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0. 17. 21:49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중음신 4계7도윤회 四界七道輪廻
지옥, 아귀, 인간, 아수라, 천인, 그리고 중음신
욕계, 색계, 무색계, 그리고 원력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게 말이나 됩니까?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터이니 걱정마라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렴
-아무리 정교한 용어와 추상적인 개념과 복잡한 이론으로 무장한 철학일지라도
거칠고 무식하고 단순한 사실 하나에 무너질 수 있다
-모든 철학과 종교와 교리는 한순간에 구라로 변할 위험이 있다
수천 년 묵은 철학과 종교와 교리일수록 훨씬 더 위험이 크다
과학이론도 그러할진대 하물며 다른 이론들이야!
-인류 과학·문명 역사는 옛 구라들이 무너지는 장쾌한 불꽃놀이의 역사이다
모든 교주와 철학자들과 사상가들과 과학자들은 불꽃이고 민중은 관객이다
-망원경으로 보니 천체가 지구를 중심으로 돌고 있지 않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지구가 공처럼 둥그런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불교인들은 과연 삼계육도(三界六道) 윤회를 믿고 있을까?
삼계는 욕계, 색계, 무색계를 말한다.
욕계는 지옥, 아귀, 축생, 인간, 아수라와 6개 하늘나라인
사천왕천, 도리천, 야마천, 도솔천, 화락천, 타화자재천 등 욕계 6천을 말하고,
색계는 하늘나라인 범중천, 범보천, 대범천부터 색구경천까지 색계 18천을 말하고,
무색계는 하늘나라인 색무변처천, 공무변처천, 무소유처천, 비상비비상처천 등
무색계 4천을 말한다.
육도는 삼계의 이명으로서 지옥, 아귀, 인간, 아수라, 천인(하늘나라 사람)을 말한다.
세계적인 천문학자 닐 디그레스 타이슨(Neil deGrasse Tyson)이 소개한 이빨요정(tooth fairy)에 대한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 (타이슨은 칼 세이건 이후 처음으로 난해한 천문학을 쉽고 재미나는 입담으로 대중에게 소개함으로써 폭발적인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는 천문학자이다.) 그는 어린 딸이 이빨요정이 있느냐고 물어오자, 거짓말을 하기는 싫지만 딸의 어린 시절의 즐거움을 빼앗기 싫어서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빠진 이빨을 베개 밑에 두고 자면 밤사이에 이빨요정이 와서 이빨을 가져가고 대신 돈을 남겨둔다고 들었단다.” 딸이 그리하자 정말 이빨이 없어지고 그 자리에 돈이 있었다. 몇 번 이런 일이 있은 후 어느 날 딸은 의심이 생겼다. 딸은 이빨이 빠지자 아빠에게 알리지 않고 빠진 이빨을 베게 밑에 두고 잤다. 그 다음날 이빨은 그대로 있고 돈은 없는 걸 발견하고는, 이빨요정이 존재하진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하지만 딸은 이 사실을 아빠에게는 비밀로 하고, 이빨이 빠질 때마다 옛 의식을 되풀이 하며 계속해서 아빠에게 돈을 받았다. 후에, 즉 유치를 다 간 후에, 더 이상 돈을 받아낼 이빨이 남아있지 않은 딸이 그때 아빠가 이빨요정이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고 항의하자, 그는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 단지 “그렇게 들었다”고 했을 뿐이라고 대답했다. 정말 그랬다. 그는 “그렇게 들었다”고 말했을 뿐인데, 듣는 딸은 ‘아빠가 정말로 그렇게 믿는 줄’ 알았다. (약간 각색을 했다.)
I. 중음신계는 육도에 없는 세계: 7도 윤회
지옥 아귀 축생 인간 아수라 천인 중음신
불교 교리에 의하면 이 세상은, 6도(六道)라고 불리는, 6종류의 세계로 이루어진다. 천인(天人 하늘나라 사람 또는 신), 아수라, 인간, 축생, 아귀, 지옥이 그것이다. 이 이외의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초기불교에 의하면, 한 생명체가 이 6도 중 한 세계에서 사망하면, 그 즉시 전혀 시차가 없이 이 6도 중 다른 세계에 태어난다. 그런데 후대로 가면서 새로운 이론이 나타났다. 6도(六道) 중의 한 생과 다음 생 사이에 중음신(中陰身)이라는 것이 생긴 것이다. 즉 6도에 살던 생명체의 몸이 죽은 후 6도 중의 다음 몸을 받기까지 사이의 몸(身)이 생긴 것이다. (달라이라마는 34년 전에 하버드 대학에서 행한 연속강연에서 중음신은 미세한 물질(氣)로 이루어지지만 물리학의 법칙에 구애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즉 빛보다 빠르게 움직인다고 주장했다. 그렇지 않으면 수백만 광년 떨어진 다른 은하계로 환생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티베트 밀교는 힌두교 밀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힌두교는 생명체의 몸은 가장 거친 육체로부터 가장 미세한 미묘체까지 7가지 몸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한다.)
