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여열반과 단멸론 /강병균 교수

2015. 7. 25. 19:55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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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여열반과 단멸론

 

 

 

 

“무여열반(번뇌가 다해 몸과 마음이 둘 다 삼계에서 사라지는 것)에 들어 이 세상에서 사라지자”라는 교리는 결과적(혹은 궁극적) 단멸론(斷滅論)이다. 결국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이 우주의 중생이 모두 일시에 부처가 되어 무여열반에 들면 생명계는 그 즉시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생명계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생명계라는 유위의 세계는 업業의 세계인데, 업이 다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우주를 불모지不毛地 우주라 한다.) 이 점에서는 일반적인 단멸론과 다를 바가 없다. 열심히 수행해서 사라지나, 한 생만 살고 사라지나, ‘사라지는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단지 “언제 사라지냐”는 시간차이가 있을 뿐이다.  군집의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그 철학·사상·교리가 군집의 행복·평안에 기여하는가, 아니 하는가 여부이다.

 

   
▲ 전파망원경으로 찍은 아주 먼 은하계 사진. 우주는 소립자라는 미진(微塵)이 무수히 모여 이루어진 일합상(一合相)이다. 미진이건 일합상이건 모두 ‘상주불변하는 실체가 없는‘ 무아(無我)이다.
그런데 무여열반을 목표로 하는 ‘궁극적 단멸론’과, 원하건 원치 않건 ‘이번 생이 즉 한 생이 모든 생’이라는 ‘현실적 단멸론’은, 사실여부는 차치하고, 어느 것이 더 인류라는 군집에 혜택을 줄까?

궁극적 단멸론에 의하면, 중생은 무여열반에 이르기 전까지는, 이 고해(苦海)로 개처럼 자꾸 끌려나와 윤회를 해야 한다. 그리고 그리 끌려나와 윤회를 하는 것은 다 ‘자기가 못난 탓’이다. 하지만 정말 그러한지는, ‘업 이론’ 내에서도,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예를 들어, 공업(共業 집단의 업)이 별업(別業 개인의 업)에 크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공업의 존재를 인정하는 한, 업의 작동은 공업과 별업의 연기작용(緣起作用)이다. 더 넓게는 유정세간업(有情世間業 생명계의 업)과 기세간업(機世間業 물질계의 업)의 연기작용이다. 빅뱅(Big Bang)은 최초의 업이다; 많은 이들이 그리 믿는다. 

발이 실수를 해서 넘어질 때, 손으로 땅을 짚다 손이 삐었다면, 손은, 아무 잘못이 없지만, ‘발과 같은 몸에 속해 있다’는 것으로 화를 입는 것이다.

사회를 하나의 군집생물체로 보게 되면, 지나치게 개인의 업 즉 별업에 집착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개인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당하는 것은, 개인이 과거에 저지른 일(業) 때문만은 아니라는 말이다.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마찬가지이다. 개인이 과분하게 또는 과소하게 과보(果報)를 받는 일은 생각보다 흔히 벌어진다.

위에 든 손과 발의 일화가 이를 잘 설명해 준다. 손이 자신을 희생해 가며 땅을 짚어 발이 함정에 빠지지 않았다면, 발은 과도한 상을, 손은 과도한 벌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몸이라는 집단의 관점에서는 손이 문제가 아니라, 일단 몸이 살고 봐야한다.

이런 집단의 관점에서 보면, 개인의 업이나 해탈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개인이 무여열반에 들어 사라져도, 나머지 사람들은 즉 중생계는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때때로 개별 부처가 출몰을 해도, 중생‘계’는 영원할 것이다(衆生界常住). 이 면에서 주인은 중생‘계’이지 부처가 아니다, 부처는 손님이다: 중생계는 유(有, 假)요 부처는 무(無, 空)이다. 그렇게 유와 무가 어우러져 돌아가는 것이 법계(法界, 中)이다. 

