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 9. 19:11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부처님의 배꼽이 . ./ 성담스님
[충남금산 효심사 주지 성담스님 법문 /BBS]
제가 저기 충청남도 금산에 시골에 지금으로부터 20년전에 들어갔어요.
사람들이 와서 물어봅니다. 올해 우리 집 수리해도 됩니까?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마음 먹기 달렸습니다.'
일년내내 그것만 가르쳤습니다. '마음 먹기 달렸습니다.'
부처님은 우리에게, 지식에 의지하지 말고 지혜에 의지하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늘 지식에 끄달려 다니니, 절에 다니는 거나 안 다니는 거나 차이가 없습니다.
절에서 삼재풀이 안 한다 하니까, 정초에 기도하러 아무도 안 오세요..
'왜 안 오세요?' 했더니 삼재풀이를 안 해서 안 온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오늘은 제가 신통력을 부려서 제 실력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사람들이 솔깃해서 쳐다봅니다. 스님이 무슨 신통력을 보일래나?..
'올해는 아무도 농사를 짓지 마세요.' '왜요?'
'제가 부적을 하나 써 줄테니까 논두렁에다 묻어 놓으면 콩이 쏙 올라옵니다.'
'오늘부턴 밥도 하지 마세요. 아침에 밥하려면 귀찮잔아요?' '왜요?'
'제가 부적을 하나 써 줄테니까 냄비나 솥에 부적을 탁 붙여놓고 주무시면 자고나면 밥이 나옵니다.'
그랬더니 다들 웃습니다. '에이.. 그런 일이 어떻게 생깁니까?'
(1) 밥 한 그릇도 못 만드는 부적으로, 그걸로 어떻게 삼재풀이를 합니까?
또, 삼재가 뭐냐고 물으면 모른대요..
삼재풀이 몇 년 했냐니까, 십년을 했다는 거예요..
이게 우리나라 불교의 현주소예요.
참으로 가슴아픈 일입니다.
절에 다니면 법을 잘 배우고 힘이 딱 생겨서 중심을 딱 잡아야 하는데
누가 이 말하면 우르르.. 저 말하면 우르르..
절에 다니나 안 다니나 뭐가 차이가 납니까?
자, 제가 삼재를 설명합니다.
삼재란 세 가지 띠가 3년 동안 어렵다.. 이렇게 말하죠? 그렇게 말하더라 합니다.
언제까지 나쁘냐? 3년 동안 나쁘다고 하죠?
자.. 절에서 '문사용'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문(聞), 이건 듣는 겁니다. 3년 동안 나쁘다 들었죠?
'사'는 생각할 사(思)자.. 생각해봐라.. 이 말, 맞나 틀리나? 확인해봐라..
'용'자는 적용할 용(用)자.. 확인이 끝나면 사용하면 된다..
원래 절에선 문사수(聞思修)라고 하는데, 이 닦을 수(修)가 감이 잘 안 잡혀
그래서 '문사용'으로 바꿔서 말하면, 잘 안 잊어버립니다.
문사용 잘못 하면 손 다치잖아요?
자, 이렇게 방편도 잘 알아듣게 해야 합니다. 이게 맞춤식 서비스입니다.
그러지 않고 맨날 옛날 하던대로 하면 못 알아들어요.
무아(無我)가 뭐냐? 몰라요.. 공(空)이 뭐냐? 몰라요..
절에 수십년 다녀도.. 불교의 핵심중에 핵심이 '무아'이고 '공'인데.. 그걸 몰라요?
자, 확인을 해봅시다.
(2) 고속도로에서 차 8대가 추돌차고가 났어..
차들을 노크를 해서, '삼재들어서 박았어요?' 이렇게 물어보세요..
그럼 뭐래요? 귀싸대기 맞죠?
(3) 그리고 영안실 가서 물어보세요, '혹시 삼재들어서 숨을 안 쉬었어요?'
(4) 또, 부도난 사람들한테 살짝 물어보세요, 혹시 삼재들어서 부도났어요?'
너무 쉽잖아요? 이렇게 확인해봐서 아니면.. '아, 거짓이구나!'
간단해요.. 이게 뭐예요? 이게 깨달음이예요.
깨닫고나면 그 뒤에 나오는 힘을 법력(法力)이라고 합니다.
부동심(不動心), 깨달음의 힘입니다.
절에 수십년 다녔으면 법력이 있어야지!
