니네.
빛과 경계를 모두 잊으니
다시 이 무슨 물건인고?

 

- 몽지릴라 밴드에서

 

 

 눈부신

 

 

 

요즘같이 햇빛이 고운 날에는

유럽에 사는 여고 동창이 생각난다.

아주 가끔 서울에 오는 그 친구는

햇빛만 보면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서울에 사는 친구들은

양산을 펴거나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도

햇빛을 피해 그늘로 숨는데,

이 친구는 일부러 볕이 드는 곳을 찾아다닌다.

햇빛이 아깝다는 것이다.

젊을 적에는
나도 햇빛이 아까운 줄 모르고 살았다.

그런데 10여 년 전의 일이다.

이웃에서 가깝게 지내던 부부가 있었는데,

그 남편이 몸도 건장하고 성격도 활달하여

주위에서 인기가 많았다.

 

 

 

그런데 갑자기 말기 암 선고를 받았다.

병원에 오래 입원했다가 결국

치료를 포기하고 퇴원하던 날,

남편을 태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내는 무심코 창밖을 바라보았다고 했다.

“그때 마침
차창 밖으로 구두닦이 아저씨가 보였어요.

햇볕 아래서 열심히 구두를 닦고 있는 모습이

얼마나 환해 보여 부럽던지….”

퇴원한 지 몇 달 지나지 않아

그녀의 남편은 세상을 떠났고,

그녀 또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버렸지만

이상하게 그 말이 잊히지 않고 내 가슴에 남아 있다.

 

 

 

그래서 나도 가끔 차를 타고 가다가

쏟아지는 햇빛 속에서 땀을 흘리며

무언가 열심히 일하고 있는 건강한 사람을 보면

그녀의 말이 떠오른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든다.

“그런데
지금 노상에서 힘들게 일하고 있는

저 사람은 누군가

자기를 부러워한다는 것을 알기나 할까?”


 

그때 깨달았다.

그 질문은 누구에게나 유효한 것이라는 걸.

우리 역시 누군가에게 부러움의 대상일 수 있다는 것은

모르는 채 항상 남을 부러워하기만 하는 건 아닌가.

 

그저 건강한 몸으로 일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인 줄 모르고 늘 부족하고 아쉬운 마음에

스스로 그늘로 숨었던 건 아닐까.

햇빛이 귀한 줄 모르고 무심하게 살아온 것처럼 말이다.

 

 

 

다행히 창조주는

인간에게 꼭 필요한 것은 흔하게 만들었다.

햇빛은 다이아몬드보다 훨씬 더 빛나지만

흔하기에 값이 없다.

 

그런데 값을 매길 수 없다(priceless)는 것은

대단히 값이 비싸다는 의미가 아닌가.

오늘,
보석보다 더 값진 햇빛 아래

산들바람 부는 길을 걷다가

“아, 이 가을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부러울 게 없구나!”라는

느낌에 가슴이 벅찼다.

그 순간, 괜히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찬란한 가을햇빛이 너무 눈이 부신 탓이었을까.

by/윤세영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