이 이론에는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다. 이 중음신이 육도 중 어느 세계에 속하느냐 하는 문제이다. 아마 어느 세계에도 속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즉 육도 중 어느 한 세계에 속한다면 이미 그 세계로 환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중음신 이론을 만들어낸 사람들은 6도에 새로운 세계를 하나 추가하여 7도(七道)를 만든 것이다. 즉 육도윤회가 아니라 칠도윤회라고 주장하는 셈이 된다. 신세계인 이 중음신계를 7계라 부르자.
사람이 죽어 중음신이 된다면 다른 중생들도 죽으면 당연히 중음신이 되어야 한다. 안 그럴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사람뿐만이 아니라 천인도 죽으면 일단 중음신으로 변해야 하고, 지옥인(地獄人)도 죽으면 일단 중음신으로 변신해야 하고, 모기도 죽으면 일단 중음신으로 바뀌어야 한다. 모기 중음신이라니 정말 이상하지 않은가? 바퀴벌레 중음신은 어떠하고, 지렁이 중음신이나 박테리아 중음신은 또 어떠한가. 상처에 옥도정기를 바르면 이 7계(중음신계)는 옥도정기로 대량 살생당한 세균들의 중음신들로 바글바글할 것이다.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다른 말로 하면, 가을이 끝나고 추운 겨울이 오면 엄청나게 많은 수의 모기귀신들이 중음신계를 ‘욍욍’ 거리고 날아다닌다는 말이다. 또 세균귀신은 어떻게 생겼을까 정말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중음신을 첨가한 7계 이론은, 전통적인 6계(지옥, 아귀, 축생, 인간, 아수라, 천인)에 익숙한 사람들은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반발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으레, 이론은 더 복잡해지는 법이다.
‘중음신의 수명은 길어야 49일인데 어떻게 하나의 계를 이룰 수 있느냐’는 의문이 생긴다면, 하루살이를 보라. 하루살이는 겨우 하루를 살지만 축생계의 당당한 일원이다. 뿐만 아니라 오래 묵은 귀신의 존재가 보여주듯이(경봉스님을 자주 찾아오던 칠성이라는 귀신이 있었다. 뭔가에 쫓겨 도망쳐온 이 불쌍한 귀신을 자애로운 스님은 당신 방석 밑에 숨겨주곤 하셨다. 쉽게 말하자면 큰스님 엉덩이 밑에 숨겨주었다는 말이다. 스님이 방구라도 꾸시면 큰일이다), 적절한 다음 생을 찾기 힘든 경우에는 수년에서 수십 년까지 걸릴 수 있다고 하므로 수명이 꼭 그리 짧은 것만은 아니다.
‘중음신은 자손을 못 낳는데 어떻게 하나의 계를 이룰 수 있느냐’고 의아해 할 수 있지만, 모든 중생이 자손을 생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지옥중생이나 아귀를 보라. 이들은 자손을 못 낳음에도 불구하고 각각 독립된 계를 이루고 있다. 이들에게는 생노병(生老病)이 없다. 끔찍한 고문으로, 생노병보다 무한히 더 괴롭고 인위적인, 고(苦)를 제공하기 때문일 것이며, 자칫 잘못하면 (즉 지옥중생이 아이를 낳으면) 갓난아이에게 끓는 물에 집어넣고 칼로 난도질을 하며 불에 태우는 고문을 가하는 비인도적인 아동학대 이론이라고 비난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은 지옥이나 아귀라는 개념 자체가 비인도적인 개념이다.)
‘다른 중생들은 업의 생산과 해소라는 적극적인 행위를 하지만 중음신은 다음 생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역할만 하는데 어떻게 하나의 계를 이룰 수 있느냐’고 반박할 수 있지만, 49재를 하는 이유를 보면 답은 명확하다. 49재 의식이나 49재 법문이 자동적으로 중음신을 좋은 곳으로 갈 수 있게 하는 것은 아니다. 중음신이 보고 듣고 느껴서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이것은 다름 아닌 수행이 아닌가? 이는 중음신도 수행을 통해서 업의 해소를 할 수 있다는 증거이다. 그러므로 중음신이 꼭 다음생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역할만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49재를 지낼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상과 같은 이유로, (중음신이 존재한다면) 중음신은 하나의 독립된 계인 7계를 이룰 자격이 충분하다.