다른 종교는 절대적인 힘에 의존하라고 가르치지만 불교만큼은
자신이 법을 증득하여 자기 힘으로 세상을 꿋꿋하게 걸어가라 하므로
완전 차별화전략으로 우뚝 설 수 있는 힘이 있단 말입니다.
여러분들은 절에 다니면서 목표의식이 없어요.
'나는 분명히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을 배우겠다'는 뚜렷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여기를 왔다갔다 했다면, 지금쯤 여러분 가정엔 더 이상 괴로움이 없어야 합니다.
정확히 듣고, 생각해보고, 적용시켜서 확인해보면.. 금방 알 수 있는 겁니다.
(5) 여러분 남편이 사업하다가 부도가 나면, 삼재든 식구만 힘들까요? 아니면 다 힘들까요?
이렇게 쉬운 질문을 하는 게, 너무 웃기잖아요?
이게 깨달음인데.. 뭐 깨달음이 거창하게 있는 줄 안단 말예요.
(6) 3년 동안 어려울까요? 해결될 때까지 어려울까요?
이런 걸 자기 스스로 한 번만 생각했다면
사찰에서 삼재풀이 하는 건 사라진다 이 말예요!
세상에 동쪽 아닌 데가 없네요? 이렇게 깨달아라 이 말예요.
그러면 삼살방, 대장군 방향 따지지 않을 겁니다.
이게 깨달음입니다.
이거 깨달은 사람은 방향으로부턴 자유롭습니다.
이게 대자유인이예요. 들어봤잖아..
'아, 동서남북은 각자 자기를 기준으로 하니까, 정해진 건 없구나' 딱 깨달으면 돼요.
방향이 본래 없으면 삼살방, 대장군 방향도 없구나.. 딱 알 수 있잖아요!
이렇게 구속에서 졸업하는 거.. 이게 법력입니다.
깨달음의 힘, 지혜의 힘입니다.
삼살방, 대장군.. 이런 건 뭐냐? 지식입니다.
부처님께선, 지식에 의지하지 말고 지혜에 의지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사가는 날짜.. '어느 날에 가면 좋습니까?'
손 없는 날이 좋다고들 그러죠? 음력으로 9일, 10일, 19일, 20일..
이 날엔 이사비용도 비싸요.. 다들 그 날에 하려고 하니까..
절에 수십년 다니면서도 아직 여기서 졸업을 못했어요?
아직 깨닫지 못했다..
그 좋은 날 받아서 갔는데 왜 잘 살지 못하고 싸우고 헤어지고 그랬을까요?
이렇게 확인을 해보시라구요? 그 좋은 날 갔으면, 다들 잘 살아야 될 거 아닙니까?
그렇게 날 잡아서 안 가도, 잘 사는 사람도 많죠? 그럼 이게 뭡니까?
저는 이사날 받아줄 때, '남편이 이사할 때 도움이 됩니까?' 이걸 꼭 물어봐요.
남편이 도움 안 되는 집도 많아요..
'그러면 이사하는 날은, 남편 출근하는 날로 잡으세요.' 이럽니다. (박수)
지금 박수친 분들은 깨달은 분들이예요. 깨달음이 이렇게 쉽다니까..
이게 지혜입니다. 그 상황에 꼭 맞게 하는 걸 지혜라고 합니다.
그리고 또 궁합을 보러옵니다.
그러면 제가 물어봅니다. '궁합이 뭡니까?' 또 몰라요..
도대체 궁합이 뭔지도 모르면서 그걸 물으러 온다는 게 너무 웃기잖아요?
여러분, 여기 법회 끝나면 살짝 한 번 보세요..
저는 어느 법당엘 가든지 꼭 봅니다.
부처님 배꼽이 아직도 남아 있는지?
그런데 너무 웃겨서 배꼽이 다 빠졌어요. 법당마다..
궁합이 뭔지도 모르고 궁합을 보러 다니고
삼재가 뭔지도 모르고 삼재풀이 하러 다니고..
부처님이 웃다가 배꼽이 다 빠져버렸어..
여러분이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데, 나쁘게 보이는 게 있다면
지금 당장 저한테 항의하고 멱살을 잡으세요!
여러분이 긍정적으로 보는데, 좋게 안 보이는 게 있다면
이 멱살을 잡고 흔들어라 이 말이여!!
이거 하나 깨닫는데 뭐가 그렇게 10년 20년 걸려요?
