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우주론

2015. 12. 13. 12:27일반/생물·과학과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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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우주론

- 과학 空의 상태서 대폭발후 우주탄생 -
- 불교 삼천대천세계 10억 수미계 존재 -

필자는 수년전 캠브리지 대학에서 세계적인 동양 과학사와 생화학, 두 분야에 걸친 세계적인 권위자 J.니담 교수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인간 생명의 우주적 환경’을 주제로 한 매우 인상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는 “종교 또는 신학은 최신의 거시, 극미 세계에 관한 새로운 과학 업적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계적인 대종교는 대부분이 이천년하고도 수백년 전에 창시되었으므로 당시의 교리를 경전의 내용 그대로 고집하는 것은 만화적이다. 그것과는 반대로 이천 수백년 전의 공간관이 지금의 과학 지식과 일치되는 부분이 있었다면 오랫동안 황당 무계한 것으로 여겨져 왔을 것이다. 현대의 최신 과학 지식과 불교의 공간관, 시간관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최신의 우주론은 ‘우주는 어떻게 해서 시작되었을까?’하는 고대 이래의 인류적인 중요 문제에 대해서 답을 제시하고 있다. 즉 ‘우주는 무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불교의 “무시무종(無始無終, 시간도 끝도 없다)”과 일맥상통한다. 최신 과학은 이 사실을 빅뱅(Big Bang)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 설에 의하면 우주의 시작은 소립자보다 작은 극미의 우주이며 시간, 공간, 물질, 에너지… 등 아무것도 없는 ‘무’의 상태였다. 이것에 양자론적인 물리현상(던낼효과)이 발생하므로써 우주가 탄생되었다. 우주가 탄생된 1/100의 1초 후의 온도는 1000억도, 그리고 1초 후에는 100억도로 냉각되고 10억년 후 은하계가 형성된다. 154억년 후에 행성이 태어나고, 인간이 지구상에 나타난 것은 200억년 후의 일이다. <법화경>의 ‘종지용출품’(從地涌出品)에서는 빅뱅을 연상케 하는 장면이 많이 묘사되어 있다. 부처님이 말씀하실때 사바세계의 삼천대천국토(三千大千國土) 모두가 진동하여 갈라지고 그 속에서 무량천만억의 보살이 솟아난다. 팔천항하사(八千恒河沙, 갠지스강 전체 모래알의 팔천배 개수)의 보살이 ‘석존이 입멸한 후 이 사바세계에서 열심히 정진하여 <법화경>의 가르침을 지키며 읽고, 베끼고, 공양할 수 있도록 허용되기를 간청했다. 이에 대해 부처님은 ‘그 청은 필요없다’고 하신다. 이때 대지가 진동하여 갈라진 대지에서 육만항하사(六万恒河沙) 만큼의 종자(從者)가 뒤따라 나타난다. 이들이 미래 세계에 <법화경>의 가르침을 전할 것이다. 이와 같이 차례로 나타나는 엄청난 보살의 등장은 빅뱅의 결과와 같다. 불교의 거대한 시간관, 공간관은 오늘날의 천문학적인 광년의 세계에 대응하고도 남음이 있다.

불교적 공간 세계는 삼천대천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 중에서는 수미산(須彌山)이 있다. 불교적인 거리 단위인 요자나(由旬, Yojana)가 그 크기를 나타낸다. 세계의 중심에는 팔만유순(八万由旬, 약 9억미터) 높이의 수미산이 있다. 이 산을 팔산(八山), 팔해(八海)가 둘러싸고 있으며 그곳을 태양과 달이 돌고 일수미세계(一須彌世界)를 이루고 있다. 일수미세계가 1000개 모여 소천세계(小千世界), 소천세계가 1000개 모여 중천세계(中千世界), 중천세계가 1000개 모여 삼천대천세계가 된다. 다시 말해서 삼천대천세계에는 약 10억의 수미계(須彌界)가 있는 것이다. 현재의 우주론에서 이 전 우주에는 수천개의 태양이 산재하고 있다고 추측되어 있는데 삼천대천세계에는 10억의 태양이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 나타나는 삼천대천세계는 현재도 팽창을 계속하고 있는 우주의 크기를 넘은 거대한 세계이다.

이들 수가 모두 ((10n)n)n…이라는 식으로 멱승으로 표시하고 있다. 거시 세계의 크기를 나타내는 숫자다. 현대의 종교가 마크로(macro, 거대), 미크로(micro, 극미)의 과학 업적과 접목되어야 한다는 J.니담의 주장을이미 2500년 전의 불교가 성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애란설(愛蘭說)

 

       봄이 되면 매화만 피는 게 아니다.

난(蘭)도 핀다.

 

난은

'봄을 알려주는 꽃'이라는 의미에서

'보춘화'(報春花)라고도 부른다.

 

보춘화가 왜

매화, 국화, 대나무와 함께

사군자(四君子)에 들어가는가?

 

난의

군자다움은 어디에서 나타나는가?

먼저

난은 향기가 멀리 간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멀리 퍼지는 난의 향기를 일컬어

'난향천리'(蘭香千里)라고 하였다.

 

난향(蘭香)의 특징은

선(線)으로 전달된다는 점이다.

향기가

폭이 넓게 퍼져서 전달되는 것이 아니고,

향이 실처럼 지나간다.


 

      자세히 관찰해 보면

한 줄기 실과 같이 향 줄기가 지나간다.

선향(線香)인 것이다.

 

그러다보니 멀리서 맡으나

가까이서 맡으나

향의 농도가 일정하다.

 

바로

이 점이 군자의 성품과 같다.

퇴근해서 집에 들어와 방문을 열면

난향이 바로 맡아진다.

그 향이 미세한 것 같아도

대번에 알 수 있을 만큼 강하다.

 

잡초 속에 난이 섞여 있어도

그 향기만은 감출 수가 없다.

 

난 잎은 잡초 잎에 가릴 수 있어도

품어내는 향은

단연 잡초를 압도하는 것이다.

 

난은

또한 매우 생명력이 강한 식물이다.

뿌리가 90% 가까이 썩어 들어가도

그 잎은 멀쩡하다.


 

 

 

       다른 식물 같으면

벌써 드러누웠을 텐데도

난은

자기 어려움을 내색하지 않는다.

 

속은 타 들어가는데도

얼굴 표정은 담담하기 그지없다.

바로

이 점이 군자 같다고나 할까.

 

난은

또한 깨끗한 것만 먹고 산다.

주로

빗물과 이슬만을 먹고 자란다.

 

화분에다가

기름진 거름을 섞으면 난은 죽고 만다.

비료를 많이 주면 뿌리가 썩는다.

 

깨끗한 모래를 그물에다 걸러내고

물로 지저분한 흙은 씻어낸 다음에

여기에다가 난을 심어야 한다.

 

생명력이 강하면서도

깨끗한 곳에서만 자라는 성품이

군자와 같다.


 

        난초의 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보는 것도 즐거움이다.

바람에 흔들리는

난초의 잎은 마음이 한가해야 보인다.

 

군자가 아니면

그 흔들림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한다.

 

마음이 섬세하고 한가해야

난초의

아름다움이 감지된다는 말이다.

 

그래서인지

조선시대 원예서인 '양화소록'(養花小錄)을 쓴

강희안(姜希顔·1417~1464)은

난초를 특히 사랑하였다.

끔찍한 사건·사고가 많아서 '애란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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