II. 12도 윤회와 4계
욕계 색계 무색계 원력계
잘 생각해 보면 사실은 7도 윤회가 아니라 12도 윤회가 되어야 함을 알 수 있다. 설마 아니 천인(天人)이 죽어 생긴 중음신과 지옥중생이 죽어 생긴 중음신이 같은 계에 속할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또 천국으로 갈 중음신과 지옥으로 갈 중음신이 같은 계에 속할 리도 만무하기 때문이다. 속세에서도 범죄자들은 비(非)범죄자들로부터 격리시키는데, 그리고 감옥도 잡범과 범털이 수감되는 감옥이 서로 다른데, 어떻게 지선(至善)한 중음신과 지악(至惡)한 중음신이 같은 계에 속할 수 있겠는가? 아니라면 상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 대기실과 벌을 받기 전에 구금되는 구치소가 같다는 주장밖에 더 되겠는가? 따라서 6계의 각각의 계에는 독립적인 중음신계가 각각 하나씩 배정되어야 함을 알 수 있다. 6도에 이 6중음신도를 합하면 ‘12도(十二道) 윤회론’이 탄생한다.
아수라계가 없는 초기불교 5도윤회에 아수라가 추가되면서 6도윤회로 바뀌었다면, 중음신이 도입된 후로는 6도윤회를 12도윤회로 바꿔 부르는 게 맞다. 12라는 숫자가 너무 커서 싫다면, 적어도 7도윤회는 되어야 한다.
그런데 사실은 12도 윤회가 아니라 13도 윤회이다. 초기불교에 등장하지 않는 극락 때문이다. 극락이 삼계(三界 욕계 색계 무색계)에 속한다면 분명히 6도 중 천국에 속할 것이므로 불교 28개 천국이 29개 천국으로 바뀌면 되지만, 극락이 삼계에 속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세계를 첨가한 것이므로 삼계는 4계(욕계, 색계, 무색계, 극락계)로 재편되어야 한다. 극락은, 유리광불 세계나 아촉불 세계처럼, 특정한 부처의 원력으로 세운 세계이므로 원력계(原力界)라 부르는 것이 나을지 모른다. (요즘 말로 하자면 생성단계에 있는 은하계의 초기 행성을 자기 뜻대로 설계하여 신행성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4계는 욕계, 색계, 무색계, 원력계가 된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아쉽게도 석가모니 부처님은 삼계도사이지만 사계도사는 되지 못한다. 원력계에는 각각의 세계를 주관하는 다른 부처들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동서남북으로, 동방 묘희세계(妙喜世界)의 아촉불, 서방 안락세계의 아미타불, 남방 환희세계(歡喜世界)의 보생불, 북방 연화장엄세계(蓮華莊嚴世界)의 미묘성불(微妙聲佛)도 있고, 약사여래, 유리광여래 등의 부처들도 있다.
III. 극고(極苦): 극락의 쌍대 세계
극락 도입에는 더 큰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만약 초기불교도들이 알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즉 극락을 후대 불교도들이 발견한 것이라면, 같은 이유로 앞으로 언제 또 새로운 세계가 발견될지 누가 아는가? 그것도 꼭 선행을 한 사람들이 가는 천국뿐만이 아니라, 세상이 변함에 따라 인심이 극도로 흉악해지면서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가는, 그런 사람들을 처벌할 ‘극고(極苦)’가 생길지도 모른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이미 생긴 것인지도 모른다. 누구의 원력으로 생긴 혹은 생길 세계인지는 몰라도, 극락이 존재한다면, 극락(極樂)에 대응되는 극고(極苦)가 분명 있어야 할 것이다.
화탕지옥, 도산지옥, 발설지옥에다 무간(無間)지옥 나락(奈落 naraka)까지 있는데 왜 극고가 필요하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온갖 즐거움을 제공하는 28개 천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극락이 생겼음을 보라. 욕계 사천왕천부터 무색계 비상비비상천까지 28개나 되는 천국으로 보상을 하기에 부족할 정도로 선한 사람들이 있다면, 무간지옥으로도 처벌이 부족한 악인들이 있을 것이다.