여러분이 마음으로, 보는대로 보인다.. 이걸 깨닫는 게 '일체유심조'예요.
'부처님이 깨달았다.. 부처님 가르침 좋다..' 아무리 떠들어대도 소용없어요.
내가 깨달아야지.. 내가 실천해보니까 너무 좋더라.. 이래야지.
윗집이 강남에 백억짜리 빌딩이 있더라 얘기하면 뭐해요?
남의 통장에 돈 많이 들었다 얘기하면 뭐하냐구요?
내 통장에 돈이 있어야지!
남의 과수원에 과일 많이 열렸다 말하면 뭐합니까?
내 하나 따주지도 못하는데..
이런 이야기로 10년 20년을 다 보내고 있다 이 말예요!!
그 중에 하나라도 내가 먹어보고, '야 정말 이 세상에 어느 것도 비교할 수 없구나' 하고
내 자식들에게, '내가 이땅에 와서, 내가 가장 주고싶은 선물이 이것이다' 하고
턱 내놔야 합니다.
돈도 아니고 집도 아니고
오직 마하반야 바라밀의 지혜를 줘야 합니다.
지혜 중의 지혜, 마하반야 바라밀..
이것으로 끝내지 않은 부처님도 없었고
이것으로 끝내지 않은 보살님도 없었으니..
나도 이걸로 끝내라 이 말예요!
마하반야가 얼마나 쉬운지 압니까?
내가 며느리 욕을 했다. '조게 나쁜 년이다..' 이게 색(色)이예요.
그런데 '애고, 내가 안 좋게 봐서 그러네.. 착각이다' 그래서
'나쁜 년이란 건 없더라..' 이게 공(空)이예요. 이게 깨달음이예요. 마하반야라구요.
'아, 내가 알던 게 옳지 않구나' 이게 무아(無我)를 체득한 거예요.
이렇게 알면 괴로움에서 벗어나, 속박에서 벗어나 영원한 행복을 얻는다 이 말입니다.
이렇게 쉽기 때문에 부처님 당시에 그 인도가 다 뒤집어진거죠..
한 번만 들으면 다 뒤집어졌다 이 말입니다.
내가 안 좋게 보지 않는 한, 절대 안 좋아지지 않는구나..
내가 좋게 보면, 무조건 좋게 보이는 거예요..
제법(諸法)이 무아(無我)다 이겁니다.
이게 '일체유심조' 입니다.
원효스님은 해골바가지 물을 먹고 깨달았는데
오늘 여러분들은 그냥 깨달았잖아요?
꼭 화두참선 해야 깨닫습니까? 염불삼매에 들어야 깨닫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부처님 당시에 언제 그 사람들이 모두 화두참선해서 깨닫고
언제 염불삼매에 들어서 깨달았겠습니까?
그냥 법문 들으면서 그 자리에서 깨달았다 이 말예요!
여러분도 오늘 법문 들으면서..
삼재가 없네.. 좋은 날은 이런 거네.. 궁합도 별 게 아니네..
이렇게 깨달으면 거기서 자유롭게 된다 이 말예요.
깨달음을 얻는 자는 괴로움에서 즉시 벗어나
모든 속박으로부터 자유롭다 이 말입니다.
'다음 생에 좋아진다..' 이런 말 하나도 없어요!
부처님이 늘 쓰시던 말.. '와서 보라~'
여러분도 와서 보고 다 졸업했잖아요.
안 온 사람은 못 봤죠?
부처님 가르침은 이런 거예요!
사회에서도 싸우다가 안 되면 법에 가서 심판받죠?
그와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판단해야할 기준을 법(法)에다 두라..
그래서 부처님이, '네 가지를 기준으로 삼으라'고 하셨습니다.
'지식에 의존하지 말고, 지혜에 의존하라.
사람에 의존하지 말고, 법에 의존하라.
말이나 언어나 문자에 의존하지 말고, 그 뜻에 의존하라.
불요의에 의존하지 말고, 요의에 의존하라.'
요의(了義)는, 일대사 인연에 맞게 원력과 회향으로.. 지혜의 눈을 뜨게 하는 게 요의이고
불요의(不了義)는 뭐냐하면, '관셈보살만 하면 된다, 지장보살만 하면 된다..'
이렇게 한 개씩만 일러주는 게 불요의입니다.
요의가 딱 서 있고, 맞춤식 서비스를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어떤 절에 가면 '지장보살만 하면 된다' 어쩐다 합니다.