이 점을 진화생물학적 관점에서 보게 되면, 군집의 존속이 있을 뿐이지, 개별자라는 개념은 환상·망상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 세계의 뒤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기이한, 거대한 세계가 숨어있다.
즉 주인은 유전자이다. 군집은 같은 유전자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종은 조금 덜 같은 유전자로, 속은 종보다 조금 덜 같은 유전자로, 과는 속보다 조금 덜 같은 유전자로 연결되어 있는 군집생물체이다. 이렇게 거슬러 올라가면, 동물계는 하나의 군집생물체이며, 식물계 역시 하나의 군집생물체이다. 마지막으로, 지구 생물계가 하나의 군집생물체이다. 뿐만 아니라 생물계나 무생물계나 동일한 물질 즉 원자들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둘은 하나의 확장된 군집세계이다! 이것을 일합상자(一合相者)라 한다. 그런데 이 ‘일합상자’는 시공간을 통해서 끝없이 변하고 진화하므로 ‘무아(無我)’이다. 이것은 금강경에 ‘일합상 즉비일합상 시명일합상(一合相 卽非一合相 是名一合相 일합상은 일합상이 아니다, 다만 그 이름이 일합상일 뿐이다)’이라고 표현되어 있다.

각각 다른 학문분야가 모여 하나의 군집을 이룬 것을 ‘일세계(university, uni는 일, versity는 세계이다)’라 하며, 각각 다른 별과 다른 은하들이 모여 하나의 군집을 이룬 것을 ‘일세계(universe, uni는 일, verse는 세계이다)’라 한다. 각기 다른 것들이 모여 합쳐(合) 하나의(一) 세계(相)를 만든 것을 ‘일합상(一合相)’이라 한다. 결국 이 가르침은 (상주불변常住不變하는 실체로서의) 개별자라는 아(我)도 없지만, (상주불변하는 실체로서의) ‘전체아(全體我)’ 또는 ‘집단아(集團我)’도 없다는 말이다. 이 집단아 개념 중 가장 큰 것이 일합상자이다. 또는 브라흐마(梵)이다.

불교는 우주가 일심(一心)이라 하지만, 진화생물학에 의하면 도도한 유전자의 흐름만 있을 뿐이다. 이기적인 유전자들의 흐름! 그리고, 이 이기심(탐욕貪慾 갈애渴愛)이 이 세상을 고해(苦海 고통의 바다)로 만든다. 그런데 유전자는 진화하므로 이에 따라 이기심도 진화를 하고, 이 세상에는 새로운 종류의 고가 끝없이 탄생한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시작을 알 수 없는 과거에서, 끝을 알 수 없는 미래로, 인식과 생명은 끝없이 흐른다. 누구나 예외 없이 유한한 능력을 지닌 물거품 같은 인간은, ‘무한한 능력’과 ‘무한한 쾌락’과 ‘무한한 수명’과 ‘무한한 세상’을 꿈꾼다. 매번 무참히 실패하면서도. 그래서 항상 삼천대천세계는 살아남은 자들의 환망공상으로 몹시 소란스럽다. 그런데, 죽은 자는 죽은 것이 아니다. 우리 안에 살아있다, 아니 우리가 바로 죽은 자들이다. 우리는 생체유전자이자 문화유전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궁극적 단멸론’이건 ‘현실적 단멸론’이건, 이 세상에 ‘단멸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강병균 : 서울대 수학학사ㆍ석사, 미국 아이오와대 수학박사. 포항공대 교수(1987~). 포항공대 전 교수평의회 의장. 전 대학평의원회 의장. 대학시절 룸비니 수년간 참가. 30년간 매일 채식과 참선을 해 옴. 전 조계종 종정 혜암 스님 문하에서 철야정진 수년간 참가. 26년 전 백련암에서 3천배 후 성철 스님으로부터 법명을 받음.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은 석가모니 부처님이며, 가장 위대한 발견은 무아사상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