극락에 가면 명(明) 또는 깨달음(覺)이 보장된다고 하는데, 쌍대성원리(雙對性原理 duality principle)에 의해서, 극고에 가면 무명(無明) 또는 불각(不覺)이 보장될 것이다. 극락에서는 무한한 낙(樂)을 누린 후 부처가 되고, 극고에서는 무한한 고통(苦)을 당한 후 일천제(一闡堤 영원히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 즉 성불하지 못하는 존재)가 된다. 우주에는 쌍대성(雙對性 duality)이 있기 때문이다. 천국과 지옥의 존재 자체가 이미 쌍대성의 증거이다.
IV. 무한도 윤회 無限道 輪回
이론전개가 점점 복잡해지고 있다. 독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용서하시기 바란다. 12도에 극락을 집어넣으면 13도요, 동방 아촉불 세계와 남방 보생불 세계에다 북방 미묘성불 세계까지 첨가하면 14도, 15도, 16도로 마구 늘어난다. 아마 무한도(無限道 infinitiverse)일지도 모른다. 대승불교에 의하면 보살정토(菩薩淨土)는 무수히 많다고 하기 때문이다. 우주의 나이가 무한이라면 그리고 생명체의 수가 무한이라면, 그동안 부처가 된 이도 무한이고, 그에 따라 보살정토도 무한할 것이기 때문이다. 수명이 무한한 황제가 수명이 무한한 아들들을 분봉(分封)해서 각각 새 나라들을 세우게 하고, 다시 그 아들들이 자기 아들들에게 분봉을 하는 과정이 과거 무한한 세월동안 무한히 되풀이되었다면, 현재 존재하는 왕국의 수는 무한개가 된다. 왕들의 수명이 무한하므로, 새로 세워지는 모든 왕국들이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보살정토의 개수가 무한이라는 논리적 근거이다.
우리 모두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이 모든 세계에 대해서 알려면 여간 열심히 공부하지 않고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야만 언젠가 우리가 부처가 되어 멋진 신(新)도시 신(新)행성을 만들 때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새로 부처가 된 이들을 모아 교육시키는 우주적인 부처연수원이 없다면 말이다. 햄릿이 친구 호레이쇼에게 한 말이 맞다! “이 우주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V. 중음신계는 귀신계
초기불교에서는 ‘밀린다 왕문경’에 나타나듯이 윤회는 그 즉시 일어난다. 전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다음 몸을 받는데 시간이 걸릴 이유가 없다. 왜 다음 생을 찾는데 시간이 걸려야 한다는 말인가? 우주 법칙이, 즉 업에 의한 환생법칙이 있다면 왜 즉시 작용하지 않는가? 우주법계(宇宙法界)는, 즉 인과장(因果場)은 생명체가 죽자마자 그 즉시 업을 계산해서 그 업에 ‘딱’ 맞는 다음 생을 부여할 능력이 없다는 말인가? 설마 '심장'(心場 mind field)인 인과장(因果場)이 중력장(重力場), 전자기장(電磁氣場) 등의 '물리적인 장'(physical field)과 마찬가지로 양자역학의 지배하에 있어서, 정보전달에 있어서 시간이 걸린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즉 양자역학의 영향으로 다음 생을 받는 데 시간이 걸린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설마 그럴 리가! 하지만 성철스님이 살아계신다면 그리 주장하실 지도 모른다. 반야심경의 ‘색즉시공 공즉시색’이 현대물리학 일반상대성이론의 등가법칙 의 근거라고 주장하셨으니, 그렇지 않다는 법이 없지 않은가?
중음신 이론은 귀신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발생한 이론일 수 있다. (지금도 귀신을 보았다고 증언하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다음 몸을 받지 못한 귀신이 존재한다면, (이 귀신은 아직 6도 중의 다음 몸을 받지 못했으므로) 환생에는 시간이 걸린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볼 때,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중음신계는 귀신계이다. 기독교세계에는 사람이 죽으면 그 즉시 연옥으로 가거나(가톨릭), 천국이나 지옥으로 가므로(개신교) 귀신이 존재하지 않는다. 종파에 따라서는 지구 최후의 날 Doom's Day에 지금까지 죽은 이들이 부활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부활은 몸과 영혼의 부활이어서 여전히 귀신이 설 자리가 없다. 몸을 잃은 귀신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부활한 몸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불교도들과 힌두교도들은 납득하기 힘들겠지만, 몸이 죽을 때 영혼도 같이 죽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따라서 귀신은 문화현상임을 알 수 있다.