이게 틀렸다가 아닙니다.
온전한 깨달음을 얻기 어렵다.. 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요의에 의존하라는 말씀은, 원력과 회향으로 딱 중심이 서고
지혜를 증득해서 자비를 행하시는 분을 만나 묻고 배워라..
눈 밝은 선지식에게 배워라.. 이 말입니다.
절에 안 오더라도 이렇게 법의 당체가 딱 서면,
여러분 집이 그대로 법당이고, 부처님 모신 곳이예요.
법이 안 서면, 여기 와도 법당 아니예요.
그래서 한 번을 절에 가더라도 그런 스승을 만나야 합니다.
천 년에 한 번 가도 한 방에 끝난다고요!!
부처님 당시에 한 번 법문 듣고 탁 끝났죠..
어디 두 번 세 번 한 사람이 몇 명이나 있습니까?
오비구도 하루만에 깨닫고 이틀만에 깨닫고 일주일만에 다 깨달았잖아요?
오늘 여러분이 저를 만나 깨닫지 못 했다면, 다 제 잘못이예요.
깨달음은 뭐라고 그랬죠? 착각이구나 아는 거예요.
거창하게 보지 말라고 그랬죠?
자기 모순을 발견하는 게 깨달음이예요.
안 좋게 보니까, 정말 안 좋게 보이는구나.. 이게 깨달음이예요.
그거 말고 또 다른 깨달음이 있다면, 이 멱살을 잡고 흔드십시오!!!
그게 공을 체득하는 게 아니라면, 제가 부처님 앞에 맹세코
제가 여러분 죄업을 제가 다 뒤집어쓸께요!
그게 공을 체득하는 거예요. 그게 마하반야라니까요.
그걸로 해결 안 되는 게 있습니까?
여러분 괴롭다는 게 뭡니까?
불평불만 해야 괴롭죠? 안 좋게 봐야 괴롭죠?
'내가 안 좋게 봐서 그랬구나' 하면 끝나잖아요..
'내가 안 좋게 봐서 그렇구나' 하는데도 계속 그런 사람 있으면 나와보세요.
불교를 한 마디로 말하면 이고득락(離苦得樂)이라고 합니다.
괴로움에서 벗어나, 낙을 얻는다. 열반을 얻는다.
극락을 그 자리에서 실현한다..
그런데 절을 몇 십년 다니면서도 한 치도 발전이 없으니..
절에 왜 다닙니까?
다니면 발전이 있어야지!
자, 정리를 해봅시다..
'자기 속에 부처님과 똑같은 능력을 다 갖추고 있다.
그러므로 남을 의지하지 말고, 밖에서 구하지 말라.
오직 자신을 믿고 의지하라.
이 세상 어떤 것도 인(因)과 연(緣)에 의해서 생긴다.
이것이 진리이니, 이 진리를 믿고 의지하라.
세상에서 자장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 속에 보배가 있는 줄 모르고 밖에서 찾는 사람이다.
자기 마음 밭에 생각의 씨앗을 뿌려라.
그러면 싹이 나와 자라서 꽃피고 열매맺어
나도 먹고 남도 줄 수 있다.
자신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자신이 가지 않으면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다.
이 가르침을 믿으라.
이것이 길이니라.'
-당신 그리움을 붙잡고-
내가 당신 그리움을 붙들고 사는것은 꼭 사랑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리움을 놓아버리면 당신을 다시 만나 비로소 알게된 내 인생 즐거움이
그대를 만나기 전의 그 밋밋한 세상으로 돌아갈것 같은 두려움 때문입니다.
그리움에 사무쳐 사는것은 꼭 그리움 때문만은 아닙니다.
당신을 잊어 버리면 텅 빈 듯한 허전한 가슴 채울길이 없는 허망한 때문입니다.
그 누군가를 다시 사랑하기 전에는 사랑했던 이를 잊지 못한다 하는데...
나에겐 첫 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인 당신께 내 마음 전부를
다 준 당신이기에 다시는 그 누구를 사랑 할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와 사랑이 두려운것도... 이별이 두려운것도 아닙니다.
다시는 당신 같은 사람 만나 사랑 할수있는 시간과 열정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내가 당신 그리움을 붙잡고 사는 이유입니다.
어둠 속에 길손처럼 찾아오는 고독이여 하던 일 멈추고 창 밖을 봅니다.
-혼자사는 여인- 봉은주
아버지가 유치원생 아들과 목욕탕엘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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