중음신 이론은 질이 나쁜 승려들이 신도들에게 겁을 줘서 돈을 욹어낼 시간이 필요해서 만들어낸, 혹은 만들어내지 않았어도 이미 존재하던 이론이 그런 용도로 유익하게 쓰인 교리일 수 있다. 이런 경우를 사바세계에서는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이라고 한다. 통상 다음 몸을 받기까지 걸린다는 49일이면 충분한 시간이다. 이 승려들은 아소카 대왕시절에, 대왕의 전폭적인 불교후원에 힘입어, 시주가 풍성히 들어오는 불교계로 시주를 노리고 머리를 깎고 위장전입·잠입한 외도들일 수 있다. (이들은 유구한 법맥을 자랑하는 비밀환생조직을 유지·운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법맥을 끊이지 않고 이어가기 위해서, 정기적으로 신족통으로 ‘무지개 몸’(夢身 rainbow body)을 이동시켜 지구상의 모처에서 회합을 가질지 모른다. 히말라야, 무스탕, 킬리만자로가 될 수도 있지만 라스베이거스나 마카오가 더 유력하다. 구태여 신통력을 발휘하지 않고도 갈 수 있는 곳들이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그들은 결의한다: “강 모(某) 교수가 우리의 정체를 폭로하려고 용을 쓰지만, 이 수익성 좋은 사업을 잃을 수는 없다. 이 사업을, 무슨 수를 쓰더라도, 유지시켜 이 사업장으로 계속 환생해서 세세생생 이 낙樂을 누려야 한다.”)
중음신 이론을 포기하지 못하는 큰 이유는 사찰입장료, 즉 문화재관람료를 포기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유이다. 돈 되는 장사를 포기할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세금까지 면제인 49재 현금수입을 어떻게 포기할 수 있겠는가? 피해자인 선량한 스님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중음신은 부처님이 설하지 않은 이론이므로, 부처님 사후 후대 제자들이 고안해낸 이론이므로, 다른 후대 제자들이 극심히 비난한 이론이므로(그 흔적이 금강경 사상 중 인상 pudgala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부처님 가르침에 정면으로 위배되므로 아무리 의심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VI. 중음신은 유아론
중음신 이론은 유아론(有我論)이다. 중음신이 보지(保持)하는 것은, 전생의 몸은 이미 죽었으므로 그리고 때로는 화장당했으므로, 몸이 아니라 마음이다. 중음신 이론은 몸은 죽어도 마음은 살아남는다는 이론이므로, 그리고 지금 이 마음이 다음 생의 몸으로 들어간다는 이론이므로 유아론(有我論)이다. 부처님은 “마음이 윤회한다”고 떠들고 다니는 사티 비구에게 분명히 말씀하셨다, 마음이 윤회하는 것이 아니라고.
이상의 중음신 이론이 유아론(有我論)이라는 것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이렇다. 먼저 중음신은 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만약 중음신이 새로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그 생성은 즉각적이어야 한다, 즉 중음신은 생명체가 죽으면 그 즉시 생겨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죽은 몸과 중음신 사이의 몸인 중중음신(中中陰身)이 즉 2차중음신이 생겨야하고, 이 중중음신 역시 즉각적으로 생기는 것이 아닐 것이므로 중음신과 이 중중음신 사이에 중중중음신(中中中陰身)이 즉 3차중음신이 생기면서, 이 과정이 무한히 되풀이 되는 무한소급의 모순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1차중음신, 2차중음신,..., n차중음신,... 으로 무한히 되풀이 된다.) 그러므로 중음신은 생명체가 죽은 후 즉각적으로 생겨야 한다. 그렇다면 생명체가 죽은 후, 중음신이라는 중간적인 존재를 거치지 않고, 다음 몸이 즉각적으로 생기지 않을 이유가 없다. 따라서 중음신은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즉 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즉 중음신은 처음부터 생명체에 존재하고 있던 것이 생명체의 몸이 죽으면서 사체로부터 분리된 것이다, 즉 소위 말하는 영혼이다. 그래서 중음신론은 사실상 영혼론과 동일한 것이다. 중음신은 몸은 죽어도 죽지 않고 살아남아 끝없이 윤회하는 윤회의 주체인 것이다. 이것은 바로 부처님이 꾸짖은 ‘마음이 윤회한다’는 그릇된 이론인 것이다.
VII. 심즉연기체 心卽緣起體: 마음은 연기현상
부처님의 뜻은 이렇다. 갓난아이로부터 어른까지 유지·전달되는 불변의 마음은 없다. 갓난아이들이 끝없이 잠을 자는 이유는, 엄마 몸 밖으로 나온 뒤에, 갑자기 뇌로 홍수처럼 들이닥치는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 등의 감각정보를 처리하기 위한 것이다. 예전에는 잠이 쓸데없는 기능이라고 여겨졌지만, 지금은 각성 시 수집한 정보를 처리하는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잠을 충분히 자지 않으면 학습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며 단기기억을 장기기억으로 전환하지 못함이 동물실험을 통하여 입증되었다. 그러므로 갓난아이들에게 잠은 필수적이다. 인간은 태어난 후에 뇌가 엄청나게 자라는 동물이다. 특히 전두엽이 크게 성장한다. 갓난아이 시절에는 뇌세포 수도 늘지만 뇌신경세포들 사이의 길인 배선이 조성된다. 국가는 마을과 도시의 증가·성장과 함께 발달한다. 마을들과 도시들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그들 사이의 도로이다. 도로 없이는 마을들과 도시들은 제 기능을 못한다. 우리나라의 마을(洞)들 사이와 도시들 사이의 거미줄 같은 도로들을 연상하면 된다.
갓난아이들은 어른들처럼 생각할 능력이 없다. 선사(禪師)들의 주장처럼 참나(眞我)나 주인공이 생각한다면, 갓난아이들도 어른들과 똑같이 생각해야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만약 갓난아이가 늑대아이(werewolf)처럼 인간사회에서 유리되어 무인도에서 홀로 자란다면, 성인이 되어서도 지금 우리와 같이 고도의 종교적인 생각과 철학적인 생각을 할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과학적인 생각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 생각을 할 언어와 전문용어와 추상개념을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참나나 주인공이 생각한다는 생각은 몹시 순진한 생각일 뿐이다. 다른 식으로 설명을 하자면, 딥블루(Deep Blue) 같은 컴퓨터는 용량과 소프트웨어 능력에 따라 체스실력에 차이가 날 뿐이지, 컴퓨터 뒤에서 매 경기를 주재하는 ‘주인공 같은’ 불변의 주체가 있는 것이 아니다. 즉 다음 수를 생각하는, 컴퓨터 이외의, 주체가 있는 것이 아니다. 컴퓨터를 상대로 체스게임을 해본 사람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다른 증거로는 어린아이들의 감각이 완전하지 않다는 점이다. 갓난아이들이 깍꿍놀이를 할 때 깜짝 놀라는 이유는 시각이 아직 발달하지 않아서 30cm 정도의 가까운 물체만 볼 수 있는데, 잘 안 보이던 엄마얼굴이 ‘깍꿍’ 소리와 함께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니 놀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인공이 본다는 선사들의 주장도 엉터리 주장이다. 보는 것은 주인공이 보는 것이 아니라, 안경(대상), 안근(시각기관인 눈), 안식(시신경과 시각중추) 3자의 연기작용(緣起作用)일 뿐이다.
이로부터 우리는 갓난아이로부터 어른으로 전해지는 불변의 마음은 존재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환생을 하더라도 새로운 뇌와 뇌신경망을 건설해야 하는 것이지, 이미 완성된 즉 완벽하게 기능을 하는 불변의 마음을 지니고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즉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를 맡고, 촉감을 느끼는 감각기능이나 생각을 하는 사고기능은 처음부터 완전한 형태로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고 배워 향상시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환생을 할 때마다 동일한 감각기관과 사고기술의 생성·적응·학습 과정을 되풀이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부처님의 뜻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우리는 갓난아이로 태어나서 노인이 되지만, 그 사이에 유지·전달되는 불변의 마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마음은 연기현상(緣起現像)일 뿐이다. 현대적인 말로 하자면 몸과 뇌와 환경(자연과 타인)의 작용일 뿐이다. 그러므로 다음 생으로 옮겨갈 마음은 없다. 즉 갓난아이에서 노인으로 옮겨온 불변의 마음이 존재하지 않듯이, 지금 생에서 다음 생으로 옮겨갈 불변의 마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지금 우리 몸과 마음을 인(因)으로 하여, 다음 몸과 마음이 과(果)로 생성될 뿐이다. 이 일은 과거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하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사는 동안에도 그러하고 죽은 후에도 그러할 것이다.
그러므로 중음신 이론은 그릇된 이론이다.
고대 그리스에도 지동설이 있었으나 잊혀지고, 중세 유럽은 천동설을 고수하였다. 이것이 1609년에 갈릴레오 갈릴리가 망원경을 개량하여 목성의 위성을 관찰하면서 깨졌다. 그는 목성의 위성들이 목성을 돌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즉 목성의 위성들은 지구를 돌고 있지 않았다. 1600년이나 된 정교하고 복잡한 기독교신학에 기초한 우주론을 어설픈(지금 기준으로 볼 때) 망원경 한 대가 무너뜨린 것이다. ‘무식한 사실’은 ‘유식한 이론’을 한순간에 거꾸러뜨릴 수 있다.
우주의 비밀에 대해서 신으로부터 계시를 받기 위해서는 수십 년간의 고행, 금욕, 명상, 기도가 필요할지 모르나(그런다고 계시를 받는다는 보장도 없다), 망원경은 누구나 볼 수 있다. 망원경은 선인, 악인, 정통, 이단, 성직자, 속인, 남녀노소, 빈부귀천, 유식한 사람, 무식한 사람을 일체 가리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평등한 진리를 선사한다. ‘목성의 위성은 목성을 돈다’는 사유가 필요 없는 단순무식한 사실을 제공한다!
천체가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는 것이 천동설이라면, 우주가 자기를 중심으로 돈다는 것이 유아론(有我論)이다. 이 유아론을 부정하는 것이 무아론(無我論)이다. 인류 최초로 지동설을 주장한 그리스인 아리스타르코스(Aristarchos BC 310~BC 230)와 비슷한 시기에 탄생한, 부처님의 무아론이 중세 힌두교의 영향으로 유아론으로 바뀌었다. 그 잔재가 중음신이다. 400년 전에 폐기된 천동설에 비하면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바로잡아야 한다.
VIII. 어떻게 살 것인가?
중음신은 우리 삶에서 발생한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무수히 발생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몹시 중요한 새로운 순간들을 만난다. 그 순간을 전후로 우리 삶이 완전히 바뀌기에, 이런 순간은 ‘죽음과 재생(再生)’이라 불러도 지나치지 않는다. 우리가 결정하기에 따라 좋은 방향으로 또는 나쁜 방향으로 가게 된다. 과거와 완전히 결별할 것인가 아니면 그대로 갈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악한 일을 하던 이들은 그 관성으로 더 악한 길로 가기도 하고, 선한 일을 하던 이들도 한순간 유혹을 못 이기고 내린 잘못된 결정과 어리석은 선택으로 처참하게 추락하기도 한다.
이런 결정적인 순간에 부처님의 가르침은 우리 앞길에 빛을 던져 밝힌다. 평소 열심히 공부하고, 사유하고, 수행하면,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혼미하고 괴로운 중요한 결정의 순간에, 그리고 되돌아올 수 없는 갈림길에서 더없이 귀중한 지혜를 선사받는다. 갑자기 평소 듣고 공부한 말씀이 한 구절 떠오르면서, 그 즉시 우리의 결정은 옳은 길로 직진한다. 이처럼 이런 지혜의 빛을 따라가면, 우리는 우리 인생의 여로에서 맑고 화창한 천국과 같은 날들을 맞게 된다. 인간은 누구나 양심이 있기에 악한 일을 하는 이들도 무의식적으로 두려움과 부정적인 감정을 느낀다. 이 감정들을 방치하고, 관성적으로, 몸과 마음에 익어 익숙한 옛길을 따라가면 지옥과 같은 사악한 곳으로 추락한다. 하지만 고개를 상(上) 방향으로 틀어 다른 세상을 조금이라도 볼 수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우리 인생에는 꼭 큰 갈림길이 아니더라도 작은 갈림길도 무수히 많다. 그때마다 우리는 작으나마 죽고, 작으나마 새로 태어나는 것이다. 선업을 쌓은 자는 마음에 빛이 많고 창이 맑아 다가오는 밝은 빛을 많이 받아들일 것이고, 악업을 쌓은 이는 마음에 빛이 적고 창이 흐려 다가오는 밝은 빛을 받아들이지 못해 어두울 것이다.
그때마다 좋은 지기, 친구, 친지, 가족, 선배, 후배, 상사, 부하, 동료, 스승은 그대를 좋은 길로 인도하기 위해서 그대를 둘러싸고 귀중한 조언을 할 것이다. 좋지 않은 사람들은 당신을 자기들 이익을 위해 이용하려고 사악한 말로 홀릴 것이다. 그때 어느 길을 택하느냐 하는 것은 오로지 당사자 몫이다. 하지만, 큰 일이 터진 그때 가서 제정신을 차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평소에 공부, 사유, 수행이 필요한 것이다. 오로지 지혜만이, 온갖 장애물이 넘치는 이 고해(苦海)의 바다에서, 우리를 번뇌가 없는 평안의 길로 인도할 것이다. 그리고 그 지혜를 얻는 길은 평소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공부하고, 사유하며, 신구의(身口意) 삼행(三行)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 자신이 다른 중음신들을 제도하는 지혜의 빛이 될 수 있다!
강병균 : 서울대 수학학사ㆍ석사, 미국 아이오와대 수학박사. 포항공대 교수(1987~). 포항공대 전 교수평의회 의장. 전 대학평의원회 의장. 대학시절 룸비니 수년간 참가. 30년간 매일 채식과 참선을 해 옴. 전 조계종 종정 혜암 스님 문하에서 철야정진 수년간 참가. 26년 전 백련암에서 3천배 후 성철 스님으로부터 법명을 받음.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은 석가모니 부처님이며, 가장 위대한 발견은 무아사상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음.
人生(인생)을 爲(위)한 智慧(지혜)로운글
지금이 내 시간이라 하고 살며,
사랑하며 수고하고 미워하지만 내일은 믿지 마십시오.
그때는 시계가 멈출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떠날때에 우리 모두는 시간이라는 모래밭위에
남겨놓아야하는 발자욱을 기억해야 합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실패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실패해도 좌절하지 않는데 있는 것입니다.
꿈을 계속 가지고 있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그것을 실현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어떤 꿈을 가지고 있다면,
기회를 사용하도록 철저히 준비하십시오.
아무리 곤경에 처해도 당황하지 마십시오.
사방이 다 막혀도 위쪽은 언제나 뚫려있고,
하늘을 바라보면 희망이 생깁니다.
젊음은 마음의 상태이지 나이의 문제가 아님을 명심하십시오.
매력은 눈을 놀라게 하지만 미덕은 영혼을 사로잡습니다.
당신의 습관을 최대한 다스리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그것들이 당신을 지배하게 됩니다.
좋은 집을 지으려 하기보다 좋은 가정을 지으십시오.
호화주택을 짓고도 다투며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막살이 안에 웃음과 노래가 가득한 집이 있으니...
받는 기쁨은 짧고 주는 기쁨은 길다.
늘 기쁘게 사는 사람은 주는 기쁨을 가진 사람이다.
아낌없이 주십시요. 주면 주는 만큼 더 많이 받을 것입니다.
실제로 삶에서 가치 있는 것들은 베풂을 통해 배가 됩니다.
내가 남한테 주는 것은 언젠가 내게 다시 돌아온다.
그러나,
내가 남한테 던지는 것은 내게 다시 돌아오지 않는법입니다.
마음이 원래부터 없는 이는 바보이고,
가진 마음을 버리는 이는 성인입니다.
비뚤어진 마음을 바로잡는 이는 똑똑한 사람이고,
비뚤어진 마음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이는
어떤 바보라도 사과속의 씨는 헤아려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씨속의 사과는 하늘만 압니다.
별을 좋아하는 사람은 꿈이 많고,
비를 좋아하는 사람은 슬픈 추억이 많고,
눈을 좋아하는 사람은 순수하고,
꽃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름답고,
이 모든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지금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러브북 중에서 옮긴 글)
◐ 참 좋아 보여요 말 한마디 ◑
우리는 항상 남을 좋게 보아 주고,
좋은 미소로 보아 주는 것은
상대방도 즐겁고 나도 기쁜 일입니다.
활짝 핀 꽃을 바라보면 아름다운 것처럼,
활짝 웃는 행복한 미소로 남을 바라보며 웃을 때...
상대방도 기분 좋게 웃을수 있고,
추운 겨울에도 따스함을 느낄 수 있는
길을 가다가 저 멀리서 아는 사람이 다가오면,
반갑게 맞아 주며
참 좋아 보여요 하면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요.
상대방에게 말 한마디...
큰 힘이 되고 큰 활력소가 됩니다.
키가 작은 사람에게는...
좋은 말로서 한 마디 안정감이 있어 보여 좋고,
키가 큰 사람에게는 참 멋지고,
시원해 보여서 참 좋습니다.
이렇게 해보세요.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요?
항상 긍정적인 생각으로
좋게 보면서 이렇게 해보세요.
언제 보아도 좋아 보이네요.
참 행복해 보이네요.
말 한마디가 상대를 기분 좋게 해주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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